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29화 (429/892)

429화. 혼인을 재촉당하는 윤청

윤재성은 장래에 태부가 될 사람이었다. 즉, 윤재성이 어느 날 어떤 황자를 향해 재능도 덕도 없어 큰 임무를 맡기기 적합하지 않다고 말만 하면, 황제가 그 황자를 얼마나 아끼든지 간에 그는 태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시정 백성들부터 문무백관 사이에서는 일찍부터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바로 윤재성은 지덕을 겸비한 대학자로서 호연정기를 갖추고 있어, 세상일을 꿰뚫어 보고 삿된 존재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예전에 있었던 ‘피에 젖은 비단 사건’의 결과처럼 말이다.

오늘날까지 여순부, 운파부, 심지어 완주 전체의 백성들은 해마다 윤재성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고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완주 곳곳에서는 윤 공을 위한 사당을 짓기도 했다고 하니, 무척 신비로운 배경을 지닌 인물이었다.

“맞습니다, 재상의 재능과 학문은 조야(*朝野: 조정과 민간)에 모르는 이가 없지요. 윤 시랑(侍郞)의 그림 실력도 마찬가지이고요.”

상평 공주가 이렇게 맞장구를 치며 윤청을 바라보았다. 윤청은 살짝 공수하며 감사 인사를 올릴 뿐, 따로 말을 얹지는 않았다.

“참, 친애하는 윤 경. 윤 시랑이 이립(而立)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혼인하지 않았다니, 혹 따로 정해진 혼사가 있는 것이오?”

윤재성이 고개를 숙인 채 차를 마시는 윤청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직 혼사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오, 그럼 윤 시랑은 따로 마음에 둔 이가 있는가?”

황제가 윤청에게 묻자, 윤청이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소인 따로 마음에 둔 정인은 없사오나, 정무가 바쁘고 남는 시간에는 학문을 닦느라 화조풍월(*花鳥風月: 남녀 간의 애정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윤 재상의 아들이로군. 국가의 동량(*棟樑: 마룻대와 들보. 인재를 이르는 말)이로다. 하지만 이제 적당한 나이도 되었고, 윤씨 집안의 제사도 계속 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경의 뜻은 어떻소?”

윤재성이 웃는 얼굴로 황제의 말에 동의했다.

“폐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청아, 너도 혼인해야 할 나이이긴 하구나.”

윤청이 지금껏 혼인하지 않은 것은 일이 너무 바빠서이기도 했고, 따로 꺼리는 것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첫째는 윤씨 집안이 지금 조야에서 차지하는 위치 때문이었다. 윤씨 집안은 한창 권세를 떨치고 있었지만, 기반이 단단하지 못해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둘째는 집안 내부의 특이 사정 때문이었다. 윤청의 부인이 될 이는 일반 백성들은 상상하지 못할 현묘한 일을 겪게 될 텐데, 그 방면에서 신중한 이를 고르고 싶었던 탓이다.

다른 이들은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나, 윤청은 자신의 혼사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윤청은 이제 자신의 신분으로는 평범한 여인과 혼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다고 명문가의 규수를 맞아들이면 그 집안과 한배를 타게 될 터였다.

그렇지만 오늘 이 자리는 자신이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을 자리였다. 결국 윤청은 그저 웃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때 덕비와 윤재성의 부인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덕비가 대화 도중 눈짓을 보내자, 윤재성의 부인이 눈치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 그렇지. 청아. 상평 공주 전하께서 우리 저택에는 처음 오시는 것이니, 네가 모시고 구경을 시켜드리는 게 어떻겠니?”

그러자 윤청의 옆에 앉아 있던 윤중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뭐 볼 게 있다고.”

윤청은 감히 거절할 수 없었으므로 공주를 향해 물었다.

“공주 전하, 저와 함께 나가서 둘러보시겠습니까?”

그러자 공주가 호쾌한 태도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 시랑께 폐를 끼치겠네요. 하지만 저도 무척 궁금하군요.”

