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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440화 (440/892)

440화. 그래도 천사(天師) 노릇은 하는 게 낫다

정신법(定身法)에 당해서 뻣뻣이 굳었다고 하여 아예 지각이 없지는 않았다. 두장생은 보고 들을 수 있었고, 심지어 호운이 앞발로 자기 얼굴을 누르는 것조차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호운에게 있어 두장생은 마치 조각상처럼 보였다.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얼어버린 두장생과 놀라서 뻣뻣이 긴장한 왕소에게 다가간 뒤 두장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렇게나 사부라고 부르지 마세요. 한 번만 더 그러면 이렇게 온몸을 굳힌 뒤에 정신 차리라고 춘목강에 던져버릴 겁니다!”

계연은 그동안 수행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이들을 만나보았는데, 그중에는 사람도 있고 귀신도 있고, 신령이나 요괴도 있었다. 하지만 두장생처럼 뻔뻔하게 들러붙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계연이 예전에 그에게 <소련>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수행계에서 기초에 속하는 술법이었고 그마저도 역사 부적과 서로 교환한 것에 불과했다. <소련> 때문에 사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면, 두장생이 사제의 예를 올려야 할 대상은 옥회산이었다.

계연은 왕소를 바라보며 탄식과 함께 이렇게 덧붙였다.

“난 네 태사부(*太師父: 스승의 스승)가 아니다.”

뒤이어 계연은 다시 두장생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술법을 풀어줄 텐데, 제가 한 말 잘 알아들으셨죠?”

두장생은 이 상태로 소리도 못 내고 고개도 끄덕이지 못했지만, 계연은 그가 이쯤이면 충분히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하고는 정신법을 풀어주었다.

쿠웅!

두장생은 몸의 자유를 되찾으며, 굳어버리기 전에 머리를 숙이려는 자세 그대로 떨어져 다시 갑판 위에 이마를 부딪쳤다.

“어이쿠……! 이건, 선생님, 이번에는 정말로 이마를 찧으려던 게 아닙니다…….”

두장생은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또 계연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마를 문질렀다. 하지만 물 위에 떠 있는 갑판 위에 머리를 부딪친 거라, 소리는 커도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게다가 항상 영기를 받아들이며 수련하는 몸이라 이마는 빨개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백제는 재미있는 구경을 하는 듯한 얼굴로 두장생을 바라보았다.

“정말 계 선생님을 아는 자였군요. 그럼 계 선생님의 실력도 어느 정도 알고 있겠군? 계 선생님의 제자를 사칭하더니, 대체 무슨 배짱으로 선생님 앞에 인사를 올리는 것이오?”

두장생처럼 언행이 가벼운 수행자는 백제에게 있어 범인(凡人)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 계 선생님이 보기에는 그보다 더할 것이다.

두장생이 조심스럽게 계연의 표정을 살핀 뒤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어느 선문에도 들지 않고 홀로 고된 수행을 이어가면서, 오래지 않아 관짝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계 선생님께서 제게 정통 법문(法門)을 담은 책을 한 권 주셨는데, 그것으로 저도 희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저는 내내 마음으로 계 선생님을 사부님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더니 백제에게 말했다.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요. 하지만 저는 두 천사의 부적 만드는 술법에 흥미를 느껴 물어보러 갔다가, <소련>과 서로 교환했을 뿐이에요. 그때 제가 제자를 받아들였을 줄은 몰랐네요.”

백제가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저 두 천사께서는 안목은 괜찮은 편이군요. 어느 가지를 타고 올라야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 한눈에 알아봤으니까요.”

두장생은 이 분위기에 감히 입을 더 열 수가 없었고, 한쪽에 있던 왕소는 무척 긴장한 상태였다. 전에는 자신의 스승인 두장생도 이미 무척 대단한 법사라고 생각했었다. 신선에 대해 아는 것도 자신들이 사당과 관련되어 있다는 정도로만 알 뿐이었다. 왕소는 신선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존재라 생각했었다.

