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화. 셋째 공자의 방문
윤재성은 가면을 보자마자 그 위로 붉은빛이 흐르는 걸 발견했고, 호운 특유의 냄새가 미약하게 가면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호연정기를 가진 윤재성에게 이런 물건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는 이 가면이 특별하다는 건 알았으므로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오, 그것참 예쁜 가면이구나. 호운이 만든 거니? 대단하구나. 장인들도 이처럼 솜씨가 좋진 않을 거야!”
“맞아요, 정말 예뻐요. 나도 갖고 싶다…….”
윤중의 말에서는 부러워하는 기색이 뚝뚝 묻어나왔다. 윤청은 이미 이립(*而立: 30세를 이르는 말)의 나이였는데도, 가면을 손에서 떼놓지 못하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가면의 모든 부분은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그 위의 털은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흔들렸으며, 만지면 부드러웠다.
오늘 너무나 많은 칭찬을 받은 호운의 털은 전보다 좀 더 붉어진 상태였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뒷발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윤청에게 말했다.
“청아, 이건 그냥 가면이 아니라 숨겨진 능력이 있어. 계 선생님도 칭찬해주실 정도였어. 내가 어떻게 쓰는지 알려줄게!”
호운은 이 가면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무얼 조심해야 하는지, 얼마나 오래 효과가 지속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비슷하게 구현해내는지 등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어때, 꽤 복잡하지? 그러니 내가 앞으로 며칠 동안 자세히 가르쳐 줄게. 안 그러면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내가 만든 가면을 사용하지도 못할 테니까!”
호운이 이렇게 말하자 윤청이 시험 삼아 가면을 얼굴에 썼다.
“상대를 구체적으로 떠올려야 한다고 했지? 그 사람의 분위기부터 외모며 성격까지 말이야.”
가면을 쓰고 몇 초가 지나자, 윤청의 몸 위로 은은한 붉은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후에 마치 수면 위에 파문이 일듯, 그의 모습이 모호해졌다가 다른 이의 형상으로 변하면서 원래대로 뚜렷해졌다.
그러자 윤중이 깜짝 놀라 커다랗게 눈을 뜨며 소리쳤다.
“유(兪), 유 숙부님?”
원래 그의 옆에 서 있었던 형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경기부 부윤인 유해산이 서 있었다. 다만 그의 옷차림만은 윤청이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어?”
호운도 윤중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단번에 성공하다니?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도 많이 있었는데!’
한쪽에 서 있던 윤재성도 윤청의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가 보기에도 겉으로는 유해산의 모습이 틀림없었지만, 대신 윤청에게서 ‘호운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의 눈에는 은은하게 비치는 붉은 요광(妖光)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더라도 이 가면은 무척 신기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윤 훈장님, 아이들끼리 놀라고 하고 저와 함께 대국 한 판 두시겠습니까?”
윤재성이 웃으며 뜰 안에 놓인 탁자 옆에 앉은 계연에게 걸어갔다.
“하하하,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돌 탁자 위의 바둑판에는 계연이 홀로 두고 남은 대국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윤재성은 이 대국을 이미 여러 번 보았으므로, 매번 미세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또 이걸 두고 계셨습니까?”
“네, 안 되겠네요. 이건 그만두죠.”
계연이 웃으며 바둑돌을 다시 하나씩 주워 담았다. 윤재성은 자리에 앉아 계연과 다른 색의 바둑돌을 집어 들었다.
* * *
대략 반 시진(1시간)이 흐른 뒤, 윤재성의 저택이 자리한 영안가에 호위 한 무리가 질서정연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 뒤로는 화려한 마차 두 대가 행진하고 있었다. 마차 옆으로는 복식이며 외모가 심상치 않은 호위와 시종들이 따랐다.
그들이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저택 앞의 시위들이 이를 보고는 분명 누군가 대단한 고관(高官)이 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위들의 차림새에서는 특징을 찾아볼 수 없었고, 마차에도 아무런 표식이 없었으므로 도대체 누가 온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어느 대인께서 방문해 주셨는지요? 제가 곧바로 나리께 고하겠습니다!”
문지기가 계단에서 서둘러 내려와 대열의 앞에 서서 공수하며 물었다.
그러자 조금 멀어진 곳에 세워진 첫 번째 마차에서 두꺼운 융단으로 만든 발이 젖혀지더니 높은 모자를 쓰고 먹색 옷을 입은 사람이 내렸다. 태감의 모습을 발견한 재상부의 시위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태감이 왔다는 것은 마차 안에 있는 사람이 황궁에서 왔다는 것이거나, 아니면 최소 황족이라는 소리였다.
태감은 허리를 살짝 굽힌 채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환관 특유의 약간 높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부디 윤 공께 셋째 공자께서 부인과 따님을 데리고 방문했다고 말씀드리게. 누구신지 바로 알 것이네.”
‘셋째 공자?’
문을 지키던 시위들은 살짝 눈썹을 찡그렸으나, 미적대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지금 바로 나리께 전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수고가 많네.”
태감은 말을 마친 뒤 다시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태감에게 대답한 시위가 날 듯이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얼마 후, 진아원이 발걸음을 서둘러 후원에 자리한 객사로 들어왔다. 그는 윤청, 윤중과 대화를 나누는 붉은 여우를 잠시 바라보다가 바둑을 두는 윤재성과 계연에게 걸어갔다.
진아원은 이곳 뜰에서는 아무리 급한 일이라 해도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공수한 뒤 허리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계 선생님. 한참 바둑 두시는 와중에 방해하여 송구합니다.”
“무슨 일인가?”
윤재성이 손에 든 바둑돌을 내려놓은 뒤 자신의 충복을 향해 물었다.
