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별이 떠오르는 운산관
두 고인(高人)이 옆에서 연이어 자신을 칭송하자, 노령(老齡)의 나이인 청송 도인조차 약간 부끄러워졌다. 이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점을 칠까요?”
“부탁드립니다!”
청송 도인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자세를 바로 하고서, 손바닥을 뒤집은 뒤 몸을 앞뒤로 천천히 흔들었다. 이 동작에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신 심리적인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청송 도인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뒤, <검의첩>을 바라보며 그 변두리를 가볍게 손으로 쓸었다.
제선은 오묘한 술법을 부리지는 못하지만, 대신에 그는 지금 이 두루마리를 ‘측량’하고 있었다. 길이와 너비, 두루마리 끝에 마감된 나뭇조각까지 꼼꼼히 따지며, 마치 한 집안의 풍수를 살피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집은 세로로 반 척(약 15cm), 가로로 2척(약 60cm), 바깥은 나무로 마감되어 있고…… 집주인은 계미년(癸未年) 정월 초아흐레 신시(*申時: 오후 3시부터 5시) 일각(15분)에 출생했으며…….”
청송 도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두 손의 손가락을 접어가며 일전에 들었던 <검의첩>의 정보를 헤아렸다. 이렇게 해서 조건반사적으로 점괘의 결과를 끌어내려는 것이었다.
진자주와 계연은 청송 도인의 점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계연은 조금의 변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법안을 모두 열고서 제선의 상태를 관찰했다.
점괘에 진전이 생기면 청송 도인의 정서에도 변화가 생겨 그것이 기운의 변화를 끌어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청송 도인의 기운에 또렷한 변화가 생겨났다. 그의 전체적인 기운이 더욱 밝은 색채를 띤 것을 보니, 곧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과연 곧이어 청송 도인이 점괘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이 집에 머물던 이들의 수가 많군요. 이들은 물가 근처에 머물고 단향목과 먹을 좋아하며, 강한 태양 빛을 싫어합니다. 갑오년(甲午年) 9월 초, 멀리 외국에 있군요……. 여기서 굉장히 멉니다. 계 선생님, 제 점괘가 틀린 게 아닐까요?”
보통 청송 도인은 자신의 점괘에 꽤 자신이 있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그 대상이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살아있는 생물조차 아니다 보니 그리 확신이 없었다.
그러자 계연이 즉시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분명 틀리지 않았을 거예요, 계속하세요. 대략적인 방향이나 범위만 찾을 수 있어도 괜찮아요. 가까이 가기만 하면 제가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네.”
청송 도인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 점을 쳤고, 마침내 서북쪽 수만 리 떨어진 곳까지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제선도 제문을 데리고 대정국 곳곳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이 점괘의 결과가 대정국의 경계를 벗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구체적으로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계연은 청송 도인이 내놓은 결과에 무척 만족했다. 제선은 대략적인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글자들이 대충 어떤 환경에 머무는 지도 묘사해 주었다. 근처에 강물이 흐르고 있으며, 어떤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지, 또 그 주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환경까지 말이다.
만약 보통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점을 보기 전과 마찬가지로 별 소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연은 지금 얻은 정보들에 더해, <검의첩>을 들고 가까운 곳으로 간 후 스스로 점을 쳐보면 그 글자들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청송 도인은 점괘의 결과를 말하고 난 후에도 몸에 어떤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내놓은 결과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상태였다.
‘이 일은 누가 봐도 현묘한 일인데, 어느 정도 몸에 반응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보통 그는 다른 이들에게 점괘를 봐주면 높은 확률로 욕을 먹거나 얻어맞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오히려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청송 도인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계연이 몰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알았다면, 계연은 그가 점괘에 미쳤을 뿐만 아니라 마조히스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계연은 제선이 얻어낸 결과를 천천히 떠올리며, 그의 점괘가 확실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동시에 계연의 뇌리에 글자들의 행방이 화면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청송 도인을 향해 정중하게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장! 역시 운산관에 오기로 한 것이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어요.”
그러자 청송 도인도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아닙니다, 뭘요! 계 선생님께서 저를 필요로 하시면, 제가 마땅히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도와드려야지요. 만약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런 지천명(*知天命: 50세)이 넘은 나이에 이토록 건강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제선의 말에 계연은 그제야 흰머리 하나 없이 건장한 체격의 제선을 살펴보았다. 겉으로만 보면 그는 절대 60이 다 되어가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 계 선생님, 진 어르신! 저 왔습니다!”
이때 제문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등짐을 지고 돌아왔다. 그 안에는 산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사 온 신선한 식자재가 가득했다. 계 선생님이 오면 얼굴을 봐서 기쁘기도 하지만, 먹을 복이 터지는 날이기도 했다.
“자자, 계 선생님께서 오랜만에 오셨으니 제가 오늘 솜씨를 한번 발휘해 보겠습니다! 제문아, 아궁이에 불을 붙여라!”
“예, 사부님!”
운산관의 사제들은 열정에 타오르는 눈빛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 모습만 보면 저들이 각각 반백의 나이와 서른이 넘은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계연은 도관의 대전 앞에 서서 평온한 얼굴로 그들이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진자주는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였다.
“제문은 혼인할 생각이 없다고 하나요?”
그러자 진자주가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운산관 도사들이 혼인이 금지된 것은 아닌데, 청연 도장은 도를 닦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혼인의 뜻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계연이 진자주에게서 고개를 돌려 대전 안에 걸린 별자리 그림을 바라보았다.
