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앞으로 시끌벅적해지겠네
‘보배다!’
일반적인 수행자들이라면 이 법전(法錢)을 보자마자 토지신과 비슷한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이 화폐는 당오통보보다 크고 두꺼웠는데, 표면은 순금처럼 반짝이고 신묘한 기운이 법전 주위를 은은하게 감돌았다. 게다가 주변에 있는 영기를 끌어당기기까지 하여 법전의 표면에는 빛이 흐르고 있었다.
토지신은 이 화폐의 가장 신묘한 점은 오히려 안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갖고 싶다! 이건 꼭 가져야 해!’
“저, 그게……. 하하하, 이 돈은 어찌 봐도 신통한 능력이 깃든 보물처럼 보이는데, 이걸로 정말 먹을 사려 하십니까?”
토지신은 원래 ‘이런 귀중한 것은 받을 수 없다’고 말하려 했으나, 법전이 너무나 갖고 싶었던 나머지 계연에게 확답을 받고자 이렇게 질문했다.
감정이 있는 모든 중생은 욕구가 있다. 그것은 공적인 욕구와 사적인 욕구로 나눠지고, 욕구의 경중(輕重)은 자신의 바람과 가진 시야에 따라 달라진다. 황구는 작은 마을의 토지신에 불과했으므로, 그가 접할 수 있는 보물들이라고 해봐야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귀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계연은 아무 말 없이 곧바로 토지신에게 법전을 건넸고, 그는 몇 번 사양하다가 결국 법전을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건 제가 만든 거예요. 확실히 보배라고 불릴 만한 물건이긴 하죠.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법사를 청해 화폐에 법력을 깃들게 한 후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태워주는 법전과 비슷해요. 유일한 차이점은 이 안에 담긴 영기와 법력이 그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이고요.”
“아하, 그랬군요!”
토지신은 법전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만족한 얼굴로 웃었다. 법전을 직접 손에 쥐자 그 안에 담긴 힘이 좀 더 명확하게 느껴졌다. 법전이라는 말은 그도 전에 들어본 적이 있고 심지어 무슨 물건인지 본 적도 있었지만, 그것과 지금 자신이 쥐고 있는 이 화폐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이 법전은 엄청난 법력과 영기를 품고 있는 동시에, 표면은 빛이 나는 것처럼 반짝여 조금도 잡스러운 느낌이 없었다. 게다가 마음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어느 상황에서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술법을 펼치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든, 심지어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도 쓸 수 있는 비장의 물건이었다.
게다가 이 안에 담긴 순수한 도력에서는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도의 경지’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에 토지신은 수행 중 문제가 생겨 주화입마(*走火入魔: 몸 안에 도는 기를 통제하지 못하여 내공이 역류하거나 폭주하는 현상)의 상태에 처하더라도, 이 법전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걸 느꼈다.
토지신은 계연의 도행이 대체 얼마나 높은 건지 제대로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떠올려보면 아마 신선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정말로 너무나 귀중한 물건입니다……. 소, 소신(小神), 반드시 선생을 위해 좋은 먹을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토지신은 이렇게 귀한 물건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은 이 정도 가치를 지닌 물건을 내놓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참, 묵원현 현성에 가지 않고, 토지신당에 잠시 신세를 져도 될까요? 토지신께서도 무언가 소식이 생기면 저를 찾아오시기도 편할 테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토지신이 좋은 먹을 구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고, 그 사이에 저 글자들이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볼 셈이었다.
그러자 토지신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 당연히 가능합니다! 계 선생님께서 제 신당에 머물러 주신다면 그야말로 영광이지요! 지금 바로 묘지기에게 꿈을 통해 좋은 방을 준비해 놓으라 전해놓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이렇게 말한 토지신은 돌 위에서 뛰어내려 손짓했다.
“네!”
이렇게 대답한 계연은 <검의첩>을 향해 말했다.
“같이 가자. 이 지경이 되었으니, 너희들이 훔친 먹도 다 가지고 가야겠구나. 다음부터는 이런 일을 벌이면 안 돼.”
