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67화 (367/892)

367화. 계 선생의 법전

“주인장, 이 물건들은 저승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 사용하는 건가요?”

주인은 계연을 보며 보통 이런 서생들은 경전이나 읽을 줄 알지 세속에 관한 일은 잘 모른다는 것을 떠올렸다.

“사실 저희 물건이 유명한 데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서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법사(法師)를 모셔 와 의식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야 물건이 저승에 닿을 수 있거든요.”

주인은 천천히 그 과정을 설명했는데, 대략 이런 제사용품들은 법력을 품고 있지 않으면 저승에 닿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고명한 법사가 법력을 쏟지 않으면, 제사를 올릴 때 가족들의 원력(愿力)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진심으로 추모하면 이것들이 저승에 닿을 수 있지만, 대충 형식만 따르면 이런 용품이 아무리 정교하고 예뻐도 저승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자 하니 법력이 있는 물건, 예를 들어 대단한 실력의 법사가 힘을 불어넣으면 이런 지전이 법전(*法錢: 법력이 담긴 지전(紙錢))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럼 저승에 있는 가족이 그 법전에 담긴 법력을 쓸 수도 있고,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다고 합니다!”

뒤이어 가게 주인은 자기 가게의 물건이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무척 진귀하다고 설명했다.

계연은 그의 설명을 들으며 그 안에 심오한 도리가 숨겨져 있다고 느꼈고, 일종의 깨달음도 얻었다. 하지만 점포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영기나 법력을 품은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무슨 고명한 법사가 법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전부 거짓이었던 것이다.

주인은 옷차림새로 미루어보아 계연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거라 여겼다. 손님은 이런 장례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종류의 손님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부류였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추천한 대로 사 갔다.

그래서 주인은 계연의 질문에 대해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탈탈 털어 친절히 설명했다. 장례의 풍속과 다른 제사용품의 용도, 저승에 관한 그의 추측부터 직접 경험한 일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한 끝에 그 순간이 다가왔다.

“그럼 이 종이 인형은 얼마죠?”

계연이 가리킨 것은 주인장이 제일 처음 설명했던 종이로 만든 계집종이었다.

주인은 손가락 네 개를 펴며 대답했다.

“하하, 그건 하나에 40문(文)입니다. 저희 가게는 정직한 가격으로 팝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관사, 노비, 사내종 등 하인을 모두 사면 할인이 됩니다!”

꽤 비싸다는 생각이 든 계연은 곧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는 시선을 지전으로 돌렸는데, 종이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걸로 봐서 그리 비싸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오려낸 모양이 무척 깔끔한 데다가 제대로 도장까지 찍혀 있어, 보기에 무척 그럴듯했다.

“그럼 이 지전은요?”

“아, 음양통보 말이지요. 2문이면 엄청나게 많이 살 수 있답니다. 저희 지전은 정말로 먹을 써서 찍어낸 통보(*通寶: 엽전 따위의 화폐에 새겨 통화(通貨)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다른 곳에선 안 팔아요. 옛말에 먹물은 지혜를 품고 있다지 않습니까? 그러니 먹물을 이 지전에 쓴 건 무척 상징적이지요. 그게 아니라면 묵두선(*墨斗線: 먹물과 실을 넣어, 주로 목수들이 직선을 긋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에 왜 삿된 것을 쫓는 힘이 있겠습니까?”

주인은 말을 더 이어나갔다.

“게다가, 이 종이의 질량이 안 좋아 보인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만든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 종이에 사용된 목재는 음기가 강하다는 홰나무와 단목(*檀木: 박달나무)으로 만든 것입니다. 재료도 좋고 만드는 공정도 무척 공을 들였으니, 저승에 보내기 딱이지요! 마찬가지로 종이에 향도 나고요.”

주인은 네모난 상자에서 겹겹이 쌓인 지전 여러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종이가 무척 얇아 도대체 몇 장이나 겹쳐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지전을 보여주며 쉼 없이 설명을 이어가는 주인 때문에, 계연은 조금 미안해졌다.

이에 계연은 곧바로 동전 두 개를 꺼내며 말했다.

“한 묶음 살게요.”

