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97화 (397/892)

397화. 묘법이 탄생하다

시녀가 떠나자 여관이 초여언을 향해 물었다.

“마마,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닐까요?”

“괜찮다. 만약 정말로 안 된다면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되지. 게다가 폐하께서도 대량사의 일에 대해 무척 관심을 두고 계시다. 이미 내게 이번 일에 관해 물으며 대신 주의를 좀 기울여달라고 하셨지. 그러니 이건 ‘군주의 걱정을 함께 나누는(爲君分憂)’ 셈이지!”

이들은 지난번에 대량사에서 보고들은 일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이신 장공주의 동생께서 갑자기 대량사의 일에 관해 관심이 생긴 듯 급보를 전해왔다. 황제가 초여언에게 대량사의 상황을 물었기 때문에, 초여언은 서찰을 통해 사찰에서 겪었던 ‘뭇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멀쩡했던(衆人皆醉我獨醒: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의 한 구절)’ 상황을 적어 보냈다.

그러자 황제는 더욱 관심을 보이며 자기 누이더러 대량사에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다.

장공주 곁에 서 있던 시녀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장공주가 댄 이유가 허울 좋은 구실이었기 때문이다.

마차가 준비되는 데에는 반각(*半刻: 7~8분)이면 충분했다. 이들은 마차를 전체적으로 한 번 더 청소한 뒤, 각종 다과와 단향(檀香) 등을 잔뜩 싣고 좋은 술도 두 병이나 실었다.

하지만 마차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바로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공주 초여언이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세심히 화장을 고치고 옷이며 머리를 재단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한 시진(2시간)이 흘렀다.

단장을 끝낸 초여언이 거울 앞에서 적당한 머리 장식을 고르던 중, 그녀의 화장을 고쳐주던 시녀가 물러갔다. 장공주는 고개를 돌려 여관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떠냐? 예쁜 것 같으냐?”

“예, 무척 아름답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여관이 대충 성의 없이 대답하며 장공주를 재촉했다. 그녀가 보기에는 머리 장식이 한두 개 더해졌을 뿐, 단장을 하기 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 * *

마차 두 대는 별원을 나가 부성의 서쪽 문을 통해 대량사로 향했다. 마차 곁을 여관을 비롯한 많은 기수(騎手)가 따르고 있었다.

일각 정도가 지나 마차는 대량사 밖 텅 빈 거리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활짝 열린 대량사의 육중한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사찰의 대문 앞에 걸려있던 목패와 선제가 하사한 금패는 모두 치워진 상태였다. 한 승려가 사찰 대문 앞의 공터에서 바람에 날려온 낙엽 등을 비질하고 있었다. 사찰의 많은 부분을 한 달여간 청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에 익은 마차가 가까워지는 것을 발견한 한 승려가 즉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차가 적당한 위치에 멈추자 혜동대사가 그녀를 맞이하러 나왔다.

“선재 대명왕불, 소승 혜동이 장공주마마를 뵙습니다!”

혜동대사는 마차를 향해 합장하며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안쪽에서 장공주가 발을 걷고 혜동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혜동대사, 오늘은 사찰에 들어가도 되겠지요?”

그러자 혜동대사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비록 내일부터 참배객을 받는다고 알리기는 했지만, 실은 그저 청소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 외에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시녀가 마차 뒤편에서 내려와 발 받침대를 내려놓았다. 마차 안에서 초여언이 그것을 딛고 내려왔다.

“마차는 후원에 갖다 놓거라. 오늘은 혜동대사와 함께 걸어 들어가겠다.”

그러자 장공주를 지척에서 모시는 여관만 남고 모두 그녀의 명을 받고 물러났다. 혜동대사는 사찰 안쪽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부탁드립니다.”

혜동대사가 반 발자국 정도 앞서 걷고, 두 사람이 그의 뒤를 따랐다. 많은 승려가 나와 사찰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이들이 대전을 지날 때는 방석과 이불 등을 잔뜩 끌어안은 승려들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들은 평상시 참배객들이 가장 많은 광장과 대전을 잠시 돌아본 후, 내원 쪽을 향해 걸어갔다.

“참, 혜동대사, 계 선생님과 그 노승께서는 떠나셨나요?”

장공주가 묻자 혜동대사가 불호(佛號)를 외치며 대답했다.

“선재 대명왕불! 존자께서는 종을 치신 후 곧바로 떠나셨습니다. 계 선생께서는 떠나지 않으셨고, 지금은 내원의 금지구역(禁地)에서 글을 쓰고 계십니다!”

“금지구역?”

초여언이 호기심에 찬 얼굴로 혜동대사를 바라보았다.

“대량사에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있었나요? 금지구역이라니요?”

그러자 혜동대사가 숨김없이 고했다.

“장공주께 아룁니다. 대량사에는 원래 금지구역이 없었지만, 이번에 사찰 문을 닫은 후 내원의 한 뜰이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맑고 깨끗한 땅(淨地)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입니다. 소란스럽고 정결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금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아, 그럼 지금 가서 볼 수 있나요?”

혜동대사는 장공주가 이리 물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때에는 제가 모시고 갈 수 있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지금은 아무도 계 선생님을 방해해선 안 되거든요.”

“대단한 곳이군요. 장공주조차 들어가지 못한다니, 폐하께서 오셔도 이렇게 막아서실 수 있으십니까?”

여관이 진심과 농담이 반씩 섞인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혜동대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폐하께서 친히 오시더라도 금지구역에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이는 여관과 장공주의 입을 턱 막히게 했다. 여관은 원래 ‘대량사는 담도 크군요’라고 한껏 비꼬려 했으나, 혜동대사가 마치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본 것처럼 이렇게 설명했다.

