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13화 (413/892)

413화. 진자주의 부탁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던 계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약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종이학 하나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고 있었다. 종이학은 계연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그의 옷섶을 콕콕 찧고는 다시 그 안의 비단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고생했어. 이제 쉬렴. 나도 이제 좀 쉬어야겠다.”

계연이 잠을 자지 않은 지 어느새 꽤 오래되었다. 잠을 자기에는 당연히 자신의 집이 가장 편했다. 이미 동이 터오는 시간이었지만, 계연은 시간과 상관없이 침상에 자리 잡고 누웠다.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침상의 편안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궤짝 안에 오래 보관되어 있던 요와 이불에서는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났는데, 그것도 계연이 손으로 몇 번 털자 금방 괜찮아졌다.

영안현 사람들은 겨울이라 할지라도 다른 계절과 다를 바 없이 부지런했다. 논밭을 일구고 돌볼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해도, 백성들은 모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움직였다.

오직 계연만이 ‘해가 머리 꼭대기에 뜨도록 잤다’. 태양이 하늘 저 높이 걸릴 때까지도 그는 일어나려는 낌새가 없었다. 종이학은 간밤의 휴식을 통해 체력을 회복한 뒤였으므로, 다시 주머니에서 나와 문틈 사이를 이용해 바깥 뜰로 나갔다.

뜰 안은 속닥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 작은 글자들이 소리를 낮추고 의논하거나 말다툼하는 소리였다.

어르신께서 아직 주무시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계연을 깨우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소리를 낮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 결과 계연은 정오가 될 때까지 깨지 않았다.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 즈음, 계연은 침상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암…….”

때로는 늘어지게 하품하고 기지개를 피는 것조차 사람에 따라서는 일종의 호사일 수 있었다.

계연은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바깥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자기 집에서 깊게 잔 덕분인지, 그는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도 개운해진 것 같았다.

그는 손기의 가게로 가서 국수를 한 그릇 사 먹은 뒤에, 성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을 즐겼다.

물론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것 말고도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진자주가 그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계연은 느긋하게 구경을 마친 후, 영안현 중심을 가로지르는 대로의 북쪽에 있는 제인당으로 향했다.

제인당에 도착한 계연은 곧 동선(童先), 동 의원이 아직도 정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 가운데는 영안현 백성들도 있었지만, 비교적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동 의원은 마지막으로 회임한 부인에게 몸을 보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약을 지어준 후에야 점심을 먹을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사부님, 식사하셔야지요. 이기(李記)네서 사 온 훈툰(*餛飩: 중국식 만둣국)을 다시 데워드릴게요!”

한 중년 남자가 동 의원이 진료를 끝내는 걸 보자마자 밖으로 나가 약로(藥爐)에 커다란 질솥을 올렸다.

열기가 피어오르자 남자는 계속 길가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던 계연을 흘끔거렸다. 그는 의혹에 찬 얼굴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곧이어 질솥 안의 음식을 데우는 데에 다시 주의를 옮겼다.

그 안에 든 것은 탕약이 아니라 속이 꽉 찬 훈툰 한 그릇이었다. 거친 피부에 살집이 두툼한 남자는 살이 데일까 겁나지도 않는지, 솥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훈툰 그릇을 꺼내든 다음 곧바로 약방 안으로 향했다.

남자는 위에 숟가락을 올린 훈툰 그릇을 동 의원의 진찰대 위에 올렸다.

“사부님, 뜨거울 때 드세요. 저희 같은 의원들일수록 더욱 식사 시간을 지켜야 해요. 벌써 오시가 지나가네요.”

하지만 곧 남자는 자신의 사부가 열기를 내뿜는 훈툰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다.

“비켜봐라.”

“예?”

“아이고, 좀 비키라니까!”

동선은 7, 80의 나이에도 힘이 무척 셌다.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영안현의 다른 노인들은 대부분 흙으로 들어간 마당에도, 그는 자기 제자를 밀쳐버릴 정도로 기력이 좋았다. 동선의 시선은 약방 밖 어느 곳을 향해 있었다.

이 장면을 본 계연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보아하니 동 의원이 진자주에게 물려받은 것은 의술뿐만이 아니라 양생(*養生: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서 오래 살기를 꾀함)의 도(道)까지 물려받은 듯했다.

제인당으로 다가오는 것이 계연임을 확인한 동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계 선생님?”

동선은 믿을 수 없어 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으며 눈을 비볐다. 그러는 동안 계연은 이미 제인당 안으로 걸어들어와 그를 향해 양손을 서로 맞잡고 인사했다.

“동 의원께서는 시력도 좋고 기억력도 좋으시네요. 이 영안현 전체에서 동 의원님이 처음으로 저를 알아본 분이세요.”

온화한 목소리와 기억 속 그대로의 외모, 그리고 행동거지에 드러나는 기품까지. 계 선생이 맞다는 걸 확신한 동선은 잠에서 깨어난 듯한 얼굴로 재빨리 인사했다.

“계 선생님, 정말 선생님이시군요! 실은 제 시력이 좋은 게 아니라, 엊저녁에 천우방에 사는 노인이 진찰받으러 와서 제게 선생께서 돌아오신 듯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만 보이면 계속 확인하고 있었지요!”

동선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의자를 하나 끌어왔다.

