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저승에 가야겠네
각명은 성안의 복잡한 거리를 이리저리 돌다가, 마침내 조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했다. 이곳은 분명 조룡의 가족들이 사는 집일 터였다. 그는 익숙한 걸음으로 저택으로 들어가 내원(內院)을 통과한 뒤, 한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상 위에 누워있는 두 노인을 향해 머리를 세 번 조아린 뒤 다시 저택을 나왔다.
각명을 약 1각(*약 15분) 정도 따라다니다가, 계연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한 집안사람이 아니면 대문을 넘을 수 없다(不是一家人不進一家門: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뜻)’더니, 육 산군도 멀리서 각명을 지켜보고 있던 것이었다. 다만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걸로 보아, 각명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듯했다.
각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은, 육 산군이 각명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는 뜻이거나 각명을 인정했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각명은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서녕부의 묘사방(*廟司坊: 성황당이 있는 구역)에 이르렀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침착한 얼굴로, 중얼중얼 불경을 외며 성황당을 향해 걸어갔다.
야간 순시관 두 명이 음기 가득한 바람을 이끌고 지나가다가, 각명을 힐끗 보고는 막 지나치려던 순간이었다.
“두 분께서는 혹 저승의 귀신이십니까?”
각명은 처음으로 귀신을 마주친 것이었지만, 그다지 신기하다는 느낌도 없었고 특별한 감정 기복도 없었다. 오히려 야간 순시관들이 놀라 서로 눈길을 교환한 뒤 흥미롭다는 듯 그에게 대답했다.
“대사께서 도행이 깊으신가 보군요. 저희를 알아보시다니요.”
“맞습니다. 저희는 서녕부 성황신 휘하의 야간 순시관입니다. 저는 우종사(*右從使: 같은 직책을 맡은 이들이 둘일 때 쓰는 보통 좌·우로 이름 붙임)고, 이쪽은 좌종사(左從使)입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러자 각명이 그들에게 합장하며 인사했다.
“선재 대명왕불. 야간 순시관 대인, 소승은 크나큰 죄를 저지른 악귀입니다. 부디 저를 저승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억울하게 죽은 어떤 혼백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예?”
“귀신이라고요?”
두 야간 순시관은 의아한 듯이 되물으며, 자세히 각명을 관찰했다.
각명의 기운은 음양이 평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살기(煞氣)도 악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악업(惡業)도 없었다. 게다가 은은하게 불법의 기운이 서려 있었는데, 이런 귀신은 그들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아마 소승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귀기(鬼氣)가 적은가 봅니다.”
‘귀기가 적다고?’
그의 말을 들은 야간 순시관들이 황당해했다.
하지만 이 승려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에 우종사가 법력을 운용해 각명의 목뒤를 세게 내리쳤고, 각명은 그의 일격을 맞고 비틀거렸다.
“정말 귀신이군!”
“이상한 일이군…… 이런 귀신이 다 있다니?”
두 야간 순시관은 상황이 조금 우습다고 생각하며, 공손한 태도로 이 승려를 저승으로 ‘모셔갔다’.
‘정말로 저승으로 가는구나!’
계연과 육 산군은 이 순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에도 각명이 이런 선택을 할 거라는 추측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탄식을 금할 수는 없었다.
계연은 육 산군이 대명사로 가서 각명을 잡아먹은 것이, 불법(佛法)에 과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 * *
초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육 산군은 유주에서 포동(包棟)을 찾아냈다. 그는 강호의 대협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악업을 쌓지도 않았다. 지금 그는 한 문파(*門派: 무림에 속한 세력으로, 문하생을 받아 무공을 가르치는 단체)에서 관사(*官事: 일반 하인보다 높은 집안을 관리하는 직책)로 일하고 있었다.
육 산군은 그를 이틀 정도 관찰하다가 밤에 그의 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육 산군을 본 포동은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 육 산군과 대화하는 내내 긴장하여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육 산군은 포동을 잡아먹지 않고 그냥 떠나갔다.
하지만 그 후에 나타난 계연으로 인해 포동은 다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계연은 포동에게서 사소한 일상 이야기부터 20년간 있었던 갖가지 인생 기복, 그리고 천천히 포부를 내려놓은 일까지 전해 들었다.
계연은 어떤 질책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그의 말을 경청하다가, 날이 밝은 뒤에야 떠나갔다.
사실 일반 백성들을 두고 비교한다면, 포동과 낙응상은 무척이나 보통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다만 이들이 강호에서 태어나 자란 점이 일반 백성과 다를 뿐이었다.
* * *
다시 며칠이 지난 후.
동필성(董必成)의 거취를 찾아낸 육 산군은 무척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부딪혔다. 동필성의 기운이 무척 약했기 때문에, 원래부터 그가 무슨 특이한 상황에 놓였을 거라고 여기기는 했었다. 물론 동필성이 처한 상황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육 산군이 생각했던 종류는 아니었다.
육 산군은 이때 연주 노양부(勞陽府)의 한 산기슭에 있는 무덤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씁쓸한 듯한 표정으로 비석 위의 글자를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동필성, 왜 그리 명이 짧았습니까? 이제 당신을 만나려면 저승으로 가야 하는데, 내가 거길 어찌 들어간단 말입니까?”
그때 했던 맹세는 아홉 명의 소협들을 구속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육 산군을 구속하는 것이기도 했다. ‘살았으면 얼굴을 보고, 죽었으면 귀신이라도 만나야 한다’는 상황이 바로 이것이었다.
