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96화 (396/892)

396화. 도음(道音)이 그치고 종소리가 울리다

동추부 부성과 대량사 사이에는 자그마한 임지(林地)와 몇몇 마을, 전답이 늘어서 있었다. 거리는 대략 10리(약 4km)도 채 되지 않아, 보통 백성들의 속도라면 반 시진(1시간)이면 성안에서부터 대량사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세 사람은 경공의 수준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짧은 시간만에 부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은 성 서쪽 커다란 횃불이 놓인 곳에서 담장을 넘었다.

그렇게 잠시 후 세 사람은 성안에 있는 한 커다란 저택 앞에 도착했다. 이들이 대문을 두드리니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던 관사가 나와 이들을 맞아들였다.

1각(15분) 정도가 지난 뒤, 저택 안의 응접실에서는 살집이 보기 좋게 오른 50세 전후로 보이는 남자가 세 사람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는 세 사람의 말을 듣고 몹시 놀라더니, 찻잔을 쥔 손을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대량사 내부로 깊이 들어갈수록 각종 환상이 보이고, 이상하고 무서운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냐?”

그러자 담씨 성의 남자가 눈썹을 살짝 찡그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어르신께 아룁니다. 그 목소리는 무섭지는 않았고, 무척 괴이쩍었습니다. 진기(眞氣)를 이용해 귀를 막아도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혼미해지고 눈앞에 각종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맞습니다, 어르신. 저는 맨 처음에 연못 안에 금빛 연꽃이 만개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제가 비록 재화를 등한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금빛 연꽃을 보자마자 연못에 뛰어들 정도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치 그것을 얻는 것이 무척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곧바로 연못으로 뛰어들었고, 그렇게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 저와 담 형님은 형님이 물에 빠졌으니 이제 정신을 차리겠거니 했는데, 물속에서 허우적대면서도 계속 그 금빛 연꽃을 부르짖으며 찾고 있었습니다.”

여섯째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그제야 찻잔의 뚜껑을 열고 떠다니는 찻잎을 밀어낸 뒤, 차를 한입 머금었다. 그러고는 옆에 놓인 촛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대량사는 역시 선제께서 금패(金牌)를 내리신 국사답구나. 이번에 사찰을 닫아건 데에는 분명 무언가 신비로운 일이 연관된 거야…….”

이렇게 중얼거리던 남자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던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고생했다. 그만 가서 쉬어라.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예!”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대답한 뒤 총총히 물러났다. 머리는 여전히 혼곤하니 무거워서, 이들은 그저 편히 잠을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세 사람이 떠나자 여섯째 어르신이라 불리던 남자는 즉시 서재로 들어가 붓을 들고는 서신을 써 내려갔다. 단번에 몇 장이나 되는 서신을 쓴 남자는 관사를 불러 이것을 어딘가로 부치라고 명했다.

* * *

같은 시각, 동추부 내 화려한 별원 안에서는 장공주가 머리를 침상 바깥으로 내밀고서 멍하니 대들보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동은 지금 뭘 할까……. 대량사 안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 * *

대량사는 동추부의 명승고적으로서 그 주변 백성들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오는 것뿐만 아니라, 외지인들이 동추부에 오면 꼭 들르는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10월 초 어느 날부터 대량사는 돌연 문을 걸어 잠갔다. 그렇게 5일, 10일, 20일이 지났지만 대량사는 여전히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대량사의 승려들이 가끔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그 안에서 아직 정상적으로 먹고 마시며 생활한다는 것만 알았다.

대량사의 문이 계속 열리지 않자, 주위 백성들 사이에 각종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황족이 대량사를 방문했다고 했고, 누군가는 대량사의 방장 대사가 입적했다고 했으며, 그간 참배객들로 너무 번잡했기 때문에 승려들이 조용히 문을 닫아걸고 수행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대량사 승려들은 장을 보러 밖으로 나오더라도 사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다. 누군가 방장 대사께서 건재하시느냐고 물으면, 체념한 얼굴로 방장께는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대량사 내에는 이미 계연과 불인 노승의 도음이 들리는 범위 안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승려들이 없었다. 혜동대사마저도 일찍이 방장을 비롯한 다른 고승들과 함께 외원의 대전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이는 그들의 대담을 들은 후 잠을 자고 나면 다시 들을 수 있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충분한 수행을 쌓지 못한 이들이 억지로 들으려고 해봤자, 예전에 들었던 것마저 모두 잊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오해져서, 시정 백성들의 말을 빌리자면 아예 ‘사람이 들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11월 상순이 되었고, 불인 노승과 계연의 좌담도 마침내 끝이 났다. 두 사람은 그간의 대화를 통해 서로 적지 않은 수확을 거뒀으므로, 앞으로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야 필요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멈추었지만, 대량사를 뒤덮은 안개와 몽롱한 기운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는 여전히 불자(佛子)가 걸어 다니고 용이 날아다니며, 하늘의 별이 쏟아지고 땅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등의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불인 노승과 계연은 방석에서 일어나, 한 명은 합장하고 한 명은 읍을 하며 서로를 향해 예를 올렸다.

“선생과 한번 도를 논한 것이, 수행을 백 년 닦은 것보다 훨씬 값진 일이군요!”

노승의 평온한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 계연도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채로 웃으며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제게 있어 대사와 도를 논한 것은 고작 백 년간의 수행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모두 공손한 태도로 서로를 추켜세웠으나 그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계연은 만약 자신이 다른 진선(眞仙)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 정도로 깊은 가르침을 얻지는 못했으리라고 확신했다. 불인 노승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또 다른 명왕과 도를 논했다면 이번과 같은 수확은 없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천시, 지리, 인화(*天時, 地利, 人和: 때와 장소와 인연) 세 가지가 모두 맞아떨어져 오늘날 그들의 연이 닿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하늘에는 점점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고, 동쪽 하늘 지평선에 노을 같은 금빛이 번졌다.

