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69화 (369/892)

369화. 속이 쓰린 난영극

“어서 가세. 내 오늘 은자도 넉넉히 가지고 왔지. 자네는 그냥 따라오기만 하면 돼!”

난영극이 다시 재촉하자 남자는 재빨리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아, 잘 됐군그래! 가세, 가세…….”

다만 남자의 영혼은 그의 식신과 육신이 아직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걸음을 뗄 때마다 그 폭이 아주 작았다.

그래서 난영극은 남자를 끌어당겨 함께 성벽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꿈을 꾸는 중인 남자는 자신의 친우가 처마 위로 뛰어오르고 담을 넘나드는데도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기분만 들었고, 그렇게 가는 것이 무척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왜 아직도 안 오지?’

성을 나갈 순간이 다가와 난영극이 초조해하던 찰나, 어디선가 ‘휘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생전 무공 고수였던 그는 즉시 고개를 돌리며 허리를 숙였다.

기다란 검은 그림자가 그의 등이 있던 곳을 훑고 지나갔다.

촤앗!

그러자 발밑의 성벽에 수면처럼 파문이 일더니, 다음 순간 다시 ‘휘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영극은 팔에 찌릿한 고통을 느끼고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을 놓았다.

“어어어, 떨어진다, 떨어져!”

난영극이 성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손을 놓자마자 남자는 즉시 중심을 잃고 손발을 휘적이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살려줘……!”

영혼은 아래로 떨어지는 동시에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와중에도 저승의 관리들은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 순간, 영혼이 아직 땅에 닿기 전에 영혼이 번쩍이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성 안의 한 민가에서는 단잠을 자던 남자가 쿵쿵 뛰는 심장을 붙들고 잠에서 깨어났다.

“어휴…… 후우……. 꿈이었군…….”

남자는 자신의 처와 아들이 깊게 잠든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그러고는 얼굴에 흐른 땀을 닦은 뒤, 물로 목을 적시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한편 노양부 북쪽의 성벽에서 난영극은 잔뜩 긴장한 채, 그와 수십 장(丈)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서 있는 관복 차림의 ‘사람’ 두 명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의 주위에는 희미한 음기와 살기가 풍겼고, 얼굴에는 푸른빛이 감돌았다. 이 순간 그들은 난영극보다도 더 악귀처럼 보였다.

그중 한 사람은 긴 채찍을 들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칼을 들고 있었다.

“어디서 온 귀신이냐?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꼬여내려 하다니, 이런 삿된 짓은 어디서 배워왔지?”

“뭐 하러 쓸데없는 말을 나누고 있나. 잡아가면 알게 되겠지.”

난영극은 그들의 대화를 듣자마자 성벽을 뛰어넘어 성 밖으로 미친 듯이 도망쳤다. 이번에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겁이 나서 도망친 것이었다.

악귀가 도망치자, 저승 관리들도 희미한 형태로 변하더니 성벽을 넘어 추격했다. 뒤이어 그중 하나가 손에 든 채찍을 휘둘렀다.

“도망가려고? 어림도 없지!”

채찍이 살아있는 뱀처럼 난영극을 향해 덮쳐오자, 난영극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권법과 장법으로 채찍을 막아낸 뒤 다시 달아났다.

“무공을 배운 귀신이군.”

칼을 든 관리가 이렇게 혼잣말을 뱉은 후 수십 장의 거리를 돌진해 나아갔다. 난영극은 채찍을 맨손으로 상대한 탓에 양손이 온통 불에 타는 것 같아 괴로워하던 중, 별안간 저승의 관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모습이 서로 스쳐 지나던 순간, 관리는 소리도 없이 칼을 뽑아 베었다.

솨앗!

“아악……!”

난영극의 가슴팍에 칼이 스쳐 지나가며 반짝 빛나자,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뼈에 스며드는 듯한 고통과 작열감은 결코 견뎌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뒤이어 채찍이 한순간에 난영극의 몸을 꽁꽁 감쌌다. 엄청난 고통에 온몸이 거의 마비가 된 난영극은 꼼짝도 못 하고 가만히 몸을 맡겼다.

