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온 하늘을 뒤덮은 노을빛
“계 선생님, 저 노인에게 쓴 술법이 대체 무엇입니까? 제게도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백제가 마침내 줄곧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술법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원리에 관해 묻는 것이니 예에 어긋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물음에 호운도 귀를 쫑긋 세웠다. 물속의 거북과 강청어도 마찬가지로 호기심을 보였다.
계연이 자신의 찻잔을 향해 손을 뻗어 가느다란 물줄기를 끌어낸 뒤 식탁 위의 젓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물줄기로 젓가락을 한 바퀴 감아 단단히 묶었다.
계연이 손을 떼자, 젓가락은 물줄기에 의해 묶여 공중에 스스로 떠 있었다.
“이것은 물줄기를 이용해 물건을 붙드는 방법인데, 흙을 이용해 사물을 땅에 묻는 것과 같이 모두 사물을 속박하는 원리이지요. 주로 형체 있는 물건에 사용되지만, 그중 어떤 신통한 술법은 무형의 대상에게도 사용될 수 있어요. 하늘, 땅, 사람 등 우리 주위를 떠도는 영성(*靈性: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을 가진 만물에 명을 따르도록 만들 수 있지요.”
백제는 눈썹을 찌푸리며 이렇게 추측했다.
“칙령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계연은 자신이 아는 사실을 다른 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말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백제는 교룡이고, 호운과 늙은 거북, 강청어는 모두 요물이니 어차피 선도(仙道)에서 전해 내려오는 칙령을 배울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래서 계연은 더욱 간단한 방식으로 설명을 했다.
“칙령은 글로 쓰는 방법과 도음(道音)으로 나누어지지만, 본질적으로는 소리로 명을 내리는 술법이에요. 글로 쓴다 해도 펼치는 자가 그것을 읽어야 하니까요. 다만 시전자의 도행이 낮은 경우에는 글로 쓰는 쪽이 더 쉬운 것뿐이죠.”
백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운을 비롯한 요괴들은 자세한 내용을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대략적인 뜻은 이해한 정도였다.
계연이 다시 이어 말했다.
“사람들은 칙령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것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는 알지 못해요. 칙령을 배우는 수선자들도 선배들에게 구전되어 오는 술법을 배우기만 할 뿐이죠.”
그러자 백제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분명 칙령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계시겠지요. 부디 제게도 그 원리를 설명해 주십시오.”
“저도 자세히 듣고 싶어요!”
호운과 백제가 생각보다 사이가 좋은 것을 보고 계연이 웃었다. 그는 예전에 <정덕보공록>에서 읽었던 내용을 생각하며 그것을 쉬운 말로 다듬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에는 모두 나름의 이치와 규칙이 있어요. 그중 하늘과 땅 사이에는 도음이 있어, 천지의 이치와 서로 보완하며 완성되는 관계를 이루고 있고요. 칙령은 바로 그러한 영력(靈力)을 끌어오는 것이에요. 그것은 하늘의 위세처럼 헤아릴 수 없고, 다루기도 쉽지 않죠.”
백제는 비록 칙령의 도(道)를 깨우치지 못했지만, 조금 전에 계연이 부린 것이 칙령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었다. 칙령이라는 것이 무척 신기하긴 하지만, 분명 백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
만약 두장생이 칙령에 의해 뻣뻣이 굳은 것이었다면, 식탁 위의 젓가락을 고정한 물줄기처럼 두장생을 묶고 있는 어떤 것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쓰신 것은 칙령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제는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자신의 의문을 드러냈다.
“맞아요, 그건 확실히 일반적인 칙령이 아니었어요. 그럼 대체 어떤 방법을 쓴 것인지 궁금하겠군요.”
백제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숭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호운과 강청어는 계연의 말을 자세히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경청했다.
자신만이 아는 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주는 것은 무척 성취감이 드는 일이었다. 이에 계연도 더 뜸 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해주었다.
“수행하는 이들은, 몸 밖에는 큰 천지가 있고, 몸 안에는 작은 천지가 있다고들 자주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만약 사람의 몸 안에 천지가 있고, 제가 ‘명을 내리는’ 것이 그 천지라면요?”
그의 말에 백제가 멍한 얼굴로 이렇게 생각했다.
‘자기 몸 안의 천지를 통제할 수 있다니? 만약 다른 이가 그것을 조종할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그 정도의 신통력이 있다면 그야말로 두려울 정도였다.
“생각처럼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 상대의 도행에 따라 영향을 받거든요. 도행이 높고 법력이 강할수록 그 영향력도 감소하지요. 만약 상대의 도행이 저를 뛰어넘는다면, 이 술법은 통하지 않을 거예요.”
백제가 뻣뻣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렇게 대단한 술법이 있다는 말은 전에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계연이 가진 몇 가지 능력은 대부분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백제의 감탄에 계연도 퍽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당연히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이건 제가 스스로 만들어낸 술법이거든요. 아마 이 세상에 저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 * *
계연을 비롯한 이들이 앉아 있는 작은 배에서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는, 작은 화방 한 척이 빠른 속도로 춘혜부 부성 방향을 향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뱃사공이 노를 젓는 힘이 무척 세고 규칙적이었기 때문에, 작은 배는 충분한 추진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배는 순식간에 부성의 나루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북적북적한 나루터의 모습과 각종 소음이 전해져왔다.
두장생은 그것을 보고서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소 또한 마찬가지로 긴장을 내려놓았다.
배가 기슭에 닿자, 두장생이 사공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사공께서는 강에 사는 수족(水族)이시지요?”
