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손님 접대를 좋아하는 운산관
구름을 타고 병주로 향하던 계연은 비취색의 천두호를 소매 안에서 불러낸 후 용연향을 한 입 마셨다. 그러고는 평소와 달리 일부러 술에 담긴 영기가 온몸에 퍼지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천천히 술의 힘을 왼팔, 특히 왼손으로 내려보냈다.
그렇게 청량한 느낌이 온몸에 퍼지며 때때로 느껴지던 왼손의 통증이 완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계연은 역시 용연향이 효과가 있다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곁에 있던 늙은 용은 계연이 술을 좋아하는 정도가 전보다 한층 더 심해졌다고 여겼다. 날아가는 도중에도 참지 못하고 술을 마실 정도라니!
계연의 모습을 보던 늙은 용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계 선생의 주벽(*酒癖: 술을 썩 즐기는 버릇)이 더욱 심해진 것 같구려.”
용연향은 무척 진귀했으므로 계연도 한 번에 너무 많이 마시기는 아까웠다. 게다가 너무 많이 마셨다간 술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까 걱정되기도 했다.
계연은 늙은 용의 말에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주벽이 있긴 하지만, 아직 그렇게 심각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어요. 실은 전에 손을 다쳐서 용연향이 효과가 있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과연 용연향이라 그런지 역시 바로 효과가 있네요!”
“다쳤다고? 선생이 다쳤다니! 누가 그렇게 만들었소? 얼마나 된 상처요?”
늙은 용은 경악과 관심이 반씩 담긴 물음을 던졌다. 자신과 계연 정도의 도행을 가진 이들은 상처를 입기가 쉽지 않지만, 대신 만약 다쳤다면 짧은 시간 안에 회복하기 어려웠다. 예전에 자신의 발톱과 계연의 선검에 의해 크게 당한 진마(眞魔)도 최소 백 년 동안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건 필시 큰일임이 분명했다.
계연은 왼손을 내밀어 그 위에 남은 뇌겁의 기운을 약간 드러내며 쓴웃음을 지었다.
“누구한테 당했냐고 묻는다면, 저 자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군요!”
뇌겁이 남기고 간 흔적은 여전히 보기만 해도 섬뜩한 기운을 풍겼다. 금빛과 보랏빛이 희미하게 번쩍이는 전류가 계연의 왼팔을 훑고 지나갔다. 다만 계연은 자신의 법력으로 그것과 자신의 몸 사이를 서로 닿지 않게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계연의 몸 안에 있는 영기를 흡수하면 그 위력이 더욱 커질 테니 말이다.
늙은 용은 그것이 벼락이 남긴 것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고는 표정이 즉시 심각하게 변했다. 천겁(天劫)이라는 건 오로지 뇌겁이나, 뇌겁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천겁에는 금풍(金風), 흑수(黑水), 열화(烈火), 심마겁(心魔劫) 그리고 현세보(現世報) 등이 있었다. 다만 뇌겁이 그중 가장 직관적이며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녔을 뿐이었다.
예전에 응약리가 고심(*叩心: 마음을 두드리는 것)을 통해 용의 마음가짐을 얻었을 때도, 실은 계연이 그녀를 도와 ‘고심겁’을 무사히 견딜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었다. 그로 인해 후에 그녀가 진룡으로 거듭날 때 훨씬 순탄할 것이다.
겁을 무사히 견뎌내는 것에 있어 늙은 용은 계연이 아는 이들 중 가장 발언권이 센 사람이었다. 용족들은 오랜 세월 각종 수단을 통해 수행 중에 만나는 천겁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연구해왔지만, 진룡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여전히 엄청난 위험을 동반했다. 응굉에게도 그것은 그야말로 구사일생(九死一生)의 경험이었다.
계연의 손 위에 남은 뇌겁은 비록 잘 조절되어 진정한 위력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응굉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하늘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계연을 위협하고 상처까지 입힐 수 있을 정도의 뇌겁이 생긴 것이 무척 이상했다.
“자금(紫金)색의 벼락이라니, 이건 보통 뇌겁이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이오? 무구(無垢)한 수행자의 몸에 이런 뇌겁이 떨어질 리가 없는데!”
계연도 그를 속일 생각이 없었으므로, 오른쪽 소매 안에서 누렇게 빛바랜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두루마리에서는 아무런 특수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오래된 종이처럼 보였다. 만약 계연이 손을 다친 것을 몰랐다면, 그도 이 종이에서 계연의 팔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일종의 탄내 같은 것이 풍긴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연량국의 대량사에서 예전에 응 선생님을 내기에서 지게 했던 혜동 대사를 만났었어요. 그러다가 마침 대량사에 명왕의 화신이 현현하는 것도 보았지요…….”
늙은 용은 눈을 가늘게 뜨며 명왕의 화신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명왕이 직접 현신한다는 전설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뇌겁에 대한 것은 그리 급하지 않았으므로 먼저 이렇게 물었다.
“선생의 성격이라면 그 소동을 구경하고자 일부러 머물렀겠구려. 그래서, 불문의 명왕이 왔소?”
그런 전설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이었는데, 대신 명왕의 화신이 막 현현하려는 사찰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일부러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명왕이 현신하여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거나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므로, 늙은 용은 명왕이 진짜로 왔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하, 맞아요. 실은 일부러 불인명왕이 올 때까지 기다렸죠!”
“그 일이 이 두루마리와 뇌겁과도 관련이 있겠구려.”
계연은 웃음기를 거둬들이고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네, 불인 대사와는 만나자마자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함께 대량사의 내원 안에 있는 한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도를 논했지요. 그러다 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나있었고, 우리 둘 다 무척 흡족했었어요.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아, 저는 불인 대사께서 떠나신 후 바로 책상을 펴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천지묘법>의 상반부인 <천지화생>이 완성되었지요!”
