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화. 한바탕 소동
최근 몇 년 동안, 춘혜부에 근접한 춘목강 근처에 사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어떤 소문이 퍼져있었다. 만약 누군가 물에 빠져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춘목강 강신이 구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가 그저 소문을 듣고 신기해할 뿐인 데 반해, 이 화방(畫舫)에 탄 이금래(李金來)라는 이름의 남자는 그 소문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미 물에 빠졌던 세 사람을 찾아가 직접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그중 한 명은 놀잇배에 탔다가 물에 빠진 취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쌀을 씻다가 실수로 물에 빠진 부인이었으며, 마지막 사람은 친우들과 강변에서 직접 만든 꽃등을 띄우고 놀던 인근 마을의 어린아이였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수영을 하지 못하거나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 수영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물에 빠진 후 숨이 막혀 무척 위태롭던 순간, 은은한 푸른빛이 수면 아래로 스쳐 지나더니, 그 존재가 자신들을 기슭으로 데려다주었다고 말했다.
그중 물에 빠졌던 아이의 이야기가 가장 신기했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은 마을 밖 강기슭에서 자신들이 만든 꽃등을 띄우고 놀다가 강물 위에 무척 정교하게 만들어진 꽃등이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나무를 꽃 모양으로 조각해 만든 것으로, 그 위에 꽂힌 양초는 이미 다 타버린 후였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풀과 종이 따위로 조잡하게 만든 것과 비교하면 봉황과 참새만큼의 차이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떻게든 저 멀리 떨어진 꽃등을 가까이 끌어오고 싶었다. 하지만 꽃등은 물살을 따라 계속 흘러갔고, 포기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그것을 쫓아갔다. 그러다 수심이 깊은 구간에서 꽃등이 드디어 수초에 걸렸고,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꽃등을 낚아채려 했다.
그들 중 한 아이가 기슭에서 툭 튀어나온 돌에 발을 디딘 뒤, 한 손은 다른 아이가 잡아주는 상태에서 다른 쪽 손을 꽃등을 향해 뻗었다. 하지만 꽃등을 아이가 잡아채던 순간, 아이는 괴이하게도 무언가 자신을 잡아끄는 것을 느꼈다. 이에 꽃등을 향해 손을 뻗은 아이가 물에 빠져버렸고, 뒤에서 한쪽 손을 잡아주던 다른 아이마저 물에 빠질 뻔했다.
물에 빠진 아이는 수초에 의해 발이 깊이 묶여서, 수영을 할 줄 알았는데도 연거푸 물을 삼키고 있었다. 강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이가 눈을 뜨고 수면 아래를 내려다보자, 머리가 징그러울 정도로 길고 온몸이 퉁퉁 부은 형체가 보였다. 이에 겁을 집어먹고 공황 상태가 된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 허우적댔다.
바로 그때, 수면 아래에서 푸른빛이 가까워지더니 뒤이어 아이에게로 진동이 전해졌다. 아이는 묶였던 발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더니, 엉덩이 밑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받쳐 올리고는 수면 위로 들어 올려 주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그렇게 무언가에 탄 채로 기슭까지 실려 왔고, 기다리던 친우들이 아이를 뭍으로 끌어 올려 주어 아이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자 아이가 사는 마을 사람들, 그중에서도 노인들은 아이가 물귀신을 만났는데 춘목강 강신의 도움으로 살았다고 믿었다. 아이의 부모가 평상시에도 강신을 모시는 사당에 자주 가서 향을 올리고 절을 하곤 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세 사람은 춘목강 강신이 자신을 구해줬다고 믿었고, 부모와 함께, 또는 스스로 공물을 가지고 강신 사당에 가서 감사 인사를 올렸다.
물론 이금래도 딱 그 세 사람에게만 물은 것은 아니었다. 이금래는 그 외에도 강물에 빠졌다는 많은 이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운이 좋아서 혹은 지나던 이들에게 구출되어 살아난 경우였다. 춘목강에서는 매년 수많은 이들이 물에 빠졌는데, 그중에서 강신이 구했다고 믿어지는 이들은 무척 적었다.
