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70화 (370/892)

370화. 이제 한 사람 남았군

대문 안쪽에는 여덟 사람이 둘러앉아 목패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남자 넷 여자 넷으로, 모두 노인이었다.

‘전부 노인들 뿐이네?’

난영극은 멍한 얼굴로 의아한 듯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이곳이 노양부 귀성임을 알아차렸다. 대부분의 사람은 늙어 죽었을 테니 전부 노인인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이쿠, 이렇게 젊은이가. 자네 일찍도 죽었구먼.”

“에고, 아깝구나. 저런 젊은이가 세상을 뜨다니!”

“그러게나 말일세!”

노인들이 난영극을 보고 이리 말을 걸자, 난영극은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그들에게 질문했다.

“어르신들, 노양 동씨(董氏)의 음택(*陰宅: 저승에서 머무는 저택)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동씨 집안은 노양부에서 대갓집에 속했으므로,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이라면 모두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무도(武道)를 닦는 그 동씨 집안 말인가?”

한 노인이 이렇게 물었다.

“예, 예, 그 집안입니다!”

“동씨 집안의 옛 음택은 이미 황폐해졌네. 하지만 몇 년 전에 동씨 집안 젊은이가 요절했다 들은 적이 있어. 자네 같은 젊은이들이 죽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어쨌든 그 동씨 집안 젊은이는 원래 죽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받은 음수(*陰壽: 죽은 이가 저승에서 누리는 수명)가 무척 길다고 들었네. 아마 음목(陰木) 거리 끝에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을 거야.”

난영극은 그제야 자신이 몇 바퀴나 돌았어도 그를 찾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동씨 가문의 음택은 음목 숲 안에 있었던 것이다.

난영극은 감사 인사를 한 후 다급히 그곳을 떠났다.

약 반각(*半刻: 7, 8분)이 지난 후, 난영극은 마침내 음목 숲 근처에 다다랐다. 이 나무는 홰나무와 비슷하지만, 기둥이 새카맣고 잎사귀도 어두웠다. 딱 보기만 해도 저승이나 음기가 강한 곳에서만 자랄 것 같았다.

보통의 성이라면 성안에 이렇게 큰 숲이 없겠지만, 텅텅 비어 썰렁한 귀성 안에서라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음수가 이승에서의 수명보다 훨씬 짧았기 때문에, 귀성에 머무는 귀신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난영극이 숲에 들어선 후 백여 걸음 정도 걸어가자, 저 멀리 화려하게 지은 저택이 보였다. 그곳에는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이 빗자루를 들고 티끌 하나 없는 대문가를 청소하고 있었다.

난영극의 심경은 전과 달리 조금 복잡했다. 그 당시 함께 했던 다른 소협들에게는 질투도 나고 원한을 품기도 했었지만, 동필성에게는 그런 감정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보다 훨씬 일찍 죽은 데다, 굳이 따지자면 아홉 명 중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대문 가까이 가기도 전에 난영극은 큰소리로 동필성을 불렀다.

“동형, 난영극이 왔습니다. 집에 계십니까?”

그가 대문 가까이 다가갈 때쯤 안에서부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약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비단옷을 입은 동필성이 나타났다.

동필성은 난영극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흥분에 찬 기색이 되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몇 번이나 난영극을 훑어보았다. 물론 기억 속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난형, 어찌 이리 일찍 저승에 오셨습니까? 심지어 노양 귀성에 계시다니요! 노양부성에서 죽은 겁니까? 병사(病死)입니까, 사고입니까? 아니면 혹 강호와 관련된 일이었습니까? 참,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차를 올리겠습니다!”

귀성에서는 누군가 방문하는 것이 무척 드물었고, 친우라고 할 만한 사람은 더욱 없었다. 그래서 난영극을 만난 동필성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상대는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테니, 너무 기쁜 기색을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에 동필성은 흥분을 내리누르고 난영극을 안으로 초대했다.

