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그만!
“어흥!”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육 산군은 곧바로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패천의 신통력이 땅의 힘을 빌려오는 것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에, 이번에는 공중에서 그와 맞붙을 계획이었다.
우패천도 싸움에 능했기 때문에 육 산군의 계획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우패천은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한 줄기 빛으로 변하여 장원이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와 동시에 지상의 암석과 나무 들을 발로 차 상공에 있는 육 산군을 향해 날렸다.
휘익- 쿠웅!
휘잇! 휙!
그렇게 내던져진 나무와 암석들은 모두 요괴의 힘을 품고 있었으나, 육 산군은 공중에서도 땅에 있을 때와 거의 비슷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바람도 다스릴 수 있었다. 가끔 채 막지 못한 장애물이 날아오면 육 산군은 꼬리를 이용해 그것을 가볍게 부숴버렸다.
그렇게 날아온 거목과 암석의 부스러기들이 낙경성을 향해 날아오면, 성벽 위에 지키고 서 있던 귀신들이 술법을 부려 그것을 막아냈다.
육 산군이 공중에서 움직일 때마다 광풍이 불어닥쳤다. 하늘에서는 황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구름이 모여들더니 곧 육 산군의 형상으로 변했다.
“커흥……! 으르렁…….”
구름 사이로는 계속 호랑이가 맹렬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와, 지면 위의 우패천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는 육 산군이 대체 무슨 신통한 술법을 부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하늘로 치고 올라가 그와 맞붙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법력을 사용하여 온갖 사물을 그쪽으로 던지기만 했다.
마침내 육 산군의 형체가 거대한 구름 사이로 사라지고, 그 위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포효가 들려왔다.
광풍은 점점 거세져 마치 일부러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러자 더 이상 누구도 눈앞의 광경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더해 짙은 요기가 깔리고 법력이 뿜어내는 빛 때문에, 우패천도 저 구름 위의 상황이 어떤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우패천도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었다. 머리 위의 쇠뿔이 차가운 빛을 내뿜는 가운데, 그는 몸 안의 법력을 끌어내 법체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모든 주의를 기울여 저 위의 혼탁한 상공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쿵……!
우패천은 감각이 둔해진 등 뒤에 다시 한번 공격을 받고 비틀대다가 중심을 잃었다. 뒤이어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양팔을 파고들었고, 거대한 맹수의 입이 그의 목과 어깨로 이어지는 부위를 콱 물었다.
“크르릉……!”
격렬한 고통 속에서 우패천은 이미 육 산군에 의해 상공으로 솟구친 상태였다. 분명 아무런 기운도 느끼지 못했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음메에-! 이, 이 자식이…… 비열한 수단을 쓰는구나……. 으윽!”
우패천은 이미 말조차 제대로 이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전부터 그가 가장 경계하던 것이 이 요괴에게 물리는 것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다니……!
육 산군의 날카로운 송곳니에는 모호한 형태의 무언가가 자욱하게 감돌고 있었다. 그는 이번 공격으로 우패천의 법체를 아예 부수려고 했다.
우패천은 일순간 놀라 크게 울부짖긴 했지만, 물린 부위에서는 와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만 날 뿐 오히려 육 산군 자신의 이가 더 저릿해졌다.
다만 우패천은 현재 두 팔을 움직일 수 없는 데다 두 발마저 공중에 떠 있었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생긴 상처에서는 쉬지 않고 선혈이 뿜어져 나와, 지면을 향해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연비 같은 범인(凡人)이 보기에 우패천은 무척 심각한 상태였다.
“으윽!”
“우 형님! 형님……! 산군, 산군께서 죽여야 할 사람은 접니다! 제 목숨을 가져가십시오, 산군……!”
연비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양 주먹을 꽉 쥐고 붉어진 눈으로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비록 하늘이 어두컴컴하고 광풍이 몰아쳐 저 위의 상황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패천의 고통에 찬 비명과 후두두 떨어지는 핏방울만 봐도 저 위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산군……! 제 목숨을 가져가십시오! 이 일은 우 형님과 무관합니다! 제발 제 목숨을 거둬주십시오!”
그는 온몸의 진기(眞氣)를 끌어모아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광풍에 자신의 목소리가 묻혔어도 육 산군은 반드시 들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만! 정지!”
이때, 계연의 또렷한 목소리가 광풍과 요괴들의 포효를 뒤덮었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우패천도 육 산군도 온몸이 딱딱히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으나, 이 공간의 모든 것이 정지한 것이다.
두 요괴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우패천의 마음에 다시 희망이 싹트고 강렬한 안도가 몰아쳤다. 육 산군은 계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무런 반항 없이 순종했다.
우패천도 육 산군도 도행이 얕지 않았기 때문에, 계연이 그들에게 정신법(*定身法: 상대방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술법)을 쓰니 적지 않은 현황(玄黃)의 기운이 소모되었다. 계연은 어지러워 쓰러질까 봐 일부러 지면에 내려앉은 상태였다.
서로 알아서 문제를 풀기를 기대하기는 이미 그른 것 같으니, 더 이상 싸우다가는 서로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었다.
