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25화 (425/892)

425화. 비슷한 말

윤중은 더욱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계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대체 누구인가요?”

그러자 계연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뿐만 아니라 너도 만나봤는걸.”

“저도 만나봤다고요?”

윤중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네 아버지거든. 대정국의 상서령(尙書令)인 윤 대인 말이야. 네 아버지는 호연정기를 가지고 있어, 그 빛을 사방으로 내뿜기 때문에 삿된 것들이 가까이 오지 못한단다. 소인배들은 한번 보기만 해도 구분해낼 수 있을 정도지. 네 아버지야말로 이 대정국의 정해신침(定海神針: <서유기>에 등장하는 신물로, 바다의 깊이를 잴 때 사용하던 신령한 자(尺).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중요한 일을 해결하는 사람을 일컬음)이지!”

윤중은 계연의 진지한 얼굴을 보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그렇게 대단한 분이었다니……. 참, 계 선생님. 정해신침이 무엇인가요? 무척 대단한 물건처럼 들리네요!”

만약 다른 수선자나 귀신들이 이렇게 물었다면 계연은 허허 웃으며 얼버무릴 것이었다. 하지만 윤중이 물었으니 계연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해주었다.

“정해신침이란 선가(仙家)에서 전해지는 엄청난 보물이란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해일과 파도를 진정시키는데, 그 크기만 해도…….”

정해신침의 이야기는 귀신 이야기보다 더욱 윤중의 흥미를 끌었고, 윤중은 온 신경을 집중한 채 계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원래는 어제처럼 윤청의 방으로 건너가서 자려던 윤중은 생각을 바꿔 등불을 켜고서 오늘 얻은 <자진>을 읽었다.

윤중은 이 책이 신비한 이야기가 적힌 소설보다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각종 진법의 조합은 쌍방의 미묘한 상태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문자의 방향이나 글자의 조합, 글자 사이의 미묘한 거리며 그들이 조합한 형상들에서 어떤 것은 불길처럼 공격성이 강했고, 어떤 것은 태산처럼 굳건한 것이 느껴졌다.

* * *

대정국에서 만리(萬里)는 넘게 떨어진 북쪽, 연량국 동추부의 대량사는 새해를 맞아 다른 날보다 더욱 북적였다.

대량사의 존재로 인해, 동추부 백성들은 새해처럼 중요한 날이 되면 모두 대량사에 가서 향을 올리고 복을 기원하는 것이 풍습처럼 되어있었다. 또한 법사(法事)를 열어야 할 일이 생기면 대량사의 고승(高僧)들을 먼저 청했다.

대량사 안팎은 인파로 북적였기 때문에, 승려들은 언제나처럼 곳곳에 배치되어 질서를 유지하는 동시에 길 잃은 참배객들을 도와주었다. 또한 사찰과 깊은 관계를 쌓은 노점상들에게 사찰 내 널찍한 공간을 내어주어, 참배객들이 배가 고프면 아무 때나 가서 간식거리를 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날은 원래 연량국 도성으로 이미 돌아갔던 철풍이 다시 한번 대량사를 찾은 날이었다. 그는 새해를 맞아 자기 모친을 데리고 대량사에 향을 올리러 방문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권세 있는 관료였던 그는 가복(家僕)들이 열어준 길을 따르는 마차 안에 타고 있었다. 철풍은 마차에 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나이 든 모친을 함께 모시고 온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쉬쉬…….”

“노부인, 둘째 어르신, 대량사에 도착했습니다.”

굳이 마부의 말이 아니더라도, 바깥의 혼잡한 소음과 창밖으로 보이는 인파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철풍은 모친을 부축하기 위해 재빨리 마차에서 내려섰다.

“어머니, 조심하세요. 천천히 내려오세요! 어서 발 받침대를 가져오너라!”

마차 안에 있던 노부인은 계집종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마차에서 모습을 드러낸 다음 철풍을 향해 일갈했다.

