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귀신의 몸
이때 두 금갑 역사가 사찰의 담장을 넘어 광장으로 걸어왔다. 그들은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왔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에 비해 몇 배나 컸다.
계연에게는 이제 총 6명의 금갑 역사가 있었는데,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 그 후로는 수량을 늘리지 않았다. 대신 시간이 날 때마다 정력을 쏟아부어 더 많은 종이를 부적에 녹였다.
부적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했다면, 어찌 오늘 두 역사가 그런 위세를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부적의 질을 아무리 높여도 금갑 역사의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들은 천천히 계연을 향해 다가와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태도로 예를 올렸다.
“주인님!”
목소리는 고저 없이 담담했고, 표정은 얼핏 차가워 보일 만큼 딱딱해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는 듯 보였다.
그들은 계연을 향해 예를 올린 뒤 다시 육 산군의 양옆에 가서 섰다. 아직도 조금 전에 받은 명령을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육 산군은 두 역사를 유심히 살폈다. 만약 그들에게 감정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육 산군은 이 두 역사가 무척 거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방장 대사, 선방(*禪房: 참선하는 방)과 담벼락 한 군데가 무너지고 광장도 엉망이 되었네요. 이 두 역사가 다른 장점은 없지만 힘은 무척 세니, 사찰을 수리하는 데에 쓰심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대명사의 주지가 고개를 들어 금갑 역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계연의 말을 들은 두 역사가 노승을 바라보았다.
두 역사는 몸을 돌리지도, 고개를 움직이지도 않고 노승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역사들은 눈동자를 움직이거나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으므로, 노승은 그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역사들의 얼굴에는 ‘싫다’는 글자가 떡하니 써 붙여진 것처럼 보였으므로 노승은 눈치껏 대답했다.
“선장의 호의에는 감사드립니다만, 저희 사찰은 그리 크게 무너진 곳이 없습니다. 승려들끼리 수행으로 삼아 천천히 복구하면, 2주도 되지 않아 금방 재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두 분 신장(神將)께 굳이 폐를 끼칠 필요는 없습니다.”
계연은 금갑 역사들을 바라본 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연은 그들의 실체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시다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계연이 떠나려는 것을 보고 육 산군은 약간 긴장한 기색이었다.
“선생님,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오늘은 제게 위험이 닥친 것을 알고 일부러 도와주러 오신 거죠?”
계연은 자신이 쭉 육 산군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육 산군은 편히 할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원래는 다른 나라에 있다가 네가 둔갑에 성공한 것을 알고 잠시 돌아온 것이다. 따로 가봐야 할 곳이 있으니, 나는 먼저 떠나야겠구나. 할 일을 다 끝내면 나를 찾아오렴.”
금갑 역사는 두 줄기 빛으로 변해 계연의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이들은 그것이 종이 인형이라는 것을 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육 산군은 공수하며 “예!”하고 대답했다. 그는 계연이 구름을 타고 떠나려는 것을 보고 결국 이렇게 계연을 불러세웠다.
“선생님!”
“음?”
계연은 잠시 멈춰서서 육 산군을 바라보았다.
육 산군은 옷을 몇 번 더듬거렸는데 금덩이와 은자 빼고는 마른 잎으로 감싼 물건밖에 내놓을 것이 없었다. 이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계연에게 다가가 그것을 내밀었다.
“선생님…… 이걸로 차를 끓여 드시면 됩니다…….”
“하하하하……. 고맙구나.”
계연은 작게 포장된 구기자를 받아들고는 웃는 얼굴로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육 산군은 잠시 낙담했다가 곧 기분이 좋아졌다. 은사께서는 자신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어떤 이견도 없으셨기 때문이다.
계연이 떠나자 승려들은 확실히 더욱 긴장한 듯 보였다.
“하하, 대사님들, 일전에는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선방과 담벼락이 무너진 것은 물론 제 탓이지만, 이 광장만은 좌지명왕의 솜씨입니다.”
육 산군은 이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10냥 정도 되는 은전을 대명사 방장에게 내밀었다.
“이건 배상금입니다. 방장 대사께서는 부디 받아주십시오.”
