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54화 (354/892)

354화. 이런, 더러워졌지 않나

낙릉은 재빨리 다가가 난영극을 부축하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도움을 청한 사람이오?”

“낙 장주, 낙 장주! 오셨으니 되었습니다! 반드시 절 구해 주셔야 합니다. 한 사악한 자가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곳에서 우리 강호인을 죽였습니다! 강맹은 이미 목숨이 끊어졌고, 이제는 저를 죽이려고 따라오고 있습니다!”

난영극은 놀라 허둥대며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때때로 주위를 경계하다가, 마침내 길 한쪽에서 뛰쳐나온 육승풍과 다른 운각 문하의 제자들을 발견했다.

난영극은 육승풍이 나타난 것을 보자마자 왠지 모르게 낙릉과 낙풍을 보았을 때보다 더욱 흥분했다. 그의 얼굴에는 얼핏 병색이 짙은 환자에게서나 보이는 흥분감이 뒤섞여 있었다.

“허억, 어이! 육승풍, 육승풍! 나 여기 있네, 어서 오시게!”

낙풍은 눈썹을 찡그리며 난영극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 사람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낙릉은 난영극이 중심을 잡자마자 손을 놓았다.

낙풍은 이미 몇 년 전에 선천의 경지를 돌파하여, 지금은 선천 고수였다. 즉, 낙하산장의 두 선천 고수가 모두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슨 의외의 상황이 일어날까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육승풍의 무공도 무척 뛰어났기 때문에, 몇 초 만에 그들 가까이 다가왔다. 낙하별원의 하인들도 등롱을 들고나와 주위를 밝게 비췄다.

육승풍은 낙릉과 낙풍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낙 장주, 셋째 장주!”

이 두 사람은 발을 몇 번 굴리기만 해도 계주 무림 전체가 벌벌 떠는 무림의 거두였기 때문에, 언제든 항상 예를 지켜야 했다.

“음, 저자가 말하기를 자네와 공동의 원수가 있다던데?”

낙풍은 눈을 가늘게 뜨며 육승풍과 난영극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난영극은 그런 말을 하며 그자가 다른 무림인을 죽였다고도 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낙풍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원수라고요?”

육승풍은 상갓집 개처럼 낭패스러운 모습의 난영극을 바라보았다. 낮에 만났을 때와는 딴판인 모습이었다.

“내게 무슨 원수가 있지? 난 대협, 도대체 무슨 공동의 원수가 있단 말이오?”

그러자 난영극의 얼굴 근육이 부들거렸다.

“있다네! 하하하하, 자네도 잊었군, 자네도 잊은 거야! 하하하하, 모두 잊었어. 그자가 왔어, 이제 올 거야!”

낙릉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다가, 뭔가를 느끼고 고개를 돌려 한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의 별빛 아래에서 연한 황색 장포를 입은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어떤 특별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얼핏 보면 보통 사람처럼 보였다.

“왔네! 왔어! 저자야, 저자가 강맹의 심장을 뽑아갔습니다!”

난영극은 단번에 흥분하기 시작하더니 실성한 듯 고함쳤다.

육 산군은 마치 정원을 거니는 것처럼 여유롭게 걸어오다가, 낙하별원 바깥에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오? 선천 고수가 두 명이나 있었구려. 내 잘 아는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 고수들은 모두 천부적으로 재능이 뛰어나고, 남다른 기백과 의지를 타고난 사람들이라 하셨었지요. 하지만 그런 고수를 두 명이나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소! 확실히 기혈도 왕성하고 양기도 엄청나군요. 음, 육승풍 자네도 여기 있었군! 오히려 잘됐어!”

낙릉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육 산군을 자세히 관찰했다. 비록 겉으로는 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말하는 것만 들어도 일단 보통 사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어떤 말들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귀하는 누구십니까? 강변의 맹호인 강맹을 정말 죽인 겁니까? 왜 난영극을 놓아주지 않는 겁니까? 무슨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니, 저희 낙하산장의 체면을 봐서라도 다 같이 앉아 이야기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낙릉 정도의 위치라면 강호인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려면 신분과 실력 둘 다 갖춰야 했다.