“하, 잡았군.”

“데려가지!”

난영극은 이미 칼을 맞은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는데, 몸을 휘감은 채찍 탓에 몸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을 느껴지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성으로 들어오자 관리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채찍의 작열감이 점차 약해졌고, 난영극은 그제야 편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육 산군의 혼백은 난영극의 육신 깊은 곳에 숨어있었다. 비록 이 노양부 야간 순시관들은 자신에게는 별 상대도 되지 않았지만, 저승의 순시관들보다 실력이 고작 한두 단계 높은 수행자들은 저들을 상대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육 산군은 깨달았다.

악귀를 체포한 야간 순시관들은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난영극을 데리고 묘사방으로 향했다.

음양의 경계를 지나자 난영극과 육 산군의 눈에 이야기 속에나 듣던 귀문관이 나타났다. 그것은 정말로 보통의 성벽처럼 생겼는데, 좌우로는 안개가 잔뜩 끼어 있어 중간의 문만 또렷하게 보였다.

귀문관을 지키던 관리들이 야간 순시관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인사를 올렸다.

야간 순시관들은 안색이 푸르딩딩한 난영극을 데리고 귀문관을 지나 곧장 저승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육 산군은 창귀의 혼백 깊은 곳에 숨어 귀문관 주변을 구경했다. 주변에 늘어서거나 숨어있는 저승의 관리들이 적지 않았고, 금제(禁制) 또한 설치되어 있었다. 이를 본 육 산군은 이렇게 들어온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확신했다.

악귀를 잡아 온 후의 과정은 육 산군이 예상하던 것과 비슷했다. 문판관이 판결을 내린 다음, 노양부에는 난영극의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떠도는 넋으로 기록한 후 그가 쌓은 악업의 경중에 따라 형을 내렸다.

그들은 난영극의 이름과 본적, 사인(死因) 그리고 오늘 밤 저지른 범행 등에 관해 물었다. 하지만 난영극은 이름과 본적을 제외한 다른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악귀 난영극을 벌악사로 옮겨 옥에 가두고 채찍형을 내린다. 형은 총 여섯 번을 내린다.”

판관이 웃으며 사건을 기록한 후 판결을 끝맺자, 한쪽에 서 있던 관리가 난영극을 데리고 갔다.

난영극은 자신의 판결을 듣고 내심 마음을 내려놓았다. 생전에 들었던 무슨 칼산을 오르고 불바다를 건너는 등의 형이 아니라 채찍 여섯 번이라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이라 생각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낀 육 산군은 차갑게 웃으면서도 굳이 그를 일깨워주진 않았다. 저승을 관찰할 기회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육 산군은 계속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저승의 관리들이 잡담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다.

“듣자 하니 오늘 저승에 귀빈이 오셨다면서?”

“우리도 못 봤어, 아주 신비로운 분이신가 봐. 그분이 왔다는 걸 듣자마자 성황신께서 직접 나가 영접하셨대.”

“오, 대단한 인물인가 보군. 도대체 누구지?”

“그건 모르지…….”

그들의 대화를 들은 육 산군은 속으로 기뻐했다. 저승에 귀빈이 왔으니, 모든 귀신의 주의가 그쪽으로 쏠릴 것이다.

* * *

잠시 후, 벌악사 감옥 안의 난영극은 쇠사슬에 손발을 고정 당한 채로 형틀에 묶여있었다. 체격이 우람한 형 집행관은 은은한 빛이 흐르는 채찍을 들고 형틀에서 3장(*약 9m)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끔찍한 비명과 머리털이 쭈뼛 서는 웃음소리가 모든 주위에서 들려왔다. 게다가 음기 섞인 바람이 ‘휘이이’하고 불어오기도 했다. 이에 난영극은 극도로 긴장하여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악귀 난영극, 판관 대인께서 형을 정하고, 벌악사 기관장께서 승인하신 바대로, 채찍형을 집행하겠다.”

이렇게 말한 집행관은 흉흉한 기세로 채찍을 휘둘렀다.

