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화. 또 물에 빠진 사람이 있네
촤르륵…… 촤아아…….
그때, 강 중심의 수면에 파문이 일더니 선수에 달린 등롱의 빛에 수면 아래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비쳤다.
호운은 예리한 눈길로 푸른 형체가 수면 아래를 지나가는 것을 포착하고는 감격에 차 이렇게 소리쳤다.
“강청어야!”
그러자 배 아래를 유유자적 지나던 거대한 형체가 회오리치는 수면 위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늙은 거북은 등껍질을 반 정도 드러낸 채 떠올랐고, 푸른 물고기 한 마리도 뻐끔대며 올라왔다.
“거북 오숭이 계 선생님과 강신 대인을 뵙습니다!”
뽁뽁뽁……!
강청어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늙은 거북이 말을 마치자마자 다급히 뻐끔대는 것을 보니 마찬가지로 인사를 하는 듯했다.
오숭이 공손하게 계연과 백제를 향해 인사 올리는 것과 달리, 강청어는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호운에게 시선을 돌렸다.
호운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호운은 백제와 이미 꽤 친숙해진 참이었고, 계 선생님도 강신도 소소한 예절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진즉에 선수 바깥으로 머리를 내민 채였다. 호운은 앞발을 뻗어 강청어의 이마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계연은 자신과 연이 깊은 두 물의 족속을 향해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둘 다 좋아 보이네요.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 수행에 문제는 없고요?”
오숭은 앞발로 물살을 가르며 사람이 양손을 맞잡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선생께 아룁니다. 저는 선생의 가르침과 윤 서생으로부터 받은 경전 수업으로 마음에 낀 때를 닦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행에도 큰 진보가 있었어요.”
백제가 하하 웃으며 계연에게 말했다.
“이 늙은 거북은 수행한 세월이 오래되어, 쌓아놓은 영력도 요법(妖法)에 대한 이해도 충분했습니다. 다만 앞날에 대한 결심과 청정한 마음만이 모자랐었지요. 계 선생님을 만난 것은 오숭에게 있어 대운(大運)의 전환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강청어는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백제가 대신 나서서 이야기해주었다.
“청청도 수행에 큰 진전을 이뤘습니다. 그간 저도 정이 들어서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네요.”
그 말에 계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수면에 떠올라있던 오숭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계연을 만나기 전의 오숭이었다면, 강청어가 계 선생님과 강신 모두에게 아낌을 받는 것을 무척 부러워하고 심지어는 질투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강청어가 타고난 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 혹은 청청 자신이 얻어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강청어는 그래서 암컷인가요, 수컷인가요?”
호운이 앞발로 강물을 휘젓다가 계연과 백제를 향해 이렇게 질문했다. 그러자 계연이 우스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냄새로 알 수 있잖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물속에 사는 물고기한테서 어떻게 냄새를 맡나요? 강청어가 사람으로 둔갑하지 않고서야…….”
그러자 계연도 더는 얼버무리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강청어, 음, 그러니까 청청은 암컷이야. 물의 족속 중에는 암컷이 많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란다.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하기는 힘들겠지만, 반인반어(半人半魚)의 모습으로 변하는 건 무척 쉬운 편이지. 물론 이렇게 요령을 피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수행 방법이긴 하다만.”
뱃사공은 선실 안에 있던 작은 식탁을 선수로 가지고 나온 뒤, 요리 세 접시와 술병, 술잔 두 개를 가지고 나와 그 위에 차렸다.
“계 선생님, 이리로 앉으십시오. 저 둘이 물속에 있는 것은 마치 우리로 치면 침상에서 이불을 덮고 있는 것만큼 편안한 상태거든요. 저희가 서 있는 것보다는 훨씬 편할 게 분명하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그럼.”
계연과 백제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나눠 앉았는데, 계연이 선수에, 백제가 그보다 좀 더 뒤쪽에 앉았다.
계연은 식탁 위의 술병을 들어 술을 한 잔 따랐다. 술에는 약간의 점성이 있고 색깔은 투명했으며, 향기가 깊고 그윽했다. 그는 이 술이 춘혜부의 명주(名酒)인 천일춘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강청어가 술을 좋아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청청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미주(米酒)를 대접했었지. 오늘은 남의 것으로 인심을 베풀어야겠구나. 네게도 천일춘 한 잔을 주마.”