“그럴 필요 없소.”

난영극이 육승풍을 같이 끌어내리려는 걸 본 육 산군은 이자에게는 더 이상 어떤 가망도 없다는 걸 알았다. 이에 육 산군은 더 거리낄 것 없이 난영극을 향해 다가갔다.

“멈추시오!”

낙릉이 번개처럼 끼어들어 한 손으로는 주먹을 내밀고 왼팔로 손바닥을 휘둘렀다. 이로써 육 산군을 물러서게 만들려 했으나, 육 산군은 한 손만으로 그의 공격을 위아래로 막으며 떨쳐냈다.

“헉!”

그러자 낙릉과 낙풍은 모두 깜짝 놀랐다. 육 산군은 낙릉의 공격을 막아낸 반동을 이용해 허리를 비틀며 난영극에게 부드럽게 다가갔다. 낙풍은 가벼운 나비처럼 회전하며 공중으로 날아오른 뒤, 연달아 아래쪽의 육 산군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그와 동시에 낙릉은 다시 권법(拳法)과 장법(掌法)을 교차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처음과 같은 탐색의 뜻은 없었고, 전력을 다한 것이었다.

휙! 휘익!

선천 고수 두 명이 주먹과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바람 소리가 났다.

팍! 파팟! 퍽! 팍!

육 산군은 그들의 공격에 부드럽게 몸을 회전하고, 손바닥으로 막고, 소매를 휘두르고, 팔꿈치로 공격했다.

육 산군과 두 선천 고수들은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열 번이 넘는 공격을 주고받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와 동작이 점점 더 커지고, 바닥에 깔린 돌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두 명의 선천 고수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그중 하나는 낙릉이었다!

눈앞의 광경은 육승풍과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경악하게 했다. 난영극만이 전에 본 것이 있어서인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이때 그는 다시 이성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조마조마한 얼굴로 싸움을 지켜보았다.

“실력이 괜찮군요!”

육 산군은 이렇게 말을 던진 뒤 소매를 휘둘러 낙릉을 멀리 떼어냈다. 낙풍이 그의 등 뒤를 공격하려던 순간, 몸을 돌려 그를 향해 웃으며 장법을 날렸다.

퍽!

콰지직!

낙풍은 거센 장풍(掌風)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오른쪽 손뼈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뼈와 근육이 여러 개로 토막 나는 것 같았다. 그는 공중으로 솟구친 뒤 여러 번 회전하여 땅에 내려섰다.

낙풍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쪽 팔이 다른 쪽보다 늘어져 약간씩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셋째야, 괜찮으냐?”

낙릉이 긴장한 얼굴로 묻자 낙풍은 애써 고통을 참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러자 육 산군이 웃으며 말했다.

“두 분 다 실력이 뛰어나시군요. 과연 선천 고수십니다.”

이렇게 말한 육 산군은 다시 앞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낙릉이 또다시 그 앞을 막아섰다. 그가 온몸의 진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리자, 공세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매서워졌다. 그는 육 산군의 주변에서 이리저리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주먹과 발길질을 연이어 날리며 혼자서 육 산군을 상대했다.

그러나 육승픙과 난영극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이 순간 낙릉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낙릉의 실력으로는 육 산군으로 하여금 원래 있던 자리에서 몇 발자국 움직이게 하는 것도 어려웠다.

“낙 장주, 저도 돕겠습니다!”

육승풍은 이렇게 소리친 뒤, 진기를 끌어올려 미종보(*迷踪步: 무공 중 보법(步法)의 한 종류)를 펼쳐 눈 깜짝할 사이에 육 산군 가까이 다가왔다.

“허엇!”

그의 고함에는 대량의 진기가 담겨 있어, 산을 뒤흔드는 기세의 주먹이 뻗어나가자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퍽! 퍽! 퍽!

