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수련법을 전수한 조사(祖師)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 여명이 밝아오자, 두 도인이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그들은 잠시 탁자 위에 그대로 놓인 접시와 사방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그러다 청송 도인이 깜짝 놀란 듯이 이렇게 소리쳤다.
“해가 떴네요!”
계연은 전에도 그에게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쨌든 이미 이틀이나 지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저와 사부님은 하룻밤 내내 이렇게 앉아서 잔 건가요?”
등허리를 곧게 세우고 걸상에 앉아 하룻밤을 잤는데도 제문은 허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제문은 속으로 그걸 무척 의아하게 여겼으나, 곧 뒤이은 흥분감에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였으나, 제문은 여전히 천진난만함을 지니고 있었다.
“사부님, 계 선생님, 진 어르신! 저 수행하는 도중에 기이한 풍경을 봤어요. 산간에 흐르는 계곡이 폭포가 되어 떨어져 푸른 연못에 고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빛이 사방을 밝게 비출 정도로 반짝거렸어요. 영기가 느껴지는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오기도 했어요. 정말 신기했어요!”
제선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본 광경을 이야기했다.
“저도 기이한 광경을 봤습니다. 온 산을 뒤덮은 초록 잎이 바람을 맞아 이리저리 산들거리고, 하늘에서는 별빛이 반짝이는 것이 마치 쏟아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 계 선생님, 이건 저와 제문이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는 뜻입니까?”
그러자 계연이 잠시 신중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두 분 다 천부적인 자질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그런 기이한 현상은 처음으로 도기결을 익힐 때 많은 수행자가 겪는 일입니다. 이다음부터는 보이지 않을 거예요. 단로를 만들어내고 금교(金橋)로 잇는 단계가 되면 다시 의식 세계를 열 수 있어요. 보통 수선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그런 환상은 단일한 어떤 상태를 목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해요. 불길이 솟구친다거나 끝도 없이 넓은 바다를 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운산관의 수행법은 특수하니, 별빛이 비치는 풍경을 보는 것도 좋다고 할 수 있겠죠.”
“아…….”
“그런 것이었군요.”
‘모두 다 겪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자, 제선과 제문은 처음의 흥분감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들은 금세 몸 안에서 영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계연과 진자주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해가 높이 떠오른 뒤에야 제선과 제문은 궁금해하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다른 의문점은 앞으로 천천히 수행하며 알아가야 했다.
선인(仙人)이 되고자 수행을 할 때 겪는 가장 큰 두 가지 고비 중 하나는 영기를 감지해 체내로 그것을 이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체내의 소천지(小天地)에서 음양을 결합해 단로(丹爐)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계연은 그것을 거의 단번에 해냈으나, 그건 자신이 가진 신체의 특수함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오행(五行)을 관상(觀想)하고, 단로(丹爐)를 수용할 수 있는 의식 세계의 위치를 관상하고 안정시킨 후, 오행을 음양(陰陽)으로 바꾸어 단로를 응결시켜야 했다.
제선과 제문은 천지화생의 묘법을 얻었음에도, 신체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고비는 더욱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위원생 정도의 천부적인 자질로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단로를 빚고 금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제선과 제문은 그간 관상법을 닦은 세월이 있으니 좀 더 빠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결코 계연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제선과 제문의 흥분이 점차 가라앉자,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다.
계연이 떠난다는 말을 듣자 제선이 다급히 만류했다.
“계 선생님, 이렇게 바로 가신다고요? 오신 지 겨우 하루 되었는데, 아직 제대로 접대도 못 해드렸는데요. 예전처럼 1, 2년은 묵다 가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또 저희에게 큰 가르침을 주시기까지 했으니…… 저, 저희가 혹시 사부(師父)…….”
운산관에 전해준 가르침은 대부분 계연이 생각해내고 만든 것으로, 진자주는 어디까지나 보조의 역할일 뿐이었다.
제선이 하려는 말을 눈치채고 계연은 다급히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마음만 받으면 족해요. <천지묘법>을 완성하면 다시 올게요. 지금은 그 글자들을 찾으러 가야 해서요. 제가 운산관에 가르침을 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사제의 연을 맺으란 법은 없죠. 청송 도장께서는 저와 동년배이니, 그런 형식에 얽매일 필요 없어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웃으며 제문을 바라보았다.
“게다가 도장께는 제자가 이리 하나뿐인데, 만약 제가 제문을 제자로 받으면 아까워서 어쩌시려고요? 그러니 전처럼 대해 주세요! 수행에 만약 무슨 어려움이 생기면, 진공께서 여기 계시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러자 청송 도인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예, 선생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운산관의 도인들은 바로 이 점이 좋았다. 이들은 무척 시원스럽고 소탈했다. 계연이 한번 무언가를 설명하면, 더는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제선과 제문은 진자주와 함께 계연을 운산관 문밖까지 배웅했다. 그들은 ‘몸조심하고 나중에 다시 만나자’라는 말을 수백 번쯤 다른 방식으로 반복한 후 마침내 헤어졌다. 계연은 구름을 타고서 점괘에 나온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계연의 모습이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자, 진자주는 제선이 다급히 도관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이렇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제문아! 내가 잘 보관해 놓은 단선지(*檀宣紙: 단향목으로 만든 선지(*宣紙: 동양화에 주로 쓰이는 종이)) 좀 갖고 와라!”
“예? 아아, 네! 금방 찾아오겠습니다!”
그렇게 제선은 필묵(筆墨)을 비롯한 물건을 꺼내왔고, 제문은 방으로 가서 궤짝을 뒤져 곱게 보관된 족자 두 개를 꺼냈다.