윤청은 상평 공주가 털 달린 두봉(*斗篷: 망토와 같은 겉옷)을 쓰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그들이 나간 후 윤중은 실내를 한번 둘러보다가 제 어미에게 가서 속삭였다.

“어머니, 저도 형 따라가도 돼요?”

“네가 가긴 어딜 가니, 안 된다!”

윤 부인의 말을 듣고 윤중은 눈썹을 찌푸렸다. 이곳에는 황제와 황비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인 그는 이 분위기가 곧 무료해졌다.

“그럼, 계 선생님 찾으러 가야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윤재성의 곁으로 다가가, 황제와 황비, 제 부친에게 차례로 예를 올린 뒤 이렇게 말했다.

“황상, 마마, 그리고 아버지. 이곳이 너무 더워서 소자 나가서 걷고 싶습니다.”

“하하하, 호는 건강하기도 하구나. 짐의 황자 중에는 너만 한 아이가 없구나.”

황제는 황자들의 배독(陪讀)인 윤중을 무척 아꼈다.

윤재성은 그에게 과찬이라고 대답한 뒤 고개를 돌려 윤중에게 말했다.

“갈 곳이 어디 있다고? 네 형에게 가려는 건 아니지?”

“아니요! 계 선생님…….”

윤중은 아직 아이였으므로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이다가 화들짝 목소리를 줄였다. 하지만 윤재성은 그를 꾸짖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나가라는 듯 손짓했다.

“그래, 가보거라.”

황상은 계연을 알지 못할 테니 그저 고향에서 온 친우라고 하면 될 터였다. 윤재성은 조정의 또 한 사람, 언상이 계연을 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언상은 다른 이들에게 계연을 만난 일을 말한 적이 없을뿐더러, 선황제께 월병을 바칠 때도 계연을 그저 ‘선인(仙人)’이라고만 칭했었다.

윤중이 기쁜 얼굴로 떠나자, 황제와 윤재성은 서로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군신(君臣)의 모범이라 불릴 만했다.

“친애하는 윤 경에게 손님이 와있나 보군?”

“폐하께 아룁니다. 제 고향인 영안현에서 온 지기(知己)가 와 있습니다. 이웃 사이였지요.”

‘지기라고?’

그러자 황제는 흥미가 일었다. 오늘은 자기 딸인 상평 공주의 일로 온 것이었는데, 공주는 이미 윤청과 나갔으니 남은 이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것밖에는 따로 할 일도 없었다.

“윤 경의 지기도 학자인가?”

그러자 윤재성이 곰곰이 생각해본 뒤 대답했다.

“글공부는 했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공명(功名)을 좇는 서생은 아닙니다.”

“오, 윤 애경과 지기가 될 정도라면, 그자도 재능과 학문이 대단하겠군?”

윤재성은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계 선생의 재학(*才學: 재주와 학식)이라면 당연히 뛰어납니다. 하지만 그분은 출사(*出仕: 벼슬을 해서 관직에 나감)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보다는 천하를 유람하거나, 이야기를 들으며 차를 마시고, 바둑을 두는 걸 좋아합니다.”

황제는 그의 말에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했다.

“풍류를 즐기는 자이군. 잠시 후에 연회가 시작되면 불러와 함께 식사를 들라고 하지.”

그러자 윤재성이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 제 지기는 관직에 몸담고 있지 않은 일개 백성일 뿐으로, 황상을 대하는 예절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이에 황상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저어되니, 아무래도…….”

“허, 이것 참. 윤 경, 자네가 보기에는 짐이 그렇게 속이 좁은 사람인가?”

황제가 웃으며 이렇게 반문했다. 그는 천고(千古)에 남는 명군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런 사소한 것들에 연연하지 않았다.

황제가 이런 도량을 베풀자 윤재성은 퍽 안심이 되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황제가 명을 내렸으니 어떻게든 데리고 와야만 했을 터이나, 이번에는 그 상대가 계연이였다.

사실, 윤재성의 마음속에서는 황제의 의사와 계연의 의사 중, 후자의 비중이 좀 더 컸다.

