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과연 다른 수가 있었군
이 석장이 조룡의 혼백과 육신을 모두 사라지게 할 거라는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그는 불문의 법기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지만, 일부러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요기(妖氣)를 품은 화염이 각명의 주위를 둘러쌌고, 육 산군의 거대한 황금빛 두 눈에 승복(僧服)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두 사람의 점점 더 고조되는 감정과 함께, 선악(善惡)과 시비(是非)가 그의 두 눈에 낱낱이 드러났다.
각명은 눈앞에 떠 있는 석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육 산군의 금빛 고리 같은 동공을 배경으로, 은색의 석장은 더없이 고결해 보였다.
계연은 구름 위에서 법안을 전부 열었다. 대명사에 퍼진 요기와 불법의 기운, 조룡 자체의 특수함으로 인해 계연은 무척 드물게도 이 모든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계연의 눈에는 육 산군이 이때 특수한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이 보였다.
‘사람의 혼을 뒤흔들어 거울처럼 비춰보고 있어. 신성한 물건을 세우고, 형체와 상이 서로를 비추는 거야.’
이런 수단은 육 산군이 즉흥적으로 생각해냈거나 아니면 직감적으로 운용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등불이 바닥의 때를 더욱 눈에 띄게 하여, 그 안의 주인과 손님 모두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원리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마도 오직 육 산군만이 각명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을 낱낱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계연의 법안에는 조금 다른 것들이 보였다. 바로 조룡의 몸에 뒤덮인 은은한 금빛 막이었는데, 그 위로 불경의 글자들이 흐르고 있었다. 육 산군이 이것을 봤는지 못 봤는지는 계연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각명은 떨리는 손을 뻗었다. 손끝이 석장에 닿는 순간 잠시 망설였다가, 마침내 석장을 손안에 꼭 쥐었다.
“이것도 괜찮겠지…… 어차피 나는 진짜 승려도 아니었으니까…….”
각명은 이렇게 중얼거린 뒤, 석장을 든 손을 길게 뻗어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팔근육에 힘을 잔뜩 주고, 진기(眞氣)를 끌어올려 자신의 두개골을 향해 내리쳤다.
텅!
그러나 그가 힘껏 내리친 석장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고, 육 산군이 뻗은 앞발에 부딪혔다.
각명이 눈을 뜨고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육 산군을 바라보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죽는 건 간단하지. 하지만 이왕 무량수 무량과라는 포부를 세운 데다, 이 승려들조차 당신을 이렇게 보호하려는 걸 보니 불자(佛子)가 될 자질을 지닌 것이 틀림없군. 정말로 이렇게 목숨을 끊으려는 건가?”
조금 전 각명이 석장을 내리치던 순간에는 온갖 감정이 각명의 가슴에서 폭발하듯이 솟구쳤었다. 이제 그는 오히려 평온을 되찾아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산군께서는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산하여 제 죗값을 치른 뒤 다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육 산군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뒤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제 당신을 믿지만, 당신을 숨겨두려던 이 승려들은 못 믿겠소. 당신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바 있지. 마침 내게 당신의 마음이 진실한지를 알 방법이 있소. 그때 나와 했던 맹세를 끝맺을 수도 있고, 이후에 수행을 이어갈 수도 있지.”
“무슨 방법입니까?”
“하하하, 아주 간단하오. 내가 당신을 먹으면 그쪽은 창귀로 변하지. 그렇게 되면 당신의 생각이 올바른지, 진정 경건한 마음을 가졌는지 등의 변화를 내가 낱낱이 느낄 수 있소. 게다가 나는 그 후로 간섭하지 않을 테니, 계속 수행을 이어갈 수도 있고 그간 쌓은 인과(*因果: 마음·입·몸으로 짓게 되는 갖가지 생각·말·행위인 업(業)을 기반으로 원인과 결과를 연결시켜 현상을 이해하는 불교 교리)를 치를 수도 있지.”
각명은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그럼 제게 뭐 하러 이리 많이 설명하십니까? 언제든 저를 삼키면 되는 것을요. 조금 전 대명사 승려 전체가 막아서도 산군을 막지 못했는데, 제가 뭐라고요?”
“아니오, 아니오. 만약 당신에게 진정으로 죽을 마음이 있는지 알 수 없으면, 나는 당신을 삼킬 수 없소.”
육 산군은 고개를 들어 대전 안의 명왕불상을 바라보았다. 도금을 칠한 명왕불상은 장엄하고 엄숙해 보였다. 바깥에 걸린 장명등(長明燈)이 불상을 비추며 은은하게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당신의 몸에 무량불법(*無量佛法: 무량수, 즉 아미타불의 가르침)이 덧씌워져 있기 때문이오. 대명사의 명왕 화신(化身)이 줄곧 나타나지 않아 이 사찰이 겉으로만 명왕을 모시는 곳인 줄 알았는데, 방금 신통력을 이용해 당신을 관찰해보니 무량불법의 태반이 전부 당신에게 있었소!”
육 산군은 다시 고개를 숙여 각명을 바라보았다.
“조룡, 죽음을 바란다면 이왕에 당신 몸에 덧씌워진 불법을 모두 흩어 보내시오. 그것은 당신의 마음을 따라갈 것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경전을 외고 불법이 명왕에게 돌아가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되오. 그렇게 불법이 천천히 사라지다 때가 되면 내가 당신을 삼키겠소!”
계연은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육 산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육 산군도 과연 조룡의 몸에 숨겨진 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명왕의 화신이 갖춘 불법이 승려라고 치기엔 애매한 범인(凡人)에게 가 있다니. 만약 잘되면 그야말로 명왕불상이 살아 움직이는 셈이었다.