“어르신께 아룁니다. 저택 밖에 마차를 포함한 행렬이 도착했는데, 그중에 태감이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셋째 공자가 부인과 딸을 데리고 방문했다 하였답니다.”
그러자 윤재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물었다.
“셋째 공자?”
“아버지, 황상께서 오신 겁니다!”
윤청이 이쪽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가 확실하다는 듯 귀띔했다.
“아, 그렇지. 황상께서 오신 게로구나! 계 선생님, 이번 대국은 승부를 나눌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훈장님도 참, 승부를 나눌 수가 없겠다고요? 20수도 안 되어 제가 이길 텐데요.”
“아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도 따로 생각해둔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황상께서 오셨으니 저는 이만 맞이하러 가봐야겠군요. 다음에 다시 두지요! 다음에!”
윤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진아원의 뒤를 따라갔다. 황제가 친히 납시었으니 집안사람 모두가 그를 영접해야 했기 때문에, 윤청과 윤중도 그들과 함께 떠났다.
“셋째 공자라…….”
계연은 윤재성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예전에 경기부 밖, 통천강 기슭의 장원 나루터에서 그 말을 처음으로 들었었다.
“저 황제는 감성이 풍부하군!”
* * *
의관을 단정히 한 윤재성은 부인과 아들, 가복(家僕)들을 거느리고 대문 밖으로 서둘러 걸어 나왔다. 그들이 나올 때까지도 바깥에 늘어선 호위와 마차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마차 안의 사람이 내리지 않은 걸 보니, 윤재성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듯했다.
윤재성은 재빨리 계단을 내려가 마차 앞에 멈춰선 후, 그의 뒤에 있던 식솔들과 동시에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신 윤재성, 가속(家屬)들을 데리고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를 뵙습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마차 내부의 발이 젖혀지는 것과 동시에 호위가 발 받침대를 내려놓았다. 태감은 먼저 마차에서 내린 뒤, 그 안에서 나오는 누군가를 부축했다. 바로 대정국의 황제인 홍무황제(洪武皇帝) 양호였다.
“어서 예를 거두게!”
황제는 윤재성에게 다가가 직접 그를 일으켜 세웠다.
“감사합니다, 폐하!”
“하하하, 친애하는 윤 경, 짐이 오늘 출궁한 것은 아주 사적인 방문이오. 내 그래서 가족들도 데려왔지. 어서 내려오시게!”
황제는 윤재성에게 이렇게 말한 뒤, 뒤쪽의 마차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마차의 문발이 안에서 젖혀지더니, 두 여인이 걸어 나왔다. 한 명은 고귀한 자태를 지닌 부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수려하고 대범한 태도의 아가씨였다.
“덕비(德妃) 마마를 뵙습니다, 상평(常平) 공주를 뵙습니다!”
그들을 향해 윤재성과 그의 식솔들이 공손히 예를 올렸다.
“어서 예를 거두세요. 너무 갑자기 방문하여 놀라셨겠군요.”
덕비가 공주를 데리고 황제의 곁에 가서 서더니, 웃으며 윤재성과 윤재성의 부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윤재성의 부인은 고명부인(*誥命夫人: 황제에게 봉호(封號)를 받은 부녀(婦女))이었기 때문에, 가끔 입궁하여 덕비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였다.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폐하, 마마, 그리고 공주 전하. 곧 해도 질 것이고 날씨도 추우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이미 주방에 일러 저녁 만찬을 준비하라 명해 놓았습니다.”
황제가 무엇 때문에 왔든, 바깥에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에 윤재성은 황제를 안으로 들이기 전부터 일찍이 하인들에게 명을 내린 상태였다.
“좋지. 오늘 드디어 짐도 재상부의 솜씨를 맛보게 되겠군!”
“마침 고향인 영안현에서 올라온 특산품이 조금 있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윤재성이 손을 뻗어 황제를 청하자, 일행이 천천히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윤청은 그 과정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부친의 곁을 지키며 윤중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왜인지 덕비와 상평 공주가 때때로 자기를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이리저리 생각해보던 윤청은 마침내 한 가지 황당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재상부의 응접실은 이미 난로를 몇 개나 들여놓아 따뜻했고, 하인들이 차와 다과를 준비해 놓은 후였다. 그래서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훈훈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이 커다란 응접실 안에는 서화가 가득 걸려 있었는데, 글씨는 대부분 윤재성의 작품이었고 그림은 거의 윤청이 그린 것이었다. 윤씨 부자는 이 방면에서 온 조정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들이 각자 자리에 앉은 후, 황제는 실내에 걸린 서화를 하나씩 감상하다가 찬탄을 던졌다.
“친애하는 윤 경이 청렴한 관리인 이유가 바로 집안에 재화가 부족하지 않아서였군! 집안 곳곳에 이런 보배가 걸려 있다니 말일세! 많은 이들이 저 작품 중 하나라도 얻기 위해 금은보화를 지고 올 테지!”
그러자 차를 마시던 윤재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제가 높은 자리에 몸담은 탓에, 아첨하기 위해서이겠지요!”
“재상께서 겸손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후궁에 몸담은 저 같은 부인조차 윤 재상이야말로 서법의 대가라는 말을 수없이 들을 정도인걸요. 게다가 영랑(*令郞: 다른 이의 아들을 이르는 경칭)의 그림 실력도 명성이 자자하지요. 글자 하나, 그림 하나가 천금보다 귀하니, 부자(父子) 두 분이 모두 걸출한 인재이십니다!”
덕비는 말을 듣기 좋게 잘하는 솜씨가 있었다. 그녀는 윤재성이 황제의 마음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잘 알았다. 게다가 베갯머리에서도 황제에게 윤재성에 관한 일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어, 실제로도 덕비는 그를 존경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