“좋지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난형께서 저를 아직도 기억해주시고, 이곳을 찾아와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부모님께서 매번 좋은 것을 보내주시니 부디 실례라 여기지 마십시오. 마침 올 봄에 노양부에서 난 우전차(*雨前茶: 녹차의 종류 중 하나로, 24절기 중 하나인 곡우(穀雨)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 차)가 있습니다.”

동필성의 친근하고 관심 어린 태도를 대하자, 난영극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육 산군의 요구를 잊지 않은 채였다.

두 귀신이 저택 안에 자리 잡자, 종이로 된 여종이 차를 준비하러 나갔다. 이에 난영극이 동필성에게 물었다.

“동형은 귀성에 오기 전에 무슨 벌을 받으셨습니까? 음수는 얼마나 되십니까?”

이 물음은 그 자체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귀성에 들어온 귀신들은 이 두 가지만 알면 상대가 살았을 적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아마 동씨 집안 선조들께서 덕을 쌓으신 모양인지, 저승에서는 그리 고난을 겪지 않았습니다. 판관 어르신께 꾸짖음을 몇 마디 들었을 뿐이지요. 에휴, 아마도 단명해서 그런지 주어진 음수는 60년이 넘습니다. 전에는 좋은 일이라 여겼는데, 지금은 저승에 이리 머물자니 너무 무료합니다.”

“아무리 저승이 좋아도 살아있는 게 낫지요.”

난영극은 그의 말에 적당히 동의해 주었다. 동필성의 말을 들으니 생전의 그는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참, 그래서 난형께서는 어찌 죽은 겁니까?”

난영극이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려던 순간,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자 말입니까? 당연히 악행을 벌이고 다닌 대가를 치렀지요! 제가 삼켜버렸습니다!”

그 목소리와 함께 난영극의 몸에서 안개가 뿜어져 나오더니 육 산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십니까?”

동필성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오래된 귀신들이 각종 신기한 귀법(鬼法)을 부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몇 가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저 육 산군이 조금 대단한 귀신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육 산군이 그에게 공수하며 대답했다.

“제 이름은 육 산군으로, 예전에 우규산의 산신당 앞에서 아홉 명의 소협들과 맹세를 나눈 바 있지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양부에 왔는데, 당신이 이미 죽었다더군요.”

동필성도 그의 말을 듣자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전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는 훨씬 침착해 보였다. 죽은 지 10년이 되어가는 귀신이 놀랄 만한 일은 그다지 없었으므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육 산군에게 예를 올렸다.

“산군께서 오신 거였군요. 하지만 저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산군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에 용서를 청합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차를 가지고 온 종이로 된 여종에게 이렇게 분부했다.

“육 선생께도 차를 올려라. 넘칠 정도로 가득 따르면 안 되고, 튀기지 말고 정확하게 찻잔에 따라야 한다.”

종이 여종이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걸어와 세 사람을 위해 찻잔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약간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찻물을 부었다.

“종이 인형들이 좀 아둔합니다. 무슨 일이든 지시를 정확하게 내려야 해서요…….”

동필성은 이렇게 설명한 후 다시 육 산군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저를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그나저나 요괴도 귀성에 들어올 수 있습니까?”

육 산군은 가볍게 찻잔을 들어 올려 차를 조금 맛보았다. 음기로 가득하고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맛은 꽤 괜찮았다.

“악행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제가 뭘 어찌하겠습니까? 그저 옛날의 약속이 있으니 온 것입니다. 참, 대체 어쩌다 죽은 겁니까?”

동필성은 천천히 차를 한 입 마신 후 기억을 되돌리며 대답했다.

“그 의협심 때문에 죽었지요, 하하. 강호의 사람들은 명성을 떨치는 대협들을 찬양하고, 그들이 한 의로운 일에 대해 떠들지만, 많은 사람이 그 길을 따르다가 죽는다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저도 실력을 제대로 재보지도 않고 도적 초상비(草上飛)를 좇다가, 결국 그에게 살해됐습니다.”