이에 대해 두장생은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이 있어, 그는 자기 제자인 왕소에게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았고 자기가 신선이라느니 하는 말 같은 건 아예 입에 담지도 않았다. 두장생은 자신이 ‘선(仙)’ 자를 붙일 정도의 실력이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때 왕소는 백제와 계연의 존재가 무척 대단하게 느껴졌다. 전자(前者)는 춘목강의 강신으로서 이 거대한 강줄기를 다스리는 진정한 신령이었다. 후자(後者)는 그런 강신이 공손한 태도로 대하는 것을 보니 진정한 신선일 것이다.

이에 왕소는 그들을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때때로 두장생 근처에 있는 붉은 여우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요괴가 분명한데, 보아하니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 듯했다.

이때 호운은 고개를 들어 올려 두장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장생의 체온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지금은 머리를 긁적이며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이에 호운은 계연의 정신법에 호기심이 들어 뱃전 가까이 다가가 물속에 있는 자신의 친우에게 말을 걸었다.

“청청, 방금 너도 봤어? 계 선생님이 멈추라고 하니까, 저 사람이 정말로 뻣뻣이 굳어버렸어. 그리고 피부를 누르면 딱딱하고 맥박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시 살아났네!”

그러자 계연은 하마터면 목이 턱 막힐 뻔했다. 다시 살아났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신은 두장생을 죽인 적이 없었다.

뻐끔, 뻐끔……!

강청어가 다급히 물거품을 내뿜으며 호운의 말에 무어라 찬동했다.

이때 두장생과 왕소는 수중에 또 다른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눈길이 닿은 곳에 이 화방의 반 정도 되는 크기처럼 보이는 거북이 검은 등껍질을 드러내고 수면 위에 떠 있었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거대한 강청어가 뱃전 근처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왕소는 말할 것도 없었고, 두장생조차 진정한 요괴를 처음으로 목격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두려움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지만, 최대한 이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계연은 그것을 보고 웃으며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자, 모두 앉으세요. 이 일이 어찌 된 건지 자세히 이야기해 보죠.”

잠시 후, 그들은 식탁을 선실 근처 널찍한 곳으로 옮겼다. 계연과 백제가 앞뒤로 자리 잡은 뒤, 두장생과 왕소가 약간 어색한 태도로 좌우에 나눠 앉았다.

“두 천사께서도 아시겠지만, 사제 관계는 아무렇게나 인정할 수 없어요. 저희는 모두 수선자일 뿐이니 그리 긴장하지 마시고요. 그럼, 그간 어떻게 지냈고 어쩌다 이 일에 얽힌 건지 얘기해 주세요.”

“네네!”

두장생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마치 학당의 어린 제자 같았다. 두장생은 자신이 일흔이 넘은 노인이지만, 실은 눈앞의 이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이들에게서 세월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뿐이었다. 저들은 적게 잡아도 수백 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았을 수도 있을 터였다.

“선황제께서 붕어하신 후로, 새 황제께서는 비록 호기심을 가지고 계시긴 했지만, 도성에 남은 천사들을 만나보신 다음에는 그런 호기심마저 식은 듯 보였습니다. 물론 저희는 여전히 부귀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저는 바른 수행의 길을 걷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여기고 도성을 떠났습니다…….”

두장생이 간단히 서술한 그간의 사정은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향이었다. 사실 도성을 떠난 데에는 다른 천사들의 무시 때문에 더는 남아 있을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저는 도성에서 지내면서 돈을 크게 크게 쓰는 게 버릇이 되어, 그다지 많은 은자를 모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춘혜부는 춘목강과 맞닿은 유명한 부성이라 집값도 꽤 비싼 편이어서 생활이 그리 풍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두장생은 다급히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유흥을 즐기는 데에 돈을 쓴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과 강신 대인께서는 저와 같은 수행자들이 겪는 고초를 잘 모르실 테지만, 가난하면 글공부를 하고 무공은 부유한 자만 닦을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세외고인(世外高人)들은 복지(*福地: 신선이 사는 곳)나 동천(洞天)에 살아 아무런 걱정이 없겠지만 저 같은 보통의 수행자들은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처지입니다…….”