“아니오! 승려들끼리 고치면 되니, 육 시주께서 배상할 필요는 없소…….”
노승은 즉시 거절했으나 육 산군은 좀 더 힘을 주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방장 대사!”
“선재 대명왕불…… 그, 그럼 감사히 잘 받겠소.”
노승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그는 결국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육 산군의 은자를 받은 뒤 합장했다.
“음,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어쩌면 각명 대사를 다시 볼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을 마친 육 산군은 바람을 몰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는 소량산을 다시 한번 눈에 담은 뒤 멀리 떠나갔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에야 대명사 승려들은 마침내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 * *
육 산군은 소량산을 떠나자마자 속도를 높여 계연이 떠난 방향으로 향했다. 어쩌면 은사(恩師)를 따라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차피 자신도 사부님이 떠난 후 말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였으니, 그리 멀리 가지 못하셨을 것이다.
다만 세상일이라는 게 항상 사람의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자는 척하는 사람을 깨울 수는 없는 것처럼, 일부러 상대를 피해 숨어있는 사람을 찾아낼 수는 없다. 특히나 그 사람이 다른 쪽보다 실력이 높다면 말이다.
계연에게는 옥회산의 구풍이 준 태허(太虛) 옥 부적이 있었고, 그에 더해 일부러 스스로의 기운을 숨기기도 했다. 이런 계연을 찾아낼 수 있는 자는 몇 없었고, 육 산군은 아직 그럴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다.
육 산군은 반나절 내내 서녕부에서부터 다른 주(州)까지 넘어갔는데도 계연을 찾지 못하자 마침내 포기하고는, 바람을 몰아 방향을 돌렸다. 어차피 서녕부에 아직 남은 일이 있었다. 자신에 관련된 일은 아니고 각명의 일이었다.
계연은 상공에서 육 산군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소매 안에서 마른 잎으로 감싼 것을 꺼내 들었다. 잎을 열어보니 안에는 한 움큼 정도 되는 양의 구기자가 들어 있었다.
한 알을 집어 입에 넣고 씹어보니, 새콤하기도 하고 약간 단맛이 있어 썩 괜찮았다.
* * *
다시 반나절이 지나 하늘이 어두워질 때쯤, 서녕부 부성 밖 황야에 육 산군이 천천히 내려왔다. 그는 주위를 살피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입김을 불어 창귀가 된 각명스님을 소환했다.
“선재 대명왕불, 이것이 귀신의 몸이군요…….”
각명은 불호(*佛號: 부처의 명호(名號). 특히 불교도들이 염불하는 ‘아미타불(阿弥陀佛)’을 지칭함)를 외친 뒤 손을 뻗어 제 몸을 이리저리 더듬었다. 더는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고, 외부 세계의 온도도 느낄 수 없었다.
창귀가 된 자라 할지라도 육 산군이 그의 세세한 생각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심정의 변화나 창귀가 가진 집념의 선악(善惡) 구분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때 육 산군은 각명 본인보다 더욱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각명이 느끼는 심경 변화도 생생하게 느껴졌는데, 비록 서로 과정은 다르지만, 이 순간 각명의 감정은 육 산군이 환골탈태를 한 후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다른 창귀들과 달리 각명의 기운은 무척 평온했는데, 조금도 차갑거나 음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육 산군은 대명사 승려들이 왜 그렇게 각명을 보호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각명이 죽음을 거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각명 대사, 창귀도 귀신이므로 햇빛과 양기에 약하고 귀신들이 가진 약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귀는 다른 귀신들과 달리, 보통 사람들과 구별이 잘 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지요. 특히나 대사는 더욱 사람처럼 보이고요. 여기서 앞으로 쭉 가면 바로 서녕부가 나옵니다. 그럼 이만 여기서 당신을 놓아드리겠습니다.”
육 산군은 더 이상 그를 ‘조룡’이라고 부르지 않고 ‘각명 대사’라고 부르며 공손히 대했다. 그러고는 각명의 몸에 남아있는 한줄기 가느다란 연기를 거둬들였다.
