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16화 (416/892)

416화. 온갖 일을 벌이는 사람

위원생은 자신의 찻잔에 차가 담기자마자 참지 못하고 꿀꺽꿀꺽 크게 차를 마셨다. 그러자 향긋한 단맛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그 단맛에는 조금도 느끼한 뒷맛이 없었다. 게다가 따뜻한 기운이 입안에서 돌다가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 온몸을 후끈하게 했다.

다른 이들이 차를 마시는 동안, 거원자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머리 위의 대추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뭇잎 사이로 숨겨진 화조를 잠시 바라보다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후하게 접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가 온 것은 새해가 되기 전에 미리 인사를 드리려는 이유도 있고, 선생께서 옥회산을 방문하기로 하신 일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양명진인도 옆에서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선생님께서 옥회산에 처음 방문하시는 것인 만큼, 저희도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계연은 차를 한입 마신 뒤, 그 깔끔한 단맛을 음미하며 만족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하, 일부러 무슨 준비를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옥회산에 산악 칙봉 부적을 뺏으러 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저 항주로 가는 일에 대해 좀 상의하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오셨으니, 옥회산에는 가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러자 거원자가 놀란 듯한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하하, 농담이시군요.”

“맞습니다, 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요. 옥회산에서는 선생님의 방문을 모두 환영하고 있습니다.”

계연이 옥회산에 오지 않겠다고 하니 구풍이 급한 마음에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중에서 위원생이 가장 거리낌 없이 계연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위무외가 자신이 마시고 남은 차를 건네주는 것을 거절하고는 이렇게 끼어들었다.

“계 선생님, 어떻게 한번 뱉은 말을 이대로 없던 일로 하실 수 있으세요! 옥회산 전체가 선생께서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가 다녀간 후에 선생께서 오지 않겠다고 하시면 전부 저희 탓이 되잖아요! 그럼 저희가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러자 곁에 있던 상의의가 ‘맞아요’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계연은 이렇게 웃으며 무마하고는 거원자를 향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옥회산에서는 언제 출발하실 건가요? 저도 같이 갈 수 있겠지요?”

“선생께서 가신다면 저희가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때가 되면 선생님을 모시러 직접 찾아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거원자는 약간 망설이다가 숨겨진 사정에 관해 설명했다.

“실은 저희 옥회산에서는 이미 두 갑자(甲子) 동안 선유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초대장은 매번 받고 있습니다만, 예전에 자옥(紫玉) 사제가 선유대회에서 도를 논하던 도중 풍파를 조금 일으켜서…… 그 후로는 가지 않았었지요. 이번에 기왕 선생께서도 초청받으셨으니, 저희가 다시 등장하기도 딱 좋은 시기지요! 이것도 인연이랄까요!”

계연은 거원자가 허허 웃는 얼굴을 보며, 속으로 그냥 속아 넘어가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가지 않았다면 옥회산은 필경 이번에도 선유대회에 참석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 자옥 진인이라는 분은 어떤 분인가요? 아직 옥회산에 계시나요? 그분께서 벌이신 일이 적지 않군요!”

계연은 예전에 늙은 용에게서 자옥 진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응굉이 진룡으로 거듭나려 할 때 자옥 진인이 방해한 탓에, 후에 응굉이 옥회산에 이를 갈게 되었었지…….’

“하하, 자옥 사제는 용왕께서 옥회산에 쳐들어온 후로는 다시 옥회산에 돌아온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정말 온갖 일을 다 벌이고 다니는 사람이군요!”

계연의 말은 사실 거원자뿐만 아니라 옥회산의 수사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바였다. 다만 자옥 진인의 수행과 지위가 비교적 높아, 감히 그에 대해 뭐라 말 할 수 있는 자들이 많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옥회산은 교파(敎派)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교(掌敎)와 같이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모인 형태는 아니었다. 각 도인 사이의 관계는 그리 소원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평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그보다 항렬이 높은 이들 중에는 자옥 진인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계 선생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지금은 저도 자옥 사제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계연은 선유대회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화제를 돌렸다.

“옥회산에서는 이미 선유대회에 두 차례나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대회가 어찌 진행되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요?”

계연은 선유대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물론 직접 가서 견문을 넓히고 싶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옥회산의 이 ‘집돌이’들에게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거원자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아는 대로 대답했다.

“선유대회는 일갑자(*一甲子: 60년)마다 한 번씩 거행됩니다. 다음 대회가 주최되기까지의 시간이 꽤 길어서 대회마다 항상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건 거행되는 장소에 따라 조정되는데, 주로 어느 선문(仙門)이 준비하는지를 봐야 하고 따로 정해진 규칙은 없습니다.”

거원자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대체로 비슷합니다. 선유대회라고 해서 모든 선문에서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요. 도를 구하고 득도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그래서 그런 이들이 모여 서로 도를 논하다가, 크흠, 때로는 손이 나가기도 하고…….”

계연은 아무런 말 없이 웃었다. 아무리 수사들이라고 해도 화가 나면 손이 먼저 나가는 것은 시정의 범인(凡人)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선유대회에서는 대단한 신통력을 지닌 이들을 볼 수도 있고, 기이한 일이나 각종 소식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보물이나 진귀한 것들을 구하거나 교환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고요.”

그의 설명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럼, 진선(眞仙) 정도 되는 이도 나타날까요?”

이것은 계연이 무척 궁금해하고 있던 점이었다. 그는 아직 살아있는 진선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동시에 <운중유몽>의 저자를 만나기를 무척 고대하고 있었다.