계연도 그 점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민간에 사는 ‘법사’들 중에서는 진정한 실력을 지닌 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자들도 모두 돈을 받고 사람들의 요청을 해결해 주었다. 조월국 해변에서 만난 법사가 그러했고, 두장생과 그의 세상을 떠난 스승도 모두 그런 법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몇 일들을 맡아 처리했더니, 춘혜부에 그래도 이름이 좀 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금래가 찾아와 위씨 집안의 물고기 상(像)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두장생은 강청어를 슬쩍 곁눈질하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저도 예전에 춘목강의 커다란 물고기가 사람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 덕행을 쌓은 수족(水族)일 거라 믿었고, 당연히 어떤 위해도 입힐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에 간단한 부적을 써주었는데, 이금래 그자가 정말로 성공할 줄은 저도 몰랐지요. 그렇게 강신 대인께서 찾아오시게 된 것입니다…….”

계연은 그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계연이 생각하던 것은 강청어에 관한 말이 아니라, 두장생이 조금 전에 말한 도성의 천사 몇 명에 관해서였다.

백제는 이런 사소한 일에 아무런 흥미도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차를 마실 뿐이었다. 이에 두장생과 왕소도 조용히 앉아 대답을 기다렸다.

한참 후에 계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두 천사께서는 이왕 대정국 황실의 책봉을 받았으니, 이미 대정국이라는 배에 타신 것이나 다름없어요. 게다가 그간 나라 안의 상황이 계속 좋아지고 있으니, 국가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되면 수행에도 큰 진전이 있을 거예요.”

그러자 두장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망하면 같이 망하게 되겠지요…….”

전에는 천사에 책봉될 기회가 있으니 당연히 그 칭호를 얻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원덕제가 죽은 지금 상황에서는 천사라는 칭호도 계륵(*鷄肋: 닭의 갈비뼈,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상치 못한 외부 요인이 간섭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의 형세대로라면 최소 백 년간 대정국의 국운(國運)은 흥성할 거예요. 만약 당신이 수명이 다하기 전에 진정한 수행의 정도(正道)에 들 수 있다면, 도행을 안정적으로 쌓은 후에 대정국의 천사가 되어보는 건 어떠세요?”

그러자 두장생이 미간을 찡그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돌연 고개를 들어 계연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대정의 국운이 이백여 년쯤 후에 다시 한번 흥성한다는 뜻입니까?”

계연이 웃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백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천기각에서 친 대정 땅의 기운이 대성(大盛)한다는 점괘에 대해 들어보았소?”

두장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천기각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하하, 이는 대정국 신령들 사이에서는 무슨 비밀도 아니오. 천기각은 천기(*天機: 모든 조화를 꾸미는 하늘의 기밀)를 엿보는 것으로 유명한 선문인데, 세외동천에 자리하고 있소.”

두장생은 이것이 무척 진지한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고는 조용히 경청했다.

이야기를 마저 들은 뒤에는 두장생에게는 따로 할 말이 없었고, 두장생은 두 고인의 대화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그러자 계연이 수행에 있어 곤란했던 점이 있는지 두장생에게 물어보고는 그에게 조언을 몇 마디 해준 뒤, 다시 두장생과 왕소를 돌려보냈다.

이번에 두장생이 돌아갈 때는 백제가 나서지 않고,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화방 한 척이 근처로 다가와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뱃사공은 당연히 인간의 형체로 눈속임을 한 물의 족속이었다.

두장생이 떠나자 백제가 내내 참아왔던 말을 던졌다.

“교활한 늙은이로군요!”

“하하, 저렇게 교활하고 능수능란한 사람이어야 조정에 무사히 섞일 수 있지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누가 감히 자신의 수행을 한 왕조의 흥망에 걸겠어요.”

두장생을 떠나보낸 계연은 이전에 바다에서 만난 함대를 떠올렸다. 그들은 그 나라 국사(國師)의 명을 받고 선하도를 찾아 떠나온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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