“예, 또 어느 것이 필요하십니까? 이 종이 말도 좀 보십시오. 얼마나 생생하고 날렵한지요! 이 마차도 좀 보십시오. 말과 마차를 같이 사면, 저승에서 받는 이가 말을 타기도 하고 마차를 몰기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마부도 하나 사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지, 마부는 두 개를 사는 게 좋겠습니다, 서로 교대하게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뇨, 필요 없어요. 지전 한 묶음이면 돼요.”

그러자 주인의 표정이 급속도로 딱딱하게 굳었다. 주인은 얼마간 계연을 쳐다보았으나 계연이 눈도 피하지 않고 아무런 말도 없자, 그제야 계연이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알아차렸다. 곧 주인이 쌀쌀맞은 태도로 대답했다.

“계산대로 와서 계산해 주시지요.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네.”

계연은 철면피를 깔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돈 2문에 수행 서적에는 결코 적혀있지 않을 여러 가지 일들을 알게 되었으니, 계연은 무척 흡족했다.

가게를 나온 계연은 조금 전보다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는 자신의 등 뒤로 원한 어린 눈길이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두 시진(*4시간)쯤 지난 후, 계연은 노양부의 한 인적 없는 골목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지전 한 묶음을 올려놓고 있었는데, 그 위에 서린 희미한 기운이 계속해서 지전 안으로 들어갔다.

계연은 법전을 만드는 법사(法事)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랐지만, 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그 원리를 대강 깨우칠 수 있었다. 게다가 예전에 금갑역사를 만들어냈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수십 번의 실패를 거쳐 지전 반 정도를 낭비한 후에야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천천히, 계연의 손에 올려진 지전의 색깔이 황동색으로 변하면서 두께가 점차 부풀어 올랐다. 음양통보라고 찍힌 도장의 질감이 더욱 눈에 띄게 튀어나왔고, 지전의 무게도 상당해졌다.

금갑역사를 만들 때의 방법을 차용한 것이었는데,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의 중요한 요소를 이해하지 못하면 법력이 아무리 높아도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다.

“간단하지만 깊은 도리가 숨겨져 있으니, 이게 바로 삶의 지혜겠지!”

계연은 손에 들린 지전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지전에 법력과 영기를 불어넣어 봉하는 이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민간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지혜였다. 수행계에 몸담은 고인들은 제사용품에 법력을 불어넣는 일은 떠올리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역시 보통 사람들의 힘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수행계에서 오행(五行)의 정수(精髓)를 이용해 거래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 법전은 저승에서 순조롭게 통용될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어쨌든 물물교환에 속하는 것이었으므로 이 법전 쪽이 좀 더 제대로 된 화폐로 보였다. 도행이 높은 고인들은 법전이 필요 없겠지만, 저승에서는 제대로 통용되는 화폐일 터였다.

게다가 이 안의 법력과 영기가 일정한 수준에 다다르면, 수행자들은 자신의 법력을 아예 쓸 필요가 없게 되거나 술법을 부리는 데에 보조용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럴 경우 좀 더 복잡한 설계를 해야 했고, 안에 들어가는 영기와 법력도 이보다 더 순수해야 했다.

앞서 말한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이 법전을 만들어내기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계연이 아무리 보완하더라도 이것은 시간과 힘을 어마어마하게 들여야 하는 값비싼 물건이 될지도 몰랐다.

계연은 자신의 손안에서 점점 더 커지는 동전을 바라보았다. 오늘 자신이 무심코 벌인 일로 인해 여러 가지 가능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어차피 실험해 볼 요량으로 구매한 것이었으므로, 계연은 법력이 얼마나 소모되든 상관없이 계속 시도했다. 몇 번 실패하더라도 지전 한 묶음이 수백 장에 이르렀고, 이렇게 찔끔찔끔 뽑아내는 법력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해 질 무렵이 될 때까지 계연의 손안에서 재가 된 종이는 점점 더 많아졌고, 계연이 소모하는 법력도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 마침내 계연은 자신이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양을 모두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든 법전(法錢)은 당오통보처럼 두껍지만, 지전이었을 때보다 크기는 좀 더 줄어들어 있었다. 그래도 일반 동전보다는 좀 더 컸는데, 계란을 반으로 자른 단면 정도의 크기였다.