“제가 당신을 놓아주면, 당신은 더 이상 제 창귀가 아닙니다. 자유로운 몸이 되기는 하겠지만, 제가 당신에게 남긴 법력은 고작 1년 정도를 버틸 수 있을 뿐입니다. 그 후로는 스스로의 음수(*陰壽: 죽은 이가 저승에서 누리는 수명)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몇 년이나 되는 음수를 받을지 모르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각명이 육 산군을 향해 합장하며 허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육 시주!”
그러자 육 산군도 그를 향해 공수했다.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 강신(江神), 토지신, 산신 등이 관리하는 곳은 괜찮지만, 저승의 귀신들만은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성격 좋은 귀신이라도, 떠도는 넋을 발견하면 저승으로 데려가는 것이 그들의 의무니까요.”
“예, 소승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비록 눈앞의 요괴는 자신을 먹어 치우긴 했지만, 이때의 그는 진심으로 육 산군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육 산군이 떠나려는 듯이 보이자, 각명은 다급히 자신이 내내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산군, 그때 그 아홉 사람을 다 만나 보셨습니까?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러자 육 산군이 웃으며 한쪽에 있는 돌 위에 앉았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어 창귀가 된 난영극을 소환했다.
“이자가 바로 난영극입니다. 옛날의 조룡보다 더욱 못난 놈이지요.”
난영극은 이곳에 불려오자마자 각명을 발견했다. 비록 대머리이긴 했으나 그 외에 큰 변화가 없었으므로 그는 곧바로 각명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하하하……! 조룡, 너도 잡아먹혔구나. 하하하! 너도 생전에 무슨 좋은 놈이 아니었던 모양이지. 그러면서 무슨 스님 행세나 하고 있었다니!”
그러자 각명이 합장하며 인사했다.
“난 시주의 말씀대로입니다. 불법은 자비로우니, 시주께서도 이 고해(*苦海: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 세상을 이르는 말)를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재 대명왕불.”
“너…….”
난영극은 마치 솜뭉치에다가 주먹질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룡이 이렇게 나오자 그는 말문이 턱 막혔다.
한편 이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육 산군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육 산군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낙응상은 혼인하여 아이를 기르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의 의협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분명 뛰어난 자녀들을 길러낼 수 있을 겁니다. 육승풍은 비록 강호에서 악한 무리를 없애는 등의 협객 노릇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여전히 의협심을 가지고 양심에 거리낄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왕극은 애전부의 총포두가 되어 수많은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며, 맡은 임무를 공정하게 처리하고 있더군요. 두형은 이들보다 더욱 대단합니다. 한쪽 팔을 잃고 무도(武道)의 길을 포기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왼손으로 칼을 수련하여 이제는 자신만의 무리를 이끌고 돌아다닐 정도이니 과연 일대 명협(*名俠: 뛰어난 협객)이라 불릴 만합니다. 그 외 다른 이들은 아직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각명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두형이 사찰로 그를 찾아와 만났을 때, 자신도 상대를 부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소승 이만 떠나보겠습니다. 난 시주께서도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각명은 다시 한번 합장한 후, 서녕부 부성을 향해 떠나갔다. 한쪽에 서 있던 난영극은 그것을 보자 즉시 흥분하여 이렇게 소리쳤다.
“산군, 저자를 이렇게 놓아주시는 겁니까? 자유를 주시는 겁니까? 왜, 도대체 왜 조룡은 놓아주시는 겁니까? 왜요?”
“왜냐고? 네가 그걸 깨닫기만 하면 너도 가도 된다!”
육 산군은 그와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으므로 다시 그를 삼켜버렸다. 난영극은 다시 어두컴컴한 감옥에 갇힌 상태로 되돌아갔다. 만약 육 산군이 조금의 감각도 허락하지 않으면, 그는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이게 바로 창귀가 된 자의 비애였다. 자유도 없고 자신의 감정도 숨길 수 없으며, 정신을 놓으려 해도 놓을 수도 없었다.
육 산군은 다시 바람을 몰고 날아갔다. 하지만 계연은 떠나지 않고 서녕부 부성에 들어가 각명을 따라갔다. 그는 각명이 무얼 하려는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