“계 선생님, 어서 앉으세요! 혹시 식사하셨습니까? 마침 훈툰이 한 그릇 있는데요. 이기네서 사 온 거예요. 데운 것이긴 한데 맛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아뇨, 괜찮아요. 이미 손기네서 국수를 먹고 왔거든요. 동 의원님이야말로 어서 식사를 드셔야지요. 제자분의 말대로 식사는 시간 맞춰 들어야 하니까요!”

그러자 옆에 서서 계연을 유심히 보던 중년의 의원이 이렇게 입을 열었다.

“선생께서 계 선생님이십니까? 아, 정말이네요. 그때와 조금도 달라진 곳이 없으시군요! 완전히 그대로세요! 어서 앉으세요!”

이 의원은 예전에 만났을 때 약관(*弱冠: 남자 나이 20세)도 되지 않은 나이였었는데, 그때 동선의 덕으로 거안소각의 대추를 먹어본 사람이었다. 게다가 동선의 영향으로 계연에 대해 다른 백성들보다 좀 더 많이 알고 있기도 했다.

계연이 자리에 앉자, 동선은 의원의 직업병처럼 무의식적으로 계연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계연의 안색은 고르며 조금도 나이 든 곳이 없었고, 양 뺨이며 손등 위의 피부에도 적당히 살이 올라 있었다. 심지어 머리카락도 전부 검었다. 그야말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선생께서는 정말로 신인(神人)이시군요!”

동선은 이렇게 감탄한 뒤 숟가락을 들어 훈툰을 한입 먹었다. 그 맛을 보고 공복감이 더욱 심해진 그는 연달아 계속 음식을 입에 넣었다.

“계 선생님, 제가 차를 끓여오겠습니다!”

중년의 의원은 가만히 있지 않고 서둘러 약방 안쪽으로 향했다. 그곳의 약로 안에는 아직도 따뜻한 물이 남아 있었다. 중년의 의원은 빨리 차를 끓이기 위해 마른 장작을 잘라 넣었다.

계연이 가진 맑고 은은한 기운의 영향인지, 동 의원은 이제 처음의 감격이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그는 식사를 들면서 계연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 벌써 십수 년이 되어가네요.”

이는 계연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다. 계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꽤 오래되었죠. 영안현에 이제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몇 남지 않을 정도로요.”

“하하하, 그럼 저를 먼저 찾아오셨어야죠! 저는 대번에 알아봤을 테니까요!”

이렇게 말한 동선은 다시 만두 몇 개를 입에 넣어 우물우물 씹어서 삼킨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일전에 선생께서 타향에서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퍼졌었어요. 남은 유품은 전부 윤 공께 보냈다고요. 저는 믿지 않았지만요!”

“하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계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헛소문은 확실히 시대나 사회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예, 꽤 그럴듯한 소문이었습니다. 선생께서 폐병을 얻어 영안현으로 돌아오는 마차 위에서 돌아가셨다고요. 게다가 윤 공께서 선생이 남긴 서신을 받고서 천릿길을 달려 사람을 보냈는데, 어디에서도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입니다…….”

듣던 계연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자세한 소문이 났다고요? 그게 언제 일인가요?”

자그마한 실마리만으로 이렇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니!

동선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못 잡아도 6, 7년은 되었을 겁니다. 2년 전에 윤 공께서 조상의 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오셨을 때, 하마터면 그분께 가서 사실인지 물어볼 뻔했었지요.”

그러자 계연이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 의원께서 묻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윤 훈장님께서 화를 내셨을지도 모르거든요.”

“화를 내셨어도 상관없습니다! 혓바닥을 함부로 놀린 이를 찾아서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요!”

동선은 나이가 들었지만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척 확고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좋은 스승을 두면 한평생 그 은혜를 입는다.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고, 올바른 품성을 갖게 되는 그 모든 것이 스승의 은혜인 것이다. 하루를 스승으로 모시더라도 일평생 스승을 아버지로 삼는다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전수한다는 건 그 정도의 책임감이 있어야 했다.

진자주를 떠올린 계연은 소매 안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동 의원의 진찰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무엇입니까?”

동선이 의혹 어린 얼굴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동 의원님, 의원님의 스승이신 진자주 어른께서 일찍이 저와 교분이 있어, 이것을 제게 남기고 가셨습니다. 제가 대신 보관하고 있다가 적당한 시기에 의원님께 전달해 달라고 하셨지요. 제가 그간 오랫동안 떠나있었기 때문에 이제야 이걸 돌려드리게 되네요.”

“사부님의 물건입니까? 사, 사부님께서 왜 직접 주시지 않고요?”

동 의원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더니 남은 만두 두 개를 입 안으로 넣어 재빨리 삼켰다. 그리고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은 뒤,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받아 펼쳤다.

두루마리 위에는 글자는 적었고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사람이 서서 각종 자세를 취하는 그림이었는데, 그 동작의 변화를 세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이건, 무공인가요?”

동선은 위쪽에 그려진 사람의 동작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아니요, 이건 한 도문(道門)에서 내려오는 일종의 양생공(養生功)이예요. 매일 이른 아침에 이 자세들을 따라 하면, 신체가 튼튼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지요. 그런 효과를 보려면 꾸준히 따라 해야 해요.”

동선은 두루마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저, 만약 효과가 있다면 이걸 환자들에게 가르쳐도 되겠습니까?”

계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환자들에게 가르쳐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이 매일 반 시진을 오직 이것을 위해 쓸 수 있을까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프지만 않는다면, 사람들은 의원도 잘 찾아오지 않잖아요.”

“휴우, 그건 그렇군요. 보아하니 이 그림은 스승님께서 저와 같은 의원들을 위해 남기신 것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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