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61화 (361/892)

361화. 깨달음을 얻지 못한 각명

“요, 요괴가…… 네놈이 감히 신성한 명왕불을 모시는 곳에 발을 들이다니! 대명사 승려들이여, 모두 저 요괴를 공격하라!”

사찰 입구에 있던 노승이 입가의 선혈을 닦으며 분노에 차 이렇게 고함쳤다. 반평생을 바쳐 수행해 온 신성한 정토(*淨土: 깨끗한 땅)가 요물에 의해 오염되었다고 느낀 것이었다.

다만 노승의 고함은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 순간 다른 승려들은 모두 마에 씌인 것처럼 육 산군의 눈을 바라보기만 할 뿐, 입을 열어 말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불법을 수행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수행이 얕은 승려들은 심지어 몸을 떨기도 했고, 정신을 잃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육 산군이 사찰 밖에 서 있는 노승을 향해 말했다.

“스스로 나서지는 못할망정, 뭐 하러 저 수행이 얕은 승려들에게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앞발을 들어 수레를 막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무모하게 덤빈다는 뜻)을 하라 시키는 것인가?”

이렇게 말한 육 산군은 사찰을 다시 훑어보았다. 금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조룡의 자취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조룡! 숨지 말고 이제 나오지! 어차피 만나게 될 거라면 일찍 만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나는 삿된 요괴이니, 이 승려들을 전부 잡아먹고 이 사찰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네! 그래도 나오지 않을 텐가?”

육 산군이 다시 한번 으르렁댔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감출 수 없는 짜증이 묻어 나왔다.

‘조룡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명사를 죄다 부숴버리는 수밖에.’

구름 위에서 계연은 안개에 감싸인 채 서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기왓조각이 뜯겨나가고 담장이 무너진 대명사와 거대한 요괴 모습을 드러낸 육 산군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나서야 할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계연은 육 산군이 이미 충분히 참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이든 요괴든 인내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육 산군이 정말로 저 승려들을 먹어버리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저 사찰을 부수고도 남을 것이다.

대명사는 비록 선부에는 비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보통의 사찰이 아니라 명왕의 소조상(塑造像)을 모신 곳이었다. 명왕의 화신(化身)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불교의 명왕들은 대단한 실력을 가진 존재로, 대정국의 불교가 그리 융성하지 않다고 해서 불교의 신들도 힘이 없지는 않았다. 대명사가 진정한 위기의 순간에 놓이면, 명왕의 화신이 나타날 확률이 높았다.

그때가 되면 육 산군이 물러나고 싶다고 해서 싸움을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계연은 사찰이 무너지는 것도, 큰 싸움이 일어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저 승려들도 분명 그럴 것이고, 심지어는 육 산군조차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단 둘뿐인데, 하나는 계연이고 다른 하나는 조룡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조룡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육 산군은 다시 한번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자, 오싹한 웃음을 지으며 주위의 겁먹은 승려들과 사찰 안쪽으로 들어온 세 노승들을 바라보았다.

“각명(*覺明: 밝게 알다, 명료하게 알다. <능엄경(楞嚴經)>의 구절에서 따옴) 대사(大師)라, 법명이 가소롭군!”

이렇게 비웃는 육 산군의 목소리는 아주 낮아서 왜인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계연은 자신의 제자가 진정으로 화가 났다는 것을 느끼고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육 산군의 요기에도 희미한 변화가 생겼고, 육 산군에게서 살의가 느껴졌다.

계연이 육 산군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막 전달하려던 순간, 사찰의 대전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재 대명왕불. 육 시주, 저는 여기 있습니다!”

대전의 문이 안쪽에서부터 열리더니, 그 안에 놓인 1장(*약 3m) 높이의 명왕 좌상(坐像)이 보였다. 뒤이어 민머리에 엄숙한 표정을 한 중년의 승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바로 이전의 조룡, 지금은 각명인 승려였다.

각명은 두 눈을 감은 채 합장했는데,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보아 계연은 그가 실은 무척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깊게 숨을 한번 들이마시더니, 눈을 뜨고는 사찰의 중앙에 서 있는 거대한 요괴를 바라보았다.

각명은 경공을 이용해 공중으로 날아오른 다음, 육 산군의 앞발에서 20여 장(*약 60m)도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멈춰 섰다. 이 정도 거리라면 육 산군이 앞발을 한번 휘두르기만 해도 각명을 죽일 수 있었다.

“각명, 왜 나온 것이오? 설마 혜동대사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오?”

우두머리 격의 노승은 이때 감정이 격해져서 다른 두 노승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명의 곁으로 뛰어왔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거대한 요물과 각명의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각명을 유심히 바라보던 육 산군의 표정이 조금 미묘해졌다. 각명에게서는 사람이 가진 왕성한 화기(火氣)가 느껴졌고, 심장이 뛰는 속도를 보니 무척 긴장한 듯했다. 게다가 비록 불법의 기운은 희미했지만, 악한 기운이나 원기(怨氣)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이곳은 불법을 닦는 대명사이고, 불법은 원기나 악한 기운을 씻어내는 데에 무척 탁월했기 때문에 조룡이 정말로 떳떳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육 산군은 그 점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를 잡아서 살던 집이나 주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언제든 진상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때 각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혜동 대사께서는 만약 액운이 닥치거든, 그게 무슨 일이든지 간에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셨었지요. 잠시만 인내하면 그것이 지나가리라고요. 하하하…….”

