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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352화 (352/892)

352화. 그것도 호권(虎拳)이라고

시간은 어느새 해 질 무렵이 되어, 낮 동안의 시끌벅적함이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점포들은 슬슬 문을 닫고 백성들은 집으로 돌아갈 시각이었다. 반면 객잔에서 반나절 간 휴식을 취했던 난영극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출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객잔에 돌아온 후로 죽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는 그다지 외출하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 저녁 식사는 일찍부터 누군가와 약속된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방은 그의 오랜 지인인데다가 무림의 명사이기도 해서 약속을 어길 수가 없었다.

똑똑똑!

“난씨 어르신, 인귀루(仁貴樓)로 가야 할 시각입니다.”

방문 밖에서 그의 수하가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일깨웠다.

“알겠다, 곧 나가겠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아래층으로 내려와 인귀루를 향해 걸어갔다.

해는 이미 서산에 떨어져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로에 행인들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인귀루는 불을 밝힌 등롱을 여러 개 내건 상태였고, 멀리서부터도 안쪽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장사가 무척 잘 되는 듯했다.

두명부에서 무림대회가 열릴 예정인데다, 인귀루는 유명한 주루였으므로 강호에서 온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그가 입구에 도착하자 점소이(店小二)가 즉시 그들을 맞이하러 나왔다.

“손님, 혹 자리를 예약하셨습니까? 오늘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만약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조금 기다려야 합니다.”

“강맹(江猛), 강 대협께서 자리를 예약하셨소.”

난영극의 수하가 이렇게 대답하자, 점소이의 눈이 반짝였다.

“아, 아! 그럼 난 대협이시겠군요! 어서 위층으로 올라가시지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2층 창가 자리이고, 강 대협께서는 이미 와계십니다.”

점소이는 친근한 태도로 세 사람을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육 산군은 2층의 계단 근처에 홀로 앉아 있었다. 난영극이 올라오는 것을 본 육 산군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육 산군은 난영극의 몸에 살기(煞氣)가 휘감겨 있고, 원기(怨氣)도 서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이는 별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다. 강호인들에게는 상대를 때리고 죽이는 것이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원래부터 살기가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난영극에게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바르고 올곧은’ 기운이 없었다.

난영극의 일행이 창가 자리에 앉자, 육 산군은 홍소육(*紅燒肉: 통삼겹살에 진간장 등의 향신료를 넣고 조리한 음식)을 한 점 집어 먹으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난영극 일행 세 사람을 포함해 총 다섯 사람이 여덟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강 대협,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번 무림대회에서 기필코 높은 순위를 차지해, 대협을 지지하겠습니다!”

강씨 성의 남자는 온몸에 근육이 들어찬 건장한 체격에, 눈빛 또한 남달리 야성적이었다. 하지만 말하는 모습이나 행동거지는 그 얼굴 생김새와 달랐다. 그는 하하 웃는 얼굴로 난영극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난 대협의 말을 들으니 좀 더 확신이 생기는구려. 이번에 계주 무림 전체가 굳게 단합되어 있으니, 누가 선기를 점하기만 하면 일이 쉬울 것이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오르면, 결코 난 대협을 잊지 않겠소!”

“하하! 강 대협의 호권(*虎拳: 호랑이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권법)은 계주 전체에서 능가할 자가 없고, 대정국 전체로 보아도 상대해낼 자가 몇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략과 용맹까지 갖추셨으니, 대협께서 그 자리에 오르시는 게 이치에도 맞는 일이지요!”

이와 비슷한 일은 사실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고, 강맹 같은 자도 한둘이 아니었다. 모두 이번 무림대회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어떻게든 다른 이들의 표를 얻고자 했다.

“하하하하! 난영극! 강맹! 이 비열한 소인 놈들, 과연 여기 있었구나!”

별안간 계단에서 누군가 이렇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남색 경장(勁裝)을 입은 사내 네 명이 위층으로 올라왔는데 그들은 각자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너희는 누구냐?”

난영극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이렇게 물었다.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더라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졌군.’

한쪽에 있던 강맹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누구라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욕을 먹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하하하! 이 개 같은 놈들, 난 진작에 너희들이 수치도 모르고 이 무림대회에 참가할 것을 알고 있었지. 나는 번통(樊通)이다. 너희 두 놈이 내 집안을 망쳤지. 오늘이 바로 너희들의 죽는 날이다.”

“아이고, 손님. 주루에서는 싸우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저리 가게! 망가지면 제값으로 배상할 테니!”

이렇게 말한 남자는 소동을 말리러 온 주인장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챙! 챙! 챙! 챙!

네 사람은 칼을 뽑아 들어 창가에 앉은 사람들을 향해 겨눴다.

육 산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음식을 집어먹고 술을 마셨다. 하지만 법력을 운용해 귀를 쫑긋 세우고는 객잔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주의 깊게 경청했다.

“봐봐, 저쪽에 살짝 살집이 붙은 놈이 철편(*鐵鞭: 쇠 채찍)을 쓰는 난영극이야. 맞은편에 앉은 게 강변의 맹호라고 불리는 강맹이고. 둘 다 아주 못된 놈들이지. 정원부의 번씨 집안이 패가망신하는 데에 저 두 놈이 지대한 공을 세웠지.”

“쉿! 말조심하게!”

