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31화 (431/892)

431화. 두 사돈 집안

“무슨 큰일? 네 형이 데리고 나온 그 여인과 관련된 일이니?”

“헤헤헤, 맞아요! 제가 선생님께만 몰래 알려드리는 거예요. 그 사람 우리 형하고 혼인할지도 몰라요. 게다가 대단한 신분이라고요, 황상께서 총애하시는 상평 공주거든요!”

윤중이 한껏 으스대며 계연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태도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보세요, 우리 집안 대단하죠? 공주가 시집올지도 몰라요!

“그리고…….”

윤중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말을 이었다.

“지금 황상께서도 우리 집에 계세요. 황자 전하라도 데려오셨으면 황자께서 저랑 같이 놀았을 텐데요. 선생님께서는 한 번도 황상을 뵌 적이 없으시죠? 그분은 보통 황궁에 계시는 데다, 주변에는 항상 시위로 둘러싸여 계시거든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당금의 홍무제도 본 적이 있고, 원덕제도 본 적이 있단다. 그건 그렇고, 이왕 너희 집에 그런 귀빈이 왔는데, 왜 여기로 왔니?”

윤중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회랑이 있는 방향을 쳐다본 뒤,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대답했다.

“실은 선생님을 찾아간다는 핑계를 대고 형을 따라 나온 거예요. 몰래 형하고 상평 공주 전하를 따라다니다가 왔어요. 헤헤헤, 그 두 사람 서재에서 오랫동안 안 나오더라고요. 사람들 말로는 처녀 총각이 한곳에 같이…….”

윤중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계연이 그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아얏!”

윤중이 이마를 문지르며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왜 때리세요!”

윤중이 이마를 끌어안는 사이, 계연은 탁자 위에 있던 바둑판과 바둑돌이 든 통을 소매 안으로 거둬들였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짓고 꾸짖었다.

“나이도 어린 게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고!”

“그런 거 아니에요…….”

윤중이 억울한 듯 중얼거리다가 저 멀리 회랑에서부터 자기 부친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괜스레 깜짝 놀라 목을 움츠렸다가, 무의식적으로 돌 탁자 뒤쪽으로 쭈그러들어 숨었다.

윤재성은 서두르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보폭이 무척 넓었다. 그는 객사가 자리한 뜰에 들어오자마자 돌 탁자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호, 너 거기서 뭐 하느냐?”

“그, 저…… 저 호운을 찾고 있었어요. 이상하네, 그 여우가 어디로 갔지?”

윤중이 허둥지둥 머리를 긁적이며 탁자 뒤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윤재성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더 쳐다보지도 않고 계연을 향해 말했다.

“계 선생님, 오늘 누가 오셨는지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실은 황상께서 계 선생님이 우리 집에 묵고 있는 걸 아시고는 선생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잠시 후에 연회 자리에 준비되면 제게 선생님을 함께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은 일반 백성일 뿐으로 마땅한 예를 알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고…….”

계연이 손을 들어 윤재성이 하려던 말을 제지한 뒤 웃으며 대답했다.

“황제가 저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가서 보면 되죠. 어쨌든 재상이 황제의 명을 어길 수는 없으니까요.”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윤재성은 계연이 이렇게 쉽게 동의해줄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윤씨 집안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해준 것 같았다.

“안 될 건 또 뭐가 있겠어요. 그냥 함께 식사하는 것뿐인데요. 윤 훈장님도 그리 많은 생각 하실 것 없어요. 말씀하신 대로 저를 그냥 황제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일개 백성이라고 소개하세요.”

계연이 크게 개의치 않는 것을 보고 윤재성도 걱정을 내려놓았다.

“네, 그럼 지금 저와 함께 가시지요. 주방에서는 이미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참, 그 황상을 뵙게 되면 부디 ‘폐하’라고 존칭을…….”

계연은 일반 백성들을 만나더라도 예를 지키는 성격이었는데, 하물며 황제를 대할 때는 어떻겠는가? 그래서 그는 웃으며 윤재성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으니까요. 참, 오늘 황제는 정말로 청이 때문에 온 건가요?”

그러자 윤재성이 윤중을 잠시 바라본 다음 계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 아니라 상평 공주 전하도 데려오셨습니다. 이 혼사가 정말로 맺어지게 되면, 그것도 또 하나의 미담이 되겠지요!”

두 사람은 함께 걸어가면서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로는 고분고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 사람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윤중이 따르고 있었다.

곧이어 그들은 회랑을 따라 연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뜰이며 문가마다 검을 찬 시위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윤재성이 다가오는 것을 본 시위들이 그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그 후 그들의 시선은 전부 계연에게로 향했는데, 특히 그의 걸음걸이와 인상착의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이 몸을 수색하지만 않는다면, 계연도 그 감시하는 듯한 눈빛을 전부 용납해줄 요량이었다. 윤재성은 평소처럼 먼저 한 발짝 나서 계연을 이끌었다.

“계 선생님, 이쪽입니다. 황상과 덕비마마께서는 이미 안에 계십니다.”

시위 하나가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자, 윤재성과 계연, 윤중이 잇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내부는 연회용 식탁을 몇 개나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널찍했다. 그런 곳에 지금은 식탁 하나만 놓여 있어 더욱 넓어 보였다. 문에서부터 대략 4, 5장(약 12~15m)은 떨어진 곳에 식탁이 놓여 있었고, 그 상석에는 홍무제가 문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로는 시녀와 태감, 시위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상대는 어쨌거나 특별한 인물인 황제였으므로, 계연도 그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양호는 전보다 훨씬 더 위엄이 넘쳐 보였다.