무덤은 저승에서 머무는 음택(陰宅)과 통해있지만, 가족들이 올리는 제사상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였다.
육 산군 당연히 이곳에서 동필성에게 제사를 올릴 수는 없었다. 제사를 올린다고 해도 동필성만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뿐, 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으므로 실제로 얼굴을 마주 봐야 했다.
동필성의 무덤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육 산군은 마침내 자리를 떴다. 계연은 도대체 그가 무슨 방법을 써서 저승에 갈 생각인지 궁금해졌다.
육 산군이 떠나자 동필성의 무덤 앞에 안개가 조금씩 모여들더니 계연의 모습이 그 안에서 드러났다.
계연은 묘비 위에 새겨진 ‘사랑하는 아들 동필성의 묘’라는 글을 읽었다. 누가 이 묘비를 세웠는지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분명 동필성의 부모일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던 계연은 종이가 타고 남은 재와 그릇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위의 제사 음식은 이미 썩은 채였다. 육류 같은 것들은 아마 야생 동물들이 물어갔을 터였다.
“휴, 부모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다니…….”
그 한탄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그의 모습이 먼저 무덤 앞에서 사라졌다. 그는 노양부 부성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육 산군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소리 소문 없이 귀문관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계연은 대정국의 귀신들 사이에서 유명인사였다. 최소한 부성(府城)급 이상의 저승이라면 모두 그를 알고 있을 것이었다. 만약 계연이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면 한 사람 더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일전에 계연은 이미 육 산군에게 떠나겠다고 말했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아 다시 나타나 그를 돕는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네 사부가 지금까지 계속 너를 따라다녔느니라’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체면을 차려야 하는 계연은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만약 육 산군이 정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면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저런 생각을 하던 계연은 거리에서 전병을 조금 샀다. 그 뒤, 동필성의 무덤 앞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 때문에 저절로 계연의 발길은 묘사방으로 향했다.
이때 계연은 묘사방의 한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이쪽은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모두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전혀 떠들썩하지 않았다.
이는 바로 이 거리에 특수한 점포들이 늘어서 있는 탓이었다. 바로 민간에서는 ‘흉사(凶肆)’라고 부르는 관재포(*棺材鋪: 관짝을 만들고 파는 곳), 찰지포(*扎紙鋪: 제사나 장례 풍속 행사에서 태우기 위해서 동여서 만든 종이 인형·종이 말·저택 등의 지물 공예품을 파는 점포) 등 장례용품을 파는 점포들이었다.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상점들을 구경하던 계연의 시선이, 손님이 없는 한 점포에 머물렀다.
시력 때문에 가게 이름이 뭐라고 쓰여있는지는 정확히 보지 못했지만, 계연은 이곳이 종이 공예품을 파는 곳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가게의 주인은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는데, 작은 눈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온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어 있어 웃는 건지 웃지 않는 건지 모호해 보였다. 그는 초여름이 된 날씨에도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주판을 튕기고 있었다.
계연은 조용히 가게 안으로 들어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안에는 종이로 만든 인형, 말, 마차, 침대, 변기 등등 온갖 생활용품부터 지전(*紙錢: 죽은 이가 저승에서 쓰는 돈), 지정(*紙錠: 금덩이 등을 본 따 만든 종이돈)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계연은 두 번의 삶을 살면서 이런 종류의 가게에는 처음 들어와 보는 것이었다. 계연은 호기심에 찬 얼굴로 지전이 쌓여있는 곳으로 가서,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자세히 관찰했다. 지전의 안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고 겉은 동그란 형태였는데, 눈앞에 지전을 가까이 대보니 그 위에 찍힌 ‘음양통보(陰陽通寶)’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것만 봐도 일반 백성들이 스스로 오려 만든 지전보다 훨씬 고급이었다.
계연이 가게에서 한참 구경을 하고 있을 때, 가게의 주인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손님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이쿠, 손님, 아무거나 막 만지시면 안 됩니다. 이것들 다 장인들이 정성 들여 제작한 것이고, 또 종이로 된 거라서 금방 망가지거든요. 하나라도 망가뜨리시면 배상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계연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조심히 구경할게요.”
주인은 주판을 내려놓고 계산대를 돌아 나와 계연에게 다가갔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서 상대를 관찰해보니, 손님은 소박한 흰 장포를 입었지만 점잖은 얼굴에 분위기가 남달랐다. 게다가 머리 위에 꽂은 묵옥 비녀는 흠 없이 투명하여 딱 봐도 무척 상등품이었다.
이에 주인은 즉시 표정을 바꿔 웃음 지었다. 그러자 가뜩이나 깊은 얼굴의 주름이 더욱 깊이 파였다.
“집안에 상 치를 일이 있으신가 보지요? 종이 공예품을 사시려는 거지요?”
“아닙니다.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죽어서 뭐라도 보내주려고요. 저승에 갈 때 이런 것을 직접 가져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자 가게 주인이 계연 앞에 다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잘 찾아오신 겁니다! 저희 집 물건은 노양부 전체에서 가장 정교하기로 유명하지요. 이 종이 인형 좀 보십시오. 오관(五官)이 단정하고 표정도 생생하지 않습니까? 이 발그레한 볼도 진짜 연지를 발라 만든 겁니다. 향도 나고요!”
계연의 경험으로 볼 때, 저승에 관련된 소소한 일은 수행하는 사람들보다 시정(市井)에서 이와 관련된 일을 하는 백성들이 더 잘 아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아는 지식의 진위에 대해서는 계연 스스로 판별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