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네 팔로 하늘을 떠받치니 신묘한 술법이란 무량(無量)하구나
대전 안.
금빛이 번쩍이는 명왕불 좌상(坐像)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제단에서 일어났다.
콰득, 콰드득-!
불상의 몸에서 돌가루와 향의 잿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불상의 키는 점점 더 높아져 대전 안에 걸린 유리 등에 닿을 정도였다.
조룡이 명왕의 힘을 돌려주는 것을 느꼈던 것인지, 어딘가에 있었던 명왕이 깜짝 놀란 것이 분명했다. 이에 명왕의 화신이 마침내 자신의 소조상(*塑造像: 찰흙, 석고 따위로 만든 상)에 강림한 것이다.
쿵……!
쿵! 쿵! 쿵!
명왕불상은 둔탁한 걸음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와, 허리를 굽혀 문턱을 넘었다.
단단한 불상의 한 부분이었던 가사(*袈裟: 승려가 장삼(長衫)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치는 법복(法服))가 불상이 걸을수록 점점 더 부드럽게 변하더니, 마침내 진짜 의복처럼 변했다. 이제 불상에서 진흙으로 빚어낸 것 같은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고, 오히려 불상은 부처의 금신(*金身: 불경에서 부처의 법신(法身)을 묘사할 때 쓰는 말. 부처의 가르침이 영원히 전해진다는 의미)처럼 자연스러웠다.
불상은 육 산군에 비하면 여전히 작았으나, 그래도 2장(*약 6m) 높이를 초월했고 등 뒤로 불법의 동그란 빛무리가 나타나 있었다. 불상의 주위로는 불경의 글자와 그것을 읽는 불음(佛音)이 감돌고 있어, 불상은 무척 장엄하고 당당해 보였다.
육 산군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조룡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명왕의 힘을 흩어 보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불상을 바라보았다.
“명왕의 화신이시군요?”
불상은 담장을 넘어 사찰의 광장에 서서 조룡을 잠시 바라본 다음 육 산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재(善哉), 불법(佛法)은 신묘하고 무량(*無量: 한계가 없다, 무한하다)하다!”
불상은 두 손을 천천히 합장하더니, 다른 말 없이 곧바로 오른손으로 장법을 날렸다. 거대한 금빛의 손바닥 모양에 진산대법(鎭山大法)이 모여들었다. 육 산군은 마치 커다란 산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이를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었다.
“어흥-!”
육 산군이 포효하자 그의 몸에서 화염이 솟구치더니, 화염은 단번에 큰불로 번져 사찰의 중앙 광장 대부분을 뒤덮었다. 그의 날카로운 발톱에는 요기(妖氣)가 담긴 검은 바람이 감돌았다.
슈욱!
육 산군은 날아오는 공격을 발톱을 휘감은 광풍으로 막아냈다.
쿠구궁……!
일순간 땅이 진동하더니 명왕의 화신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반면 육 산군은 사지의 발톱을 땅에 단단히 고정한 상태로 뒤로 확 밀려났다. 그러자 대명사 마당에 깊게 팬 골짜기가 생겨났다.
뒤이어 불상이 진언을 읊기 시작했다.
“옴…… 마…… 니…… 반…… 메…… 훔…….”
불상이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때마다 금빛이 반짝이며 빛이 물결처럼 대명사 전체에 퍼져나갔다. 동시에 소량산의 여러 산봉우리에서 금빛의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 육 산군을 향해 날아왔다.
쿵! 쿵! 쿵! 쿵! 쿵! 쿵!
여섯 번의 공격을 연달아 받은 육 산군은 대명사가 자리한 산봉우리에서 날아가, ‘쿠구궁!’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 장(丈) 떨어진 산허리에 떨어졌다.
거대한 요괴가 떨어지자 그 충격에 주위의 나무가 부러지고 암석이 굴러떨어졌다. 육 산군이 떨어진 충격으로 난 소리가 잦아들자, 희미한 메아리가 울리며 육 산군의 주위에 온통 흙먼지가 일었다.
‘고작 명왕의 화신일 뿐인데, 이렇게나 대단한 힘을 가졌다니!’
