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화. 실력도 좋네
상평 공주는 웬일로 화제가 자신에게서 비켜나간 데다가 계연에게도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에, 그의 말에서 무언가 특이한 점을 포착하고는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은 윤 재상을 ‘윤 훈장’이라 부르시는군요?”
현재 조야(朝野)를 통틀어 윤재성은 존칭인 ‘윤 공’이나 ‘윤 재상’으로 불렸다. 황족들조차 예외가 없었고,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그를 ‘윤 문곡(文曲)’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러니 계연이 ‘윤 훈장’이라 부르는 것이 무척 색다르게 느껴졌다.
계연은 그 호칭이 원래는 자신의 습관이라고 생각했으나, 순간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이에 그는 신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예전에 윤 훈장께서는 현학(*縣學: 현에서 세운 학당)의 훈장이셨기 때문에, 영안현 백성들 모두 그를 윤 훈장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지금은 일국의 재상이 되었지만, 제가 느끼기에 그는 여전히 백성들의 교화에 힘쓰는 유학자에 가깝기에 그를 ‘윤 훈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뜻이 있었군!”
황제는 계연이 비굴하지도, 그렇다고 긴장하지도 않은 담담한 태도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는 점점 더 계연이 인재라고 느꼈다. ‘참된 은자(隱者)는 시중에 숨는다(大隱隱于市: 진정한 재능을 지닌 사람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굳이 산속에 숨어들지 않는다는 뜻)’는 말도 있고, 윤재성과 막역한 사이이기까지 하니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윤재성이 이미 계연은 관리가 될 생각이 없다고 말했었지만, 황제는 아쉬운 마음에 손을 내밀어보았다.
“계 선생은 일전에 과거시험을 본 적이 있소? 성적이 어떠하였지?”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었다. 나이 어린 윤중마저 황상이 인재를 아끼는 마음을 베풀고 있음을 알아차릴 정도였다.
계연이 지난 생에 참가했던 수능 시험을 떠올리며 미소 지은 뒤 고개를 저었다.
“저는 한 번도 과거시험에 참가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참가할 생각이 없습니다. 스스로가 관리가 될 좋은 재목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
황제는 의외로 화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순순히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선생과 윤 경은 무척 가까운 사이이니, 서로 학문에 대해서도 많은 토론을 나누었겠지. 혹 선생이 집필한 서책이나 시를 써본 적이 있소?”
책? 신통한 술법에 관해서라면 쓴 것이 몇 권 있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저는 대대로 전해질 만한 책을 남긴 적도 없고, 특별히 출중한 재능이 있지도 않습니다. 윤 훈장님과 제가 막역한 사이인 것은 다만 옛정이 깊기 때문입니다.”
“휴우, 보아하니 선생은 정말로 출사(出仕)할 생각이 없는가 보군!”
황제는 가만히 탄식하며 대답했다. 그는 계연이 정말로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서 저토록 초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자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정말로 조정에 나설 뜻이 없다는 것이었다.
황제도 지나치게 그를 압박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곁에는 윤재성도 앉아 있었으므로, 황제는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자자, 모두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어서 젓가락을 들게. 그저 가벼운 식사 자리에서의 질문일 뿐이었네.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은 짐의 상평 공주와 윤청의 일이지.”
“예, 모두 식사를 드시지요!”
윤재성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 정도로 긴장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 그는 황제가 노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황제가 노하여 계연에게 벌을 내리는 일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계연이 노하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식사 자리에서 상평 공주와 윤청은 서로 나란히 앉았다. 이런 봉건사회에서 혼인하지 않은 남녀가 나란히 앉는 것은 예에 맞지 않는 일이었으므로, 이는 누군가 고의로 자리 배치를 한 것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상평 공주는 자신의 부황과 윤 재상이 다시 한담을 나누고, 어머니인 덕비와 윤 부인도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는 윤청에게 몸을 기울여 이렇게 속삭였다.
“윤 시랑, 저 계 선생은 정말로 과거에 참가하거나 책을 집필한 적이 없나요? 듣자 하니 전에는 영안현의 작은 집에서 살았다는데,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을 해서 수입을 얻었죠?”
이런 질문은 무척 사적이고 예에 맞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공주도 대놓고 묻지 않고 사이가 조금 가까워진 윤청에게 은밀히 물은 것이었다.
윤청은 조금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상평 공주를 바라보았다. 이 공주 전하는 확실히 총명한 편인 듯했다. 백성들에게 있어 생계를 잇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의식주 걱정 없이 금지옥엽으로 자라온 공주가 이런 사실을 깨닫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하인들이 김이 폴폴 나는 닭튀김 요리를 두 접시 가지고 들어왔다. 재료를 충분히 쓴 데다 방금 막 솥에서 꺼낸 듯, 향신료와 닭고기의 향기가 어우러져 식당 안 다른 음식들의 냄새를 덮을 정도였다.
윤청이 막 적당한 말을 찾아 대답하려 할 때, 별안간 바깥에서 쿠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고…….”
그 소리에 식당 안이 삽시간에 고요해졌고, 주위에 있던 시위들은 단번에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그들 중 몇 명이 조심스럽게 움직여 누군가 갑자기 창문에서 들어오더라도 즉각 방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건물 바깥에 있는 동료들이 이미 행동을 시작했으리라 믿고,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사람을 보냈다.
