소설리스트

난가기연-348화 (348/892)

348화. 옛일은 옛일로 묻어 두자 (1)

두 사람이 주고받는 공격의 속도는 무척 빨라서, 보통 사람들은 손발이 휙휙 바뀌는 것만 얼핏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 합을 겨루던 그들은 마음이 급해졌는지 공격이 점차 거세졌고 공중으로 날아오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남자는 낙응상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녀가 쌓은 무공이 그간 많이 퇴보했다고 해도, 30합 정도를 겨루자 성공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그녀는 손날로 상대의 목을 내리쳤다.

“컥! 캑캑캑……!”

남자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감싼 채 연신 기침을 했다.

“비키시오! 도둑이 어디 있습니까? 도둑이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관아에서 나온 순찰관들이 도착하자 행인들이 갈라서서 자리를 내주었다. 그들이 분분히 손짓으로 소매치기를 가리키자, 순찰관들은 땅에 주저앉은 남자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잘됐군!”

“드디어 잡았어.”

“어서 저놈을 체포해 가시오!”

“어? 방금 여기 있던 그 여협(女俠)은 어디로 갔지?”

“그러게, 여기에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네.”

이때 낙응상은 거친 호흡을 내쉬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벗어난 상태였다. 그녀는 배를 부여잡고 창백해진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자 인파 사이에서 줄곧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하인들이 뛰어와 그녀를 부축했다.

“마님! 마님, 괜찮으십니까?”

“엄마!”

“엄마, 왜 그래요?”

“마님, 어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낙응상은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으며 손을 내저었다.

“지, 지금 더 흔들리면 안 될 것 같다. 적당한 곳을 찾아서, 일단 앉아야겠어!”

“저쪽에 찻집이 하나 있습니다. 마님을 모시고 거기로 가자.”

“어서 가자!”

그들은 피곤한 모습의 낙응상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천천히 찻집을 향해 걸어갔다.

육 산군은 여전히 인파에 둘러싸인 곳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천천히 낙응상 일행의 뒤를 따라갔다.

* * *

앞쪽의 찻집에서는 설서 선생이 막 이야기 하나를 끝낸 뒤였다. 그는 차를 한 잔 마신 뒤 찻집 뒤에 마련된 뒷간으로 향했다.

그 순간, 일찍이 대정국으로 돌아온 계연이 뒷간으로 향하는 길목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볼일을 마치고 찻집으로 들어가려는 설서 선생을 붙잡았다.

“어, 누구십니까?”

서생처럼 보이는 흰옷을 입은 남자가 자신을 붙잡자, 설서 선생이 의혹에 찬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계연이 그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

“선생께서 혹 이 이야기를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약 20년 전, 아홉 명의 협객들이 영안현에 가서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인데요.”

“아, 호랑이를 잡은 아홉 명의 협객 이야기 말씀이시군요. 그게 벌써 20년이나 되었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지요.”

“그럼 정말 잘되었네요. 그 이야기를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건 제 마음이니 부디 받아주세요!”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소매 안에서 당오통보(*當五通寶: 일반 동전 다섯 개의 가치가 있는 화폐)두 개를 꺼내 설서 선생에게 내밀었고, 그도 웃는 얼굴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야기 하나를 끝내서 새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때였는데, 누군가 이렇게 주문하기까지 했으니 돈도 벌고 부탁도 들어주는 셈이었다. 그러니 그로서는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돈을 준 그 서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설서 선생은 뒷간이 있는 방향과 복도를 비롯한 주위를 모두 둘러보고는, 아마 이야기를 들으러 자리로 돌아간 모양이라고 여겼다.

묵직한 당오통보의 무게를 가늠해보던 그는 그것을 안쪽 주머니에 넣고는,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웃는 얼굴로 찻집 대청으로 돌아왔다.

“선생님, 오셨군요.”

“어서 선생께 새 차를 올리시게. 돈은 내 밑으로 달고!”

“예이!”