육 산군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깜짝 놀랐다. 조금 전 당한 공격에 뼈가 은근히 시큰댔지만, 육 산군의 도행으로 보면 이 정도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 상처는 잠깐 아프고 사라질 테지만, 문제는 명왕의 화신 때문에 이 일을 처리하기가 더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왕불의 화신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리 침착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가 걸치고 있는 가사(袈裟) 위에는 육 산군의 발톱에 긁힌 흔적이 남아, 그 안쪽으로 금색의 피부가 드러나 보였다. 게다가 그 피부조차 긁혀 있어 그 안의 불상을 빚을 때 사용한 진흙이 살짝 보이는 상태였다.
이를 본 육 산군은 저 불상이 비록 온전한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지만, 명왕이 진짜로 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저 불상의 본질은 흙을 빚어 만들어낸 것이고, 그러니 당연히 부술 수 있을 것이다.
육 산군에게서 다시금 요기가 솟구쳐 나와 화염이 하늘 반쪽을 뒤덮었다. 그것은 점차 거대한 맹수의 형태로 변하더니, 맞은편 봉우리 몇 좌(座) 위에 엎드려있는 요물의 형상이 되었다.
“좌지명왕불(坐地明王佛)이시여, 조룡과 저는 일찍이 맹세한 바 있습니다. 인(因)이 있으면 과(果)가 있는 법, 이 일은 불법과는 무관합니다. 게다가 그에게 명왕의 힘을 전달할 때, 대명사의 고승들은 조룡의 뜻을 묻기나 했습니까? 명왕불께서도 그의 뜻을 물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육 산군의 목소리가 소량산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저 멀리 나무꾼에게 도달했을 때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둥근 빛무리를 뿜어내는 불상은 산봉우리 위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요물의 형상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저 멀리 날아간 육 산군의 본체를 주시했다.
조금 전 그 여섯 번의 공격 중 처음 두 번만 육 산군에게 먹혀들었고, 다른 네 번은 그가 만들어낸 화염과 광풍에 부딪혔었다. 저 요물이 바람을 다루는 기술은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는데, 그것 말고도 다른 신묘한 수단이 많은 듯했다.
게다가 저 호랑이 몸에 인간의 얼굴, 귀 옆에 난 기다란 털 등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신령스러운 위엄이 느껴졌다. 꼬리를 흔들 때면 그것이 여러 개로 보이는 허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요괴이거늘, 만약 저 요물이 꼬리를 몇 개 더 수련해 낸다면 세상을 온통 혼란에 몰아넣을 엄청난 요괴가 될 터였다. 이렇게 하다가는 힘만 소모하고 요물을 물리치지 못할 것 같아, 명왕의 화신은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요물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불법은 무변(*無邊: 끝닿는 데가 없음)하고, 무량하도다…….”
불음(佛音)이 멀리 퍼져나가며 불상은 눈을 감았다. 하늘에 퍼진 불법의 빛이 아래로 모여들며 불상이 뿜어내는 빛이 더욱 환해졌다. 뒤이어 색색의 빛이 떠올라 하늘의 구름을 일곱 가지 무지개색으로 물들였다. 구름은 서로 합쳐져 마침내 명왕의 형태를 이루었다.
“공적(*空寂: 만물은 모두 실체가 없어 생각하고 분별할 것이 없음)의 뜻을 받들어 좌지명왕의 법상(法相)을 소환한다. 어떤 법도 기억하지 않는 것을 일러 선정(禪定)이라 한다. 마음이 공(空)임을 아는 것을 일러 부처를 본다고 한다(不憶一切法, 乃名爲禪定, 知心是空, 名爲見佛. <달마오성론(達磨悟性論)>의 한 구절)…….”
불상이 불경의 구절을 읽어나가자 그 목소리가 여러 개로 울려 퍼졌다. 어느새 온 산이 불경 읽는 소리로 뒤덮였다.
무지개 빛깔의 구름은 불음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대명사와 가까워지자마자 온통 금빛으로 물들며, 명왕의 화신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러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불상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며 그가 뿜어내는 빛도 더욱 찬란해졌다.
화신이 뿜어내는 기세가 더욱 날카로워지자 육 산군은 거센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번거로운 상대라고 느꼈을 뿐이었는데, 이제는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좌지명왕이 나를 죽이려는 것인가?’