계연은 조룡의 몸으로 명왕의 불법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명왕불상에서 나온 힘이 천천히 조룡에게로 흘러왔는데, 이 과정은 아주 느린 데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조룡도 아마 이를 몰랐을 것이다. 바로 이런 조룡의 특수한 자질 때문에 대명사의 승려들이 그를 그토록 보호했던 것 같았다.
조룡이 진정으로 불법을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그의 장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대명사도 그를 따라 함께 높은 위치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계연은 이때 육 산군의 말로 인해 또 다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약 육 산군이 이 점을 놓치고 곧바로 조룡을 삼켜버렸다면, 육 산군은 아주 심각한 ‘배탈’을 앓게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바로 조룡을 죽인다면, 명왕의 힘을 자극하여 육신을 가진 명왕의 화신이 나타나게 될지도 몰랐다.
‘고명한 수단이군!’
계연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감탄했다. 동시에 대체 어떤 대사가 저런 현상을 발견하고 각명을 이끌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이는 고승(高僧)이 직접 손을 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건 명왕이 친히 강림한다 해도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각명이 만났던 대사는 계연이 전에 알던 혜동대사와 법명이 같았다. 하지만 계연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들 대사들이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내 제자도 뒤떨어지지 않지!’
조룡은 스스로 무량수 무량과의 포부를 품은 데다, 무공을 익힌 자의 특수함 때문인지 명왕의 힘을 담을 좋은 그릇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에 육 산군은 조룡 스스로 명왕의 힘을 흩어버리게 만들어, 아예 그 뿌리를 끊어낼 계획이었다. 그런 일은 계연이라 해도 힘이 부치는 행위라, 오직 조룡 스스로만이 해낼 수 있었다.
물론, 넝쿨검이나 삼매진화를 이용해 죽이면 더욱 간단하겠지만, 그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좋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각명이 이렇게 묻자, 요기에 의해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노승들이 깜짝 놀라 입으로 ‘으으!’ 소리를 내며 무어라 말하려 했다.
육 산군은 그들을 상대조차 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쉽소. 아는 불경을 외우면서, 모르면 선재대명왕불 같은 거라도 계속 외치면 되오. 그렇게 마음을 깨끗하게 한 후 불법이 떠나가기를 바라기만 하면 되오.”
이에 각명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단 몇 초 만에 그의 몸에서 금빛으로 번쩍이는 불경의 글자들이 스르르 떠올랐다. 바로 <좌지명왕경(坐地明王經)>이었다.
뒤이어 조룡의 온몸이 삽시간이 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일전에 세 노승이 불법을 이용해 육 산군에게 맞섰을 때보다 훨씬 강력한 빛이었다.
“부처께서 좌지(坐地)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나는 사촌 간이지만, 친형제나 다름없다. 당초에 발심(*發心: 보리심(菩提心: 불도(佛道)의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으로써 중생(衆生)을 널리 교화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했을 때…….”
각명은 경건한 마음으로 불경을 외우며 자신 안에 있는 불법을 계속 멀리 밀어 보냈다. 그것은 금빛이 나는 강물처럼 대전 안의 명왕불상을 향해 흘러갔다.
육 산군은 그 장면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제 조룡이 정말로 성심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잠시 후에 그가 조룡을 창귀로 만들려 하면 대명사 승려들은 분명 강력히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육 산군은 전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창귀가 된 조룡을 대명사에 남겨두면, 아마 수십 년은 하산하지 않을 것이다.
불문에는 물론 덕이 높은 고승들도 많겠지만, 대부분의 승려는 모두 제각각의 사념을 가지고 있었다. 육 산군은 대명사 또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일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조룡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관여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조룡을 집어삼킨 후 소협들과의 약속을 전부 이행하면 조룡은 창귀가 되어서도 고승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불문에서는 계속 연옥(煉獄)에서도 성불할 수 있다고 설파해왔다. 그러니 조룡이 창귀가 된다 해도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육 산군은 후에 조룡의 수행에 대해 어떤 관여도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다만 조룡이 대명사 명왕불의 힘을 더는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자신과, 또 조룡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각명이 멈추지 않고 불경을 외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몸을 뒤덮은 금빛이 점차 힘을 잃기 시작했다.
하늘 위에 떠 있던 계연은 이때 대전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룡을 감싼 금빛이 약해지는 것과 반대로, 대전 안의 불상은 점점 더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분명 조룡이 불경 외는 소리 외에 사위는 무척 고요했는데도, 계연은 희미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육 산군은 아직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쿠구구궁……!
‘과연 모습을 드러냈군!’
계연이 그렇게 확신한 순간이었다.
슈욱!
한 줄기 금빛이 대명사 대전에서 솟구쳤다.
“불법은…… 무변(*無邊: 끝닿는 데가 없다)하다…….”
장엄하고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대전에서 새어 나오는 금빛이 고리 모양을 완성했다. 불음(佛音)이 대명사 전체를 울리자, 내내 육 산군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승려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쿠구궁……!
대전의 대문과 담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흙먼지 속에서 거대한 금빛의 장인(掌印)이 나타나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육 산군을 향해 날아갔다.
후욱!
펑……!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거대한 요괴의 몸이 십여 장(*약 30m) 넘게 미끄러지다 겨우 멈췄다.
세 노승은 감격한 얼굴로 대전 방향을 향해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명왕불의 법가(*法駕: 법체(法體)가 행차함)를 영접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