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화. 요마들의 습격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최고 속도로 비행하니, 발아래로 국가며 도시가 휙휙 지나갔다. 약 10일 후, 운주의 동북부에 도착한 이들의 전방에 거대한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때는 아직 분명히 대낮이었는데도, 산맥은 별도 달도 없는 완전한 암흑에 뒤덮여 있었다.
어두컴컴한 산맥 깊은 곳에서, 은은한 빛이 반짝이는 것이 수선자들의 눈에 보였다.
“바로 저곳이다.”
우두머리 장로가 엄숙한 얼굴로 말한 뒤 계연을 향해 이렇게 부탁했다.
“계 선생, 선검의 힘을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부디 저 짙은 안개를 갈라내 주십시오!”
“물론이에요.”
계연은 이미 오른손으로 넝쿨검을 쥐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자 검집 위의 칙령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장(*藏: 감추다)’ 자가 빛을 잃었다.
챙-!
검명(劍鳴)이 울리는 동시에, 작열하는 듯한 하얀 검광이 끝없이 날카로운 검기와 함께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안개를 베어나갔다.
검광이 지나는 곳의 검은 안개가 눈이 녹듯이 좌우로 갈라졌다.
“다들, 나를 따라 요괴와 마귀를 처치하라!”
다음 순간, 노을빛이 환하게 터져 나오며 산맥을 향해 날아갔다.
검을 뽑아 바로 휘두르면 선하도 분파의 수사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 계연이 휘두른 검광(劍光)은 사실 산맥 가까이 닿지 않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주목적은 안개를 가르며 아래쪽의 요괴와 마귀들을 기선제압 하는 것이었고, 그와 동시에 발이 묶인 수선자들에게 선하도에서 지원군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 * *
산맥 깊숙한 곳에서는 요괴와 마귀들이 날뛰며 수선자들과 대립하고 있었고, 길게 찢긴 거대한 균열에서는 독살(毒煞)스러운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 주위를 뒤덮은 검은 안개의 원인에는 요마(妖魔)가 내뿜는 요기와 마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지맥에서 새어 나오는 연기가 차지는 비중이 더 컸다.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를 균열의 좌우 양쪽에 걸쳐 거대한 매화진(梅花陣)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총 12개 지점이 각각 빛을 내뿜었는데, 지점마다 서너 명의 수선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법력으로 진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들은 진법 안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지맥에서 나오는 살기를 억제하는 중이었다.
그 주위로 부서진 돌가루와 밑동이 꺾인 나무, 그리고 울퉁불퉁하게 파인 땅이 있었다. 그중에는 불에 그을린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었고, 얼음 알갱이처럼 단단히 뭉쳐져 있는 곳도 있었다. 또한 각종 요마의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었는데, 그들은 불에 타죽거나 머리가 잘려져 있는 등 보기만 해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주위에는 귀신의 곡성(哭聲)이나 늑대 울음 같은 것이 들려왔고, 요괴들이 만들어내는 검은 바람과 비명이 섞여 무척 혼잡하고 음산했다.
쿠구궁……!
그 순간 작은 산봉우리 하나가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털이 숭숭 난 거대하고 날카로운 짐승의 발이 정상에 있던 거석(巨石)을 매화진 쪽으로 날려 보냈다.
휘익-!
펑……!
날아온 돌은 매화진에 부딪힌 후 산산이 폭발했지만, 매화진은 단단한 벽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만 중간에 앉아 있던 몇몇 수사가 눈썹을 찌푸렸을 뿐이었다.
“스승님, 저놈들은 왜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건가요? 죽게 될까 봐 겁이 나서 그런 건가요?”
매화진 중심에 있던 젊은 수사가 곁에 있던 스승에게 물었다. 그러자 스승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아니다. 이전에 우리와 고전을 치르고 목숨을 잃은 요마들은 그리 강한 축에 들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놈들로 하여금 우리의 법력을 소모하게 한 것이지. 이곳의 지맥(地脈)은 살기와 독성이 너무 강해서, 이를 이용해 억지로 실력을 끌어올려 보려는 요마들조차 이런 환경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다. 그러니 우리가 진을 펼쳐 살기를 억누르는 것은, 적당한 정도가 될 때까지는 저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셈이다.”
“네?!”
