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74화 (374/892)

374화. 두 요괴의 혈전(血戰)

낙경성 밖에서는 두 요괴는 진정한 실력을 드러내며 맞붙고 있었다. 그들이 부딪히며 내는 격렬한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연비에게는 흙먼지와 돌멩이가 하늘을 뒤덮고,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이 느껴졌다.

이때, 연비는 한 구덩이 안에 몸을 낮추고 있었다. 힘줄이 불끈 솟아오른 두 손으로는 땅 밑에 박힌 거대한 돌을 움켜잡은 채였다.

비록 우패천이 그에게 최대한 멀리 도망가라고 했지만, 도망도 상황을 봐가며 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광풍이 몰아치고 모래바람이 시야를 뒤덮은 상태에서는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몸의 중심을 잡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다 커다란 돌이라도 날아와 얼굴에 맞을 수도 있으니, 지금은 어딘가에 숨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크르릉……!”

“음머어어-!”

쿠구궁……!

두 요괴의 울음소리와 진동 때문에 연비의 귀에는 이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연비는 다시 한번 인간의 힘이 너무나 보잘것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만약 우패천이 없었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시체였을 것이다. 아니, 시체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우 형님, 제발 무사하십시오!’

연비는 우패천이 죽으면 자신을 지켜줄 이가 사라져 두려워서 이렇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에 휘말리게 된 우패천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었다.

다만 연비의 시력으로는 모래폭풍이 가장 짙게 깔린 곳에서 계속해 뿜어져 나오는 노란빛과 요괴가 뿜어내는 화염이 반짝이는 광경만 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그 외에는 두 요괴가 포효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쿵……!

그때, 연비가 숨어있는 지척에 허리가 잘려 나간 나무가 떨어져 연비가 있는 구덩이를 향해 굴러왔다. 그것은 우패천이 조금 전까지 몽둥이로 썼던 대추나무였다.

뒤이어 ‘챙! 챙!’하고 금속끼리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불꽃이 이리저리 솟구치는 것이 연비의 눈에 보였다.

쾅!

연비가 있는 구덩이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다시 흙먼지가 뿌옇게 일더니 광풍에 휩싸여 하늘로 솟구쳤다. 그것은 우패천이 공격을 받고 떨어진 곳에서 솟구친 돌멩이와 모래였다.

그것들은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솟구치거나 연비가 있는 주위로 떨어져 내렸다. 곧 모래와 흙에 매몰될 위기에 놓인 연비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얼굴에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우패천의 피였다.

“제길…….”

쿠궁……!

우패천이 겨우 욕설을 한마디 내뱉은 순간, 거대한 그림자가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를 드러내며 우패천을 덮쳐왔다.

다음 순간, 우패천의 가슴 부근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쩍이더니 거대한 우패천의 형체가 다시 한번 날아갔다. 우패천의 몸을 감싼 노란빛이 눈을 찌르는 듯한 흰빛과 마찰하자, 무언가 베이는 듯한 소름 돋는 소리가 났다.

“커헉……!”

우패천이 공중에서 뿜어낸 피가 다시 비처럼 떨어졌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수록 우패천은 더욱 분노에 차 날뛰었다. 땅에 닿기 직전, 그는 손과 발로 몸을 지탱한 뒤 두 눈에 피처럼 붉은빛을 번뜩이며 다시금 덮쳐오는 육 산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지면을 향해 거세게 발을 내리찍었다.

쾅……!

주위에 동그랗게 은은한 노란빛이 번지자, 연비조차 지면 아래가 들끓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육 산군은 우패천에게 가까워지기 직전에, 우패천이 한 발을 들어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솟구치는 강렬한 위기감과 함께 검은 연기와 화염이 육 산군의 몸을 휘감았다.

“건방진 놈! 음머어……!”

그러자 이번엔 우패천의 머리 위에서 흰빛이 번쩍였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흙모래가 일어나면서 땅바닥에 커다란 구덩이를 뚫었으나, 육 산군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게 바로 쇠뿔 공격이다!’