“두 분도 존자께서 불법(佛法)을 부리는 걸 보셨을 테니, 계 선생께서도 범인(凡人)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아시겠지요. 사찰 밖의 귀인이든 사찰 내의 승려든, 지금은 누구도 금지구역 안에 출입할 수 없습니다. 저희 같은 범인이 어찌 계 선생님을 귀찮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장공주는 혜동대사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범인이 안 된다면, 대사께서도 못 들어가십니까?”

초여언은 이전에도 혜동대사가 진정한 불법을 몸에 지닌 승려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번에는 ‘진정한 불법’에 대해 견문을 넓힐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불경을 읽고 기도를 올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하, 세간에서는 대량사의 혜동을 고승이라고 일컫지만 그건 차마 받기도 부끄러운 과찬입니다. 존자와 계 선생과 같은 고인들께 비하면, 저 같은 승려는 시정의 범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입니다. 가시지요, 장공주께서 정 보고 싶으시다면 금지구역 바깥을 지날 때 보여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은 천천히 내원 안으로 발을 들였다. 혜동대사는 그들을 이끌고 어딘가를 향해 걷다가, 손가락으로 저 멀리 푸른 잎이 울창한 커다란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나무 아래의 작은 뜰이 저희 사찰의 금지구역입니다. 여기서 조금 보실 수 있습니다.”

장공주는 발돋움하며 그쪽을 자세히 살펴보려 애썼다. 이곳은 금지구역의 입구조차 되지 못했고, 금지구역과 그들이 선 사이로 두세 개의 담장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에 그들은 금지구역으로 들어가는 아치문조차 볼 수 없었고, 그 안의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 * *

이 시각, 금지구역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책상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문방사우가 전부 갖춰져 있었고, 계연은 홀로 그 앞에 서서 <천지묘법>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이전의 좌담을 통해 계연은 깨달음이 용솟음치듯 들끓는 상태였다. 그간 방향만 어렴풋이 잡았을 뿐 복잡하여 손도 댈 수 없었던 것들이 단번에 해답을 얻게 된 것이다.

게다가 계연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한 단락을 끝낼 때마다 중요한 뜻이 담긴 부분에 특수한 법령(法令)으로 글을 써, 전승받을 자격이 없는 자나 삿된 속셈을 지닌 무리가 이 술법을 익히지 못하도록 했다.

그가 글을 써 내려갈수록 오늘 새벽 종소리에 의해 흩어진 각종 기이한 현상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사찰 전체에 퍼지지는 않았고 계연의 주위로만 떠다니고 있었다.

계연의 붓이 신들린 듯 움직였고, 지면 위에서 각종 형상이 떠다녔다. 계연의 늑대 털 붓은 때때로 이상 현상에 먹물을 찍듯 콕 찍은 뒤, 그것을 먹물과 함께 종이에 옮기기도 했다.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계연은 3천 자 이상의 빽빽한 글자를 써 내려간 상태였다. 그는 천록서를 만드는 방법에 더해 글자 정괴들이 지닌 신의(神意)를 본떠 자신의 글에 신의를 담기도 했다. 게다가 계연이 글을 쓰는 내내 주변에 신비로운 현상이 벌어지며, 글자 안에도 그 신비로움이 담겨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주옥과 같았다.

이것은 앞으로 운산관에 전해 내려질 가르침이자, 동시에 계연 자신을 위한 수행의 기초였다.

계연이 마지막 글자를 완성하자, <천지묘법>의 상반부이자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한 <천지화생>이 탄생했다.

쿠르릉……!

그러자 맑은 하늘에 갑작스레 날벼락이 쳤다. 초여언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대량사 상공에는 어느새 커다란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휘이이- 휘잉-!

쿠르릉……!

광풍이 일기 시작해 바닥의 낙엽을 쓸어갔고, 상공에서는 구름이 어지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그 안에서 번개가 언뜻 비쳤다.

별안간 천둥 번개가 치자, 깊은 의식 세계에 빠져있던 계연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점을 칠 필요도 없이 즉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있었다.

“뇌겁? 뇌겁이 왜…….”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계연은 돌연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내려 아직 먹물이 마르지 않은 <천지화생>을 바라보았다.

“이 책이 뇌겁을 불러왔단 말인가?”

주위에는 돌풍이 몰아치며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상공에는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맑았던 하늘이 어두컴컴하게 뒤덮였다.

‘안 되겠어. 대량사에 머물 순 없어!’

그가 정신을 차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챌 때까지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대량사에는 많은 승려가 머물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보통의 육체를 가진 일반 승려들이었다. 게다가 일부 고승들이 있다고는 해도, 그들의 도행은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계연은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곧바로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런 다음 법력을 사용하여 한 줄기 빛으로 변해 대량사를 떠났다.

대량사의 승려들은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와 먹구름이 뒤덮은 하늘에 번개가 번쩍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에 대량사 방장과 노승들이 승당 밖으로 나와 경황이 없어 하는 승려들을 향해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라! 모두 소란 떨 필요 없다!”

“모두 각자 승당과 불전에 들어 비를 피한 뒤 불인명왕경(佛印明王經)을 외워라! 우리는 조용히 불법을 닦는 이들이니, 뇌겁이 이곳에 떨어질 일은 결코 없다!”

그들이 나서서 수행길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승려들을 안심시키자 금세 소란이 가라앉았다.

번쩍……!

쿠궁!

“헉!”

별안간 벼락이 떨어지자 장공주 초여언이 놀라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곁에 있던 여관에게 바짝 붙어섰다. 여관과 혜동대사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 소용돌이처럼 움직이며 그 사이로 번개가 번쩍이는 것이 얼핏 보였다.

휘이잉-!

별안간 광풍이 불어와 사찰 내의 화초들이 땅바닥 가까이 휘어 구부러졌고, 많은 이들이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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