육 산군이 막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 즈음, 좌지명왕이 두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소리쳤다.
“너 같은 요물을 남겨두었다간 이 세상이 도탄에 빠지게 될 테니, 내가 너를 제도(*濟度: 중생을 고해(苦海)에서 건져내어 극락세계로 이끌어 줌)해 주마. 진(*鎭: 진압하다, 누르다)!”
좌지명왕은 ‘진’ 자를 내뱉으며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육 산군은 무언가가 사지를 짓누르는 듯한 압력을 느꼈다.
하지만 육 산군은 몸을 덜덜 떨면서도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때 육 산군의 몸 위에는 거대한 산의 금빛 환영이 나타나 있었는데, 그것은 명왕의 화신이 바랐던 대로 육 산군을 완전히 땅에 짓누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육 산군은 온몸에 힘을 단단히 주고 고개를 들었다.
“고작해야 명왕의 화신일 뿐이면서, 정말로 불법이 무변하다고 여기십니까?”
육 산군은 이렇게 외치며 머리 위의 산을 물리치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러자 명왕의 화신이 다시 입을 열어 외쳤다.
“산(山)!”
그 말과 동시에 환영이 단번에 실체를 갖춘 산으로 바뀌어, 땅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떨어져 내려왔다. 그러자 산봉우리 위 화염으로 이루어진 요괴의 환영이 단번에 부서지며, 공중에 솟구친 육 산군을 다시 한번 내리눌렀다.
명왕의 화신은 자신이 쓸 수 있는 최대한도의 힘을 쓴 것이었다. 일단 ‘진산강마(*鎭山降魔: 산으로 짓눌러 삿된 것을 굴복시키다)’ 네 글자 진언을 모두 뱉고 나면, 이 화신에 깃든 명왕의 힘을 모두 소모하게 된다. 요물이 생각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좌지명왕은 자신이 요물을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최소한 요물에 중상을 입혀 소량산 아래에 가둬둘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뒤는 대명사의 승려들에게 맡기면 된다.
“어흥……! 크헝!”
공중으로 뛰어올라 막 공격을 쏟아부으려던 육 산군은 한순간 커다란 산에 짓눌리자 분노에 차 포효했다. 이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제 모든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이렇게 지게 된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가 사력을 다해 발버둥 치던 순간이었다.
솨앗! 솨앗!
반짝거리는 가루가 섞인 황색 빛 두 갈래가 육 산군의 곁에 나타났다.
그것은 금갑(金甲)을 입은 역사(力士)로 변하더니 점차 그 크기를 늘려갔다. 처음 계연이 금갑 역사를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커진 모습이었다. 그들은 삽시간에 3장(*약 9m)높이까지 자라더니, 하늘을 떠받치듯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탁! 타닷!
역사들의 네 팔이 상공에 떠 있는 산을 안정적으로 떠받쳤다.
쿠구구궁……!
소량산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했고, 두 금갑역사의 팔과 다리는 거대한 산의 압력에 살짝 굽어 있었다. 이들이 두른 노란 두건이 바람이 휘날렸다. 육 산군이 다시 힘을 끌어올려 천천히 일어나자, 두 금갑 역사의 팔과 다리도 천천히 펴졌다.
그러자 일순간 육 산군을 내리누르던 압박감이 확 줄어들었고, 동시에 육 산군은 강렬한 흥분을 느꼈다.
비록 육 산군은 황건 역사를 지금 처음 봤지만, 이토록 특이한 모습의 신장(神將)에 대해서는 이미 호운에게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어 알고 있었다.
‘금갑 역사는 은사(恩師)께서 술법을 부려 창조하신 신장이지. 즉 은사께서 지금 이 근처에 계신다는 뜻이다!’
대명사 광장에서는 좌지명왕이 두 눈에서 빛을 내뿜었으며, 멀리 육 산군 곁에 서 있는 거대한 금갑 역사 두 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좌지명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흰옷을 입고 구름을 밟고 서 있던 계연과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명왕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강(降)!”
불광(佛光)이 번져나가며 거대한 산이 다시금 현실로 구현됐다. 산은 육 산군과 두 금갑역사를 무겁게 짓눌렀고, 이 힘은 이들이 서 있는 산기슭에 천천히 균열이 가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밟고 선 부근이 천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