계 선생이 어떤 분인가? 실은 황제의 체면을 아예 고려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신분이었다.

하지만 윤재성은 자신이 친우로서 부탁하면 계연이 기꺼이 승낙하리라는 걸 알았다. 문제는 윤재성이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일개 백성을 만나고 싶다고 하시니, 이는 제 친우의 영광입니다. 신도 당연히 폐하께서 도량이 넓으신 것은 알고 있으나…… 계 선생은 성격이 조금 괴팍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 잠시 후에 기본적인 예절을 숙지시킨 후,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폐하의 앞에서 실례를 범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이에 황제는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윤 재상이 어쩐 일이지? 그의 벗이라는 자가 그렇게나 밖에 내놓기 부끄러운 수준인가?’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황제는 그가 현명하고 능력 있는 이를 시기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친우가 행여나 자신의 몫을 빼앗아 갈까 봐 말이다. 혹은 그 친우가 정말로 돼먹지 못한 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윤재성이라면 이 둘 다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황제는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작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심지어 황후와 덕비 같은 자신과 가까운 이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그는 등극 전후로 두 가지 신기한 꿈을 꾸었었다.

첫 번째 꿈은 선황제인 원덕제에 관한 꿈이었다.

이 꿈은 비교적 짧고 내용이 간단했는데, 꿈속에서는 원덕제가 막 세상을 떠나 발상(*發喪: 상제가 머리를 풀고 슬피 울며 초상난 것을 알리는 절차)을 하기도 전이었다.

그때, 양호(황제의 이름)는 슬픈 마음보다는 흥분이 앞선 상태였다. 얼마간 느낀 슬픔마저도 실은 대부분 자신의 은사(恩師)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꿈에서 양호는 침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신을 흔들어 깨어나 보니 자기 부친이 침상 곁에 앉아 있었다. 꿈을 꾸던 당시의 그는 부친이 세상을 떠난 것을 깨닫지 못한 데다 자신이 누워있는 걸 황제이신 부친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고 두려운 마음에 얼른 침상에서 내려가 예를 올리려 했다.

하지만 꿈속에서 원덕제의 태도는 이전과 무척 달랐다.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온화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몇 마디 당부를 남겼다. 원덕제는 자신은 곧 아주 먼 곳으로 떠나려 하니, 자신의 뒤를 이어 나라를 잘 돌보고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면 윤재성에게 조언을 구하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죽기 전에 그에게 남겼던 유언을 잊지 말라고도 했다.

원덕제가 떠나자 양호는 꿈에서 깨어났고, 밖에는 막 동이 터오고 있었다. 선황제가 남겼던 유언은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간사한 이들이 윤재성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이었다.

두 번째 꿈에서 양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양호가 이목서를 자신의 소사(少師)로 맞아들임으로써, 드디어 자신을 세심히 보살펴주고 뛰어난 식견을 갖춘 은사를 얻게 된 때였다.

꿈에서 대략 14, 15살 즈음으로 보이는 양호 자신은 은사인 이목서의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목서는 한쪽에서 눈을 감고 양호가 책 읽는 것을 듣고 있다가, 때때로 서책 안의 요점을 짚어주기도 했다. 그는 한쪽 손으로 양호가 앉은 책상에 쌓인 서책 위를 박자에 맞춰 두드리고 있었다.

양호가 막 ‘군자된 자는 응당 이러저러해야 한다’와 비슷한 내용을 읽고 있을 때, 눈을 감고 있던 이목서가 돌연 양호의 말을 끊더니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전하, 소신은 언젠가 전하의 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정쟁이나 암투에 휘말려 죽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곧 나이 들어 죽게 되겠지요. 하지만 전하의 앞에 놓인 길은 아직 길고 깁니다. 전하께서는 후에 반드시 제왕의 자리에 오르실 것입니다.”

“스승님, 저도 제가 제위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양호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꿈속의 특이한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꿈속의 양호는 자신이 황제가 된 것을 잊은 예전 소년 시절의 모습이었는데도, 여전히 자신이 등극하게 될 거라고 강렬하게 직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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