그 세 사람의 공통적인 진술은 바로 물 아래로 푸른빛을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살아난 이들 모두가 주위에 사람이 적었던 때, 혹은 주위에 그들을 구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던 상황에서 그런 일을 겪었었다.
다만 이금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들을 구한 자가 춘목강 강신이 아니라 이 강에 사는 신령한 물고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작년 가을, 이금래는 친척의 덕으로 청로부(靑路府) 안달현(安達縣)의 부호인 위(衛)씨 집안의 축하연에 참석했다가, 위씨 집안이 사당에 나무로 조각한 잉어상을 모시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그가 위씨 집안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위씨 집안 사람들은 잉어가 아니라 청어라고 말해주면서도 왜 물고기를 사당에 모시고 있는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후에 연회 자리에서 위씨 집안과 관계가 친밀한 한 노인이 이금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바로 위씨 집안 둘째가 10~20년 전쯤에 기이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춘목강의 한 신령한 물고기가 술에 취해 강물에 빠진 둘째의 목숨을 구해주었고, 후에 안개 낀 길목에서 한 선인(仙人)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선인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그 노인도 잘 몰랐던지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 그는 선인이 당부한 말대로 따랐고, 위씨 집안 사당에서는 청어상을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이금래는 안달현의 위씨 집안이 그간 계속 순풍에 돛단 듯이 가세(家勢)가 커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방금 들은 이야기가 이와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는 춘혜부 부성에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춘목강에 빠졌다가 강신 덕에 목숨을 구한 이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금래는 직접 물에 빠졌다가 목숨을 구한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위씨 집안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점점 이 무모한 계획을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마침 이금래는 춘혜부에 한 이름난 법사(法師)가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소문으로는 도성의 고관 귀족들도 그자를 찾아가 경외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금래는 요전번에 법사를 찾아가 부귀해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자는 자신은 일개 수선자(修仙者)일 뿐이라며 이금래를 도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간 이금래가 자신의 ‘성의’를 내밀며 신령한 물고기에 대해 말한 뒤 도움을 청하자, 그 법사는 그에게 성의를 받았으니 어쩔 수 없겠다며 부적 한 장을 건네며 여러 가지로 당부해 주었다.
그래서 수영도 잘하는 이금래가 지금 이 강물에서 이렇게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었다.
* * *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 물에 사람이 빠졌어요……!”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춘목강의 평화롭고 고요한 밤 풍경을 깨뜨렸다. 강물에 빠진 이금래는 더욱 심하게 허우적대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는 힘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이미 몇 번 물을 삼킨 뒤였다.
비록 봄이라고는 하지만 날씨가 여전히 쌀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옷을 두껍게 입고 다녔다. 이에 이금래는 옷을 입고 물에 뛰어든 것이 이토록 자신을 힘 빠지게 할 줄 몰랐다. 마치 옷이 아니라 철근을 매달고 있는 것 같았다.
강물은 얼음처럼 차가운 데다 밤바람마저 불어와 춘목강에는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이에 이금래는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도 떨림이 묻어났다.
“더, 더 소리 질러, 빨리…….”
“네네! 누가 좀 와주세요! 사람 살려!”
여인이 젖 먹던 힘을 짜내 소리치자, 먼 곳에 있던 등롱을 내건 배 한 척이 방향을 돌려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이금래의 시야에 보였다. 다만 그 거리가 너무 멀어 보였다.
촤아앗……!
“어푸……! 읍!”
손발마저 얼어붙은 이금래는 더욱 힘을 내서 물을 휘저었는데, 물에 푹 젖은 옷은 그 무게가 마치 철근처럼 느껴졌다.
“컥……! 켁켁! 읍…….”
다시 몇 번이나 물을 마시게 된 이금래는 마침내 더는 버티지 못할 것임을 느꼈다.
“안, 안 되겠다……. 올라가야겠어, 나, 날 끌어 올려라!”