“네 모친이 늙어 걸을 수 없는 지경인 것도 아니고, 곁에 환환(環環)도 있는데 뭐하러 수선을 떠느냐?”

“예예!”

철풍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모친을 부축하기 위해 손을 뻗었고, 그 모친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려섰다. 주위에 있던 참배객들은 또 어느 대갓집인가 하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대량사에 별 관심도 보이지 않더니, 최근에는 도성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온갖 귀족이며 관리들이 하나같이 대량사로 몰려오더군요. 어머니도 그렇고요.”

“왜, 내가 오면 안 되느냐? 나도 부처를 모시는 사람이다!”

그러자 철풍이 재빨리 실수를 수습했다.

“예, 그렇죠. 어머니는 무척 불심(佛心)이 깊으시니까요. 제가 이미 대량사에 말을 해놨으니, 불인명왕전에 향을 올린 후에 내원에 있는 한 승당(僧堂)으로 가면 됩니다.”

철풍은 주위의 하인들을 손짓해 물린 다음, 직접 모친을 모시고 그녀의 계집종과 함께 대량사 정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사미승(*沙彌僧: 불도를 닦는 어린 남자 승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걸음을 떼기가 힘들 정도로 인파가 북적였지만, 그들은 향을 올리러 온 것인데다 감히 대량사 같은 곳에서 하인을 부려 앞길을 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철풍의 귀에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연량국 도성의 귀족들은 이전에는 대량사에 그다지 찾아오지 않았다는 뜻이오?”

철풍이 눈썹을 찡그리며 그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둥근 목깃의 장삼을 받쳐입고, 겉에는 대금(*對襟: 중국식 윗옷의 두 섶이 겹치지 않고 가운데에서 단추로 채우게 되어 있는 것) 양식의 도포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철풍이 자신을 바라보자 살짝 양손을 서로 맞잡고 인사했다.

옷차림이 단정하고 관리를 잘했는지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았으며 눈빛이 또렷한 걸로 보아, 철풍은 상대방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즉시 그를 향해 양손을 서로 맞잡고 인사했다.

“예, 실은 근래에 도성이든 동추부든 대량사 고승들의 불법(佛法)이 대단하다는 소식이 쫙 퍼졌습니다. 심지어 지금의 황제 폐하께서도 대량사로 예불을 드리러 올 생각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나저나 귀하는 누구십니까?”

그러자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 성은 응씨 이고, 친우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김에 대량사를 구경하러 와 보았소.”

이렇게 말한 늙은 용은 먼저 걸어 나가 대량사의 계단에 올랐다.

그가 내뿜는 기세며 풍모가 심상치 않아, 철풍은 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모친을 이끌고 사찰로 들어갔다.

평소에도 참배객들로 붐볐던 이곳은 오늘 그보다 몇 배는 더 북적였다. 그래서 철풍의 노모(老母)는 대량사 승려들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한참 후에야 불인명왕전이 있는 광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곳은 몰린 인파가 그다지 많지 않은 데다, 많은 승려가 나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그리 붐비지 않았다.

대량사처럼 권세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에서 모친을 모시려니 철풍은 금세 온 얼굴에 땀이 흘렀다. 그는 잠시 후 내원으로 들어가면 좀 나아지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 불인명왕께는 반드시 향을 올려야 해요. 이건 장공주께서 말씀하신 거예요!”

“내가 놀러 온 것도 아니고 당연히 향을 올려야지! 환환, 우리도 들어가자!”

“예!”

환환이라는 이름의 계집종이 노부인을 부축하여 불인명왕전의 계단에 올랐다. 그동안 몇 명이나 되는 승려들이 와서 그들을 살펴보고 갔다. 권세 있는 자이든 귀한 신분의 사람이든 백성과 마찬가지로 향을 올려야 한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백성들과는 다른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철풍은 한숨을 돌리며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가 막 모친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그는 조금 전의 그 노선생을 발견했다. 응굉은 불인명왕전 바깥의 계단 앞에 서 있었는데, 참배객들이 그의 곁을 빈번히 지나치는데도 누구도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 가만히 서서 담담한 눈길로 안쪽의 금신대불(*金身大佛: 금으로 만든 불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풍은 그에게 호기심이 생겨 몇 발자국 다가가 물었다.

