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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426화 (426/892)

426화. 신비한 안개가 다시 나타나다

늙은 용은 세 승려가 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있는 걸 보고, 그들을 깨우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 나무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는 나무 아래 계연과 불인노승이 앉았던 위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심오한 도력이 서려 있었다.

이 세 승려는 그 자리를 무척 존중하는 것처럼, 나무 아래에서 수행하면서도 방석을 이쪽으로 끌고 오지 않았다. 늙은 용은 그것이 일종의 경의를 표하는 행동임을 알았다. 또한 무척 똑똑한 판단이기도 했다. 도행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저곳에 앉았다간 무척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一刻: 15분) 정도가 지난 후에도 세 승려는 가만히 가부좌를 튼 상태 그대로였고, 늙은 용은 이 금지구역 곳곳을 자세히 살핀 뒤였다. 처음에 응굉은 그저 흥미가 일어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는데, 지금 그는 미간을 찡그린 채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연과 불인노승의 좌담은 늙은 용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오했다. ‘얻은 것이 많아 무척 즐거웠다’던 계연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늙은 용은 나무 아래로 돌아가 세운 지 얼마 안 된 듯이 보이는 비석을 바라보았다.

비석 위에 새겨진 보제수하(*菩提樹下: ‘보리수 아래’라는 뜻)라는 네 글자에는 금칠마저 되어 있었다.

“보리수 아래라. 대량사 승려들이 이런 정취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군!”

늙은 용도 이 나무가 실은 뽕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계연과 불인노승 같은 고인들이 오랫동안 좌담을 나눈 곳인데, 고작 나무 이름 하나 바꾸는 것이 뭐 대수인가 싶었다.

그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암…….”

그가 내뱉은 미세한 숨결에는 농후한 물기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늙은 용의 입에서 내뿜어지자마자 안개로 변하더니 주위로 퍼지기 시작했고, 점차 그 범위를 늘려나갔다.

일부러 대량사까지 찾아온 만큼, 늙은 용은 이렇게 겉핥기식으로만 구경하고 갈 생각은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고, 그러려면 특수한 수단을 발휘해야 했다.

안개는 퍼질수록 점점 그 속도가 빨라졌다. 그것은 단순히 주위로 퍼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기상 변화를 동반했다. 곧이어 동추부 부성 밖의 서쪽 전체가 안개로 뒤덮였다.

수십 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갑자기 생겨난 안개는 어느새 동추부 부성 전체를 뒤덮었다.

안개는 그리 짙진 않았지만, 주위가 삽시간에 흐릿해지자 사람들은 이 갑작스레 생겨난 안개를 무척 신기하게 느꼈다.

부성 안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대량사 주변의 백성들은 새해를 맞이해 생겨난 안개가 하늘이 내린 감로(*甘露: 단비, 희우(喜雨))라며 흥분해 떠들었다.

백성들과 사찰의 참배객 대부분은 그저 놀랍고 신기하게 여길 따름이었지만, 감각이 예민한 자들은 안개의 영향을 받았다.

대량사 금지구역의 나무 아래에서 늙은 용은 계연과 불인노승이 다시 한번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이 하늘을 가리키자, 주위의 안개가 넘실대는 바다로 변하더니 높이 솟은 해일이 일었다.

까악-!

귀를 찢을 듯한 울음소리가 파도 사이로 울려 퍼졌다.

촤아앗……!

그때 바닷물이 폭발하듯 갈라지더니, 거대한 물고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것은 공중에서 몸을 뒤틀며 물기를 털어내더니 구름과 바람을 움직였다.

쿠구궁……!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거대한 물고기는 비바람과 벼락 사이에서 거대한 붕새(*鵬: 크기가 수천 리에 달하며 한 번에 구만리를 난다는 상상의 새)로 변했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 갈 때는 물을 치는 것이 삼천 리이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며 오르기를 구만리이고……(鵬之徒于南冥也, 水擊三千里, 扶搖而直上者九萬里: 장자(莊子)가 쓴 <소요유(逍遙遊)>의 한 구절).”

