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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418화 (418/892)

418화. 기세를 품은 힘

잠시 회상에 잠겼던 계연은 소매에서 황건(黃巾) 역사 부적을 하나 꺼냈다.

그 부적은 손에 닿는 촉감이 무척 거칠었고 모서리에는 타버린 흔적이 있었으며, 색깔도 그을린 것처럼 변해 있었다. 이는 뇌겁에서 첫 번째 벼락이 떨어지던 순간, 그것을 막아선 역사이자 계연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부적이었다.

계연은 이 부적 자체가 아예 망가진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상태가 매우 불안정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계연은 역사를 불러냈다가 그 즉시 역사가 소멸해 버릴까 봐 소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적을 자세히 살펴보던 계연은 가위로 노란 종이를 다시 오려내기 시작했다. 계연은 종이를 자르면서 법력과 자신의 신의(神意)를 그 안에 불어넣었다. 그렇게 금갑 역사의 동작과 위용을 담아낸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종이 인형 하나가 완성되었고, 계연은 왼손에 역사 부적을 놓은 뒤 오른손으로 방금 오려낸 것을 부적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그것이 서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치지직……!

그 순간, 닿은 부분에 전류가 흐르더니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고, 그가 방금 오려낸 종이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이런…… 다시 해봐야지!’

이번에 계연은 아예 처음부터 시간을 많이 들여, 그의 신의가 담긴 324종의 동작을 오려냈다. 그런 후에 하나씩 검게 그을린 역사 부적 위에 갖다 대었다.

자정이 지난 시각, 계연의 침실에는 온통 탄내가 가득했다. 바닥에는 재가 된 종잇조각들이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었고, 금갑 역사 부적은 원래 모습 그대로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계연은 더 이상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눈썹을 찡그린 채 부적을 한참 바라보았다.

방 안에서 시시때때로 번지는 빛과 탄내로 인해 밖에 있던 글자들과 종이학은 모두 계연이 잠이 들지 않고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문가와 창가에 달라붙어 안쪽을 지켜보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에 있던 계연은 그 소리로 인해 방해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속삭임이 조금 피곤하게 느껴졌다.

비록 이 부적이 위력이 가장 약했던 맨 처음 떨어진 벼락을 맞았다고는 하나, 자신이 고쳐낼 수만 있다면 분명 비범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대로 포기하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우웅-!

그때 넝쿨검이 소리를 냈다. 계연이 고개를 들어보니, 선검이 그의 눈앞으로 날아와 탁자 위에 둥둥 떠 있었다.

검명이 울려 퍼지자 밖에 있던 글자들이 모두 놀라 대화를 뚝 그치고는 창가와 문가에 딱 달라붙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것은 계연이지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저 선검이었다.

넝쿨검은 바깥의 소란 때문에 소리를 낸 것이 아니었다. 지금 넝쿨검의 검집을 포함한 검 전체에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계연의 주의가 선검으로 옮겨지자마자, 검집 위의 다른 네 글자가 어두워지더니 ‘영험함을 품은 넝쿨(靈孕靑藤)’ 네 글자가 눈을 찌를 듯이 빛났다.

그러자 계연이 이마를 탁 치더니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계속 막다른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벼락은 목(木)에 속하고, 뇌겁은 비록 조금 다를지 몰라도 그 뜻은 같겠지. 너는 나무의 영험함에 금(金)의 날카로움을 지녔으니, 오행(五行)의 상생과 상극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구나! 그러니 이 상태를 깰 수 있는 건 너뿐이겠지!”

위잉-.

선검이 내는 맑고 청량한 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계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 검지를 넝쿨검에 갖다 댔다.

그러자 ‘딩’하는 맑은소리와 함께 검신(檢身)에 부드러운 흰빛이 퍼져나갔다. 그 빛은 언뜻 부드러워 보였으나, 동시에 시릴 듯한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잿더미 중에서 그나마 형체를 갖추고 있던 것이 그 소리와 함께 완전히 가루로 변해버렸다. 다행히 탁자나 의자 등의 가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마침내 흰빛이 물결이 퍼지듯이 탁자에 닿았을 때, 그 위에 놓인 금갑 역사 부적은 못에 고정된 채로 광풍에 맞닥뜨린 것처럼 파닥파닥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치지직…… 치직……!

부적 위로 여러 갈래의 전류가 흐르기 시작하자, 계연은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계연은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직도 벼락의 힘이 남아 있었다니!”

