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98화 (398/892)

398화. 무시무시한 뇌겁(雷劫)

“뇌겁 아닌가! 어찌 뇌겁이 생겼지?”

혜동대사는 놀라 크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장공주는 여관에게 기대어 겨우 비틀거리지 않을 수 있었다.

“혜동대사,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혜동대사가 막 그녀에게 대답하려던 순간, 한 줄기 흰빛이 사찰의 금지구역에서 떠오르는 것을 대사는 발견했다. 게다가 어렴풋이 사람의 형체가 구름을 밟고 날아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대량사의 승려들을 비롯한 초여언과 그녀의 여관 모두 그 흰빛이 공중으로 떠올라 재빨리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지기 직전, 계연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량사 승려들께서는 두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뇌겁은 저 때문에 생긴 것이니, 제가 떠나면 대량사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겁니다…….”

천둥소리를 누르고 그의 평온한 목소리가 사찰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저 사람…… 지금 나는 겁니까? 저분은 계 선생님이죠? 계 선생님께서 하늘을 날 줄 안단 말입니까?”

여관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구름을 밟고 흰빛으로 변해 사라진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 빛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대량사 상공의 먹구름은 여전히 흩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회오리처럼 무섭게 모여들던 기세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때때로 천둥소리가 들렸지만 대신 바람은 많이 약해져서, 소나기가 한번 내리면 끝날 정도로 보였다.

그러자 대량사 내의 분위기도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우르릉……!

다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이전처럼 머리털을 쭈뼛 서게 할 정도로 두려운 위세는 많이 사라져 있었다.

“장공주마마, 어서 제 승당으로 드시지요. 곧 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예, 그리하지요.”

“혜동대사, 조금 전 들린 목소리는 계 선생님이셨죠? 방금 그분께서 빛으로 변해 날아가신 건가요?”

여관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다시 한번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는 도력이 뛰어난 승려도 있고, 신선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혜동대사만 해도 이전부터 줄곧 도에 관해 설파해 왔지만, 계연이 날아가는 것을 본 이때의 충격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예, 계 선생님이 맞습니다. 저희 대량사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어딘가로 날아가신 듯합니다. 다만 저 뇌겁의 기세가……. 휴우, 선재 대명왕불! 부처께서 보우하소서…….”

혜동대사는 조바심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계 선생님께서는 불문의 불인명왕과도 도를 논할 수 있는 경지의 선인이시니, 불법이 그분을 보우해주실 것이다.

‘선생님 정도의 도행이라면 뇌겁을 충분히 상대하실 수 있겠지만, 대체 어쩌다가 뇌겁을 불러일으킨 거지? 선생께서는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무구(*無垢: 추악함을 떠나 청정함. 번뇌가 없음)하신 몸이거늘……?’

그 순간 혜동대사는 금지구역 안의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고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뇌겁을 불러온 것은 선생 자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사, 뇌겁이 무엇입니까?”

“혜동대사, 계 선생께서는 괜찮으시겠죠?”

“대사, 저도 하늘을 나는 것을 배울 수 있을까요? 혹 계 선생님께 저를 추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두 여인은 혜동대사의 곁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선재 대명왕불. 두 분, 일단 어서 승당으로 가십시다. 찬찬히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 * *

그 시각, 계연은 속도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가 어디를 가든 먹구름은 마치 그를, 혹은 그가 들고 있는 책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잠시 멈추는 곳마다 그의 머리 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계연은 법안을 전부 연 채로 발아래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지만, 뇌겁이 모여드는 속도는 무척 빨라서 한곳에 조금이라도 길게 머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저 온 힘을 다해 최대한 멀리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계연은 황량한 산자락을 발견하고는 그 위의 상공에 잠시 멈춰 섰다. 그가 멈춰 선 것과 거의 같은 순간, 하늘 위로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무수한 전류가 흐르는 먹구름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가더니 금세 산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몇 초 후, 주위는 삽시간에 깊은 밤이 된 것처럼 어두워졌다.

콰광……!

한순간 번개가 ‘번쩍’하고 떨어져 산 전체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뒤이어 벼락 한 줄기가 한 산봉우리에 꽂혀 커다란 나무 하나가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계연이 산을 밟고 내려선 후 하늘을 올려다보자, 회오리치는 거대한 먹구름 안에 엄청난 양의 번개가 번쩍이는 것이 보여, 금방이라도 그것들이 전부 내리꽂힐 듯했다.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계연에게도 그 모습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지화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토록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책을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는데, 오늘 이것을 잃는다면 또 어느 세월에 써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 봐야 뇌겁이지. 덤벼라!’

벼락이 자기 자신을 향해 떨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는 책을 소매 안으로 넣지는 않았다.

지지직……!

번쩍!

마침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번개가 떨어져 내렸고, 다시 한번 온 산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우르릉…….

콰직…… 콰지직…….

주위로 벼락이 떨어지는 가운데, 계연은 하늘을 향해 검지를 뻗었다. 그러자 커다란 한 쌍의 붉은 손이 나타나 계연을 막아선 후 하늘을 떠받쳤다. 그가 때마침 불러낸 금갑역사였다.

파직…… 파지지직…….

번쩍-!

황량한 산허리에 벼락이 떨어지자 암석과 고목들이 이리저리 부서져 날아다녔다. 땅 위로는 번개에 그을린 자국이 생겨났다.

떨어져 내리는 모든 벼락은 마치 계연의 몸에 얇은 막이 덧씌워진 것처럼, 그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와 반대로 금갑역사의 온몸에는 전류가 흐르고 있었고,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역사의 발밑으로 계속해서 토령(*土靈: 흙의 영물)이 모여들었다. 동시에 계연도 쉬지 않고 금갑역사에게 법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번개는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계연은 이를 꽉 물고 그것을 버텨내고 있었다. 힘이 들어서라기보다는 긴장이 되어서였다.