뱃사공은 길이가 길고 두꺼운 도롱이를 입고, 머리에는 커다란 두립을 썼기 때문에 그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두장생의 물음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하하, 맞습니다. 저는 강신 나리를 모시는 아랫것입니다. 지금 시각은 태양의 힘이 가장 왕성할 때라 환술(*幻術: 남의 눈을 속이는 술법)을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혹 두 분을 놀라게 할까 봐 이렇게 모습을 가렸습니다.”
그러자 두장생이 그를 향해 정중히 공수했고, 옆에 있던 왕소도 스승을 따라 인사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수족은 완벽히 둔갑하게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이 보였다.
‘아니면 이미 둔갑을 했지만, 외모가 아주 괴이한 걸까?’
“아닙니다, 저는 명을 받고 따를 뿐인걸요. 두 분 대사께서는 조심히 가십시오.”
그들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배는 이미 청석(*靑石: 푸른빛을 띤 응회암)으로 만든 계단 근처에 다다른 후였다. 두장생과 왕소는 뱃사공을 향해 다시 한번 인사한 뒤, 계단을 밟고 올라가 견고한 청석이 깔린 부두를 걸었다.
“휴우…….”
두장생이 깊은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돌리자, 방금 자신들을 데려다준 작은 배가 나루터를 떠나는 것이 두장생의 눈에 보였다. 뱃사공은 뱃머리의 방향을 돌려 저 멀리 노를 저어갔다.
“스승님, 아까 그분들은 신선이시지요?”
두장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한 분은 신령이고 한 분은 신선이지. 아깝게 되었구나. 만약 계 선생님이 내게 조금의 명분이라도 허락해 주셨다면, 우리도 얻을 것이 많았을 텐데.”
두장생은 그렇게 탄식한 후, 다시 계연의 말을 떠올리며 기분이 좋아졌다.
“자, 어서 돌아가자꾸나. 비록 계 선생님이 우리를 받아 주진 않으셨지만, 앞길을 짚어주셨지. 그리고 그건 네 사부가 수행의 돌파점을 찾느냐 아니냐에 달려있고. 나는 아직 수십 년은 더 살고 싶으니까 말이다. 아니지, 수백 년이 더 좋지!”
소매를 털어낸 두장생은 왕소를 데리고 나루터를 떠나 부성을 향해 걸어갔다. 두장생은 길을 걸으며 품 안의 주머니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원덕제가 하사한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원형 금패(金牌)였다. 이 금패는 ‘천사(天師) 금령(金令)’이라고 불렸다.
‘아직 갖고 있길 잘했어!’
두장생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수행하여 어느 정도의 경지를 돌파하고 나면, 이 무거운 금령을 녹여 금덩이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두 사람이 길을 걷던 도중, 주위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그전에도 거리는 무척 번잡하고 소란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경악하는 소리가 사람들의 목소리에 섞여서 들려왔다.
“빨리 저기 좀 봐!”
“엄마, 엄마! 하늘 좀 보세요! 아빠, 저기 좀 봐요!”
“왜? 어이쿠! 저게 뭐람?”
“헉……! 자네들 저 하늘 좀 보게!”
“아이고, 저게 뭐지, 하늘의 뜻인가?”
한 소매치기가 행인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틈을 타 사람들의 돈주머니를 잡아채 갔다. 그는 킬킬 웃으며 속으로 ‘번개나 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하늘을 보면 돈이 나오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소매치기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두장생과 왕소도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고는 마찬가지로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저게 무엇인가요?”
“나, 나도 모르겠구나…….”
상공에는 여러 갈래의 빛줄기가 먼 곳에서부터 날아와 궤적을 그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빛줄기는 노을빛 색채를 띠고 있었는데 그 수가 꽤 많았다.
두장생은 온몸의 법력을 두 눈으로 끌어올렸다. 보통 사람들은 가느다란 여러 줄기의 빛줄기가 지나가는 것만 볼 수 있었지만, 두장생은 노을빛이 하늘 저편을 완전히 물들인 것을 보았다.
* * *
그 시각, 춘목강 어디엔가 있던 계연과 백제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상공을 쳐다보았다. 하늘 저편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광채가 퍼져있었다.
“선생님, 저게 무엇입니까?”
계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하늘을 물들인 법광(法光)을 바라보았다. 보통의 백성들조차 볼 수 있다면, 이는 저들이 내뿜는 기운이 너무 강하고 술법을 부리는 이들의 수가 많기 때문이었다. 법광이 날아온 방향은 동남쪽이었고, 계주는 이미 대정국의 동남쪽에 있었다. 그보다 더 동남쪽으로 가면 맞붙어 있는 다른 주(州) 두 곳이 있었다.
하지만 그 근처에는 계연이 알기로 대단한 선문(仙門)이 없었고, 이 법광은 옥회산 방향에서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보다 더 먼 곳에서 왔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되면 방향은 먼바다 어딘가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알 수 없고, 저들이 어디서 온 자들인지도 알 수 없지만, 수선자들이라는 건 확실하군요.”
“그럼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백제가 다급히 물었다. 이런 광경을 목격했으니, 계 선생님이 아무 일도 없이 넘길 리가 없었다.
“쫓아가서 보고 올게요. 만약 제가 금방 돌아오지 않으면, 저 대신 호운을 거안소각이나 우규산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계연은 말을 마치는 동시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의 발밑에 놓인 작은 배는 약간의 흔들림도 없었다. 계연이 10여 장(약 30m) 높이의 상공으로 날아오르자, 등 뒤에 있던 넝쿨검이 그의 발밑을 향해 날아갔다.
그 후 검광(劍光)이 한번 번쩍이더니 계연이 빛과 같은 속도로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선검의 힘에다 어풍술(御風術)에 비거술(飛擧術)까지 활용한 계연은 그가 가장 빨리 날아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