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옥(獄)’ 인장으로 음양의 범죄를 처단하다
“계 선생님, 조금 전의 제 질문에 대답해주실 수 있습니까?”
실은 조대동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내심 그것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때 이들은 이미 평범한 맹인처럼 보이는 이 서생이 실은 고인이며, 어쩌면 신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승에 관한 것은 범인(凡人)들은 알 수 없는 일이니, 이들이 호기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자 계연은 내내 짓고 있던 미소를 거둬들였다.
“저승은 당연히 존재합니다. 게다가 조대동 당신의 경우라면, 애전부 저승에서도 관리를 당신의 형장(刑場)으로 파견할 겁니다. 첫 번째 이유는, 당신이 죽은 후 혼백이 되어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도망치기 전에 잡아갈 수 있도록요. 두 번째 이유는…….”
계연은 조금 잔인하다고 여겨 대답을 망설였으나, 어차피 스스로가 쌓은 악업이었으므로 결과도 그가 책임져야 한다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들으니 능지형을 당한다고요. 비록 형을 집행하는 애전부의 관리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저승의 관리가 당신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울 겁니다. 당신은 3,600번을 베이기 전에는 결코 죽을 수 없을 거예요.”
조대동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곧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었다.
계연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수천 번을 베이고 사지가 잘리면서도, 정신을 놓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생애 이토록 강렬한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다. 지금 당장 자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혈 자리를 눌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계연은 그를 보며 고개를 저은 뒤, 다시 왕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왕 포두, 인장 좀 보여주세요.”
‘인장?’
왕극은 어리둥절해하며 품 안의 주머니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관인(*官印: 관청의 도장)을 꺼내 계연에게 주었다.
“이것 말씀이십니까?”
“네.”
계연은 인장을 받아 이리저리 살피다가, 위쪽에 크게 새겨진 ‘옥(獄)’ 자와 아래쪽에 작게 새겨진 ‘애전총포(*崖前總捕: 애전부 총 포두를 일컬음)’를 보았다.
“잘됐네요, 글자가 참 적합하군요!”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마술을 부린 것처럼, 어디선가 늑대 털 붓을 가져와 인장의 표면에 있는 ‘옥’자를 따라 썼다. 그가 마지막 획을 긋자, 인장 위의 ‘옥’ 자에서 빛이 번쩍인 뒤 사라졌다.
육승풍, 연비, 두형은 모두 계연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갔었다. 게다가 왕극은 스스로 포졸이 되기를 선택하여, 일신의 능력과 공로로 한 부의 총 포두가 된 자였다. 그러니 그에게도 무언가를 주어야 마땅했다.
흐르는 세월은 멈출 수 없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니, 왕극과는 이번 만남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또한 왕극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계연은 그를 위해 직접 붓을 든 것이었다.
“왕 포두, 이 인장은 포두 자신의 바른 기운에 기대어 힘을 발휘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악을 벌하고 공정함을 섬긴다면, 인장의 강기(*罡氣: 도교 용어로 굳세고 강한 기운을 뜻함)도 절대로 흩어지지 않을 거예요. 후에 범죄자들을 체포할 때, 이 인장만 갖고 있으면 저승의 귀신들조차 포두의 체면을 조금 세워줄 거예요. 삿된 것들이 관련된 일에 맞닥뜨려도, 그에 현혹되지 않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고요. 사람에게 이 도장을 사용하면 양기(陽氣)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검신(檢身)에 도장을 사용하면 그 사나운 기운이 더욱 날카로워지며, 음기 서린 혼백에 사용하면 그 악한 기운을 봉쇄할 수 있어요. 무척 유용하니 신중히 사용하세요.”
왕극은 두 손으로 인장을 받아들었다. 계연의 말을 듣자 인장이 전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왕극에게 인장을 돌려준 계연은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으므로, 몇 마디 더 당부한 뒤 다른 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계연은 사람들의 만류를 정중히 거절한 뒤,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단 몇 걸음 만에 그의 모습은 이미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두형과 왕극을 비롯한 이들은 제대로 마중조차 하지 못했다. 두 걸음 정도 따라가자마자, 이미 계연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모닥불 곁으로 돌아왔다.
왕극은 이때, 마치 어린 시절 처음으로 목검(木劍)을 얻었을 때처럼 극도의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인장을 손에서 떼지 못하고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인장이 전보다 무거워졌음을 왕극은 느낄 수 있었다.
* * *
의주는 계주와 병주 사이에 있고, 서녕부는 의주에서도 그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육 산군은 계주를 떠날 때 이곳을 지나쳤지만, 조룡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멈추지 않았던 것이었다.
맨 처음에 육 산군은 조룡을 먼저 찾아가려 했었다. 그러나 방향만 잡고 날아오다가 그만 의주를 지나쳐버렸고, 그 뒤에는 왕극과 두형이 함께 있는 것을 알고서 어차피 지나친 김에 옳다거니 하고 그들 먼저 찾아간 것이었다.
이제는 조룡이 녹명선원으로 출가해 승려가 된 것을 알았으니 일이 훨씬 쉬워졌다. 육 산군은 다시 바람을 타고 의주 서녕부로 향했다.
서녕부에 도착한 육 산군은 희미하게 느껴지는 감응을 따라, 도관현(道寬縣)에 내려선 다음 인파가 북적이는 현성으로 들어갔다.
도관현은 비교적 번화한 곳이라고 할 수 있어서, 성에 들어서자마자 곳곳에 펼쳐진 노점들이 보였다. 멜대를 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행상인들도 많았다.
