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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412화 (412/892)

412화. 환생의 비밀

계연은 성황신이 오늘 방문한 연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범인(凡人)이 아니었으므로, 시간관념도 사람들과 달라 10, 20년쯤 못 만나는 것은 별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계연은 서두르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로 안부를 물으러 들렀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둘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송세창은 그간 영안현에 있었던 그리 크지 않은 몇몇 변화를 알려주었다. 계연은 자신이 겪었던 일 중 몇 가지를 골라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시각은 어느새 자정이 되었다. 송세창이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니, 은은하게 떨어져 내린 별의 기운이 계연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법안으로 자세히 보려 하면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계 선생님, 이 평화로운 영안현에 얽매인 성황신으로서 제 견문은 무척 좁고 얕습니다. 천지가 얼마나 큰지도 잘 알지 못하고, 세상일의 신묘한 이치도 겨우 조금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선생께서는 제가 만난 분들 중에 가장 신통력이 대단하신 분이시고요.”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계연은 애써 겸손을 부리며 그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늘 제가 방문한 것은, 실은 선생께 가르침을 청하고자 함입니다.”

“말씀하세요, 성황신님.”

“예!”

송세창은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영안현의 성황신이 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저는 전 황조가 멸망한 후에도 요행히 살아남아, 이제 성황신으로서 삼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비록 수행이 얕고 견문은 좁으나, 저는 제 도리와 안분지족(*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하다)을 아는 자입니다. 영안현의 이승과 저승 양쪽을 평화롭게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제 일생의 소망이지요.”

“참으로 정의로운 분이시군요!”

계연은 자신의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송세창은 계연의 예를 받고 앉아있을 수 없어, 마찬가지로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과찬이십니다. 성황신의 임무가 다 그런 것을요. 제가 앞선 이야기를 한 것은, 제가 얼마나 대단한 성황신인지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렀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수백 년간 성황신으로서 무수한 이들의 생사(生死)를 지켜보았고, 무수한 귀신과 혼백들이 사라지는 것을 목도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점을 발견했습니다.”

송세창은 계연의 표정이 진지해지는 것을 보더니, 머릿속에서 말을 잘 갈무리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은 죽은 후 저승에 들고,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면 저승에서 안락하게 자신의 음수(*陰壽: 죽은 후 저승에서 누리게 되는 수명)를 누릴 수 있지요. 돌봐줄 가족들이 없다고 해도 그 신세가 조금 처량하긴 하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혼백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음수가 다 하면 백(魄)이 먼저 사라지고 혼(魂)은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인혼(人魂)은 소멸하고, 지혼(地魂)은 땅으로 들며, 천혼(天魂)은 하늘로 올라가 천지에 녹아 사라집니다.”

“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듣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런 전문적인 지식은 성황신인 송세창에 비해 자신이 아는 게 적었기 때문에, 계연은 지금 무척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송세창은 자신이 궁금한 것을 곧바로 묻지 않고, 그간 저승에 기록된 대표적인 혼백의 사례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중에는 악인도 있고, 선인도 있고, 평범한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오래 존속하기 어려운 귀졸(鬼卒)이나 귀리(鬼吏)도 있었다.

저승의 귀신이 이토록 상세하게 저승의 혼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계연은 처음으로 듣는 것이었다. 육신이 죽더라도 죽은 자가 가는 저승은 또 하나의 사회였다. 게다가 저승에서의 생활은 이승에 무척 의존적이었다.

계연은 조금도 지루해하지 않고 송세창의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마침내 성황신이 묻고 싶어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혼이 사라지는 것은 마치 등불이 꺼지는 것과 같습니다. 인혼이 그렇게 흩어지면, 천혼와 지혼은 각각 세상에 묶여 하늘로 승천하고 땅에 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천혼이 남아있는 인혼의 기운과 함께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계연은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성황신께 여쭙겠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몇 번이나 보았습니까?”

그러자 송세창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대답했다.

“이는 무척 보기 드문 일입니다. 2백여 년 전에 처음 우연히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 후로, 저는 계속 저승에서 흩어지는 귀신들의 혼을 관찰해왔습니다. 두 번째로 발견한 후로는, 기관장 두 명을 아예 귀성(鬼城)으로 보내어 전문적으로 그 일을 감시하게 했지요. 그렇게 해서 맨 처음 발견한 것까지 합하면, 2백여 년간 총 일곱 번입니다. 물론 제가 놓친 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곱 번이요.”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2백여 년간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과 귀신이 죽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나 무수한 숫자 중, 저승에서의 특별한 감시하에도 겨우 7번 일어난 일이라면 그 일은 엄청나게 드문 일임이 분명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송세창은 다시 한번 술잔을 비운 뒤,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약 6년 전에, 성황당에서 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수행자였나요?”

계연이 이렇게 묻자 송세창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일개 상인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던 것도 그저 재물운을 비는 것에 불과했고 그 자체도 특별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자는 수십 년 전에 사라진 혼과 같은 상(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송세창이 잠시 머뭇거리며 계연을 바라보았다. 계연은 이미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상태였다.