계연은 뱃전 밖으로 술잔을 천천히 기울였다. 수면에 섞여든 천일춘은 강청어의 입안으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술맛만 따지자면 천일춘은 선주(仙酒)같은 술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계연에게는 지금 천두호 두 병이 있었고, 그중 하나에는 용연향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뇌겁에 의해 입은 상처가 그리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용연향은 상처 치료용으로서 아무렇게나 나눠줄 수가 없었다.
영기를 가득 머금은 또 다른 천두호 안의 술은 무척 괜찮은 종류였으나, 맛으로만 따지자면 천일춘도 그에 못지않았고, 또한 백제의 체면을 깎지 않고자 일부러 꺼내지 않은 것도 있었다.
“오숭 당신도 한 잔 받으세요.”
계연이 다시 술잔을 가득 채워 거북에게 권했다. 그러자 오숭이 곁으로 다가와 배에서 떨어지는 술을 받아먹었다.
사실 이 술은 오숭 자신이 구해온 것이었는데, 그런데도 계연이 그에게 직접 하사한 술이라는 의의가 있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각각 술을 한 잔씩 나눠준 계연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풍경을 감상하며 백제와 함께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강물 위로는 화방과 누선 여러 척이 떠다녔고 뱃전에 걸린 붉은색, 흰색, 노란색 등 갖가지 색깔의 등롱들이 수면 위로 아름다운 빛을 어른거리게 했다.
하늘에 뜬 별빛이 강물 위를 비추었고, 계연의 마음과 눈 속에 모두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이에 춘목강의 풍경을 감상하던 계연은 잠시 넋을 놓았다.
작은 화방 위에 앉은 계연이 주위의 강 풍경을 감상하듯, 그가 타고 있는 이 배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하나의 풍경이 될 것이다. 계연이 술을 마시며 야경을 즐기는 동안, 거북과 강청어는 수면 위에서 가만히 계연을 기다리고 있었고 호운은 때때로 강청어에게 무어라 속닥였다. 백제도 계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계연의 흥취를 깨지 않기 위해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한참 후, 계연은 멀리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 뒤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연 춘목강의 풍경이 제일이로군요. 백 강신께서 정말 좋은 곳을 고르셨네요.”
백제가 술잔 안의 술을 비운 다음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는 용왕님의 뜻입니다. 만약 그분께서 원하시기만 하셨다면, 대정국에서 가장 큰 강 두 갈래를 모두 가지실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용왕님의 아드님이신 응풍 전하께서도 아직 신위(神位)가 없으신데도, 저를 이곳의 강신으로 인정해 주셨지요. 제가 비록 감히 용왕님의 수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분을 무척 존경하고 있습니다.”
“응 선생님께서는 확실히 의로우신 분이지요.”
계연이 이렇게 동의하며 다시 거북과 강청어를 바라보았다.
“춘목강, 특히 이 부근은 수행을 닦기 무척 적합한 곳이에요. 물속으로 들어가면 속세의 번잡함과 멀어질 수 있고, 수면 위로 올라오면 언제든 세상만사 온갖 일을 지켜볼 수 있죠. 해가 뜨면 아침이슬이 내리는 일출과 황혼을 볼 수 있고, 밤에는 수면 위로 등불이 일렁이며 별빛이 비치고요…….”
춘목강은 평화롭고 상서로운 강물이었으며, 춘혜부는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었다. 계연은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거북 오숭을 향해 말했다.
“속세와 가깝게 지내면 다채로운 인간 세상을 지켜볼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배울 수도 있죠. 하지만 동시에 너무 쉽게 현혹되기도 해요. 오숭 당신도 그런 이유로 수행에 있어 지름길을 찾으려고만 했고, 결국 스스로의 수행을 망친 거예요.”
늙은 거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 선생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만약 제가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악업을 쌓지 않았다면, 그렇게 고된 삶을 살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계연도 그가 말하는 주된 일이 무엇인지 알았으므로 웃으며 대답했다.
“실은 이번에 춘목강에 온 것은, 여러분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 이유도 있었지만, 따로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예요.”