이금래가 온 힘을 다해 헤엄쳐 화방으로 다가가면서 힘껏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힘이 빠진 사내가 물 위로 뻗을 수 있는 높이는 한계가 있었고, 화방의 뱃전도 그리 낮은 편이 아니라 그곳에 이금래의 손은 닿지 못했다. 아무리 이금래가 손을 뻗어도 미끄러운 선체 바닥과 뱃전만 만지게 될 뿐이었다.
“소옥(小玉)아, 빨리, 빨리 좀 끌어당겨 보아라!”
이금래의 머리는 이미 때때로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는 중이었고, 동시에 이금래는 쉼 없이 손을 휘젓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껴야 할 이금래의 체력은 뚝뚝 소모되었다.
“네? 손을 잡으세요, 제 손!”
배 위에 서 있던 여인도 이금래의 모습을 보아하니 지금 상황이 더는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강물이 무서웠으므로 배 안에서 한껏 몸을 구부리고서 뱃전을 꼭 움켜쥔 뒤 한쪽 손만 밖으로 뻗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손은 몇 번 스쳐 지났지만 결국 두 손은 맞잡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장대를 써, 배 안의 장대!”
이금래에게는 이제 더는 부릴 여유가 없었고, 여인은 점점 더 공포에 질려 한쪽에 기대놓은 대나무 장대를 들어 올려 겨우 이금래가 있는 방향으로 뻗었다. 하지만 구명줄을 얻었다고 생각한 이금래가 힘껏 장대를 끌어당기는 바람에, 이금래와 함께 물에 빠질까 놀란 여인이 장대를 끌어당기던 손을 놓고 말았다.
이에 물에서 겨우 몸을 일으킨 이금래는 다시 물밑으로 풍덩 빠졌다. 그러면서 이금래는 순식간에 강물을 잔뜩 먹었고,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체력도 거의 소진한 참이었다.
이금래는 대나무 장대라도 잡고 싶었지만,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만한 부력이 충분치 않았다.
“빨리, 던져, 식탁이나 의자……. 이, 이제 안 될 것 같아…….”
이금래는 이제 정말로 공포에 질렸고, 제대로 된 문장을 뱉을 만한 정신도 없었다.
그러자 여인은 물에 빠진 남자보다 더욱 경황없는 얼굴로 선실 안으로 뛰어 들어간 뒤, 걸상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들고나왔다.
여인이 다급히 뱃전으로 뛰어나왔을 때, 이금래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걸상을 들고나온 것을 발견한 이금래는 다시 일말의 희망을 느꼈다. 이 시각 이금래는 무슨 신령한 물고기 같은 것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오직 저 걸상만이 자신의 구명줄이었다.
“빨, 빨리 던져…….”
여자가 서둘러 그것을 물 아래로 던지자, 걸상은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이금래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다. 그와 동시에 남자는 두 눈을 까뒤집으며 깊은 물 속으로 잠겼다.
“꺄아악! 이 공자! 이 공자! 사람 살려어어어!”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여인이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는 강물에 파도가 치는 소리보다 몇 배나 컸을 정도였다.
한편, 이마에 걸상을 얻어맞던 찰나 이금래는 속으로 이 말을 떠올렸다.
‘이렇게 죽겠구나!’
하지만 그가 깊은 물 속으로 잠긴 뒤 얼마 되지 않아 푸른빛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그를 천천히 수면 위로 올렸다.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데다 온몸이 흠뻑 젖은 남자를 배 위에 있는 여인이 끌어올릴 방도는 없었다. 그러다가 ‘촤앗!’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더니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금래가 화방 위로 내던져졌다.
“이 공자, 이 공자!”
여인은 잠잠해지는 수면을 잠시 지켜보다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이금래에게 다가와 그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컥……! 커헉…….”
이금래는 연신 물을 토했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추위에 덜덜 떨다가 본능적으로 둥글게 몸을 말았다.
* * *
한편 계연, 백제, 수중의 늙은 거북은 모두 그 방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수면 아래로 강청어가 사람을 구한 뒤 이쪽을 향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하하, 그야말로 한바탕 소란이 따로 없군.”
계연이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