다음 순간, 계연은 두 눈을 감았다가 살짝 뜨면서 검지를 한 바퀴 돌렸다. 그러자 공중에 떠 있던 넝쿨검이 계연의 손가락을 따라 검집의 날카로운 끝부분의 방향을 금갑 역사 부적 쪽으로 틀었다. 그러자 검신 위로 흐르는 빛이 점점 더 환하게 터져 나왔다.

계연은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부적 위로 흐르는 전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직감적으로 어떤 규칙을 찾아냈다.

그렇게 전류가 팽창하던 찰나, 계연은 들고 있던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동시에 넝쿨검도 삽시간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착(*着: 붙다.).”

쿵!

검집이 탁자의 표면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푸른 빛이 검집 끝부분에서 흘러나오더니, 부적 전체를 훑어내린 뒤 다시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흘러나온 빛 대부분은 다시 넝쿨검으로 돌아갔다.

콰지직……!

그와 동시에 탁자 위의 부적에 변화가 생겼다. 모서리의 탄 부분이 재로 변하더니 조금씩 떨어져 내렸고, 마침내 움푹 파인 사람 형태의 부적이 되었다.

“휴우…….”

그러자 계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겉으로는 전보다 더 심한 손상을 입은 듯이 보였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불안정한 감각은 사라진 상태였다.

“이제 다시 해보자!”

계연은 다시 자신감에 차서 탁자 앞에 앉아 가위와 노란 종이를 들었다. 넝쿨검은 천천히 계연의 옆으로 날아가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동이 터올 무렵, 계연의 침실 바닥에는 오려낸 종이와 잿가루가 더욱 늘어나 있었다. 그러나 계연은 조금도 피곤한 기색 없이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이 순간 계연의 손에는 완벽한 모습의 금갑 역사 부적이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적은 전처럼 노란 종이의 색을 띠지 않았고, 좀 더 어두워진 금괴 같은 색깔을 띠었다. 느껴지는 중량감도 전보다 조금 무거워진 듯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보통의 종이 한 장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드디어 완성했군!”

계연의 방 안에서 시원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작은 글자들도 마침내 어르신이 어떤 일을 완성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와 동시에 긴장되어 있던 분위기가 단번에 부드러워졌다.

꼬끼오-!

이때, 천우방에 사는 닭들이 연달아 홰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차 영안현의 모든 닭이 일어나 함께 울어댔다.

어르신이 깨어있고 기분도 좋은 걸 알게 된 글자들은 횃소리를 들은 다음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까오오-!”

“꼬오옥……!”

“아하하하, 내가 제일 잘하지!”

“내가 더 비슷해!”

“아오오오-!”

“내가 더 잘해!”

계연은 작은 글자들이 서로 닭이 홰치는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을 들었다. 글자들은 어떤 일이든 간에 이를 서로 말싸움을 하거나 즐거움을 찾는 원천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하, 저놈들이야말로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구나.”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저 작은 글자들은 더욱 선도(仙道)의 뜻에 부합했다.

계연은 이렇게 웃으며 부적을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끼익 소리와 함께 계연이 방문을 열고 천천히 바깥으로 나왔다. 작은 글자들은 그의 주위로 모여들면서 계연이 들고 있는 부적으로 시선을 던졌다.

“종이 인형인가?”

“역사(力士) 부적이야!”

“어르신께서 어젯밤 내내 이걸 만드신 거야?”

“이 부적도 얼굴이 붉은색이겠지?”

“또 누구 피부가 빨갛지?”

“원숭이 엉덩이!”

“하하하하…….”

계연은 주변의 글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무시한 채, 돌 탁자 곁에 서서 역사 부적을 앞쪽으로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자 한 줄기 금빛과 함께 우람한 체격에 금갑(金甲)을 입고 황건(黃巾)을 두른 채 붉은 피부를 가진 신장(神將)이 뜰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는 계연을 향해 두 손으로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는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주인님.”

역사는 조금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 역사의 거대한 몸에 걸쳐진 금빛 갑옷은 찬란한 빛을 내뿜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역사의 위압감은 대단했다. 금갑 역사를 놀리느라 저들끼리 바쁘던 글자들이 숨을 죽일 정도였다. 글자들은 조금씩 역사 주위로 모여들었다.

주위로 모여든 작은 글자들이 쉬지 않고 떠들어대도 역사의 시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계연이 대답하자 금갑 역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두 팔을 양쪽에 늘어뜨린 채 가만히 계연을 바라보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안하무인처럼 보이는 태도는 예전 그대로였다.