“진공, 운산관에 별이 떠오르면 어떻겠습니까?”
진자주는 마치 계연의 그 두서없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이 소매를 털어 정중하게 그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읍을 했다. 진자주도 거의 그와 같은 순간에 같은 예를 취했다.
마침 주방 안에 있던 제문은 아궁이에 불을 붙이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대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대전 앞에서 계연과 진자주가 서로 허리를 굽히고 읍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 후에 그들은 운산관 대전 안의 거대한 별자리 그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뭘 보는 것이냐! 불씨가 다 꺼지겠다!”
청송 도인이 꾸짖자 제문이 즉시 정신을 차렸다.
“아! 금방 다시 살릴게요!”
제문은 즉시 아궁이 안으로 건초를 던져 넣었고, 불길이 좀 더 커지자 그 안으로 장작을 넣었다.
불길이 활활 타오른 후 그는 다시 대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계 선생님과 진 어르신은 각자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제문은 무척 이상했다. 진 어르신은 딱 보기에도 나이가 무척 많았는데, 계 선생님은 어르신과 함께 앉아 있는데도 ‘젊은이’라거나 후배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반면 느긋하게 햇볕을 받고 있던 두 ‘노인네’는 이 일이 제문과 제선을 비롯해 운산관에 끼칠 영향과 두 도사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조촐하네요. 청송 도장, 청연 도장 그리고 이 늙은이까지 더해도 한 손으로 꼽고도 남으니…….”
진자주가 이렇게 말하자, 계연은 멀리 주방 근처의 담장을 바라보며 웃었다.
“저기까지 하면 딱 다섯이네요!”
그러자 진자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계연의 시선을 따라갔다. 담장 근처에는 회색 털을 가진 담비 두 마리가 주방을 흘깃거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주방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하! 그렇네요, 딱 다섯이네요!”
계연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매 안에서 늑대 털로 된 붓이 나와 그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도관 안의 검은 바탕에 금색과 은색으로 반짝이는 별자리 그림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조금 더 기다리려고 했는데, 보통 사람들의 수명은 얼마 되지 않으니……. 제선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요. 이제 시작하죠!”
말을 마친 계연이 운산관 대전 안으로 들어갔고, 진자주도 그의 뒤를 따랐다. 계연은 붓을 든 손을 좌우로 약간씩 움직였다. 붓끝에는 현황(*玄黃: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린 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 별자리 그림은 원래부터 신묘한 데가 있었는데, 진공께서 그간 수련하며 도움을 준 바가 있으니 어쩌면 벌써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화룡점정(*畵龍點睛: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으로, 가장 요긴한 부분을 마치어 일을 끝냄을 이르는 말)이라는 말처럼, 이번에는 제가 화번점성(*畵幡點星: 그림 위에 별을 덧그리다)을 해야겠군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천천히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별자리 그림 앞에 자리를 잡고 붓끝으로 한번 내려찍자, 약간 주름 잡혀 있던 그림이 평평한 철판처럼 변했다.
그런 후에 계연은 그림 위로 이리저리 붓을 휘둘렀다.
솨아앗!
금빛과 은빛이 뒤섞인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왔다. 이에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제선과 제문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담장 위에 있던 담비들도 대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눈을 떼지 못했다.
청송 도인과 제문은 멍하니 대전 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주방 입구에서는 별자리 그림 위에 그려진 별들이 반짝거리는 것이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신령한 존재를 모시지 않고 하늘의 별자리를 모시는 이런 전통적인 도관에서, 별자리 그림에 생긴 변화는 두 사제(師弟)에게 있어 마치 승려들이 명왕상에 불광(佛光)이 번쩍이는 장면을 본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별자리 그림 위의 별들은 찬란한 빛을 내뿜다가, 마침내 오랜 세월 걸려 있던 검은 천으로 돌아갔다. 그런데도 제선과 제문은 그 안에 여전히 무언가 비범한 변화가 담겼음을 알아차렸다.
“사부님, 저희에게 신선이 될 기회가 생긴 건가요?”
제문은 수선(修仙)의 도(道)에 대해 잘 몰랐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복(福)인지 화(禍)인지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청송 도인은 멍하니 서 있다가 곧 흥분에 차올랐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신앙이 있었으므로, 계연에게 신선이 되는 법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묘한 수행의 도를 누가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불로장생의 방법을 누가 갈망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계 선생님이 방금 하신 것은 운산관의 도사들을 수행으로 이끈 정도가 아니었다. 이는 점괘에 자신 있는 청송 도인이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었고, 실은 진 어르신이 이곳에 온 후로 그가 계속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청송 도인은 한 번도 그에 대해 말을 꺼내거나 묻지 않았다. 고인(高人)들이 하는 일에는 모두 마땅한 이유가 있을 테니, 자신은 그저 가만히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일찍이 말하지 않더냐. 어떤 것들은 강제로 얻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선연(善緣)을 맺는 게 제일이지. 보거라…….”
거기까지 말한 청송 도인은 말을 멈췄다. 계연이 대전에서 나와 주방 쪽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두 분 도장은 제가 여러분을 도가(道家)의 교리에서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선문의 술법을 사용해 운산관을 속박한 게 아닙니다. 이 그림은 여전히 운산관의 그림이고, 수행하는 것도 운산관의 천지를 받들고 별자리를 숭배하는 도법(*道法: 도교의 법) 그대로일 거예요.”
마치 두 사람의 의혹을 알고 있는 것처럼 계연은 침착하게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