그간 섬에서의 수행과 불인명왕과의 좌담을 통해, 계연은 <운중유몽>에 적힌 상태에 대해 자세히 연구해 볼 만한 부분을 찾아냈다. 또한 만약 원작자의 허가가 있다면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계연의 말을 들은 거원자는 그가 이렇게 물어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계 선생님 정도 되는 신분이라면, 선유대회에 가더라도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곳에 가는 것도 제대로 터놓고 대화할 만한 존재를 찾고 싶어서이리라.

“계 선생님의 마음은 저도 이해합니다. 그곳에는 수행이 높은 이들이 적지 않지만, 사실 진선의 경계에 이른 고인들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데다, 진선이라는 말 자체도 수선자들에게 있어서는 무척 숭고한 개념이라서요.”

거원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각 선문에서는 자칭 진선이라는 이들이 선유대회에 참석합니다. 어떤 이들은 정말로 그 실력을 들여다볼 수가 없지만, 사실 대부분은, 저와 비슷한 이들이지요. 그러니 진선이라고는 해도 그 실력이 진정 어느 정도일지는 자기 자신 말고는 잘 모릅니다.”

‘진선’이라는 것은 계연의 지난 생에나 있던 컴퓨터 게임 안에 나오는, 머리 위에 달린 레벨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계연이 읽은 <통명책>에서는 삼화귀일(*三華歸一: 수련을 통해 상단전(上丹田: 뇌)에 원정(元精), 원기(元氣), 원신(元神)을 모으는 것)을 이루어 천지인(天地人)이 하나로 합쳐져야 진선이라 불릴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저자의 말이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거원자도 삼화귀일을 이뤘지만, 그도 자신을 진선이라 일컫지 않았다. 계연이 보기에도 거원자에게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명책>에 서술된 내용은 수행계에 ‘진선’에 대해 보편적으로 퍼진 기준일 것이다. 만약 자기 자신을 일컬어 진선이라 칭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그보다 높은 수행을 지닌 인물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거원자의 말뜻은 진정으로 누군가가 진선인지 아닌지는 결국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도(仙道)를 닦는 수행자들과 수행하는 요괴들 사이의 기준은 무척 달랐다.

요괴와 마귀들은 힘(力)을 숭상하고, 선도나 불도를 따르는 이들은 도(道)를 우선시한다. 전자는 좀 더 직관적이고 후자는 무척 심오하여 판단하기가 어렵다. 물론, 스스로가 일정 경지에 오르면 더욱 쉽게 판별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계연은 가만히 이런 생각에 잠겼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알겠어요, 그건 그때 가서 다시 말하죠. 그래서 옥회산에서는 몇 명이나 가나요? 누가 갈지 정했나요?”

계연이 이렇게 묻자 위원생이 계연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 눈짓이며 표정이 마치 계연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는 듯했다.

‘계 선생님, 저 대신 말 좀 해주세요! 저도 가고 싶어요!’

“흠! 커흠…….”

위원생의 행동을 눈치챈 구풍이 일부러 헛기침을 하여 자신의 제자에게 경고를 보냈다. 반면 위무외는 차를 마시는 척하며, 아들에게 잘했다는 듯이 눈짓을 했다.

‘계 선생님 같은 사람을 앞에 두고 이 기회를 붙잡지 않으면 바보지.’

거원자는 계연의 물음에 사실대로 대답했다.

“아직 몇 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몇 명이나 갈지 혹은 누구를 보낼지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게 될 듯합니다. 하하, 실은 계 선생님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말입니다…….”

이렇게 말한 거원자는 위원생과 상의의를 바라보았다. 위원생은 그의 눈빛에 깜짝 놀라 즉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물론, 항상 있는 기회가 아니니 젊은 제자들도 함께 데려갈 예정입니다. 원생과 의의를 데려가도 괜찮을 것 같군요. 옥주봉에서 제가 한번 말씀드려 보지요.”

계연이 그의 말을 듣고 웃었다. 위원생도 가고 싶어 했지만, 계연도 위원생이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옥회산 내부 사정이니만큼 계연이 간섭할 수가 없었다. 거원자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때마침 나서 이렇게 말을 한 것이었다. 거원자가 먼저 그렇게 말해주니 계연도 순조롭게 말을 보탰다.

“원생은 순수하고 귀여운 데다, 의의는 행동거지가 대범하니 둘 다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들이지요. 이번에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겠군요.”

그러자 위원생은 기쁜 낯을 감추지 못했다. 거 진인과 계 선생님께서 이리 말할 정도라면, 자신이 항주로 가는 일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상의의도 내심 기뻐하며 위원생을 쳐다보았다. 상의의는 위원생이 환호하는 마음을 열심히 억누르는 모습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거원자의 나이와 수행 경지라면 옥회산에서 큰 발언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에 계연은 오늘 기회를 빌려 그 외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계연은 거원자, 양명, 그리고 구풍 세 사람과 함께 선유대회의 다른 세부 사항에 관해 물어본 다음 언제 떠나는 게 좋을지, 또 어떻게 가는 게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어린 제자들을 데려가는 만큼, 직접 항주로 향하기보다는 계역을 건너는 비행선 같은 것을 타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탁자 위의 다과는 거의 다 비워졌고, 찻물도 그간 몇 번이나 더 채워졌다. 물론 다시 우려낸 차에는 꿀 결정을 타지 않았다.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연도 대범하게 타 먹을 수가 없었다.

계연은 결국 반년 안에 옥회산에 방문하기로 했던 계획을 뒤로 미뤘다. 몇 년 후, 무술(戊戌)년에 옥회산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원래 옥회산에 가서 이야기하려 했던 것들을 오늘 전부 마쳤으니, 계연으로서는 당연히 옥회산에 다시 갈 필요가 없었다. 그 탓에 거원자를 비롯한 이들은 그야말로 난감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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