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작은 도움이 필요한 육 산군
그 시각, 성안의 여부(麗富) 대주루(大酒樓) 3층 별실에는 커다란 8인용 식탁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는 닭, 오리, 생선, 소, 돼지고기 등을 맵게 볶거나 찌거나 튀기는 등 각종 요리법을 이용해 만든 요리들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육 산군은 그 안에 홀로 앉아, 서생처럼 보이는 외양과는 다르게 젓가락과 접시를 양손에 각각 들고 거의 음식을 흡입하고 있었다. 그는 고기를 덥석 베어 물고 반찬도 잔뜩 집어 입에 밀어 넣은 후 술잔을 단번에 비웠다.
“쩝쩝쩝, 꺼억-!”
입 안의 음식을 삼킨 후 그는 다시 술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한참 술맛을 음미하던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예전에 산에 있을 때는 인간 세상의 요리가 이리 맛있는 줄 몰랐지. 들판에 널린 풀조차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니, 선생께서 인간 세상의 질서를 지키려고 하시는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군. 이런 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 누가 혼란을 원하겠느냐?”
그러자 난영극은 즉시 술병을 들어 올려 육 산군에게 한 잔 가득 따라주었다.
“산군의 말씀이 맞습니다. 인간 세상은 혼란스러워지면 안 되지요!”
“내가 아니라 선생님의 말씀이 맞는 것이지!”
“아, 그렇지요. 선생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난영극이 육 산군의 말에 반박할 리는 없었으므로, 그는 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동시에 그는 때때로 조심스럽게 음식의 기운을 흡수했다. 전에는 언제든 먹을 수 있었던 요리들은 이제 그에게 아무 때나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되었다.
비록 육 산군이 난영극에게 편히 먹으라 말했지만, 난영극은 정말로 편하게 먹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육 산군이 아직도 저렇게 맛있게 먹고 있지 않은가.
잠시 후, 식탁 위에 차려진 요리를 깨끗하게 처리한 육 산군이 술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난영극이 빠릿빠릿하게 별실을 나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여부 대주루의 1층 계단 입구에서 난영극은 주인장이 서 있는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위층 춘래(春來)방에 와서 정리 좀 해주시오. 그리고 똑같은 차림으로 한 상 더 부탁하오.”
“예예! 참, 손님. 아까 주문한 특색 요리 몇 개도 같이 올려드릴까요?”
그러자 난영극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오. 그것 말고도 다른 좋은 게 있으면 같이 올리시오.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
“네!”
주루의 주인은 난영극이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자 몰래 혀를 찼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점원 몇몇이 서로 속닥거렸다.
“이게 벌써 몇 번째지?”
“세 번째야!”
“잘 먹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저렇게나 잘 먹는 사람은 처음이네.”
“저러다 배가 터지는 거 아니야?”
“누가 알겠어…….”
“아직도 여기 서서 뭘 하는 건가? 어서 올라가서 정리하게. 주방에 가서 주문도 넣고.”
주인이 이렇게 분부하자 점원들이 즉시 후다닥 흩어졌다. 저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 음식을 주문하든 걱정하지 않는 이유에는 계산대 위에 놓인 커다란 은덩이가 한몫했다.
위층 별실 안에 세 번째 상차림이 올라오자, 육 산군은 살짝 맛만 보고는 난영극에게 먹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이에 난영극은 무척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보기에는 젓가락을 들어 덥석덥석 집어먹는 듯 보였지만, 차려진 요리의 양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이는 그가 음식의 기운만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때때로 술을 마시며 목을 축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영극은 지금 너무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자유를 잃고 대부분의 시간을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 있다 보니, 예전의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육 산군은 난영극이 행복해하는 얼굴로 식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어느 정도 배가 찬 듯 보이자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영극,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는데 혼자서는 들어갈 수가 없어 네 도움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고통도 좀 감내해야 할 거야.”
그러자 난영극의 동작이 뚝 멈췄다. 이미 자신은 죽었지만, 왠지 모르게 오한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 어떤 곳입니까?”
그에게는 육 산군을 말을 거절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는지만 겨우 물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육 산군이 더욱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각명 대사를 지켜보다가 깨달았는데, 굳이 완전한 육신으로 귀성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혼만 가도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실력을 자부한다 해도, 스스로 귀문관에 걸어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즉 그는 몰래 숨어 들어가야만 했다.
“긴장할 필요 없다. 귀신이 마땅히 가야 할 곳이니까. 노양부 저승이다.”
그의 말을 들은 난영극은 화들짝 놀라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이제 전보다 저승에 관한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자신처럼 악업을 잔뜩 쌓은 귀신이 저승에 가서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걱정하지 마라. 노양부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악업은 지우기 어려우니, 악귀로 판명되어 극형을 받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것만 견디면 너를 저승에 있는 귀성으로 풀어줄 것이다.”
육 산군의 계획은 무척 간단했다. 육신에서 혼만 빠져나온 뒤, 자신의 신통력을 이용해 창귀의 혼령 안에 숨어든다. 그렇게 해서 난영극이 ‘부주의하게’ 저승의 순시관들에게 발견되면, 저승에 끌려가서 적당한 형벌을 받은 후 귀성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손쉽게 귀성에 잠입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생각해봐도 이 계획의 실현성이 가장 높았다. 창귀와 자신의 관계는 무척 특수한 데다가, 그는 은연중에 자신이 보통의 호랑이 요괴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 신통력이 가진 현묘함을 믿었다.
한편 난영극은 간담이 다 서늘해졌다.
“저, 저도 물론 산군을 돕고 싶지만, 만, 만약에 극형을 견뎌내지 못하면…… 혼백이 날아가서 흩어질 텐데요…….”