“선생님, 다음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예, 새롭고 재밌는 걸로 부탁드립니다!”

손님들은 설서 선생이 돌아온 것을 보고 그에게 이런저런 말을 던졌다.

이 사회에서는 노래나 극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대단한 오락거리였다. 그 외에 일반 백성들에게는 오락거리라고 할 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어느 찻집에서 수준이 일정 이상 되는 설서 선생을 모셔 왔다는 소문이 나면, 손님들로 무척 북적거렸다.

“예, 예, 알겠습니다. 마침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정한 참입니다!”

설서 선생은 흰 종이부채를 든 채로 손님들을 향해 공수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조금 전 흰옷을 입었던 그 서생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태가 남다른 부인이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두 아이와 함께 찻집 안에 들어왔다. 이에 적지 않은 손님들이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고, 차박사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설서 선생은 차를 마시며 목을 부드럽게 가다듬었다.

“허허! 이왕 여러분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여기 계주에서 일어났던 옛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간 이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이 없었지요. 길이가 좀 짧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척 재밌습니다. 만약 이 중에 어느 분이 영안현이나 보순현 등에 가시게 되면, 이 일을 직접 겪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도 있을 겁니다.”

계연은 줄곧 설서(說書)를 일종의 예술로 여기고 있었다. 설서 선생들은 자신들의 입담에 기대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그들은 모두 장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장면만 보아도, 설서 선생이 이야기를 채 시작하기도 전에 몇 마디만 했는데도 이미 손님들의 호기심을 잔뜩 끌어올린 상태였다.

“아이고, 그만 뜸 들이고 어서 시작해 주십시오!”

“도대체 무슨 이야기지?”

“쉬쉬, 이제 시작하겠소!”

설서 선생은 ‘촤르륵!’하고 하얀 종이부채를 멋들어지게 피더니, 가슴 앞에서 몇 번 흔들다가 신중히 말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수십 년 전, 우리 계주의 우규산에는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가 있어 관아에 큰 골칫거리였었지요. 몇 년간 그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우규산 근처의 여러 현에 사는 백성들은 행여 호랑이가 내려올까 모두 벌벌 떨었고, 사냥꾼들도 감히 산에 오르지 못했었지요. 주변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어둠이 드리운 막막한 시기였습니다.”

찻집 안의 손님들은 모두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편, 막 자리에 앉은 낙응상은 깜짝 놀란 얼굴로 설서 선생을 바라보았다.

나이가 좀 있는 한 손님이 이야기를 듣다가, 목소리를 낮추고는 자신과 함께 온 이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이거 <구협전(九俠傳)>이구먼,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군!”

“<구협전>?”

“음, 들으면 자네도 알걸세, 여기 계주에서 있었던 일이야.”

“오, 그렇군.”

낙응상 곁에 앉은 두 아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서로 간식거리를 뺏으려고 다퉜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두 아이가 간식을 각각 두 개씩 빈자리 앞에 내려놓으며 득의양양한 얼굴로 웃고 있다는 것이었다.

낙응상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설서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부채를 접었다가 다시 쫙 펴서 흔들기도 하고, 성목(*醒木: 설화자(說話者)가 책상을 두들겨 청중의 주의를 끄는 데 쓰는 나무토막)을 두드렸다가 팔을 쭉 뻗으며 형상을 묘사하기도 했다.

낙응상은 찻집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들었어도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설서 선생의 이야기 속의 아홉 명의 소협들은 이름이 없었다. 모두 연 씨, 조 씨, 낙 씨, 두 씨처럼 성씨로 불렸다. 이야기도 많이 미화되었고 덧붙여진 것이 많았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그 호랑이와 세 차례나 맞붙었다고 되어 있었다.

“하하하, 마주치자마자 죽을 뻔했었는데…….”