“하긴, 협객이 되는 것도 실력이 되고 운이 따라야 하지요. 하지만 그래도 떳떳하게 죽었군요. 마음에 부끄러운 바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육 산군의 말을 듣고 동필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 마음에 부끄러운 바가 없겠습니까? 저는 자신의 실력도 모르고 무작정 일을 저질러, 가족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항상 엄격하던 아버지가 하룻밤 만에 백발이 되셨고, 어머니께서는 눈물로 매일 밤을 지새우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안겨드렸는데, 제가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동필성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그간의 슬픔과 후회가 절실히 그의 어조에서 느껴졌다.

육 산군은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길게 탄식했다.

“이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는 게 좋겠군요. 두 분이 찾아와 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제게 이승의 이야기나 좀 들려주십시오. 난형의 일은 되었고, 연비나 다른 분들은 어찌 지냅니까?”

동필성은 난영극의 일을 눈치껏 묻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관해 물었다. 육 산군의 대답으로 이미 얼마간 추측 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육 산군도 마침 그 이야기를 하고 싶던 참이었기 때문에, 이전에 만난 다른 이들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난영극의 일에 대해서는 정말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아, 듣고 있던 난영극은 내심 고마워했다.

반나절 정도 지난 후, 난영극과 육 산군은 동필성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육 산군과 난영극은 헤어지기 전에 초상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캐물었다.

동필성은 대문가에 기대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직감적으로 저 두 사람이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정당하게 귀성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눈치챘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저승의 관리들에게 가서 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신세와 예전의 벗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동필성이 막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숲 저쪽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계연은 흰옷을 입고서 한 손은 뒷짐을 지고, 한 손은 가만히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그가 걸음을 떼자 땅이 줄어들더니, 계연은 단 몇 걸음 만에 동필성의 음택 앞까지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동필성은 그의 얼굴이 어쩐지 무척 낯이 익었다. 그러다 조금 전에 육 산군을 만나서 그런지, 곧장 그가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계 선생님이시군요!”

그러자 계연이 공수하며 그에게 인사했다.

“동 대협과 이런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요! 생전의 일은 이미 멀리 떠나갔고 남은 저승의 나날은 기니, 만약 무료하시다면 저승 관리를 찾아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해 보세요. 계 선생이 추천했다고 말하면 될 겁니다. 이건 대협께 드릴게요. 제가 그냥 만들어본 건데, 꽤 특이한 물건입니다.”

이렇게 말한 계연은 뒷짐을 지고 있던 오른손을 뻗어 그 안에 있던 동전을 내밀었다. 자그마치 2, 30개나 되는 동전이 금빛을 찬란하게 내뿜고 있었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법전(法錢)이에요. 본 적 없으세요?”

‘이게 법전이라고?’

동필성은 얼떨떨한 얼굴로 품 안에서 옅은 황동색 빛깔의 얇디얇은 지전(紙錢)을 꺼내 비교해 보았다.

“하하, 어서 받으세요. 제가 만든 법전이니 다른 것들과는 당연히 다르지요. 비상 상황에 사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신중히 사용하세요!”

계연이 웃는 얼굴로 법전을 동필성에게 건네자, 동필성은 자기도 모르고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안에 서린 기운이 무척 농후했고 손에 쥐는 무게도 상당했다.

동필성은 신기한 얼굴로 그것을 몇 번 만져보았다. 그가 이제 감사 인사를 하고 계 선생을 안으로 모시려고 고개를 든 순간, 그는 계연이 이미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음목이 가득한 숲에서 계연은 동씨 가문의 음택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연비 한 사람만 남았군.’

“그 사나운 소가 육 산군과 만나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모르겠네!”

계연은 그 장면이 은근히 기대되어,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