과연, 송세창에게서 계연이 예상했던 것과 같은 말이 이어졌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8, 9할이 닮아 있었습니다. 연령이 다른 것만 아니라면, 완전히 똑같은 혼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람에게는 얼굴의 생김새(面相)가 있듯 혼상(*魂相: 혼의 생김새)도 있었다. 전자는 쉽게 변하는 데다 부모에게서 자녀로 전해지듯 다른 이들끼리도 무척 닮을 수 있었지만, 혼상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것이었다. 이 혼상은 귀신들이 사람을 알아보는 수단 중의 하나였고, 망기술(*望氣術: 구름을 보고 길흉 및 운세를 점치는 고대(古代)의 점술의 하나)처럼 기운을 관측하는 것과 비슷했다.

송세창이 그때 그 경악스러운 순간을 떠올리는 동안, 계연은 조금도 동요하거나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송세창은 그 모습을 보고 계 선생님이 정말로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상인은 당시 현성의 한 객잔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찌 된 일인지를 파악하고자 그날 밤 그의 꿈에 찾아갔습니다. 그는 예전에 죽은 그 귀신과 어떤 혈연관계도 없었고, 무슨 문건(文件)을 받고자 도성에서 온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자의 혼이……. 저는 너무 놀라 덕승부 성황신께도 이 일에 대해 털어놓았지만, 그분도 잘 알지 못하셨습니다.”

송세창은 놀란 기색 없이 조용히 듣고 있는 계연을 바라보았다.

“계 선생님께서는 무척 신통한 능력을 지니셨지요. 예전에도 잠에서 깨어보니 세월이 지나있었다고 하셨고요. 혹 이번 일에 관해 제게 해답을 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사회에는 윤회(*輪回: 인간이 죽으면 그 업에 따라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는 불교사상)라는 관념이 없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윤회가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사실 수행이 일정 경지에 오른 이들은 그런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보통의 귀신이나 혼백은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계연은 사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만큼 침착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다만 지난 생에 윤회라느니, 환생이라느니 하는 말을 많이 들어 담담한 것일 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계연은 말을 고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 성황신께서는 용족들이 물길을 타는(走水) 두 가지 상황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물길을 타는 것? 두 가지 상황이요?”

송세창이 눈썹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교룡들이 수행의 어느 정도에 이르러 진룡이 되기를 원하면, 적당한 물길과 시기를 골라 천시지리(*天時地利: 하늘의 도움이 있는 때와 장소)를 고려해, 파도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나머지 상황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용족들의 비밀이라고 볼 수도 있어서요. 하하, 물론 꼭 지켜야만 하는 비밀은 아니지만요.”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용족들 대부분은 죽은 뒤에 그들의 혼이 귀(鬼)로 변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마지막에 물길을 타는 것을 택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정수와 모든 원기(元氣)를 내보내는 것입니다…….”

계연은 묵영의 마지막 모습과 늙은 용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송세창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에 성황신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수행을 충분히 쌓은 어느 용이 운이 좋다면, 그는 다시 세상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겁니다. 비록 그 용신(龍身)은 다르겠지만, 예전 대부분의 기억과 그 성격은 그대로 남아있게 됩니다. 바로 환생이지요.”

“환생, 환생…….”

송세창은 새로이 들은 두 글자를 천천히 중얼거렸다.

“사실 수행이 높은 이들은 천리(天理)를 위배하는 비슷한 수단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떤 마귀들은 그에 아주 통달하여 그런 수단을 미심입마(*迷心入麽: 마음을 미혹시켜 마에 빠지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아주 특정한 상황에서만 불리는 말이고, 다른 말로는……. ‘빙의(*奪捨: 탈사. 신체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악귀가 강제로 그 몸을 차지하는 것)’라고 해야겠지요.”

계연은 송세창이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을 연이어 내뱉었으나, 그의 설명과 함께 들으면 대강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제가 목격한 것도 이와 비슷한 상황입니까?”

“예, 혼이 그 정도로 닮았다면, 확실히 환생이라고 보는 게 맞겠군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의혹을 품고 있던 송세창은 계연의 해석을 듣고서 이것이 일종의 ‘정상적인 현상’임을 알았다.

“그럼 천혼이 인혼의 기운과 함께 사라져버린 다른 귀신들 모두 내세(*來世: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는 세상)를 얻게 된 걸까요?”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었다.

“용족들도 한 생애에 쌓은 수행에 기대어 걸어보는 실낱같은 기회인데, 보통의 귀신들에게 그런 기회가 항상 주어지겠습니까?”

그러자 송세창이 무언가 깨달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계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계연의 해답을 얻은 송세창은 마음이 편해져, 그 뒤로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는 아무런 목적 없이 자유로웠다.

날이 밝아오자 성황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고, 계연도 대문까지 그를 환송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나누었다. 계연은 성황신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에야 다시 뜰 안으로 들어와 가만히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기름이 다해 꺼져버린 등잔불 같은 귀신의 혼이, 고작 한 줄기 미약하게 남은 인혼의 기운을 바탕으로 내세를 얻을 수 있을까?’

지난 생의 육도윤회(*六道輪回: 중생이 자신의 지은 바 선악의 업인에 따라 천도ㆍ인도ㆍ수라ㆍ축생ㆍ아귀ㆍ지옥의 육도세계를 끊임없이 윤회하게 된다는 뜻)도 아니고, 그리 쉬울 리가 없었다. 용족들조차 힘들게 얻어야 하는 환생의 기회를 사람의 혼백이 어찌 그리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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