그의 말에 <검의첩> 위의 글자들이 저마다 떠들기 시작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내 거야! 저기 제일 큰 거!”
“비켜 봐, 이거 내 거란 말이야.”
“뺏지 마!”
“이거 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계연은 소매를 한 번 휘둘러 <검의첩>과 그 주위의 먹 덩어리들을 전부 소매 안으로 가져왔다. 그러고는 고개를 내밀고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종이학에게 말했다.
“저것들이 하는 모양을 배우면 안 된다!”
한쪽에 서 있던 토지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앞으로 나서 토지신당을 향해 길을 이끌었다.
토지신은 걸어가는 동안에도 때때로 법전을 꺼내 표면을 쓸어보기도 하고 튕겨서 소리를 내기도 했다. 마치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새로 산 아이처럼 보였다.
계연은 그 모습을 보고 이 법전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환영받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 *
묵원현은 품질 좋은 먹을 생산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그러나 현 안의 여러 마을에서 생산하는 먹은 서로 조금씩 달랐는데, 이농향에서 주로 만드는 것은 송연묵(松烟墨)이었다.
묵원현은 연량국에서 손꼽히게 부유한 현성으로, 이곳에는 먹을 만드는 일을 가업으로 삼아 부자가 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각종 신당을 방문하여 제사를 올렸으므로, 이농향의 토지신당은 계연이 막연히 생각하던 작고 오래된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당이 두 개나 딸린 넓고 큰 건물이었다.
그 안에는 적지 않은 곁채가 딸려 있었으며, ‘공덕을 기리는’ 선신당(善信堂)이라는 곳이 따로 있었다. 즉, 누가 신당에 얼마나 많은 돈을 기부했는지를 적어놓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 돈은 토지신의 손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모두 묘지기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었다.
이때 묘지기는 곁채에서 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신당 안의 모든 일은 두 묘공(*廟工: 신당에서 일하는 일꾼)이 맡아 하는 중이었다.
원래는 잠깐 쉬려고만 했는데, 묘지기는 저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똑똑똑-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묘지기는 시끄러워 잠에서 깨어났다.
“누구시오, 이제 조금 눈을 붙였는데!”
똑똑똑-!
그러나 밖에서는 아무런 대답 없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묘지기는 약간 짜증이 난 얼굴로 침상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그가 문을 확 열어젖혔지만, 눈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이에 그가 누군가의 유치한 장난으로 치부하려는 순간,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이에 고개를 내려보니, 그의 키 반만 한 등이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토지신 아니십니까?”
묘지기가 놀라 소리쳤다. 비록 묘지기를 맡아 하며 쏠쏠히 개인 주머니를 채우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토지신에게 매일 절을 올리는 꽤 신실한 자였다. 그렇게 토지상을 매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토지신을 알아본 것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토지신들은 모두 체구가 작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음, 눈치는 빠르구나!”
토지신은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귀빈이 방문할 것이다. 성은 계씨이고 흰옷을 입은 서생이신데, 존함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고 계 선생님이라 부르면 된다. 계 선생께서 잠시 머무르다 가실 테니, 어서 조용하고 깔끔한 방을 하나 정리해 놓아라. 기억하거라, 조용하고 깨끗한 방이어야 한다. 서둘러라!”
“예, 예!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묘지기가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하며 명을 받들자, 토지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허억……!”
그와 동시에 묘지기는 대나무로 된 기다란 의자에서 번쩍 눈을 떴다. 그는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있었는데, 어리둥절한 얼굴로 실내를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꿈인가? 아냐,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해!”
짧은 수염을 기른 묘지기는 서둘러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침대 위에 있던 요와 이불을 모두 거둬들인 후 상자 안에서 새 침구를 꺼내 깔았다. 그런 후에 방을 깔끔히 청소하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깨끗하기로는 토지신당 전체에서 그의 방이 제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이어 그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대략 일각(15분)이 지난 후, 묘공 하나가 묘지기의 방으로 뛰어오더니 묘지기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냐?”