계연은 지난번 만났던 소씨 집안 공자와 홍수라는 이름의 여인이 응약리를 사칭한 요괴의 힘을 빌렸던 것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예전에 도와주었던 그 소씨 집안은 비록 권세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조정의 높은 지위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그런데 그 집안 공자가 자기 조상과 마찬가지로 요물과 얽혀 문제를 일으켰어요.”
“예?”
오숭이 깜짝 놀라 이렇게 되물었다. 그런 커다란 일에 휘말렸으니, 일가가 몰살당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패가망신은 했을 줄로 알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오숭은 마침내 계연이 마지막에 한 말이 귀에 들어왔다.
“요물과 얽혀 문제를 일으켰다고요?”
“네, 하지만 이번에 그들이 얽힌 요괴는 당신처럼 마음씨가 좋은 편이 아니에요. 물론 도행도 훨씬 높고요. 어떻게 된 일이냐면…….”
계연은 술과 식사를 들면서 설서 선생인 왕립이 손님들에게 이야기할 때 하던 말투를 흉내 내어 소씨 집안 공자와 그 요괴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계연은 곧바로 소씨 공자와 홍수의 일부터 털어놓지 않고, 오숭이 예전에 소씨 성을 가진 서생을 만났을 때의 일부터 간략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백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숭이 엄동설한에 강 위에서 소씨 공자를 처음 마주친 날부터 시작했다.
이런 전개 방식은 청중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겼고, 내용 자체도 무척 재미있었기 때문에 소곤소곤 저들끼리 대화 아닌 대화를 하던 강청어와 호운마저 계연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한참 후에 계연이 아직 완벽히 끝나지는 않은 이야기를 마치자, 듣던 이들이 각자 생각에 잠겼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오숭도 호운도 아니고, 강신인 백제였다.
“계 선생님의 법안을 속일 수 있는 데다, 감히 통천강에서 강신마마를 사칭할 정도라니 그 여우 요괴의 도행과 담력이 보통이 아니로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 옥호동천이라는 곳도 보통의 요괴 소굴이 아니에요. 구미호를 포함한 호선(狐仙)들이 지키고 있는 진정한 세외동천(世外洞天)이죠.”
그 말에 백제의 얼굴이 좀 더 엄숙해졌다.
“하, 아무리 그렇다더라도 너무 교만합니다.”
오숭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등껍질을 수면 아래로 완전히 숨긴 채로 얼굴만 내놓고 있는 오숭의 기운이 불안정한 것을 계연은 느꼈다.
계연이 잠시 오숭을 쳐다보다가 백제와 한번 눈을 맞춘 후 이렇게 말했다.
“만약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직접 소씨 집안을 찾아가 없애는 게 좋을 거예요. 이왕 고된 수행의 정도(正道)를 닦기로 결심했으니, 마음에 맺힌 게 없어야 하거든요.”
이에 오숭이 고개를 끄덕인 뒤 복잡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기억하겠습니다!”
반면 호운과 강청어는 이 엄청난 이야기에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자신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야기 속에는 용왕이며 호선, 세외동천 같은 신비로운 것들이 잔뜩 등장했기 때문이다.
풍덩……!
“꺄악!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도와주세요!”
수십 장(丈) 밖의 거리에서 여인의 비명이 들려오자, 계연과 함께 있던 이들이 단번에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촤르륵……!
그 순간, 작은 화방의 선수에서 물살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청어는 이미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헤엄쳐가고 있었다.
“하하, 청청이 그간 춘목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을 구했답니다!”
이를 보던 백제가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백제의 흡족한 표정과는 달리, 계연은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표정을 던지는 대상은 강청어가 아니었다.
수십 장 밖에서는 중형 크기의 화방이 한 척 떠 있었는데, 그 근처에 한 남자가 ‘어푸어푸’하며 손을 내젓고 있었다. 다만 그의 얼굴에는 그다지 놀라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더 크게 질러라! 크면 클수록 좋다. 좀 더 놀란 것처럼 해봐!”
한편 뱃전에 선 여인은 강 곳곳을 둘러보며 정말로 강신이 그를 구하러 올 것인지 의심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때 남자가 다시 이렇게 재촉하자 그녀는 양손을 입 양쪽에 대고 더욱 크게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