노승은 사찰의 종루(鍾樓)가 있는 방향을 보다가 다시 주위의 안개를 바라보며 계연에게 물었다.

“이 안개는 걷어내는 것이 좋겠지요. 오늘 대량사 새벽종은 선생께서 쳐보시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종은 대사께서 치는 게 좋겠습니다. 어쨌든 이 대량사는 이제 대사를 모시는 작은 법장(法場)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하하하, 앞으로도 계속 작으리란 법은 없지요!”

불인 노승은 천천히 종루를 향해 걸어갔고, 계연은 나무 아래를 떠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오랫동안 울리지 않았던 종소리가 대량사에 퍼져나갔다.

댕- 댕- 댕-!

이번 종소리는 무척 멀리까지 퍼져나가 대량사 바깥의 농촌 마을과 황야까지 닿았고, 어렴풋이 동추부 부성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사찰을 몽롱하게 뒤덮었던 기이하고 다채로운 색깔의 안개가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연은 그 안개가 정말로 사라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만약 어느 날 날씨 때문에 대량사에 다시 안개가 낀다면, 무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계연이 느끼는 이런 종류의 직감은 대개 무척 정확했다.

대량사 승려들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잠에서 깼고, 그제야 선도(仙道)와 불도(佛道)를 따르는 두 고인의 좌담이 끝난 것을 알았다.

주위의 백성들과 동추부 부성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 아득히 퍼져나간 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소수의 이들은 그것을 귀 기울여 경청했다.

다만 그들은 이 종소리 같은 게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이 환청을 들은 게 아닌지 아리송했다. 그런 이들은 날이 밝고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만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뒤이어 대량사가 내일부터 다시 참배객들을 맞이할 것이라는 소식이 퍼져나갔다. 이에 백성들은 오늘 새벽에 들었던 것이 대량사의 종소리일 거라 짐작하고는, 대량사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 * *

불인 노승은 종을 치고 난 다음 계연이 있는 나무 아래로 돌아왔다. 대량사의 고승들도 다시 그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계연이 바라보는 나무는 약 20미터 정도의 높이였는데, 주위 건물들이 모두 낮았기 때문에 더욱 까마득해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모여든 승려들은 아무 말 없이 불인 노승을 향해 예를 올렸다.

그때 계연이 돌연 이렇게 물었다.

“이 나무가 보리수인가요?”

용수(*榕樹: 반얀나무, 대만고무나무)를 닮은 이 나무가 눈에 익었던 계연은 이것이 지난 생에 본 보리수가 아닌가 하고 이렇게 물었다.

“보리수?”

그러자 불인 노승이 이렇게 되물으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무를 바라보았다.

“이건 아마 뽕나무일 겁니다. 보리라는 게 어떻게 지어진 이름입니까?”

계연은 비록 이곳의 문화와 지식이 자신의 지난 생과 비슷하긴 하지만, 이곳 불문(佛門)에도 석가모니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뽕나무였군요’라고 대답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계 선생, 보리가 무슨 뜻입니까? 발음이 어딘가 익숙하군요.”

계연은 불인 노승을 바라보며 지난 생의 기억을 더듬어 이렇게 대답했다.

“보리는 여기서 먼 어느 지방의 방언을 음역한 것인데, 깨달음, 지혜라는 뜻이 있습니다.”

“오, 그렇군요!”

불인 노승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웃었다. 그러고는 계연과 대량사 승려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서역 남주로 돌아갔다.

* * *

화려한 별원 안.

장을 보러 나갔던 시녀 하나가 흥분에 찬 얼굴로 단번에 후원으로 뛰어 들어왔다.

“마마! 장공주마마!”

시녀는 다급히 뛰어 들어오는 동시에 이렇게 소리쳤다.

“왜 이리 소란이냐?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승당처럼 꾸며놓은 건물 밖에서 여관이 눈썹을 찌푸리며 헐레벌떡 뛰어오는 시녀를 꾸짖었다. 그러자 여관의 등 뒤로 장공주 초여언(楚茹嫣)이 걸어 나왔다.

“무슨 일이지?”

“장공주마마, 대량사가 내일부터 다시 문을 연답니다! 오늘 해가 뜨기도 전에 사찰에서 친 종소리를 많은 이들이 들었다 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향을 올리러 가야겠다며 시장이 온통 그 얘기로 가득했어요!”

그러자 초여언이 얼굴 가득히 화색을 띄웠다.

“그게 정말이냐?”

“확실합니다. 소식을 들은 후에 시장에서 대량사 승려들을 만나 직접 물어보고 확인한 일입니다! 내일부터 다시 참배객들을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짝!

초여언이 두 손을 부여잡았다.

“잘됐구나! 즉시 마차를 준비해라. 지금 당장 대량사로 가야겠다!”

“하지만 장공주마마, 대량사는 내일부터 연다고 하던데요?”

그러자 초여언은 웃으며 시녀를 향해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건 보통 백성들한테 적용되는 거지. 대량사가 내일부터 문을 연다는 것은 지금도 별일이 없다는 거다. 그들은 다시 참배객들을 맞아들일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야. 그러니 나는 오늘 가도 괜찮다는 소리다! 어서 마차를 준비하라 해라!”

그러자 시녀가 웃으며 ‘예’하고 명을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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