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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403화 (403/892)

403화. 하늘조차 빼앗으려 하는 것 (2)

이들은 식탁 위의 요리를 깔끔히 해치우고 술을 몇 잔이나 더 마셨다. 그제야 계연은 소매 안에서 <천지화생>을 꺼내 청송 도인에게 건넸다.

“청송도장, 이게 바로 제가 연구해낸 <천지화생>이에요. <천지묘법>의 상반부 내용이지요. 이 법은 비할 데 없이 오묘하니, 부디 운산관에서도 전승할 이들을 신중히 골라주세요. 너무 까다로운 조건을 걸 필요는 없고 운산관이 원래 가진 도가(道家)의 뜻에 부합하는 자이면 됩니다.”

청송 도인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더부룩한 배를 애써 무시하며 정중한 태도로 두루마리를 받았다. 그러고는 이것을 열어보아도 될지 주저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으면 보세요. 이건 오늘부터 운산관 수행의 근본이 될 책이니까요.”

계연이 마치 그의 생각을 꿰뚫어 본 것처럼 이렇게 덧붙였다.

“예!”

제선은 다급히 두루마리를 펼쳤고 제문이 그의 곁에 다가와 함께 그것을 읽었다. 그들은 마치 두루마리 안에 정신이 모두 빨려 들어간 듯 뻣뻣이 굳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곧 몽롱한 무언가에 휩싸였다.

“오호, 두 도인에게 이렇게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군!”

늙은 용이 약간 놀란 듯이 이렇게 운을 떼자, 진자주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애초에 운산관 도문(道門)의 수행법을 기초로 이를 만들어내셨으니, 저 정도는 되어야 계 선생님의 고생도 의미 있는 것이 되지요.”

“음!”

늙은 용은 그의 말에 동의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두 사람은 전처럼 며칠이나 앉아있지는 않았고, 약 일각(15분)이 지난 후 다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들의 놀라고 넋이 나간 듯한 모습만 봐도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제문은 정신을 차린 후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다른 수선자들이 익히는 묘법도 이처럼 신기한가요? 이 <천지화생>은 선문(仙門)의 수행법 중에서도 무척 대단한 축에 들겠지요?”

“으음……. 다른 선문…….”

계연은 대답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천지묘법>에 무척 자신이 있었지만, 다른 선문의 수행법을 본 것은 <옥회소련>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허허…….”

늙은 용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제선이 든 두루마리를 보며 대답했다.

“계 선생은 자화자찬을 할 만한 성격이 못 되니, 내가 대신 대답해 주겠소. 그것이 완성되던 순간, 하늘조차 빼앗으려 할 정도였네!”

그건 아무런 과장도 더하지 않은, 사실 그대로의 설명이었다.

“하늘이 빼앗아 가려고 했다고요?”

청송 도인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멍하니 두루마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정리해야겠군.”

늙은 용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식탁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가느다란 수룡(水龍)이 모습을 드러내 점점 크기를 불린 후, 식탁 전체를 뒤덮었다.

촤아악-! 솨아아-!

음식 찌꺼기와 생선 뼈 등이 물길을 타고 하늘 위로 솟구쳤다.

청송 도인과 청연 도인은 그 수룡에게 휩쓸릴까 봐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늙은 용이 물줄기를 통제하고 있는 만큼 사람에게 해가 될 일은 결코 없었다.

수룡이 휩쓸고 지나가자, 음식 찌꺼기뿐만 아니라 그릇이며 솥이 닦은 것처럼 반질반질해졌고 젓가락 같은 식기 또한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응 선생님께서 설거지를 해주셨으니, 어서 치우고 여기서 차를 듭시다!”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일어나 식기를 나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술법을 쓰지 않고 직접 몸을 움직여 주방으로 식기를 날랐다.

반 각이 지난 뒤, 깔끔해진 식탁 위에는 찻주전자와 찻잔이 올라왔다. 계연이 꺼내놓은 구기자는 이미 진작에 다 먹은 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좀 더 좋은 것이 올라와 있었다. 바로 밥솥에 깔려있던 따뜻한 누룽지였다.

운산관 아궁이에는 화덕이 두 개여서, 요리하는 동안 옆에서 밥을 지을 수 있었다. 오늘은 사람이 많아 밥을 많이 했더니 누룽지도 잔뜩 생긴 것이다.

계연이 ‘와드득’ 소리를 내며 누룽지 조각을 하나 씹어 먹었다.

“누룽지는 이렇게 약간 그을린 부분이 맛있죠. 바삭바삭하니.”

계연은 오늘 여기서 먹었던 저녁밥이 최근의 그 어떤 식사보다 더욱 맛있고 즐겁게 느껴졌다.

“하하, 누룽지를 곁들여 차를 마시는 건 생애 처음이네요!”

진자주는 누룽지를 씹다가 웃으며 말했다. 늙은 용과 계연이 돌연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그는 그제야 자신의 ‘생’이 몇 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덧붙였다.

“지난 생까지 더해도 처음입니다!”

“허허, 이렇게 먹는 것도 색다르군. 이전에는 아무도 누룽지를 꺼내 접대한 적이 없었다오.”

늙은 용이 이렇게 말하자 계연이 즉시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던졌다.

“응 선생님, 농담이시죠? 누가 감히 선생님께 누룽지를 접대하겠습니까? 그러다 따귀라도 한 대 맞으면 바로 목숨을 잃을 텐데요.”

늙은 용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이렇게 물었다.

“내 성격이 그렇게 안 좋은가?”

“아, 아뇨. 어쨌든 저와 함께 계실 때는 무척 좋으시죠.”

어르신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청송 도인과 그의 제자는 조용히 차를 마시며 때때로 웃기만 했다. 자신들이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아니면, 그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않았다.