번개가 또 한줄기 내리꽂히고, 다음 벼락이 내리치기까지의 짧은 몇 초가 마치 네다섯 시진(時辰)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연과 금갑역사가 딛고 선 주위는 온통 그을린 흔적으로 가득했다.

“휴…….”

계연은 잠시나마 한숨을 돌렸다. 금갑역사의 몸에는 여전히 전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 법체(法體)에서 푸른 연기가 솟아오르는 걸 보니 더는 버티지 못할 듯했다.

이에 계연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다시 거둬들였다. 금갑역사가 노란 종이 부적으로 변한 뒤에도 여전히 그 위로 전류가 흘러, 계연은 손에 따끔함을 느꼈다.

금갑역사의 한계는 계연이 제일 잘 알았다. 그런 역사도 버티지 못하다니, 계연은 자기 몸을 실험체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계연이 아직 채 생각을 갈무리하기도 전이었다.

콰직…….

쿠궁-!

뾰족한 바늘처럼 예리한 위세의 벼락이 또다시 떨어져 내려, 순간적으로 주위를 밝게 물들였다. 이번에 떨어진 번개는 희미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계연은 순간적으로 두 명의 금갑역사를 불러냈지만, 전부 벼락에 의해 가루가 되고 말았다. 결국 미약하나마 남은 벼락의 힘을 스스로 감내해야 했는데, 그 때문에 계연의 두 눈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후……. 후우…….”

계연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고통을 완화하려 애썼다. 아직 소모한 법력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심리적인 압박감이 너무나 컸다.

다시 그가 상공을 올려다보니 번개가 만들어지는 속도가 기이하게도 빨랐다. 먹구름 사이로 금빛이 섞인 보라색 전류가 흘렀고, 그것은 끊임없이 회오리치는 구름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칙령, 구사박매(*驅邪縛魅: 삿된 것을 없애고 속박하다)!”

계연은 이렇게 소리치며 마침내 뇌겁을 상대할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의 칙령이 떨어지는 동시에, 현황(玄黃)의 기운이 그를 감싸며 소매 안에서 뇌주(*雷咒: 벼락의 힘으로 만들어진 저주, ‘구사박매’)가 나타나 하늘로 솟아올랐다.

솨앗-!

거대한 뇌주가 하늘에서 펼쳐진 것과 같은 순간, 벼락이 또다시 떨어졌다.

콰지직-

우르릉……!

번개는 폭포처럼 떨어져 내려 하늘에 떠 있는 뇌주로 모여들었다. 그것은 점차 눈을 찌르듯 환한 금빛을 띠는 보라색으로 변했고, 크기 또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면 뇌주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뇌주는 무척 아끼는 비장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계연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이대로 벼락에 의해 깨어진다면 정말로 마음이 쓰라릴 것이다. 하지만 이 뇌겁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아무리 아까워도 참아야만 했다.

계연은 이제 남은 뇌겁이 길어 봐야 10여 초 정도일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지금 떨어지는 벼락은 한 줄기마다 엄청난 위력을 담고 있을 것이다. 만약 수십 초 정도를 견뎌내야 했다면, 그로서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현황의 기운이 함께 버텨주고 있었지만, 뇌주 자체의 빛이 이미 한계까지 치달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는 뇌주가 곧 깨지리라는 의미였다. 이때 뇌주는 마침 십 초 정도를 견뎌낸 후였다.

계연은 소매를 휘둘러 금이 간 뇌주를 다시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거의 동시에 오른손으로 넝쿨검의 검신을 쥐었다. 검집 위의 ‘영험한 넝쿨이 만 장의 날카로움을 숨기다(靈韵靑藤藏鋒萬丈)’ 글자에서 ‘장(*藏: 감추다)’ 자의 빛이 모두 ‘봉(*鋒: 날카로운 기세)’ 자로 모여들었다.

“나를 얕보지 마라!”

계연은 상공의 뇌겁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넝쿨검을 뽑아 들었다.

챙!

솨앗-!

계연은 선검의 위력을 완전히 개방했고, 검광(劍光)이 번개 빛과 동시에 번쩍였다. 그러자 주위가 온통 흰빛으로 물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넝쿨검은 뼈를 에는 듯한 위세를 떨치며 내리치는 벼락을 베었고, 동시에 저 상공 위의 뇌운(雷雲)을 반으로 갈랐다.

콰지직…… 지지직……!

넝쿨검이 베어버린 벼락이 검날을 따라 흘렀다.

“윽…….”

계연은 고통을 참으며 <천지화생> 묘법을 손안에 꼭 쥐었다. 그가 쉬지 않고 법력을 사용해 책을 보호하는 동안, 번개는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계속해서 계연의 왼손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책은 번개와 계연의 법광(法光)에 휩싸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리친 벼락에 의해 계연의 손 전체는 저릿저릿했다. 계연은 번개의 힘을 흡수하는 뇌주(雷咒)로 절반이 넘는 벼락의 위력을 흡수한 뒤, 날카로운 위세의 선검으로 낙뢰와 상공의 뇌운을 베어버렸다. 하지만 그런데도 남아있던 벼락의 힘은 끈질기게 <천지화생>을 노리며 그의 몸 위로 떨어졌다.

비록 진정한 벼락이 아닌 그 여력(餘力)일 뿐이었지만, 계연은 아주 오랜만에 엄청난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계연은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대부분의 뇌겁을 견뎌냈고, 조금만 있으면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아파도 견뎌야만 했다.

게다가 이것은 완전히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만약 계연에게 모든 뇌겁을 완벽히 막아낼 만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이 책에 뇌겁이 조금도 닿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럴 경우, 언젠가 또다시 뇌겁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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