각명은 쓴웃음을 지으며 노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방장(*方丈: 주지 스님), 저는 어쨌든 스님 같은 고승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을 꿰뚫어 볼 수도 없고, 열린 생각을 할 수도 없습니다. 저야 명왕불상 아래에 숨어있으면 괜찮다고 해도, 여러분들은 누가 와서 구한단 말입니까? 이에 저도 망설이기도 하고 고민을 거듭하기도 하다가 결국은 이렇게 나온 겁니다.”

계연은 그의 말을 듣고 퍽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 혜동대사는 자신이 아는 사람과 동일 인물일까?

각명은 고개를 들어 육 산군을 바라보았다. 호랑이 요괴가 왔다고는 해도,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모습일 줄은 몰랐다. 지금의 육 산군은 자신의 기억 속의 호랑이보다 더욱 위엄이 넘치고 두려운 외양을 하고 있었다.

“육 산군, 조룡이 여기 왔습니다. 저는 이전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간악한 자에게 이용당해 의로운 자들을 오살(誤殺)한 적이 있습니다……. 진상을 알고 난 후에는 회한에 잠겨 술을 많이 마셨었는데, 뜻밖에도 제가 술을 마시고 중얼거린 말을 다른 이들이 듣게 된 것입니다. 저는 당시에 마음이 어지럽고 어리석었기 때문에, 이 일이 새어나가 제 명성이 더럽혀질까 봐 그자들을 쫓아가 캐묻다가 결국은 죽였습니다…….”

육 산군은 그의 고백을 들은 후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가느다랗게 치뜬 눈 속에서 살기 어린 눈빛이 번쩍였다.

“그 후로는 시시때때로 악몽을 꾸어, 낮에는 정신이 멍하고 밤에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절에 가서 명왕불상 앞에서 경전을 읽으면 신기하게도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계연은 구름을 밟고 서서 조룡을 바라보았다. 그 당시 그는 이미 너무 많은 원한이 몸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명왕불상 아래에서만 잠을 잘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명왕불상이 있는 곳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만약 무량수(*無量壽: 아미타불의 수명이 한량없고, 또한 중생을 제도하여 수명이 한량없도록 하기 때문에 무량수라고 일컬음)가 계시다면, 무량과(*無量果: 남에게 베풀고 계율을 지키며 수행하면 공덕(功德)에 따라 얻게 되는 선과(仙果))를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는데, 한대사께서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각명은 고통스러웠던 지난 이야기를 마치자 마음이 조금 편해진 듯했다. 그러고는 호랑이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요괴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육 산군, 이전에 사람을 잡아먹었던 그 죄책감을 어떻게 떨쳐냈습니까?”

조룡은 그를 도발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해답을 얻고자 묻는 것이었다. 이에 육 산군도 살기를 누르고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후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 영지를 얻었을 때, 사람들은 내 모피를 얻기 위해 나를 사냥했소. 이에 나도 사람들의 피륙을 사냥했지. 후에 사람을 먹어 창귀를 얻자, 그 창귀가 내게 살아있는 사람들을 다섯이고 열이고 바칠 테니 자신을 놓아달라 해 허락했소. 그렇게 나중에 계 선생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오늘날에 이른 것이오. 나도 이제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거라면 나는 확실히 그걸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군.”

육 산군은 비록 솔직하게 대답했지만, 조룡이 원하던 답은 이것이 아니었다. 조룡은 점차 평온해지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얼굴에 난 식은땀을 닦은 뒤 탄식했다.

“그간 무공을 수련하고 경전을 읽을 때를 빼면, 단 한 번도 제가 저지른 일의 죄책감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마침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군요. 벌을 내리든 죽이든, 육 산군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육 산군 앞에 서 있는 각명은 마치 커다란 고양이를 맞닥뜨린 귀뚜라미처럼 보였다. 요괴의 금빛 고리 같은 눈동자가 세 노승과 각명에게 크게 압박했다.

그 눈과 시선이 마주치면 말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세 노승들조차 점점 빨라지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노승들은 두려움을 마음으로 느꼈다. 이들은 이게 요괴의 술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사찰의 주지인 노승이 그중에서 도행이 가장 높았으므로, 그는 애써 두려움을 억누르고 합장한 뒤 이렇게 말했다.

“선재 대명왕불. 육 시주, 각명은 우리 불문(佛門)에 있어 무척 중요하오. 모든 인과(因果)는 우리 불문에서 대신 받겠소…….”

쿠웅……!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노승은 심장이 별안간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순간에 혼이 몸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뒤이어 이들은 온몸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고, 입도 열 수 없으며 정신마저 혼몽한 상태가 되었다. 숨 쉬는 것만 빼고는 나무 인형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육 산군이 가볍게 숨을 후우 내뱉자, 그 숨결이 일으킨 바람에 세 노승은 한쪽으로 밀려났다. 각명은 그 바람에 몸의 중심을 잃고 눈을 뜰 수조차 없었지만, 그래도 함께 휩쓸려가진 않았다.

육 산군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는 듯 오직 각명만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그렇게 벗어나고 싶다면 스스로 하시오.”

육 산군이 손을 한번 휘두르자, 멀리 무너진 폐허에 박혀있던 석장(*錫杖: 승려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이 날아와 조룡의 앞에 멈춰 섰다.

“어쩌면 이 승려들 때문에 줄곧 벗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이제 마음 놓으시오. 대명사의 그 누구도 당신을 막을 수 없을 테니. 법기(法器)인 석장을 쓰면 혼백과 육신이 모두 사라질 것이오.”

육 산군은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금빛 고리 같은 두 눈동자가 각명에게서 불과 1척(* 약 30cm) 거리에 있었다.

“예전에 당신은 술에 취해 스스로 비밀을 누설한 뒤, 땅에 떨어질 체면을 받아들일 용기를 내지 못했었지. 그러니 오늘은 최소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용기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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