“조(趙) 사부, 흰옷을 입은 계씨 성의 서생이 어르신을 찾습니다. 어르신께서 자신을 안다고 하시던데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묘지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안다! 알지! 어서 모셔 오너라. 아니, 내가 직접 가서 맞이해야겠다!”
그렇게 찾아온 손님은 무척 정중하고 온화했으나 묘지기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토지신의 분부대로 모든 일을 마쳤으므로 손님을 데리고 방으로 안내했다. 그런 후에 하루 세끼를 준비해 올릴 것이고, 그 외에는 방해하지 않겠다는 말을 올렸다.
귀빈이 불쾌해하는 기색이 없자, 묘지기는 그제야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다시 흥분에 차올랐다.
‘저 손님은 토지신이 꿈을 빌어 잘 접대하라고 부탁한 귀빈이니, 어쩌면 신선이 아닐까?’
계연은 특별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조용히 방 안에 머무르기만 했다.
이 토지신당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격식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묵는 이 방은 객잔의 고급 객실보다 더 좋았다. 원래는 신당의 바닥에서 대충 자려던 계획이었는데, 지금 이 상황은 계연도 생각지 못한 사치였다.
묘지기가 떠나자 계연은 문을 닫고서 탁자 위에 <검의첩>을 펼쳤다.
그러자 품 안에 있던 종이학이 비단 주머니를 빠져나와 <검의첩> 옆까지 날아가 앉았다. 시종일관 고고하고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던 넝쿨검조차 탁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때 <검의첩> 위의 글자들은 단 하나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아마도 이제 혼이 날 시간이라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그 고요함에 종이 위에서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언제부터 스스로가 사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느냐?”
계연은 담담한 어조로 질문한 후, 방 안을 다시 시장통처럼 만들지 않기 위해 즉시 ‘검(劍)’ 자를 짚었다.
‘검’ 자는 살짝 몸을 비틀며 지면 위에서 모서리 한쪽만 슬그머니 일으켰다. 마치 곁눈질로 계연이 화가 났는지 살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고는 지면 위에서 둥실 떠올랐다.
“어르신께 아룁니다. 약 10년 전부터 흐릿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르신께서 몇 번 도에 대한 가르침을 내리는 것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곁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좀 더……, 아, 정신이 맑아졌어요. 하지만 듣고 생각할 수만 있지,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는 없었어요!”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생각했다.
‘어쩐지 이놈들이 내가 부리는 술법을 다 꿰고 있더라니.’
“이 두루마리가 그래도 너희 집인데, 이 안에 얌전히 있지 않고 왜 불편하게 떠도는 거지?”
이 말이 안 나왔으면 모를까, 이미 뱉은 상황인지라 <검의첩> 위의 글자들은 온통 벼락을 맞은 듯이 난리가 났다.
“저희도 이 안에 있고 싶었어요!”
“맞아, 그런데 그때는 힘이 없었어요. 두루마리가 너무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어요!”
“두루마리까지 움직이려면 우리가 날 수가 없었어요!”
“맞아요, 나중에는 저희도 한참 찾았어요. 비바람을 피하면서 고생하다가, 먹을 먹고 난 후에야 힘에 좀 생겨서, 영기를 흡수할 수 있었어요…….”
“어르신, 저희도 정말 힘들었어요!”
“화내지 마세요, 제발 혼내지 말아 주세요!”
“어르신께서 그때 이 두루마리를 연씨 성의 남자에게 주셔서…….”
“어르신이 이제 우리를 원하지 않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어르신을 찾아간 거예요!”
“맞아요, 움직일 수 있게 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어르신을 찾는 거였어요!”
“맞아요, 우리는 어르신께서 북쪽으로 가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아니야, 서쪽으로 가셨잖아!”
“틀렸어. 북쪽이야!”
“서쪽이라니까!”
“북쪽이라고!”
“하! 틀렸다니까!”
“아니야! 네가 틀렸어!”
계연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기분으로 외쳤다.
“싸우지 말거라, 조용!”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그의 귓가는 조금 전의 소란으로 여전히 윙윙거렸다.
“휴우! 앞으로 시끌벅적해지겠네…….”
종이학은 <검의첩> 곁에서 신이 난 듯이 날개를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