계연의 목소리가 파도치는 소리를 뒤덮고 울려 퍼졌다.

“선재(善哉), 천지는 무량(*無量: 헤아릴 수 없음)하고 천도(*天道: 천지자연의 도리)도 무량하군요. 그리고 나의 힘 역시 무량하니…….”

노인의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금빛 손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붕새 위로 떠 올랐다. 그가 손으로 붕새를 잡으려는 건지 만지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쿠웅!

그때 금빛이 온 하늘로 퍼지더니, 안개 속 세계가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붕새는 곧바로 하늘로 승천해 올랐다.

늙은 용은 전율을 느끼며 안개 속에서 생겨난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았다.

‘계연과 불인노승 그 두 사람이 이토록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니!’

이때 나무 아래의 세 승려는 깊은 수행에 든 와중에도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눈썹을 찡그렸다.

동시에 대량사 내부에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이들이 연달아 특이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중 한 남자아이는 한 손으로 반 정도 먹은 탕후루(*糖葫蘆: 각종 열매를 꼬치에 꿰어, 사탕물을 묻혀 굳힌 과자)를 쥐고서, 다른 한 손으로는 모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가 막 한입 더 입에 넣으려 할 때, 손에 쥔 막대기가 초록빛으로 물들더니 그 위로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봉오리가 맺히더니 곧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어! 엄마! 탕후루에 꽃이 피었어요!”

아이가 흥분한 얼굴로 모친을 불러세우자, 여인은 아이를 한번 쓱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엄마!”

아이는 모친의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재촉하다 결국 여인에게 꿀밤을 한 대 얻어맞고 이마를 이리저리 문질렀다. 그러다 다시 탕후루를 보니, 그 위에는 꽃도 풀잎도 없었다.

또 한 여인은 마음에 둔 정인이 무탈하기를 빌고자 사찰을 찾아왔는데, 그 김에 그가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점괘가 든 통을 흔들어 결과를 뽑았는데, 그 안에서 떨어진 것은 뜻밖의 붉은 홍실이었다.

표표히 흔들리는 홍실은 무척 아름다웠다. 그것은 여인의 곁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도 하고 그녀의 몸을 감싸기도 했다. 그 신기한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던 여인이 멍하니 손을 뻗었고, 그녀의 손이 홍실에 닿는 순간 모든 환상이 사라졌다.

뒤이어 여인이 고개를 숙여 땅에 떨어진 죽첨(竹籤)을 보니, 승려 하나가 그것을 대신 주워들며 말했다.

“선재! 시주께서 좋은 결과를 얻으셨군요!”

철풍은 모친이 안에서 한 승려와 이야기 나누는 걸 잠시 지켜보다가 홀로 불인명왕정을 나섰다. 이곳은 지세가 좀 더 높았기 때문에 사방을 관망할 수 있었는데, 이때는 대량사 전체가 몽롱한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이상하네, 이 시간에 갑자기 웬 안개가 꼈지?”

그 순간 철풍이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서쪽 하늘에 넓은 흰색 소매와 함께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그 손은 손가락 사이에 반짝이는 묵옥 비녀를 쥐고 있었다.

그 손이 비녀를 쥔 채 허공에 대고 한번 슥 긋자, 하늘과 땅을 잇는 듯한 거대한 강줄기가 나타났다. 강물에는 파도가 높이 일고 있었고, 그 위로 안개가 몽롱하게 덮여 있었다.

뒤이어 또 다른 거대한 금빛 손이 나타나더니, 강물을 떠서 사방에 흩뿌렸다. 그 모습은 곧 거대한 배로 바뀌었고, 배에 올린 돛 위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도(渡: 건너다)’ 자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철풍이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안개는 그저 보통의 안개였을 뿐 무슨 강물이나 커다란 손, 배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다시 나타난 것을 알아차린 대량사 고승들은 이 안개가 무척 기이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스스로의 감각이나 사찰에 걸어놓은 갖가지 수단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안개는 대량사뿐만이 아니라 동추부 부성까지 전부 뒤덮고 있었다. 그런 것을 보니 이 안개는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 보였다.