금갑 역사는 외적으로 볼 때 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지만, 계연만은 이 역사가 전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실망하지 않았다.

작은 글자들은 호기심에 차서 금갑 역사의 주위를 둘러쌌다. 비록 이 부적의 존재에 대해 일찍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마다 이 역사의 힘이 어느 정도일지 토론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계연은 이미 금갑 역사에게 명령을 내린 뒤였다. 그가 마음으로 명령을 떠올리는 순간 미동도 없이 서 있던 역사가 이미 동작을 시작하고 있었다.

“모두 비키렴. 하마터면 휩쓸릴라.”

계연이 이렇게 경고하자 글자들이 주위로 넓게 퍼졌다.

금갑 역사는 몸을 약간 뒤로 젖히며 왼쪽 다리를 살짝 구부린 채 앞으로 내밀었다. 왼팔은 앞으로 내밀어 막고, 오른팔은 주먹을 쥔 채 뒤로 뺀 모습이었다. 갑옷에 달린 앞뒤의 황색 천이 지면에 닿으며, 역사의 양발이 닿은 지면에는 알아차리기 힘든 특이한 기운이 모여들고 있었다.

금갑 역사가 몸을 좀 더 뒤로 젖히자, 마치 역사의 온몸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이 된 것 같았다. 이런 변화는 주위의 기운에도 영향을 미쳐 긴장감을 내뿜었다. 그러자 작은 글자들이 사방으로 도망쳤다. 글자들은 나뭇가지 위나 대들보 뒤쪽 등에 숨어 멀리서 역사를 바라보았다.

“허엇-!”

금갑 역사는 낮고 중후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는 동시에 위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주먹은 약간 위쪽의 상공을 향해 날아갔다.

펑……!

동시에 지면이 살짝 진동했다.

역사의 주먹과 닿은 공기 속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계연에게는 주먹이 내리꽂힌 곳의 기류가 폭발하듯이 터져나가는 것이 또렷한 색채로 보였다.

그렇게 모든 게 정지된 것처럼 보이던 그 순간이었다.

휘잉-!

뒤틀린 기류가 마치 파도처럼 위쪽과 주위를 향해 퍼져나갔다.

솨아아아…… 솨아아……!

그러자 대추나무 가지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지면에서는 흙먼지가 일었다. 계연의 침실 바닥에 있던 잿가루들도 전부 공기 속으로 흩날렸다. 마치 작은 회오리바람이 거안소각으로 몰아쳐, 주위를 전부 휩쓸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매서운 바람이 잠잠해지자 펄럭이던 계연의 옷소매도 다시 잦아들었다. 금갑 역사는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와 가만히 섰다.

계연은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잘 정리한 후, 고개를 들어 금갑 역사가 주먹을 꽂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여전히 기류가 불안정했는데, 좀 더 멀리 떨어진 상공에서는 하얀 기류가 꿈틀대더니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오직 힘뿐이었는데, 오늘 한번 시험해보니 힘도 세졌을 뿐만 아니라 기세도 생겼구나! 잘되었군!”

계연은 금갑 역사의 변화에 꽤 만족한 눈치였다. 이런 위력과 기세는 역사의 체격이 크고 생김새가 무섭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그가 펼친 기예에 녹아들어 있는 것으로, 순수한 힘보다 더욱 갖추기 힘든 것이었다.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작은 글자들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슬슬 돌아왔다.

“어르신께서 어젯밤 내내 저 역사를 만들어내신 거야?”

“내가 보기엔 그래!”

“쟤 하마터면 대추나무 가지를 부러뜨릴 뻔했어.”

“그러니까 말이야. 조심성 없이!”

“어쨌든 안 부러뜨렸잖아?”

“그래도 무척 가까웠다고!”

“온몸이 전부 저렇게 붉을까? 엉덩이는 어떨까?”

“보아하니 숨을 안 쉬는 것 같은데?”

“아니야, 숨은 쉬고 있어. 흡수하는 게 영기일 뿐이지!”

“아, 그럼 호흡이 엄청 느리네!”

“키가 엄청나게 커.”

“엉덩이가 정말로 붉을까?”

“‘기(奇)’, 너 엉덩이 얘기 좀 그만해!”

“할 거야!”

“하지 마!”

“할 거야!”

“우아아아아!”

“아아아악!”

…….

작은 글자들은 금갑 역사를 둘러싸고 각종 논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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