“아, 그건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음기를 불어넣어 죽지 않도록 도와주마! 만약 네가 죽으면 내 모습도 드러나게 될 것이고, 나도 성황신 앞에서 모습을 드러낼 만큼 멍청한 요괴가 아니니까. 자, 내가 자세히 설명해주마!”
육 산군은 난영극에게 다가가 그의 귓가에 계획을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했다.
“저승에 간다고 날 원망하지는 마라. 그건 네가 원래부터 받아야 했던 처벌이니까. 각명 대사가 스스로 저승에 들어갈 때도 내가 지켜주지 않았는데, 너는 딱 한 번이면 끝나는 일이 아니냐? 이렇게 많이 설명해줬으니, 어찌해야 할지 알겠지?”
육 산군은 물론 자신의 창귀가 원망과 분노에 차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번에는 굳이 꾸짖지 않았다.
“알, 알겠습니다…….”
난영극은 마음이 새카만 재처럼 타들어 갔으나, 감히 육 산군에게 반항할 수는 없었으므로 무력하게 대답했다.
이때, 여부 대주루 밖의 거리에서는 계연이 3층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맡다가 손에 든 전병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무리 스스로 덫에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계획이 필요했다. 육 산군은 당연히 난영극이 곧바로 귀문관으로 쳐들어가길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악귀가 귀문관에 난입하는 것과 밖에서 악귀를 잡아 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악귀가 귀문관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면, 관련된 귀신이며 기관장들이 모두 놀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또 난영극이 누구인지 알아보느라 조사를 거치고 회의를 하느라 일이 복잡해지고 괜히 시간이나 잡아먹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난영극이 순시관에게 발각되어 잡혀가면 일이 더욱 간단해진다.
먼저 순서에 따라 판관에게 끌려갔다가, 선악의 판별이 나면 다시 벌악사로 데려가 극형을 받을 것이다. 그 형벌을 받고 난 후에도 혼백이 멀쩡하면 귀성으로 보내지고, 죽으면 기록에 남길 뿐이다.
* * *
그날 밤 자시(子時: 밤 11시부터 오전 1시) 즈음, 난영극은 창백한 안색에 침울한 표정으로 성 밖을 거닐고 있었다. 비록 긴장되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연기를 무사히 해내야 했다.
노양부의 북쪽 성벽 모처에서 난영극은 몸을 솟구쳐 성벽을 밟고 올라가더니, 무사히 성으로 들어갔다.
길가에 선 그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한 민가로 숨어들었다. 그러고는 침실의 문을 통과해 방 안의 커다란 침대에서 함께 곤히 자는 성인 두 명과 아이 하나를 발견했다.
그가 두 걸음 정도 다가가자, 달게 잠을 자는 사람들의 위로 불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 열기는 곧 침상을 뒤엎어, 난영극에게도 자극이 될 만큼 뜨거워졌다.
난영극은 이게 무슨 불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만약 계연이 있었으면 곧바로 알았을 것이다. 사람이 자는 동안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몸에 있는 불의 기운이 더욱 왕성해지는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을 원신(*元神: 육체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생겨나, 수행을 시작하면 혼백을 주관하는 역할을 함. 사람이 죽은 후 환생하는 근간이 됨)이 깨어있고 식신(*識神: 희로애락과 칠정육욕(七情六慾))이 쉬는 상태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원신에 대한 의식이 없지만, 대충 이와 비슷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감정을 느끼는 의식이 잠들어 있으면 사람은 깨어있을 때보다 더욱 두려움을 모르게 된다.
원신과 식신의 ‘신(神)’이 가리키는 것은 사람의 몸에 생겨나는 몸속의 신령(*人身神: 인간 몸속에 있는 작은 천지(小天地)에서 태어나는 신령)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 또는 신념 등을 뜻하는 의식의 산물이었다.
물론 식신이 일으키는 위력도 상대적이라서, 이 정도의 열기는 난영극 같은 창귀에게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는 손을 뻗어 집주인 남자의 가슴을 살짝 눌렀다. 그러자 음산한 귀기(鬼氣)가 남자의 몸을 휘감았다. 잠시 후, 난영극은 두 발자국 정도 침상에서 떨어진 뒤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희미한 형체가 남자의 몸에서 둥실 떠올랐는데, 그 형체와 남자의 육신 사이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형체가 바로 남자의 영혼이었다.
난영극이 방을 떠나자 정신이 멍한 상태인 남자의 영혼이 그의 뒤를 따라왔고, 그들은 곧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어, 내가 왜 길가에 서 있지?”
남자의 영혼이 의혹에 찬 듯이 혼잣말을 했다. 이는 그의 영혼이 멍한 상태를 벗어나 주위의 상황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 참, 나와서 걸었으니 길가에 서 있지! 지난번에 나와 같이 놀러 나가기로 했잖나. 오늘에야 겨우 시간이 맞았으니 어서 가세!”
난영극이 남자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남자의 영혼이 얼떨떨한 얼굴로 난영극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자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났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런 약속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러자 곧 눈앞의 사람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이는 사람이 꿈에서 자주 겪는 상황 중에 하나였다. 사람은 꿈에서 뜬금없이 있지도 않았던 기억이 떠오르고, 사리분별을 잘 못 하게 될뿐더러 자제력도 떨어지게 된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면 육신은 쉬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지금 이 영혼의 의식은 그리 또렷하지 않은 상태였다. 혹은 의식이 반만 깨어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식신이 깨어나야 육신도 따라서 깨어나고, 육신이 깨어나야 영혼이 그 즉시 육신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영극이 친근하게 몇 마디 던지자 아직도 ‘꿈을 꾸는’ 중인 남자는 즉시 그를 이름을 기억해낼 수 없는 지인으로 인식했고, 동시에 지난번에 했던 약속도 기억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