진자주는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선이 무얼 하려는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좀 더 기다리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그도 따로 묻지 않았다.
제선은 도관의 대전 안에 탁자를 펴놓고, 그로부터 장장 3일 동안 물 한 모금, 곡식 한 알 입에 넣지 않았다. 밤에는 촛불을 켜놓고 쉼 없이 손을 놀렸다. 3일이 지나자 살이 쏙 빠지고 두 눈 아래에 거뭇거뭇한 그늘이 생길 정도였다. 그런 정성 끝에 그는 결국 자신이 하려던 일을 단번에 완성해냈다.
3일째 되던 날 밤, 운산관 성두대전(星斗大殿) 안의 청송 도인은 그림을 내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하하하하……! 되었다, 되었어! 정말로 그릴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기쁘고 뿌듯한 마음에 제선의 얼굴에서 마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의 웃음소리를 듣고 제문과 진자주가 대전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붓을 들고서 흥분한 얼굴을 한 제선을 잠시 바라보다가 탁자 위의 그림 두 장을 발견했다.
그중 한 그림에는 흰 눈썹과 수염을 지닌 진자주가 자상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넓은 소매의 장포를 입고 회백색의 담담한 눈빛을 지닌 계연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전에도 한번 시도는 해봤었는데, 계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세세한 부분이 계속 모호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침내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와아, 사부님 정말 대단하세요. 어쩜 이렇게 똑같이 그리실 수 있죠? 어르신과 계 선생님이 금방이라도 그림에서 걸어 나올 것 같아요. 어르신, 어서 와서 좀 보세요!”
제문은 곁에서 손뼉을 치며 환호하며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진자주도 제선이 그린 그림을 보고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청송 도장께서 이런 실력을 감추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이번에 운이 좋았어요, 다시 하라고 하면 저도 못 할 것 같습니다! 참, 아직 뭔가 부족하군요.”
제선이 이렇게 말한 뒤, 정신을 집중한 후 숨을 멈췄다. 그러고는 두 화폭 위에 각각 ‘진(秦)’ 자와 ‘계(計)’ 자를 반듯하게 적은 후 붓을 거두었다.
“진공과 계 선생님은 저희 운산관의 조사(*祖師: 학파·종파 따위의 창시자)이십니다! 저와 제문이 비록 그리 부르지는 않을지라도, 운산관에 들어올 다른 이들은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되니까요!”
“하하, 편한 대로 하십시오. 이 일의 권한은 청송 도장께 있으니까요.”
진자주는 청송 도인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에게는 어찌 되었든 큰 상관은 없었다. 후에 계유신이 되면 운산관을 비롯한 다른 곳에서도 자신을 모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를 계 선생님이 어찌 생각할지는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한편, 운산관에서 서북쪽으로 떨어진 상공에서는 구름 위에 있던 계연이 무언가를 느꼈다. 손가락을 접어 잠시 점을 쳐본 계연은 고개를 돌려 운산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신묘한 솜씨군! 글자가 조금 별로긴 하지만…….”
그렇게 계연은 청송 도인의 행동을 묵인했다. 사실 제선이 쓴 글씨는, 분명 계연의 글씨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 봐줄 만한 솜씨였다.
* * *
조월국의 서북쪽 변경은 연량국과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조월국은 대정국과 관계가 나쁘기에 양쪽에서 공격받는 일을 피해야 하므로, 연량국에 대해서는 대대로 온화한 외교정책을 펼쳐왔다.
계연은 때때로 <검의첩>을 꺼내 간단히 점을 치고는, 그때마다 방향을 조금씩 수정해가며 날아가고 있었다.
조월국의 국경을 넘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연은 연량국의 유명한 먹 생산지인 묵원현(墨源縣)에 가까워졌다. 계연은 그곳에서 속도를 줄여 점차 아래로 내려가다가, 묵원현 안으로 들어온 후 구름에서 내려섰다.
묵원현의 주위로는 산세가 험준했는데, 계연이 이전에 보았던 다른 명산(名山)들에 비하면 그다지 푸르지 않았다. 높은 봉우리는 대체로 황량하여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그보다 낮은 곳에서는 오동나무와 옻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 세 나무는 모두 먹을 만드는 중요한 원재료였다.
계연은 묵원현 현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마을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사람처럼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은은한 먹물 냄새가 감돌았는데, 이로써 계연은 멀지 않은 곳에 먹을 만드는 공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은 시냇가에 이르자 계연의 모호한 시야에 등이 굽은 노인의 모습이 또렷하게 들어왔다.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계속 코를 킁킁거렸다. 심지어 지팡이를 짚고 서서 높이 올라가 멀리 바라보기도 했다.
노인도 계연을 본 것이 확실했지만, 그는 마치 그의 존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강 상류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계연이 눈을 빛내며 생각에 잠겼다.
‘이곳 토지신인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토지신이 계연을 행인으로 여겼으니, 계연도 굳이 나서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계연은 마치 풍경을 감상하는 풍류 서생처럼 보였으나, 실은 계속 토지신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보통 노인들보다 훨씬 등이 굽은 자그마한 체격의 토지신은 비록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아마도 신령이 되기 전에는 사람이 아니었을 확률이 높았다.
흙 속에서 태어나는 정괴(精怪) 중에는 저런 모습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계연이 알기로는 토지신 중 최소 3할 이상은 저런 정괴들이 수행하여 토지신에 오른 경우였다.
앞서 걷던 토지신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느라, 도행이 자신보다 훨씬 높은 이가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