법전의 질감과 두께는 금을 입혀 만든 동전처럼 완벽했다. 무게만 따지면 법전 하나가 3, 4냥은 될 듯했다.

계연은 그중 하나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갖고 놀았다. 그 위에 적힌 ‘음양통보’ 네 글자는 마치 조각해 낸 것처럼, 손으로 만지면 질감이 무척 훌륭했다. 이 법전의 관건은 그 안에 든 법력과 영기였는데, 그로 인해 안이 꽉 찬 듯한 중량감이 느껴졌다.

계연은 손가락으로 법전 위쪽을 살짝 튕겨 보았다.

딩……!

법전이 떨리며 맑은소리가 주위에 오래도록 퍼졌다.

계연이 보기에 이 법전은 예쁘고 무거운 데다, 법력과 영기마저 담고 있었다.

계연이 만들어낸 것은 약 50여 개로, 수백 개에 이르던 지전보다 그 수는 줄었으나 총 무게는 비슷했다.

“괜찮네, 보기도 좋고. 이보다 뛰어난 법전을 만들려면 재료와 술법에 대해 더 연구해 봐야겠어.”

계연은 요즘 글을 쓰며 술법을 연구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늑대 털로 만든 붓을 손에 쥐고서 이렇게 결론지었다. 오늘 얻은 성과에 대해 계연은 꽤 만족하고 있었다.

계연은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법전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별안간 무슨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다 떨어진 멍석과 그 위의 썩은 나뭇조각 두 개에 시선을 고정했다.

“날아라!”

계연은 입으로 가볍게 읊조리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광풍이 일었다.

휘이잉-!

바람은 계연의 옷자락을 휘날리더니, 오래된 멍석과 썩은 나뭇조각을 휩쓸어 하늘로 솟구쳤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몇 번 소용돌이치더니, 저 멀리 날아가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연은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미미하게 남은 바람을 느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손안에 있던 법전은 곧바로 가루로 변해 흩어졌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는 꽤 대단했다.

계연은 이번에 자신이 가진 법력을 이용하지도 않았고, 따로 바람을 부리는 술법을 쓴 것도 아니었다. 법력과 영기가 솟구쳐 나와 주위에 바람을 일으키더니 멍석과 나뭇조각을 휩쓸고 가버린 것이었다. 비록 어풍술(御風術)은 아니었지만, 그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확실히 계연이 속으로 그리던 상황이었고, 법전은 그것을 실현한 것이었다.

법전의 법력은 계연에게서 왔으니 물론 순수했고, 영기도 계연의 몸을 순환하는 오행의 기운에서부터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비할 수 없이 순수한 기운이었다.

이는 누구라도 요령만 깨우치면 이 법전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신통한 술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이 법전을 사용하게 되면, 반 정도는 계연이 직접 그를 도와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력이었다.

게다가 이 법전에 더해 신비로운 부적까지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낼 결과는 더욱 대단할 것이다. 법전 자체에 서린 법력과 영기, 주위에 감도는 영기, 그에 더해 부적이 충분히 신통하기만 하다면, 계연이 술법을 부리는 것과 같은 정도의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곧이어 계연은 곧 이것이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른 사람을 결코 얕잡아 보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아무런 법력이 없는 사람, 즉 귀신이든 범인(凡人)이든 이 법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같은 힘을 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조금 전에 계연이 속으로 생각하던 것은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만약 눈앞에 촛불이 있었다면, 조금 전 분명 큰불로 변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어화술이 아니라 대단한 위력을 지닌 바람이 화력을 키운 것에 불과할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법전을 한번 쓰고 나면 이미 붙은 불을 꺼뜨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불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그 안에서 타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동필성에게 이 법전을 주는 건 신중히 생각해 봐야겠어…….”

이는 결코 자신이 인색하게 구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만든 이 법전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귀성(鬼城)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승의 귀신이며 관리들이 있어 큰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작은 소동 정도는 일으킬 수 있었다. 만약 동필성의 품성이 올바르지 않다면, 범죄자에게 무기를 쥐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법전을 잘 넣어두고 계연은 전병을 하나 꺼내 베어 물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접어 무언가를 점쳐 보더니, 육 산군이 곧 무슨 일을 벌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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