반면 호운의 목소리임을 알아챈 윤청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에 무의식적으로 계연을 바라보니, 그는 오히려 가만히 한숨을 내쉬고는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계연은 윤청이 자신을 쳐다보자 닭튀김 요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한편 바깥에 있던 호운은 키도 작은 데다 윤청네 집에 자기 발톱 자국을 남기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굵은 나뭇가지를 찾아 창문에 지탱한 다음 자신은 그 위에 올라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통력을 이용해 창호지 너머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원래 호운의 능력이라면 그렇게 평형을 유지하는 것 정도는 별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닭튀김 요리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냄새에 혼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떨어지면서 소리를 낸 호운은 당황하여 즉시 도망쳤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뇌리에는 온통 향긋한 냄새가 폴폴 나는 노릇노릇한 닭튀김 생각뿐이었다. 호운은 속으로 이렇게 투덜댔다.
‘이건 불공평해! 전부 저 닭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 나랑 종이학만 못 먹고 있잖아. 아니지, 종이학은 뭘 먹을 필요가 없으니, 나만 못 먹는 거잖아!’
그는 높이 뛰어올라 곧바로 식당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가 막 올라선 순간, 검을 찬 시위 두 명이 제비처럼 가볍게 날아와 지붕 위에 앉았다. 그들은 마치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움직이는 것처럼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런!’
이에 당황한 호운은 법력을 사용해 곧바로 다른 쪽으로 뛰어내렸다. 이에 시위들은 무언가 불그스름한 형체가 지붕 위에서 뛰어내린 것만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잠시 후, 한 시위가 식당 안으로 들어와 이렇게 보고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조금 전의 소리는 붉은 털을 가진 고양이가 낸 것으로, 그 외에 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하하하하……. 고양이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군. 저 시위들이 저토록 긴장한 모습 좀 보라지. 그럼 윤 재상이 집에서 자객이라도 숨겨놓았겠는가?”
황제가 웃으며 다시 분위기를 환기하자, 윤재성이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어이쿠, 그런 말씀은 농담으로라도 마십시오! 과연 시위들의 충심이 남다르군요. 게다가 어가(御駕)를 호위하는 것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윤청은 호운이 닭튀김 요리에 군침 흘리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를 본 상평 공주가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윤 시랑은 그 고양이를 알고 있나 보군요?”
“예, 잘 알고 있지요. 아주 식탐이 많은 놈입니다. 특히 닭고기 요리를 좋아하거든요. 아마도 저 닭튀김 냄새 때문에 소란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붉은 털을 가진 고양이도 있나요? 저는 한 번도 그런 고양이는 본 적이 없어서요.”
“천지가 이렇게 넓은데 어딘가에는 있겠지요!”
윤청은 웃으며 이렇게 둘러대고는, 손가락에 술을 조금 묻혀 식탁 위에 고양이의 윤곽을 그려냈다.
“와, 정말 똑같네요. 어서 윤 시랑이 제 초상화를 그려줬으면 좋겠군요!”
“공주 전하께서 만족하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 황제와 덕비, 윤씨 집안사람들 모두 그들이 가까이 붙어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며 은밀히 기뻐했다.
심지어 계연조차 약간 놀란 얼굴이었다. 이에 그가 법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두 사람의 기운이 이 짧은 시간 안에 좀 더 가까워진 것이 보였다.
‘어린놈이 실력도 좋네!’
지금 계연이 상황을 보아하니 윤청과 상평 공주의 혼사는 거의 확정된 듯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전혀 서로를 꺼리는 모습이 아니었고, 더욱이 상평 공주는 윤청의 재능에 무척 감탄한 듯한 눈치였다.
다만 윤청은 이미 나이가 서른이 넘었고, 상평 공주는 황자와 공주 중 가장 나이가 많다고는 해도 겨우 열여덟일 뿐이었다. 그러니 이 혼사에서 윤청은 도둑놈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주인과 손님 모두 흡족한 식사를 마친 후, 이런 분위기를 이용하기 위해 황제는 기분이 좋다는 핑계로 재상부에 좀 더 남아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에 윤씨 집안에서도 자연히 황제의 말을 따랐고, 그렇게 해서 윤청과 상평 공주는 또다시 자연스럽게 둘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들은 별 저항 없이 부모의 말을 따랐고, 공주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윤청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녀 두 명과 함께 윤청의 서재로 향했다.
응접실에서는 난로가 실내를 따뜻하고 편안하게 덥히고 있었고, 융단이 깔린 좌탑(*坐榻: 기다란 평상) 위 낮은 탁자 위에는 바둑판이 놓여 있었다. 황제와 윤재성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대국을 두는 중이었다.
덕비와 윤 부인은 다른 한쪽에 놓인 좌탑에 앉아 즐거운 얼굴로 윤청과 상평 공주의 일을 상의했다. 두 사람은 이미 혼사 준비에 관한 문제와 손주가 태어난 후에 어떤 색깔의 의상을 만들어 입힐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두 여인이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실질적인 진도보다 몇 배나 빨랐다.
계연은 식사를 마쳤다고 곧바로 떠나지 않고, 무척 예의 있게 잠시 합석하다가 그와 마찬가지로 무료한 얼굴을 한 윤중과 함께 먼저 응접실을 떠났다.
밖으로 나선 계연은 윤중을 이끌고서 회랑을 따라 화원과 객사(客舍)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시위들은 계연을 한번 훑어보고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이 보기에 계연은 닭목을 비틀 힘조차 없는 서생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