그러다가 몇몇 고승들이 안개 속에서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자, 그들은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하지만 사찰 안팎의 참배객들은 여전히 질서 있게 움직이며 아무런 소동도 일지 않았다.

게다가 안개 속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은 그저 현상일 뿐으로, 전처럼 어지러움에 쓰러지거나 하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대량사 승려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찰을 닫지 않기로 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이들은 나무 아래에서 수행하던 세 명의 승려였다. 다만 그들은 특수한 곳에 앉아 선정(*禪定: 참선하여 삼매경(三昧境: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에 든 상태)에 든 상태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마치 계연과 불인명왕이 다시 도를 논하던 장소로 돌아온 듯한 환각을 보았다. 그러나 이는 그들에게 있어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 경험으로 얼마나 많은 배움을 얻을지는 개인의 수행과 능력에 달려있었다.

안개가 나타난 지 일각(一刻: 15분)쯤 되었을 때, 대량사 방장은 한 노승과 함께 다급히 금지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혜동대사를 비롯한 세 사람이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때로 눈썹을 찡그리거나 땀을 흘리는 것을 발견했다.

“방장 대사, 저들을 깨울까요?”

노승이 묻자, 대량사 방장이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깨우지 마시오. 저들에게 있어 나쁜 일은 아닐 테니. 우리는 때를 놓쳐 아쉽게 되었지만, 저들은 이번 기연을 얻을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군!”

그들은 세 사람이 앉은 금지구역 주위를 가만히 거닐며 지켜보다가, 자신들도 이 기회를 빌려 그 당시의 상황을 조금 엿보기로 했다. 도행이 충분한 경지에 이르지 않았던 두 사람은 그때 비록 이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안개 속의 기이한 환상을 지켜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오전부터 끼기 시작한 안개는 동추부 일대의 맑은 하늘을 우중충하게 뒤바꾸었다. 안개는 밤이 되어도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짙어졌다.

밤에는 태양의 힘이 약해져서일 수도 있고, 안개가 더욱 짙게 끼어서일 수도 있었지만, 대량사 승려들은 해가 진 후로 기이한 현상이 더욱 빈번히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어떤 승려들은 환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이에 그들은 참배객들이 없는 시각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낮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면 커다란 혼란을 빚었을 것이다.

* * *

둘째 날 아침, 아침종을 담당한 노승이 옷을 갖춰 입고 문을 여니 바깥은 여전히 짙은 안개가 끼어있었다.

“불인명왕이시여! 안개가 아직도 끼어있다니!”

노승은 이 현상을 무척 기이하게 여겼지만, 할 일은 해야 했기 때문에 곧이어 사찰의 종루(鍾樓)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댕- 댕- 댕-!

많은 승려가 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지만, 바깥의 안개는 아직도 흩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다행히 해가 떠오른 후부터 안개가 조금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7일째 되는 날, 대량사 방장과 몇몇 승려들이 다급히 금지구역 안으로 들어와 혜동대사를 비롯한 세 사람의 등 뒤로 자신의 영기를 주입했다. 오늘은 그들이 수행에 들기 전에 말한 날짜였기 때문에 깨우러 온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제때 깨우지 않으면 이들의 몸이 버티지 못할지도 몰랐다.

혜동대사는 머리를 흔들고 태양혈을 문지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여전히 혼곤한 상태로 주위를 둘러본 그가 놀란 듯이 이렇게 물었다.

“방장 대사, 왜 갑자기 안개가 낀 건가요?”

방장은 혜동대사를 비롯한 다른 두 사람에게 따뜻한 물을 건네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약 7일 전 오전부터 갑자기 안개가 나타나더니, 지금은 동추부 부성을 비롯한 주변을 전부 뒤덮은 상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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