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화. 선하도 수선자들
백제는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은 계연의 뒤를 쫓지 않았다. 고개를 내려 호운을 비롯한 거북과 강청어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다시 계연이 떠난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십여 초 만에 하늘을 가득 뒤덮었던 광채는 사라지고 없었다. 최소한 춘혜부의 백성들은 더 이상 그것을 보지 못했지만, 백제는 여전히 저 멀리 사라진 빛줄기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 * *
그 시각, 계연은 넝쿨검을 딛고 서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저들을 앞질러 길을 막아선 다음에 대체 무슨 일이냐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누가 봐도 저들에게는 급한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에 계연은 일단 저들을 따라잡은 다음에 천천히 거리를 좁히기로 결심했다.
노을빛이 떠 있는 고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멀었다. 하지만 계연의 속도도 무척 빨랐기 때문에, 그는 포물선이 하늘 위로 상승한 듯한 궤적을 그리며 그들을 뒤따라갔다.
적당한 거리까지 좁혀지자, 계연은 노을빛에 뒤섞인 선령(仙靈)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그의 짐작대로 수선자들이 맞았다.
눈부신 빛무리 속에서 가장 앞쪽의 여섯 갈래가 가장 눈에 띄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법력을 마치 그물처럼 뒤쪽을 향해 펼쳐, 자신들을 뒤따르는 여러 갈래의 속도를 그들과 비슷하게 맞췄다.
여섯 갈래의 노을빛은 사실 노을을 밟고 선 수선자 여섯 명이었다. 남녀가 섞인 그들은 연령대가 다양했다.
중간에 서 있던 한 노인이 별안간 무언가를 느꼈던지, 고개를 살짝 내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른 다섯 명도 그를 따라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핏 보기에는 그 방향에는 망망한 운해(雲海)만이 펼쳐져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어떤 날카로운 기운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솨앗-!
한 줄기 검광(劍光)이 구름을 뚫고 나타났다. 비록 그것이 나타난 위치는 꽤 멀었지만, 엄청난 속도로 여섯 사람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검광이 무척 빠르군. 이곳에 대단한 선문이나 이름난 수선자가 있었나?”
이쪽을 향해 오는 검광을 보고도 그들은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중간에 있던 노인이 이렇게 묻자 곁에 있던 한 여인이 대답했다.
“이곳은 운주 남쪽의 작은 나라입니다. 근처에 선문이라면 하나 있긴 한데, 이름이…… 옥회산이던가?”
“옥회산은 검으로 이름난 곳은 아니잖나?”
“하지만 그들 중 뛰어난 검술을 지닌 자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죠.”
또 다른 노인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알기로, 옥회산은 종파 같은 형태의 선문이 아닐세. 장교(掌敎)처럼 다른 이들을 이끄는 지위가 없지. 물론, 저 검세가 여러 가지에 꽃이 피어나듯 한 모습이니 옥회산의 수선자 가운데 검을 수련하는 자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말일세.”
“모두 조용히 하시오, 누군가 왔소.”
여섯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으나, 이들의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였다. 그들을 뒤따르던 다른 수선자들도 차례로 계연의 검광을 발견하고 있었다.
이때 계연이 주위는 온통 휘황찬란한 광채로 가득했다. 노을빛이 물들인 하늘은 자세히 보면 각종 색채로 나뉘어 있었다. 계연은 선검을 거둬들이고 구름으로 바꿔 타면서 싸울 뜻이 없다는 것을 표현했다.
주위의 노을빛은 계연을 방해할 뜻이 없어 보였고, 수선자들은 흰옷을 입은 계연을 오히려 호기심에 찬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계연의 기운을 읽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상대의 도행이 무척 높다는 것을 알아챘다.
계연은 이번 생에 처음으로 이토록 많은 수선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비거술을 펼칠 만한 능력의 수선자들을 말이다.
그중에는 호기심을 드러내거나 엄숙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고,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구름을 밟고 있거나 바람을 다스리는 어풍술을 사용하지 않고, 노을처럼 보이는 빛무리를 밟고 서 있었다.
‘어쩐지 그렇게나 휘황찬란한 빛을 발산하더라니.’
계연은 흰 구름을 밟고서 각기 4, 5장(약 12~15m)의 거리를 유치한 채 떨어진 여섯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그중 중간에 서 있던 노인이 계연이 채 입을 떼기도 전에 먼저 물었다.
“어디에서 오신 도우(道友)이신가? 우리는 선하도의 수사(修士)들인데, 급한 일로 길을 서두르는 중이오. 만약 우리 탓에 놀랐다면 사과드리겠소이다.”
‘휘황찬란한 노을빛이 하늘을 물들이니, 과연 선하도(仙霞島)라 불릴 만하구나.’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던 계연은 그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상대방은 그에게 아무런 예도 올리지 않았지만, 계연에게 있어 이런 인사는 거의 조건반사적인 동작이 되어버렸다.
“선하도 도우분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저는 어느 선문에도 속해있지 않으며, 성은 계씨인 이곳 현지인이에요. 아래에서 차를 마시다가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왔습니다. 만약 괜찮으시다면 제게도 무슨 일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현지인이라는 말은 계연만 쓰는 단어겠지만, 선하도 수사들은 그런 사소한 단어에 연연하지 않았다. 계연의 도행이 꿰뚫어 볼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거동에도 기품이 묻어나는 것을 보고, 그들 중 한 여인이 그에게 예를 올린 뒤 대답했다.
“저희 선하도의 한 분파가 살기(*煞氣: 사람을 해치는 독하고 모진 기운)가 새어 나오는 지맥(地脈)을 발견하여, 그곳을 봉하려다가 요괴와 마귀들을 맞닥뜨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들과 한창 맞붙는 중이라, 저희가 이렇게 급히 달려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먼 곳인가요?”