우패천은 삽시간에 육 산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기세에 육 산군은 피하기에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쿵……!

그 충격에 주위에 가득한 모래바람이 살짝 걷히며 연비의 시야가 좀 더 또렷해졌다.

쇠뿔 하나가 육 산군이 들어 올린 왼쪽 발톱에 가로막혔으나, 다른 쪽 뿔은 ‘푸욱!’하는 소리와 함께 육 산군의 왼팔 피부를 뚫고 뼈에 박혔다.

“어흥……!”

쿠구구궁……!

우패천은 단단한 쇠뿔로 육 산군의 거대한 형체를 북쪽을 향해 밀어젖혔다. 순식간에 십여 리(*약 3.9km)의 땅이 우패천의 등 뒤로 밀려났고, 육 산군은 나무와 바위, 강을 헤치며 끝없이 밀려났다. 육 산군은 우패천의 힘에 말려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육 산군은 날카로운 발톱을 우패천의 등 뒤에 밀어 넣었는데, 날카로운 빛이 번뜩이며 법체의 방어를 깨뜨렸을 뿐 그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죽어라……!”

우패천의 두 눈에 광분한 듯한 빛이 번쩍였다. 우패천은 이 요괴의 목숨을 끊어놓겠다는 일념에 뒤덮여 온몸의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낙경성이 들어왔다.

“음머어……!”

우패천은 자신의 흥분을 억누르고, 길게 포효한 뒤 머리를 세게 털어냈다.

그러자 우패천의 피부를 뚫고 들어간 육 산군의 날카로운 발톱이 뽑혀 나오며 사방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육 산군이 백여 장(*백 장은 약 300m) 넘게 날아가 지면에 처박혔다.

쿵……!

마침내 2장(약 6m) 높이의 체격을 가진 우패천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지면에 꿇어앉았다. 등 전체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고, 침이 피와 뒤섞여 입가에서 끊임없이 떨어졌다.

“허…… 헉……. 허억…….”

우패천이 고개를 들어 저쪽을 바라보니, 육 산군이 다시 강렬한 요기를 내뿜으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방금 육 산군이 자신에 의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다.

“이게 무슨……. 저, 저놈은 대체 무슨 요괴지……?”

그런 우패천만큼 경악하고 긴장한 것은 바로 낙경성의 귀신들이었다.

두 요괴는 이미 낙경성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밀려온 상태였기 때문에, 낙경성의 성황신을 비롯한 모든 귀신은 이제 육 산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저런 요괴를 본 적도 없을뿐더러, 들은 적도 없었다. 저 외양만 봐도 보통 요괴가 아닌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다시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하자, 낙경성에서도 그 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하늘은 점차 어두워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온 하늘을 뒤덮은 요기(妖氣) 사이로 얼핏 두 요괴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우패천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만 했다. 이미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 정도였지만, 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요괴 사이의 싸움은 수행계에서도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귀신들이 지금 이 상황을 보니, 저 소 요괴는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

요기가 서로 충돌하자 다시 한번 폭풍이 일었고, 지면의 돌과 모래가 흩날리며 점차 뿌연 흙먼지가 바람에 섞여들었다.

왼쪽 다리의 감각을 잃은 육 산군의 상처에서는 처음엔 뜨거운 피가 솟구쳐 나왔다. 하지만 흐르는 피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는 어느새 피는 흐르지 않게 되었다.

쇠뿔에 박힌 왼쪽 앞다리 뼈는 이미 부러졌지만, 강인한 근육 덕분에 모양이 비틀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뒤이어 육 산군은 뼈가 부러진 정도는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천천히 지면에 발을 디뎠다.

육 산군은 실은 왼쪽 앞발뿐만 아니라 온몸 곳곳에 가볍지 않은 상처를 달고 있었다. 우패천은 도행이 깊고 실력이 뛰어나, 상대하기 무척 까다로운 적수였다.

“하하하…… 속이 시원하군! 역시 요괴와 맞붙는 게 제일 통쾌하단 말이지.”