우우우……!

채찍을 휘두르자 아이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름 돋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촤악!

“아악-! 크흑…….”

채찍을 맞은 고통은 거의 오마분시(*五馬分尸: 죄인의 사지(四肢)와 머리를 다섯 마리의 말에 묶어 달리게 하여 산산조각 내어 죽이는 형벌)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난영극은 엄청난 고통 때문에 의식이 흐릿해졌다.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바늘처럼 교대로 찌르고 칼로 베이는 듯하여, 채찍 한 번 만에 혼백이 흩어질 것 같았다.

“한 번.”

집행관이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채찍을 들어 올렸다.

우우우……!

촤앗!

두 번째 채찍이 떨어지자 난영극은 이번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며 온몸이 푸르딩딩해졌다가 창백해졌다가를 반복했다.

“두 번.”

‘이제 겨우 두 번이라니! 죽을 거야, 난 죽을 거라고! 산군,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제발 좀 살려 주십시오!’

난영극이 마음속으로 힘껏 소리치자, 찢겨나가는 듯한 통증이 잠시 멎으며 난영극이 가진 음기도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곧바로 채찍이 세 번, 네 번 떨어졌다.

그쯤 되자 난영극은 더 이상 육 산군에 살려달라 빌지 않았다. 오히려 네 번째 채찍을 맞은 후 이대로 죽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영극은 또렷한 정신으로 채찍 여섯 번을 모두 견뎌내었다. 그 한 번 한 번이 모두 죽느니만 못한 고통이었다.

집행관마저 난영극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데에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든 소멸하지 않았으니, 집행관은 관리를 불러 그를 귀성으로 데려다주게 했다.

귀신을 가둔 차량이 그다지 작지 않은 규모의 귀성 안으로 들어가더니, 썰렁한 거리에 무언가를 내던졌다. 바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난영극이었다.

한참을 누워 바르작대다가 고통이 조금 가시자, 난영극은 덜덜 떨리는 손발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주위의 거리와 건물을 바라보았다.

주위는 음기가 가득하고 썰렁했는데, 간혹 보통 사람처럼 보이는 귀신들이 지나다녔다. 다만 그들 중 누구도 거리에 쓰러진 난영극을 쳐다보지 않았다.

“고생 많았다. 이제 오랫동안 못 봤던 네 친우인 동필성을 만나러 가야지. 무덤의 풍수로 보아 그는 귀성의 중심에서 약간 남쪽에 있을 것이다.”

육 산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난영극은 온몸이 부서진 것처럼 아픈데도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뗐다. 그는 사실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비록 지금은 귀성에 들어왔지만, 육 산군은 어쨌든 다시 나갈 것이고 그럼 그때는…….’

난영극은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 * *

이곳의 이름은 노양(勞陽) 귀성이었다. 귀성이니만큼 당연히 노양부 부성만큼 떠들썩하진 않았고, 심지어 계연이 전에 갔었던 무애귀성보다도 몇 배는 더 썰렁했다.

난영극은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어보려 했지만, 지나다니는 귀신들이 너무 없었다.

결국 난영극은 직감에 의존해 성 남쪽을 몇 바퀴나 돌다가, 마침내 포기하고는 아무 집이나 두드려 나오는 귀신에게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귀성 안의 저택은 무척 괴이해서, 어떤 집들은 안이 텅 비어 있었고 어떤 곳은 대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중 난영극은 골목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재빨리 그 집앞으로 다가가 대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여기 사람, 크흠, 귀신 있습니까?”

잠시 후, 대문이 ‘끼익’하고 열리자 난영극이 멍하니 나타난 사람을 바라보았다. 안쪽에서 나타난 것은 괴이한 표정을 한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이었다.

물론 난영극도 귀신이었지만, 지금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종이로 된 사람은 문을 열어준 후에도 말을 하거나 표정을 바꾸지 않고, 처음 그대로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종이 위에 그려진 표정이었기 때문에, 그 한껏 웃는 눈이나 양 볼에 오른 홍조가 무척 기괴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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