육 산군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리에 흙이 잔뜩 묻은 각반(*脚絆: 발목에서 무릎 아래까지 감는 헝겊 띠)을 찬 노인을 발견하고는 그리로 향했다. 그가 들고 있는 소쿠리 안에는 햇볕에 잘 말린 산에서 캔 약초들이 가득했다.
“오, 이쪽 서생께서는 혹 약초가 필요하십니까? 이건 제가 산에 올라 직접 캔 것들입니다. 게다가 약방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쌉니다! 의원이 준 처방전이 있다면, 제가 보고 그대로 골라드리겠습니다. 혹 제게 없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것만 약방에 가서 사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쌀 겁니다!”
남자는 육 산군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열심히 설명했다. 그는 약초에 대해 잘 알고, 처방전에 대해서도 무척 익숙해 보였다.
육 산군은 속세에 들기 전에 이미 대정국의 화폐를 잔뜩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그는 웃으며 품 안에서 당오통보를 하나 꺼내 노인에게 건넨 뒤 이렇게 물었다.
“어르신, 말씀 좀 묻겠습니다. 소량산의 녹명선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남자는 당오통보를 받고는 무게를 가늠해본 뒤, 즉시 대답하지 않고 소쿠리 안에서 이리저리 물건을 골랐다. 그러더니 마침내 육 산군에게 마른 잎에 감싼 무언가를 건넸다.
“여기, 말린 기자(杞子)입니다. 약방에서는 구기자(枸杞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주 좋은 약초인데, 안에 들어있는 양으로 차를 7, 8번 정도는 충분히 끓여 마실 수 있을 겁니다. 꾸준히 먹으면 근골을 강하게 하고, 더위와 추위로부터 몸을 지켜주지요. 양기를 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요. 저는 정말로 상도의를 지키며 장사하는 겁니다. 이 정도 양을 약방에 가서 달라고 하면, 당오통보를 두 개는 내라고 할걸요.”
육 산군은 노인이 자신에게 건넨 약재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노인은 흡족한 거래를 마치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서녕부에는 그 이름과 비슷한 산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용통현(庸通縣)의 소량산(小凉山)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현성 남쪽에 있는 소량산입니다. 전자(前者)는 삼지구엽초, 두충, 산수유, 하수오, 황정(*黃精: 둥굴레)이 풍부하지요. 후자(後者)는 산이 훨씬 더 깊어서, 흔한 약재뿐만 아니라 산삼, 특히 산왕삼(山王蔘)이 자랍니다. 서생께서 물으시는 녹명선원은 분명 여기 남쪽에 있는 소량산에 있는 것일 테지만, 이제는 녹명선원이라 불리지 않습니다.”
노인은 궁금증을 일으키려 잠시 말을 멈췄지만, 육 산군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는 대명사(大明寺)라고 불리는데, 일전에도 아는 사람이 적고 가는 사람은 더욱 적었습니다. 지금은 아는 이가 더욱 없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 그 사찰은 참배객들이 올리는 향불이 그다지 아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절을 그렇게나 깊은 산에 지어놓다니요.”
육 산군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돌연 눈빛이 반짝였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르신.”
“뭘요! 조심히 가세요. 구기자 효과가 좋으면 다음번에 또 찾아와 주시고요!”
육 산군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즉시 몸을 돌려 떠나갔다. 현성을 나온 후에는 바로 바람을 일으켜 성 남쪽으로 향했다.
조룡이 스님이 되었다면 낙응상이 혼인하여 아이를 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로, 당연히 무슨 죄를 지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만나보기는 해야 했다.
원래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데다, 육 산군이 바람을 타고 갔기 때문에 그는 빠르게 소량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량산 상공에서 자세히 관찰해보니, 깊은 숲속에 숨겨진 사찰의 윤곽이 보였다.
사찰은 마치 산에 녹아든 것처럼 보여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산에 내려선 육 산군은 기운을 모두 갈무리하고 대명사로 향했다. 사찰은 깊은 산중에 있었지만, 저 멀리에서부터 천 개는 될 듯한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댕- 댕-!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오자, 육 산군은 눈썹을 찌푸리며 사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희미한 빛무리가 함께 퍼져 나왔는데, 그에 따라 뒤이어 울리는 종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변했다.
“보아하니 보통 사찰이 아니라, 명왕(*明王: 사바세계의 중생을 수호하는 왕)을 모시는 곳이었군!”
육 산군은 세속의 일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이전에 필부(匹夫)부터 해서 병졸, 서생 등 적지 않은 창귀들을 거느렸기 때문이다. 육 산군은 그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수행계에 대한 일에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가 아는 지식은 대부분 계연이 가르쳐준 것이었다.
그는 불교의 사찰들이 크게 두 종류로 나눠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명왕의 상(像)을 모시기만 할 뿐 실제로는 신자들을 속여 돈을 벌어들이려는 목적인 곳과 극히 적지만 진정으로 명왕을 모시며 수행을 하는 사찰이 있었다. 그런 곳에는 명왕의 화신(化身)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곳이 극히 드문 그런 사찰 중 하나일지도 모르니, 육 산군은 저도 모르게 태도가 엄숙해졌다. 그는 계단을 오르며 마음을 차분히 하고 의관을 바르게 한 후 정중한 태도로 사찰의 대문 앞에 섰다. 그곳에는 나이가 반백이 넘어 보이는 한 승려가 커다란 빗자루를 끌어안고 문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