미소 지으며 혼잣말을 하는 그녀의 눈가에는 얼핏 반짝이는 물기가 맺혔다. 예전의 그 일이 머릿속에 점점 또렷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낙응상은 하얗고 부드러운 두 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창 무공을 갈고 닦을 당시에 생긴 굳은살은 이제 모두 떨어져 나가, 자신은 이제 누가 봐도 손에 물 한번 묻힌 적 없는 귀부인처럼 보였다.

“내 원대한 꿈은 이제 아이들에게 맡겨야겠지.”

낙응상은 이렇게 탄식하며, 따뜻한 눈길로 서로 간식을 빼앗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낙응상의 일행이 앉은 자리로부터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육 산군은 눈을 감고서 설서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기가 걸렸다.

“이것이 바로 인연이구나! 옛일은 옛일로 묻어 두자.”

이렇게 중얼거린 육 산군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일으켜 낙응상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옆에 앉은 하인들은 잔뜩 경계하는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낙응상도 의혹 어린 눈길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생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육 산군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낙응상을 향해 공수했다.

“조금 전 여협께서 회임하신 몸으로도 그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과감히 나서신 것을 보고 참으로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게다가 여협께서는 제가 전에 알던 이와 무척 닮아 있어, 특별히 직접 와서 인사를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하인들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고 낙응상도 마찬가지로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녀의 두 아이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육 산군을 향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던졌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무척 대단한 분이세요. 백부님께서도 어머니가 예전에는 더 대단했다고 하셨어요!”

“맞아요. 나중에 크면 우리는 큰형과 함께 강호를 유람할 거예요. 그때는 우리도 대단한 대협(大俠)이 될 거예요!”

육 산군은 두 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원래 낙응상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으나, 찻집에서 들은 이야기와 낙응상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 돌연 인정을 베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제가 회임한 것은 어찌 아셨지요? 선생의 친구분과 제가 닮았다고요? 이름이 어떻게 되죠? 그분을 찾으러 오신 건가요?”

낙응상은 찻집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내공을 운용해 호흡을 조절했더니 이제는 태기가 많이 안정되어있었다. 그래서 더욱 편안하고 거리낌 없는 태도로 물었다.

육 산군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예전에 만났던 사람입니다. 친구라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원수에 가깝지요. 아니, 빚을 진 관계가 더 맞겠군요. 제가 채권자 쪽이고요!”

그러자 낙응상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해했다. 원래는 이 젊은이가 마음에 둔 아가씨에게 구애라도 하고 있나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 빚을 받으러 온 것이라니.

“그자는 설서 선생의 이야기 속의 여인과 같은 성씨입니다. 낙 씨거든요.”

이를 들은 낙씨 집안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낙응상은 심지어 자신과 닮은 데다 성까지 낙씨라 하니, 설마 집안의 어느 족매(*族妹: 성과 본이 같은 일가로서, 유복친 안에 들지 아니하는 같은 항렬의 손아래 누이)나 조카딸이 밖에서 빚을 지고 다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성씨만 알고 이름은 모르나요? 제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거든요. 만약 그게 사실로 밝혀지면, 빚을 받아 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빚을 진 것 자체는 작은 일이지만, 낙하산장의 명성을 고작 그런 일로 흠집이 생기게 둘 수 없었다. 낙응상은 듣고도 못 들은 척하려 하지는 않았다.

육 산군은 그저 웃으며 몸을 돌려 찻집 밖으로 향했다.

“아닙니다. 방금 그 빚을 받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정했거든요. 앞으로는 그 낙씨 성의 여협이 남편과 아이와 함께 편안한 여생을 보내길 바랄 뿐입니다. 어쩌면 장래에 대단한 협객을 키워낼지도 모르지요.”

이를 들은 낙응상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즉시 몸을 일으켜 이미 찻집 밖으로 나간 젊은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잠시만요, 선생님!”

그러자 육 산군은 걸음을 멈추고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부디 선생님의 존함을 알려 주십시오. 가능하다면 그 여인의 이름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제가 그 낙씨 성의 여협을 만나게 되면, 오늘 있었던 일을 꼭 대신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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