“흥, 원수가 찾아오는 건 당연한 거지, 내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했나? 게다가 여기는 두명부 무림대회 일로 낙 장주께서도 오셨으니, 이제 저런 무림의 쓰레기들은 받아주지도 않을걸. 저들이 뭘 할 수 있겠어? 번씨 집안은 검의첩을 잃은 뒤로 저런 자들에게 협박당해 수년간의 연구를 빼앗기기까지 했지. 우물에 빠진 사람한테 돌을 던지다니, 강호인으로서 난 저런 자들을 제일 혐오하네!”

육 산군은 그런 대화가 오가는 자리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들은 특별한 구석이 없는 세 명의 보통 사내였다. 말하는 것만 들으면 무척 의로운 자들인 것 같지만, 실은 그래도 두려웠는지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죽어라!”

“죽여!”

번통과 동료들은 이렇게 소리치며 난영극과 강맹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들이 몸을 움직이자마자 난영극은 그들의 실력이 자신보다 떨어진다는 걸 눈치채고는 코웃음을 흘렸다.

“어흥!”

강맹은 맹수가 포효하듯이 소리를 지르며, 호랑이의 앞발 모양을 흉내 낸 뒤 허리를 숙인 채 번통의 일행을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챙! 퍼억!

푸욱!

쿵!

그는 살집 두둑한 두 손만으로 검 네 자루를 상대했고, 사방이 피로 물들었다.

네 사람은 실력이 낮지는 않았지만, 강맹에 비하면 한참 떨어졌다. 난영극은 나서지도 않았는데, 열 번 정도 겨루는 사이에 그들 모두 중상을 입고 땅에 쓰러졌다.

주위에 있던 일반 손님들은 이미 도망친 상태였고, 강호인들은 도망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퍽!

번통은 가슴팍에 강맹의 공격을 받고 날아가 대들보에 부딪힌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푸읍!”

그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맹을 보며 찌푸린 얼굴로 웃었다.

“하, 하! 나는, 일찍이 너희들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다만 너희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하려던 것이다. 내 진작에…….”

“흥, 네 놈이 독을 쓴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저 마신 척한 것뿐이다!”

강맹이 이렇게 말하자 난영극은 소매 안에서 도자기 그릇을 꺼냈다. 그 안에는 원래 이들이 삼킬 예정이었던 독주가 들어 있었다.

“하하하!”

번통은 그런데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이제 너희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다. 이번 무림대회에는 많은 이들이 참석할 예정이니, 오늘 일어난 일도 곧 모든 이들이 알게 될 것이다. 무림의 거두가 되고 싶으냐? 선기를 점한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하하하하!”

번통은 무공에 있어 자신은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독을 쓴다 해도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쳤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들이 이 무림대회에서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번씨 집안의 미래는 자신보다 더 유망한 자에게 맡기면 될 터였다.

“네놈이 정말 죽고 싶은가 보구나!”

강맹은 이제 정말로 노기가 치솟아, 호권으로 번통의 머리를 내리치려고 했다.

휙!

이때, 파공음이 들려오자 강맹은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팍!

젓가락 하나가 강맹과 번통 사이의 바닥에 날아와 꽂혔다. 그것은 나무 바닥에 몇 촌 깊이로 꽂혀, 그 끝이 아직도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남의 일에 끼어들어?”

강맹이 계단 근처부터 시작해 식탁에 앉은 사람들을 차례로 훑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모든 이들이 슬금슬금 그의 시선을 피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웃기는군, 고작 그런 것을 호권이라고!”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푸른 옷을 입은 서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 산군은 겉으로 보기에는 딱 봐도 무공을 익힌 자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팔다리가 비실비실하다기보다는, 서생의 분위기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강호에는 온갖 기인들이 있었고, 어떤 현묘한 무공들은 신체 조건만으로 그것을 익혔는지 어떤지 구분할 수 없었다. 바닥에 꽂힌 젓가락은 여전히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방금 일어선 자는 고수가 분명했다.

육 산군이 한껏 비꼬는 말을 들은 강맹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아래위로 그를 살폈다.

“귀하는 어디서 오신 고수입니까? 이자는 저와 제 친우의 잔에 독을 넣은 자입니다. 게다가 칼을 휘두르기까지 했지요. 그러니 무슨 결과가 벌어지더라도 자업자득인데, 왜 저희 일에 참견하십니까?”

그러자 육 산군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 실은 저 번씨 성의 남자에게는 별 뜻이 없소. 다만 저쪽에 있는 저자가 내게 빚을 졌거든. 게다가 당신은 마침 저자와 같은 일행인 듯하니, 함께 갚는 게 어떻소?”

난영극은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지금 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당신과 일면식도 없는데 언제 빚을 졌단 말입니까?”

육 산군은 그에 대답하지 않고 양쪽 소매를 툭툭 털었다. 그러자 그가 입은 옷의 색깔이 천천히 푸른색에서 연한 노란색으로 변했고, 소매 부근의 검은 구름무늬도 점점 크기를 키워 위로 뻗어나갔다.

이 장면을 목격한 주위의 강호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 사람 지금 술법을 쓰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무슨 요사한 것이 아니오?”

“글쎄, 어쨌든 괴이하기 짝이 없군.”

“일단 저 두 놈이 어찌 나오는지 보세.”

주위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소리에는 호기심과 더불어 이 사태를 흥미로워하는 듯한 느낌이 묻어났다. 강맹과 난영극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입은 옷의 변화가 이토록 눈에 띄는 걸 보니, 그 위에 독이 발라져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저 서생이 정말로 술법을 부린 것이라면, 그건 더욱 골치 아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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