이는 계연의 생애를 통틀어 첫손에 꼽힐 만한 업적이었으므로, 그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계연의 그런 감정은 늙은 용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항상 겸손하던 계연이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 봐도, 저 <천지화생>이 얼마나 대단한 글인지 알 수 있었다.
응굉은 <천지묘법>을 비롯하여 이 <천지화생>에 더욱 호기심을 느껴, 곧바로 이렇게 물었다.
“책이 완성되자마자 뇌겁이 몰려왔소?”
계연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네, 책이 완성되자마자 몰려왔어요.”
계연은 끝으로 갈수록 위력이 점차 거세지던 벼락을 떠올렸다. 만약 그 특수한 뇌주(雷咒)가 없었다면, 비록 벼락의 목표가 자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무척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게다가 뇌겁의 위세가 정말 엄청났어요. 이 글을 불태우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나마 제가 몇 가지 수단이 있어 겨우 버텨냈지요.”
계연의 몇 마디와 그의 팔에 남은 뇌겁의 기운만으로도 늙은 용은 당시의 위험했던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두루마리의 가장자리가 그을린 것을 보니, 계연조차 그 뇌겁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두루마리가 ‘겁을 견뎌낸 것’이 되도록 일부러 뇌겁의 힘을 어느 정도 막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계연이 내상을 입은 데다 두루마리가 그을린 것을 보니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던 게 분명했다.
도행이 조금만 낮은 자였더라면 잿가루는커녕, 아예 찌꺼기조차 남지 않고 타버렸을 것이다.
계연은 늙은 용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이 보이자 두루마리를 흔들며 웃었다.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러자 늙은 용이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이걸 내가 읽어도 되겠소?”
“하하하……. 선생님과 저 사이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번 보는 것뿐인데요!”
계연은 웃으며 늙은 용을 향해 가볍게 두루마리를 던졌다. 응굉은 진지하지만 약간 흥분된 기색으로 천천히 두루마리를 펼쳤다.
두루마리에 적힌 글자는 계연의 글씨였는데, 처음에는 아무런 특별함 없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글자가 점점 더 드러나고, 두루마리의 내용을 읽어나갈수록 늙은 용의 마음에 각종 환상이 떠올랐다. 응굉은 일부러 그것을 억제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신이 진룡인 만큼 이는 무척 신기한 일이었다.
어느 글자들 위에는 자금(紫金)색이 번쩍였고, 그것들은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으며 하늘의 위세를 드러냈다. 마음에 삿된 생각을 품거나 의지가 굳건하지 않은 자들이 이를 대하면 필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두루마리가 완전히 펼쳐지자 깨알같이 작은 3천여 자로 이루어진 <천지화생>이 그의 눈앞에 드러났고, 글자와 더불어 각종 형상이 응굉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단번에 마음의 잡념을 제거하고 심오한 법 그 자체를 가리켰다.
“천지화생! 대지에 펼쳐진 산하(山河)와 하늘의 별……. 천지에 숨겨진 오묘함을 남김없이 드러내는구려!”
늙은 용은 연이어 감탄하며 천천히 두루마리를 말아 계연에게 돌려주었다.
“천지화생이라는 이름 그대로 천지의 오묘함을 담고 있군. 게다가 천지가 이를 용납하지 않으려 할 정도라니, 정말 대단하오!”
늙은 용의 칭찬은 짧고 간단했지만, 대신 진심이 섞여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그가 한번 쓱 본 것만으로 이런 감상을 받았으니, 수행자가 좀 더 시간을 들여 수행하면 <천지화생>의 비범함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계연은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그날의 우는 듯 웃는 듯 알 수 없던 뇌우(雷雨)를 떠올렸다.
‘용납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어…….’
* * *
두 사람이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에, 운산 상공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태양이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시각이었다.
운산관에 가까워지기 직전, 늙은 용은 이미 도관의 변화를 느꼈다. 아마 그 안에 있던 이들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계 선생,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이오?”
늙은 용은 계연과 함께 진자주를 운산관으로 데려올 때, 진자주가 자신의 새로운 신분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수행할 수 있게끔 하는 목적을 세웠다. 그에 더불어 진자주가 도가(道家)에 내려오는 별에 관련된 가르침을 익혀, 계유신이 되기 위한 도를 닦을 때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계연은 운산관 일맥(一脈)을 수행의 길로 인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응굉이 보아하니 계연은 이미 그 일에 착수한 듯했다.
“네, 맞아요. 이 <천지묘법>은 앞으로 운산관 수행의 근본이 될 거예요.”
늙은 용은 고개를 돌려 연하봉 위에 자리한 조그마한 도관을 바라보았다. <천지묘법>을 배우게 되다니, 운산관 일맥의 이들이 너무 열심히 수행하다 요절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의 장래는 무척 밝을 것이다.
늙은 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듯, 계연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운산관이 교만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그저 본분을 지켜 천천히 수행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수행의 길은 반듯한 걸음으로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뎌야만 더욱 멀리 갈 수 있지요. 운산관은 장래에 정통 도문(道門)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도문이라…….”
그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계연을 쳐다보았다.
“내 일찍부터 이런 생각이 들긴 했었지만, 지금은 거의 확신하게 되었소. 선생은 지금 대국을 한판 두고 있구려?”
계연은 확실한 답도 하지 않고,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때 진자주는 일찍부터 그들을 발견하여 연하봉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거대한 암석 위에 올라서서 두 사람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읍했다.
“진자주, 계 선생님과 응 선생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계연과 늙은 용이 이구동성으로 그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진공!”
진자주는 인품이 훌륭하고 앞으로도 더욱 대단해질 신분이었기 때문에, 늙은 용도 그에게는 존중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