사실 청송 도인은 오늘 밤 치를 ‘중요한 임무’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다가, 진자주가 어느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계 선생님, 때가 되었습니다.”

늙은 용과 계연은 웃음기를 거두고는 청송 도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청송 도인과 청연 도인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도관의 대전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들은 먼저 대전 안의 별자리 그림을 향해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린 뒤, 천천히 대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제문은 별자리 그림 아래에서 다리를 약간 구부린 뒤, 두 손을 겹쳐 배 앞에 올렸다. 제선은 도움닫기를 두어 번 한 후 힘껏 뛰어가 제문의 손 위에 발을 디뎠다. 제문은 그와 동시에 두 손을 위로 힘껏 들어 올렸다.

제선은 그 힘을 빌려 그림이 걸린 대들보까지 확 뛰어올라 그것을 낚아챈 뒤 바닥으로 내려왔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정중하고 엄숙한 태도로 별자리 그림을 네 손으로 받쳐 들고 탁자 앞으로 옮겨왔다. 계연을 비롯한 세 사람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연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별자리 그림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그 위에 손가락을 댔다.

그러자 그림이 두 도인의 손에서 벗어나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면에서 3장(약 9m) 정도 높이에 떠서 상공을 향해 펼쳐진 모습이었다. 그와 동시에 청송 도인은 ‘천지화생’을 꺼내 천천히 열어젖혔다.

두루마리가 완전히 펼쳐지자 그것은 청송 도인의 손을 떠나, 별자리 그림 아래, 지면에서는 약 2장(약 6m) 정도 되는 높이로 떠올랐다.

“운산관 관주(觀周)이자 장교(*掌敎: 가르침을 주관하는 사람) 진인(眞人)인 청송은 그 아래에 서십시오!”

계연이 도력을 끌어올려 이렇게 외치자 신비로운 의식이 시작되었다. 웅장하고 특별한 어떤 기운이 연하봉과 운산 전체를 뒤덮었다.

청송 도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뻣뻣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 ‘천지화생’ 아래에 가서 섰다.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려 보니, 두루마리 위에 별자리 그림과 똑같은 도안이 나타나 반짝이고 있었다. 그 위의 별자리 그림은 일찍부터 사방으로 별빛을 내뿜었다.

계연은 법력을 운용해 진정한 ‘천지화생’을 펼쳤다.

그러자 늙은 용과 진자주의 주위로 빛이 무수한 별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이 눈부실 정도로 가득 찼다. 마치 해와 달과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는 별의 힘이 비처럼 떨어져 내려, 별자리 그림 위로 쉬지 않고 모여들었다. 그것은 ‘천지화생’을 통과해 청송 도인의 몸 위로 흘렀다.

이 신기한 순간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청송 도인은 빠르게 ‘천지화생’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천지와 상공에 가득 떠오른 별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느낄 수 있었다.

청송 도인은 정신이 순간 아득해지더니, 어느새 수많은 별 사이를 걷고 있었다. 별들은 마치 손만 대면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각각의 별 사이에는 서로 연관이 있는 것도 있었고,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것들은 각기 다른 힘을 드러내며 대지의 산하(山河)와 서로 호응하고 있었다.

대지에서는 산하가 생겨나고, 만물이 태어났다 사라지며, 동물들과 사람들이 살아 숨 쉬고, 신선과 요괴 등이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이 신비로움을 목격한 청송 도인은 천지에 대한 강렬한 경외심이 들었다.

환상 같기도 하고 진짜 같기도 한 그 장면을 목도 하던 중, 청송 도인은 별빛이 자신의 곁으로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저도 모르게 위에서 떨어지는 두루마리를 받아들었고, 약하긴 하지만 마치 손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즉시 손을 떼고 싶었지만, 조금 전에 계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어도 손을 떼지 말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따가운 통증은 점점 심해지더니 곧이어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바뀌었다.

우르릉…….

머리 위의 별빛 사이로 별안간 거대한 뇌운(雷雲)이 몰려들었다. 자금(紫金)색의 번개가 뇌운의 중심으로 쉬지 않고 모여들었고, 그 위세는 마치 세상 만물을 뒤덮을 듯했다.

청송 도인은 즉시 그 번개의 목표가 자기 자신, 혹은 이 두루마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와 동시에 극도의 두려움이 그를 덮쳐, 하마터면 손을 떼고 도망칠 뻔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응 선생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곧이어 자신은 지금 천지와 이 책을 사이에 두고 다투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뒤이어 계연이 조금 전에 그에게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청송 도인, 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절대 손을 떼면 안 돼요. 한번 손을 떼면 천지묘법은 도장이 자신을 관장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떠올린 그는 이를 꽉 물고 손에 온 힘을 주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운 와중에도 감히 그는 두루마리에서 눈을 떼지 다.

‘놓으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전부 환상이야. 이건 전부 환상이야!’

콰지직……. 우르릉!

하늘의 위세를 담은 벼락이 떨어져 내리자 그 환한 빛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청송 도인은 심장이 덜컹 멈추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선 채로 혼절했다.

바깥에서는 별의 힘이 떨어져 내리는 기세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그들을 둘러싼 주위의 이상 현상도 점차 줄어들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제문은 너무 놀라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사부를 바라보았다. 반면 계연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그 자리에 엄숙하게 서 있었다.

별자리 그림 위의 별들은 여전히 휘황찬란하게 반짝였지만, 점차 그 빛이 줄어들고 있었다. 계연이 그림에 대고 손가락을 휘두르자, 그것은 운산관과 연하봉 주위를 세 번 정도 맴돌더니 다시 대전 안으로 날아가 저절로 대들보 위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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