권법을 한 번 날렸을 뿐인데, 여러 개의 주먹이 환영처럼 나타나 연달아 이어졌다.

‘어차피 이 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니, 아예 과녁이라고 생각하자.’

육승풍은 눈앞의 사람을 운각 뒤편의 말뚝이라 여기자고 결심하고는, 질풍 같은 권법을 쏟아부으며 그를 ‘뿌리째로 뽑아낼’ 기세로 달려들었다.

낙릉과 낙풍은 원래 육승풍에게 큰 희망을 걸지 않았지만, 설마 그가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었다.

낙풍은 고통을 꾹 참고 다시 싸움에 합세하여 왼손으로 장법을 날리며 힘을 보탰다. 육승풍의 공세가 비록 거셌지만, 어쨌든 선천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권법이 끝나면 금세 기세가 약해질 것이다.

낙릉은 이 틈을 타 선천의 기운을 두 팔에 휘감고, 남아있는 모든 진기를 미친 듯이 쏟아부었다. 이로써 짧은 시간 안에 상대를 물리치려는 속셈이었다.

반면 한쪽에 서 있던 난영극은 이미 희망을 버린 상태였다. 육승풍이 공세에 가담했는데도, 저 요괴는 때때로 그를 쳐다보며 무척 여유롭게 웃기까지 했다.

‘안 되겠군! 저들은 당해내지 못할 거야!’

희망이 무너지자 난영극은 곧바로 다른 쪽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퍽!

겨우 열 걸음이나 도망쳤을까, 난영극은 돌연 무언가에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앞에는 구름무늬가 수놓인 황색 옷을 입고서 싸늘한 미소를 짓는 육 산군이 서 있었다.

“어디로 도망치시게?”

다른 한쪽에 서 있던 낙릉과 낙풍, 육승풍은 모두 경악한 채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순간에 완전한 좌절감을 맛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과 맞붙던 상대가 돌연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수십 걸음은 떨어진 곳에 나타난 것이다. 마치 지금까지는 일부러 그들을 데리고 놀아준 것 같았다.

“살, 살려주십시오. 이,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의협심을 지니고 의로운 일을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처음의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이전의 과오를 모두 반성하고 되돌려 놓겠습니다! 그, 번씨 집안도, 번씨 집안의 돈도 모두 돌려주겠습니다. 또한 그들이 다시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도록 돕겠습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제발…….”

난영극은 육 산군에게 용서를 구하며 온갖 반성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꿇어앉아 쉬지 않고 머리를 쿵, 쿵, 조아렸다. 그러자 그의 이마가 깨져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육 산군은 낙릉을 비롯한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으셨습니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이들이라면 난영극의 말만으로도 이게 어찌 된 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난영극은 최소한 무슨 선한 무리는 아니었다.

육 산군은 하하 웃으며 계속 머리를 부딪히려는 난영극을 부축해 일으켰다.

“어서 일어나시게, 머리는 그만 찧고.”

창백한 안색을 한 채 온통 땀과 흙으로 더러워진 사람을 보며, 육 산군은 자신의 소매로 그의 이마에 묻은 피와 흙먼지를 닦아주었다.

“이런, 더러워졌지 않나.”

그의 말을 들은 난영극이 마음을 조금 내려놓은 순간.

“어흥!”

육 산군이 맹렬히 입을 벌리자, 호랑이의 모습이 그의 얼굴 위에 환영처럼 덧씌워졌다.

“으아악!”

난영극은 비명을 지르며 육 산군에 의해 한입에 꿀꺽 삼켜졌다. 그러자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이 마치 환영이었던 것처럼 사위가 고요해졌다.

다른 이들이 모두 경악한 사이, 육승풍의 덜덜 떨리는 몸이 돌연 뻣뻣하게 굳었다. 난영극을 한입에 삼켜버린 사람이 어느새 자기 눈앞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흐르며 그의 등허리가 축축해졌다. 육승풍은 이제 이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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