계연이 이렇게 묻자, 선하도 수사들은 다시 한번 계연을 자세히 살폈다. 상대의 법력도 알 수 없고 상대에게서는 신광(神光)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온몸에 흐르는 깨끗하고 온화한 기운이 그가 정도(正道)를 닦는 수선자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여기서 십여만 리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꽤 멀지요.”
계연은 춘혜부와 춘목강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곧 결정을 내렸다. 사명감 때문이든 호기심 때문이든, 이런 기회는 흔히 맞닥뜨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연은 곧 이렇게 대답했다.
“같은 선도(仙道)를 닦는 도우들이 지맥에서 나오는 살기를 봉하려다가 요마(妖魔)에게 공격을 당한다니, 만약 허락해 주신다면 저도 가서 돕고 싶군요. 약간의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선하도의 여섯 수사는 서로 눈짓을 교환하기도 하고, 계연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했다. 그들의 시선은 계연의 뒤에 자리한 영성(靈性)이 넘치는 선검에도 머물렀다.
그는 한눈에 봐도 검을 다루는 수선자임이 분명했고, 게다가 그 실력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선검이 있다면 이 수선자의 살상력도 무척 강할 것이다.
선하도 수사들은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이왕 이 도우가 이런 호의를 내미니 따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이도 또 하나의 선연(善緣)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결국 중간에 서 있던 노인이 계연에게 예를 올리며 대답했다.
“이왕 도우께서 호의를 베푸셨으니, 그럼 저희를 따라 함께 가시지요!”
그가 계연에게 인사하자, 다른 다섯 명의 수사들도 계연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중 유학자처럼 보이는 한 남자는 자신의 옷차림이 계연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끼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도우께서도 이 빛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하광진(霞光陣)에 들어올 때 느껴지는 힘에 저항하시면 안 됩니다.”
계연이 내심 깜짝 놀랐다. 이 수선자들은 이런 순간에도 진법을 펼쳐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을 날면서도 진을 펼칠 수 있다니, 과연 비범한 자들이었다.
“하하, 저는 원래도 그럴 뜻이 없었는데요.”
계연이 웃으며 대꾸한 뒤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노을빛이 계연을 훑고 지나갔고, 계연은 맑은 바람이 얼굴에 닿는 듯한 느낌 말고는 아무런 이상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계연은 유학자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을 곁에 가서 섰다.
다른 이들은 계연이 이토록 간단히 하광진에 들어오고, 아무런 이상 반응도 보이지 않자 드디어 경계심을 내려놓고 다시 계연을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광진의 범위에 들어온 계연은 이 방법이 구름을 모는 것보다 훨씬 힘이 적게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 많은 법력을 쓰지 않아도 안정적이고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것이야말로 당연한 일이었다. 선하도의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의 분파를 지원하러 가는 것인데, 하늘을 나는 데에 법력을 다 써 버리면 어떻게 요마들을 상대하겠는가?
어쨌든 하광진이 계연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다른 수선자들은 경계심을 내려놓았고, 뒤쪽에 있는 다른 수선자들은 새로 합류한 수선자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소곤거리기만 할 뿐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고, 대열은 다시 처음과 같은 상태를 회복하여 길을 서둘렀다.
계연의 옆에 있던 유학자 차림의 남자가 그를 향해 살짝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말했다.
“저는 선하도의 상역(常易)이라 합니다. 이왕 저희는 옷차림도 비슷하니, 도우라고 부르지 않고 계 선생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러자 계연도 그를 향해 공수하며 대답했다.
“저는 계연이라 합니다. 어차피 저를 아는 분들은 모두 저를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그러자 상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계연의 등 뒤에 자리한 넝쿨검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계 선생님 뒤에 있는 것은 영험한 힘이 담긴 선검이군요?”
넝쿨검이 각도를 바꿔 등 뒤에서 살짝 움직였고, 계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선검의 자루에는 넝쿨이 감겨 있었고, 그 끝에는 새순이 돋아나 있었다. 검신 위에도 약간의 넝쿨이 자라고 있었는데, 예기(*銳氣: 날카로운 기운)는 모두 안으로 갈무리한 상태였다. 선검은 푸르고 싱싱하여 생기가 무한히 넘쳐흐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는 어쨌든 선검이었으므로, 이렇게 조금도 검기(劍氣)를 드러내지 않을수록 일단 검집에서 나오면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그간 선하도의 위명(偉名)을 들어왔었는데,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어요. 오늘은 제가 운이 좋았네요.”
계연도 이참에 그간 궁금했던 선하도의 일에 대해 질문했다.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가끔가다 다른 수선자들이 두어 마디 끼어들기도 하면서 그들은 서로 안면을 익혔다.
계연처럼 도행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준의 선인이, 몸담은 문파도 없이 속세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황당무계한 일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선하도 수사들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계연이 이런 말을 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선하도 수사들이 놀랐던 것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어쩌다 상역은 계연의 두 눈이 실명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믿지 못했던 그들은 계연의 확인까지 거쳤다. 이는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각종 수단을 이용하면 실명한 눈을 되돌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계연의 두 눈이 여전히 멀어있다는 것은, 어떤 불가항력의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계연은 앞에 서 있던 여섯 사람이 선하도의 여섯 장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이번에 이끌고 가는 수사들은 총 3백여 명으로, 수선자들의 무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였다. 더욱이 그들은 선하도의 수선자들이니, 각각의 실력이 모두 범상치 않을 터였다.
계연 때문인지 선하도 수사들은 곧이어 하늘을 뒤덮는 노을빛을 가리는 술법을 펼쳤다. 비록 그 빛 안에 들어있는 계연은 여전히 그 휘황한 빛을 볼 수 있었지만, 지면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