“선생께서도 불인명왕전에 오신 거지요? 안쪽은 그다지 붐비지 않으니 함께 들어가 향을 올리시겠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고개를 돌려 철풍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향을 올리라고? 하하, 되었소!”

말을 마친 노인은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간 다음, 서쪽을 향해 걸어갔다.

철풍은 미간을 찡그린 채 가만히 서서 노인이 했던 말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누군가 저 노인과 비슷한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철풍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마침내 머리에 묵옥 비녀를 꽂고 있던 고아한 선생을 기억해냈다.

그러다가 다시 노선생이 사라진 방향을 보니 그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종적도 찾을 수 없었다. 대량사는 참배객들로 항시 붐볐기 때문에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풍아, 거기서 멍하니 뭐하고 섰느냐? 어서 들어오지 않고!”

모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철풍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가겠다고 대답한 후 불인명왕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의 장엄한 금빛 명왕불상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실내에 켜진 장명등 때문에 몽롱한 빛에 휩싸여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에 절로 경외심이 생길 정도였다.

철풍과 그의 모친, 그녀의 시녀 환환은 다른 모든 참배객처럼 불인명왕상에 향을 올리고 절한 뒤 공덕함에 넉넉한 헌금을 넣었다.

* * *

대량사의 내원은 제한된 참배객들에게 개방되었는데, 그것도 오늘 같은 날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늙은 용은 내원 입구에 서 있는 승려들의 코앞을 유유자적하게 지나갔다. 승려들은 그가 지나가는데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어느 정도 불법(佛法)의 경지에 이른 승려들조차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늙은 용은 이미 가야 할 곳을 아는 것처럼, 내원의 문을 넘어 감각에 의존해 내원 깊은 곳으로 향했다. 곧이어 그는 짙푸른 그늘을 드리운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오, 바로 저기군!”

그는 웃으며 이렇게 혼잣말을 한 다음, 나무가 자리한 뜰로 걸어갔다. 그곳으로 다가가는 도중, 금제(禁制)나 진법 같은 것이 걸려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수준이 무척 조잡한 편이어서 진룡인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늙은 용이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금제를 지나는 동안, 심지어 작은 파문조차 일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대량사에서 금지구역이라 불리는 곳으로 들어갔다.

나무 아래에는 승려 세 명이 앉아 있었는데, 겉으로만 보면 둘은 나이가 있는 편이었고 다른 하나는 젊은이였다. 그러나 그 젊은이도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그리 젊은 편은 아니었다.

그 세 사람은 바로 혜동대사와 사찰의 노승 둘이었다. 이때 그들은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한 채 조용히 수행하고 있었다.

대량사의 고승들은 이 나무 주위에 영기가 충만하며, 그 아래에서 수행을 닦으면 불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 중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자들은 운이 좋은 경우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래서 승려들은 매일 이곳으로 수행하러 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행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랐다. 그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심마(心魔)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대신 이곳에서 수행하는 이들은 다른 사람이 깨워줄 때까지 시간을 잊곤 했기 때문이다. 전에 대량사의 방장도 이곳에 2주가 넘게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혜동대사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그를 깨우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굶어 죽을 뻔했다.

그때 대량사 방장은 절인 반찬을 곁들여 솥의 반 정도나 되는 양의 죽을 비운 후에 규칙을 정했다. 바로 금지구역에서 가서 수행하기 전에는 반드시 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이 되면 누군가 자신을 깨우러 오도록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수행이란 것은 때로 무척 유심(*唯心: 오직 정신만이 존재한다는 불교의 사상)적인 면이 있었다. 이는 물질적인 것이 필요치 않다는 종류의 유심론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이 어느 단계에 수행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다른 이들이 멋대로 끼어들면, 수행의 중요한 관문에서 뚝 끊기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적당한 수련 시간을 정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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