싸움이 시작된 후, 포효를 내지른 것을 제외하고 육 산군은 이번이 처음으로 입을 뗀 것이었다. 이전의 모든 ‘대화’는 우패천이 일방적으로 욕설을 쏟아부은 것에 불과했다.

비록 괴이한 술법을 부리는 일부 요괴들이 있기는 하지만, 요괴들의 거의 모든 싸움은 여전히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우패천이 수행 끝에 싸움에 최적화된 이 법체(法體)를 얻은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육 산군은 지난번 승려들과 맞붙었을 때보다 훨씬 더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흥,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 쇠뿔 공격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지. 네 놈이 이걸 몇 번이나 더 견뎌낼 수 있을까?”

우패천의 두 눈에 화염처럼 붉은빛이 번뜩이더니 그는 다시 흉흉한 기세로 울부짖었다.

육 산군은 이것이 우패천에게 한숨 돌릴 시간을 주는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지 않고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방금 왜 나를 날려 버린 거지? 당신 정도의 법력에 그 순간의 기세라면, 그리 어설프게 날 놓아줄 리가 없는데.”

우패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요기를 안정시켰다. 방금 그는 일부러 손속에 자비를 베풀었지만, 놓아주었다기보다 단지 모든 힘을 쏟아붓지 않은 것뿐이었다.

“흥, 아직 통쾌하게 몇 대 때려보지도 못했는데, 네놈이 죽어버릴까 봐 그랬다. 내 법체의 공격을 이 정도로 견뎌낼 수 있는 요괴를 만났는데, 그리 쉽게 죽이면 아깝지. 덤벼라, 이 털북숭이야!”

우패천은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 세심한 면모가 있어, 진짜 이유를 절대로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낙경성이 피해를 볼 것을 염려하여 상대를 다른 방향으로 날려 버린 걸 알게 된다면, 낙경성 백성들의 무고한 목숨을 상대가 빼앗아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낙경성마저 위험에 처하면, 우패천의 지금 상태로는 저 요괴를 상대하기가 곤란했다.

비록 우패천은 보통 백성들의 죽음을 일일이 신경 쓸 정도로 선한 요괴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이들이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썩 개운치 않았다.

게다가 우패천은 성의 기루 일고여덟 곳에 각각 깊은 친분을 쌓고 있는 여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오라버니’하고 부르는 것을 다시 듣지 못하게 되는 일은 절대 겪고 싶지 않았다.

우패천의 도발적인 대답을 듣고도 육 산군은 차가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다시 대답할 기회를 주겠다. 네 입이 무거워서든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든, 이번에는 그 대답을 진실로 받아들겠다. 네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긴 하다만, 그것을 몇 번이나 쓸 수 있겠느냐? 게다가 그걸 다시 사용한다 해도, 내가 그 수법에 다시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의 말끝에 야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것은 점점 포효로 변했다. 그 끝에는 온통 윙윙대는 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육 산군의 뒤로 기다란 호랑이 꼬리가 흔들리면서 더 많은 잔상을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는 어렴풋이 형체가 보일 듯 말 듯했다.

‘새로운 꼬리야! 저 요괴가 꼬리를 더 만들어낼 수도 있단 말인가?’

그 장면을 목격한 우패천은 속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그는 불문(佛門)의 명왕처럼 법안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불길한 예감이 닥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길, 이 세상에 꼬리를 몇 개나 더 만들어내는 요괴가 있었나? 어쩌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군!’

우패천은 오늘 벌써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현재 심정과는 상관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기세는 여전히 맹렬했다. 그의 요기는 하늘로 솟구치며 육 산군의 요기와 맞닿아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육 산군도 비록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저 요괴가 낙경성을 보호하려 했다는 쪽에 심증을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증거도 없이 상대를 믿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낙경성 백성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저 요괴가 알아차리면, 이 형세가 단번에 역전될 수도 있었다.

‘저놈이 저렇게 눈치가 없으니 일단 몇 대 때리고 이야기해도 되겠지. 어쨌든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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