서로를 죽이겠다는 일념 아래 두 눈이 새빨개진 요괴들에게 자기 말이 먹힐지 알 수 없었으므로, 계연은 정신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저들을 선검을 이용해 벨 수도 없고, 삼매진화를 이용해 불태울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는 다치게 하지 않고 상대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계연은 두 요괴가 자신의 술법에 그리 저항하지 않으리란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는 있었다. 육 산군은 당연히 은사(恩師)인 자신을 거스르려 하지 않을 것이고, 우패천은 자신에게 반항할 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계연은 법력과 현황의 기운을 어마어마하게 소모했지만,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어지러움을 느끼지는 않았고 조금 피곤할 뿐이었다.
계연이 내뱉은 ‘정지’란 말이 떨어지자마자 육 산군이 부리던 바람이 사라졌기 때문에, 육 산군의 몸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바람에 섞여 있던 먼지며 모래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모래폭풍이 가라앉고 요기가 흩어지자 마침내 연비와 낙경성의 귀신들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상공 위의 두 요괴는 딱딱하게 굳은 상태 그대로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땅에 내려선 뒤에도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들 곁에 흰옷을 입은 한 서생이 서 있는 것이 연비와 귀신들의 눈에 보였다. 서생은 약간 화가 난 듯한 엄격한 얼굴로 두 요괴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죠. 이제 공격하면 안 돼요. 둘 다 이해했죠?”
그는 이렇게 말하며 거대한 법력을 소모한 정신법을 풀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육 산군과 우패천은 온몸의 감각이 돌아오고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육 산군은 어찌할 바 모르는 듯 보였고, 우패천은 크게 안도한 듯이 보였다.
우패천은 이제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저 요괴가 비록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계 선생님께는 상대도 되지 않을 터였다.
반면 육 산군은 스승이 이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동시에, 조금 전 저 요괴가 낙경성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자신을 봐준 것이란 걸 확신했다.
뒤이어 육 산군의 거대한 형체가 안개가 휩싸이더니, 육 산군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계연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장읍례(*長揖禮: 두 손을 마주 잡고 눈높이만큼 들어 올리며 허리를 굽히는 인사)를 올렸다.
“선생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우패천은 바닥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다시 ‘쪼그라든’ 육 산군을 바라보며 계연을 향해 투덜댔다.
“계 선생님, 분명 일찍 오셨을 것 아닙니까! 조금만 일찍 모습을 드러내셨으면 저도 이리 당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요…….”
이렇게 중얼거린 그는 법체의 형태를 거두고 다시 사람의 형체로 돌아왔다. 다만 육 산군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뒤 그 위에 걸친 의복까지 만들어낸 것과 달리, 우패천은 찢어지고 너덜너덜한 옷 조각을 간신히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들 앞이었다면 그는 당당하게 행동했을 테지만, 계연의 앞이었기 때문에 그도 예를 차리며 중요한 부위를 손으로 최대한 가리려고 했다.
조금 전 그렇게 많은 피가 흐른 것을 보면 우패천은 중상을 입었어야 할 테지만, 실상 우패천의 상처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제일 처음 입었던 팔에 긁힌 상처였다. 반면 등 뒤에 입은 상처와 목과 어깨 사이의 상처는 근육에 덮여 어느새 피도 멈추고 아문 상태였다.
계연은 자신의 예상보다 상처가 너무 가벼워 잠시 어리둥절해질 정도였다. 그는 우패천의 원망 섞인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일찍부터 와있긴 했지만, 내가 막아서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당신이 그 입을 잠깐 다물고 있기만 했어도, 싸움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거니까요. 어쩌면 아예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이번 일로 교훈을 좀 얻었겠죠.”
그러자 우패천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계연을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힌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육 산군을 바라보았다.
“만약 제가 기선을 제압하지 않았다면 저자가 곧바로 덤벼들었을걸요!”
그의 말에 육 산군은 고개를 돌리지도 몸을 일으키지도 않았지만, 곁눈질로 우패천을 흘끗 쳐다본 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패천은 육 산군의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겁이 나서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꼴이라니. 역시 강자 앞에서는 약하군.”
육 산군은 이제 아예 시선을 거두고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연비는 이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경공을 이용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한 뒤, 곧바로 우패천에게 다가가 그의 상처를 살폈다. 그러고는 겉옷을 벗어 그에게 둘러주었다.
“우 형님, 괜찮으십니까?”
“내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는가? 나는 피부도 거칠고 근육도 두꺼우니 걱정할 필요 없네. 피를 많이 흘리기는 했지만, 내 법체는 누선(樓船)만큼 크고 원기를 잃은 것도 아니니까. 보통의 피라면 곧바로 아물게 되어 있네. 에고, 나 좀 부축해주게, 일어날 수가 없군…….”
우패천은 원래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다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연비는 그의 말에 즉시 팔을 뻗어 우패천을 부축했다. 우패천이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연비의 옷을 빌려 하반신을 둘러 묶은 것이었다.
계연은 여전히 장읍례를 올리고 있는 육 산군을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왜 아무 말이 없느냐?”
“선생님께서 꾸짖고 계신 데 어찌 감히 먼저 입을 열겠습니까?”
“일어나서 말하렴.”
육 산군은 그제야 허리를 펴고 계연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