윤중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 어미 근처로 뛰어갔고,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그 장면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반면 윤재성은 문가에 서서 황제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예를 올린 뒤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자가 바로 제 막역한 지기(知己) 입니다.”

그리고는 계연을 향해 속삭이듯 일깨웠다.

“계 선생님…….”

계연은 굳이 윤재성이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웃으며 황제를 향해 살짝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우민(*愚民: 백성이 통치자에게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계연,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가 계연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옷차림은 소박했지만, 태도가 자연스럽고 풍모가 남달랐다. 기세가 범상치 않은 윤재성과 함께 서 있는데도 조금도 뒤떨어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첫인상만 봐도 보통 인물이 아님이 분명했다.

“자자, 친애하는 윤 경 그리고 계 선생, 모두 예를 거두고 앉게. 짐은 일찍부터 배가 고팠는데, 드디어 영안현 음식을 맛볼 수 있겠군!”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윤청은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계 선생님이 정말로 연회에 참석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계 선생님이 자신과 상평 공주를 번갈아 바라보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상평 공주 전하의 일을 구경하러 오신 건 아니시겠지?’

계연과 윤재성의 도착으로 모든 이들이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주방에서도 음식을 날라오기 시작했다. 식당과 주방 중간에 있는 작은 문이 열리며 재상부의 하인들이 뜨거운 김을 내뿜는 향기로운 음식들을 차례로 내왔다.

황제가 자리한 연회석에서는 모두 황제에게 먼저 잔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계연은 그를 개의치 않고 스스로 술을 따라 먼저 마셨다. 황제는 전에 말했던 대로 정말로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윤재성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황제와 함께 식사하는 것은 일반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눈 두 개에 입 하나 달린 보통 사람이었으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윤청과 상평 공주라고 할 수 있었으므로, 식탁 위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 그들 두 사람에 관해서였다.

황제와 덕비는 상평 공주가 어릴 때 있었던 재미난 일을 늘어놓으며, 공주가 얼마나 마음씨가 곱고 총명한지, 또 금기서화(琴棋書畵)에 얼마나 정통한지 소개했다. 그러자 윤재성의 가족들도 윤청이 어릴 때부터 속이 깊었으며,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을 정도로 똑똑했다고 치켜세웠다. 비록 때로 개구쟁이처럼 장난을 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윤청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고, 동물들마저 그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완전히 서로가 마음에 든 사돈 집안끼리 식사를 하는 분위기네! 보아하니 양쪽 부모끼리 날짜를 정하는 대로 곧 맺어질 것 같군.’

계연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술잔을 비웠다.

계연은 그 자리에 동석했을 뿐으로, 가장 말단에 앉아 처음을 제외하고는 황제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사돈 사이가 된 것처럼, 윤청과 상평 공주 이야기를 나누며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리에 있던 이들이 계연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황제는 일개 서민일 뿐인 계연을 꽤 신경 쓰고 있었고, 윤씨 집안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러했다.

다만 황제는 그를 은밀히 관찰하고 있었고, 윤씨 집안 사람들은 계연이 행여 이런 자리를 귀찮아하고 있을까 봐 일부러 그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때 계연이 홀로 술을 마시며 웃는 듯 아닌 듯 고개를 젓는 것을 보고, 방금 막 상평 공주의 학문이 황자 몇몇보다 낫다는 칭찬을 했던 황제가 돌연 계연을 향해 물었다.

“계 선생은 무엇 때문에 고개를 젓는 건가? 윤 시랑이 자네를 대하는 걸 보니 윤씨 집안과 관계가 친밀한 듯한데, 짐의 상평 공주가 윤 시랑과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인가?”

황제는 막 방문했을 때는 윤청에게 공주를 데리고 저택 내부를 구경시켜 주라며 숨기려는 노력이라도 했었지만, 식탁에서 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윤청과 상평 공주 둘 다 꺼리는 기색이 없고 윤씨 집안 사람들도 이번 혼사에 찬성하는 듯하자 이제는 아예 거리낌이 없었다.

황제가 자신을 향해 이렇게 물어오자, 계연은 살짝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윤청과 공주 전하 모두 지혜롭고 재주 많은 인재이니, 하늘에서 내린 짝처럼 무척 잘 어울린다 생각합니다. 당연히 저로서는 아무런 이의도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 일은 두 집안 사이의 일이었고, 당사자인 윤청과 상평 공주도 식사 도중 때때로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니 계연이 나설 자리는 전혀 없어 보였다.

“오, 그럼 계 선생은 윤 시랑과 상평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로군. 그럼 대체 무슨 재미있는 생각을 했는지 짐에게도 들려줄 수 있겠나?”

황제가 이렇게 캐묻자 계연도 웃으며 매끄럽게 대답했다.

“따로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린 것은 아니고, 공주 전하와 청이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다가 저도 그 당시의 청이를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잠겼던 뿐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계 선생과 이 집안 사이에 정이 깊은가 보군.”

“하하, 제가 처음 영안현에 자리 잡았을 때는 윤 훈장님이 제 유일한 벗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정이 깊을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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