수사는 믿지 못할 만큼 충격적인 사실에 가부좌와 결인(*結印: 중이나 도사가 수행할 때 손가락 끝을 이리저리 맞붙이는 형식) 하던 것을 풀고 자리에서 곧장 일어날 뻔했다.
“아하하하……! 하하하하! 저 선장(仙長)이 그걸 꿰뚫어 볼 줄은 몰랐는걸, 하하하…….”
“하하하하…….”
“헤헤헤…….”
“아하하하!”
하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한 산간에 별안간 귀를 찌를 듯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수행이 얕은 수사들의 상태가 약간 불안정해졌다.
“아하하하……! 너희가 여기서 진법을 믿고 등껍질 안에 움츠린 거북처럼 피해 있는 동안, 너희 산문(山門)에 남아 있던 수사들은 전부 죽었다!”
“쌓은 수행이 좀 약하긴 했지만, 선령(仙靈)의 기운을 갖고 있어 무척 몸보신이 되던걸!”
“맞아, 특히 그 동자(童子)들이 말이야……. 아주 부드러웠지. 그야말로 보약이던데!”
“하하하하…….”
요마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자, 수사 대부분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둘러 바깥 세계와의 연결을 차단했다.
“천벌을 받을 놈들!”
수사 하나가 분을 참지 못하고 낮게 읊조렸다. 이들은 바깥에 얼마나 많은 요마가 몰려있는지는 알 수 없었고, 진법으로 억눌린 이 주위의 독기가 주변보다 더 진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요마들과 싸우는 것과 독기에 오래 노출되는 것 모두 무척 위험한 일로, 어느 것을 택하든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의 산문이 정말로 모두 해를 입었을지라도 이들은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흥, 마음껏 웃어라. 오만방자한 놈들…….”
매화진 안에 앉아 있던 한 수사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바깥의 요마들은 수도 많았지만, 정말 대단한 것들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은 상태였다.
원래는 지맥에서 균열이 생긴다 해도 이렇게 많은 요마가 몰려올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저런 대단한 수행을 가진 것들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수사들은 아직 완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은 상태였다. 저 요마들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 자신들의 작은 산문은 사실 선하도의 분파였던 것이다.
비록 이 깊은 산속에 단절되어 있고, 산문에 남은 이들은 모두 죽었을지라도, 자신들은 부적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선하도에 자신들의 위험을 알린 상태였다. 비록 자신들이 모두 죽더라도, 선하도에서는 자신들의 복수를 해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야 했다!
* * *
근처의 한 높다란 산봉우리 위에는 검은 연기에 휩싸인 존재가 서 있었다. 외형은 준수한 외모의 관리처럼 생겼는데, 피부부터 옷차림, 얼굴 생김새가 모두 단정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괴이한 음산함이 느껴졌다. 그의 곁에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주위의 다른 산봉우리 위에도 요괴가 둔갑한 형태의 사람들이 적잖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선인(仙人)이라는 놈들 꽤 침착한데?”
“하하, 수선자들은 신체와 마음을 모두 수양하는 자들이니까. 저들이 아무리 작은 문파라지만, 어떻게 우리의 몇 마디로 저들의 진법을 뒤흔들 수 있겠어? 저들은 자기들의 산문이 괜찮을 거라며 애써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정말로 모두 죽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얼마간은 더 지탱할 수 있을걸.”
“하하하하, 저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를 도와 저들이 지맥을 안정시키고 있으니까 말이야. 저 살기가 조금 누그러지면 그때 죽여도 되고.”
주위의 요마들이 수선자들을 한껏 조롱하고 있을 때, 중간에 서 있던 준수한 외모의 마두(*魔頭: 요괴, 마귀 등의 우두머리)가 미소 짓는 얼굴을 한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무슨 기회?”
옆 사람이 이렇게 묻자 그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반격할 기회. 저렇게 법력을 소모하며 기다리느니, 차라리 목숨을 걸고 우리와 싸우는 게 낫지. 저들이 비록 세상사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꽤 혈기가 넘치는 이들이거든.”
“기회라니, 하하! 저들에게 무슨 기회가 있다고?”
그의 말에 둔갑한 요물이 웃으며 한껏 조롱했다.
“이 주변 수천 리 내에는 아무런 선문(仙門)도 없어. 이 산의 산신도 저 균열을 처리해보려다가 우리한테 죽었잖아? 게다가 저들을 도울 만한 다른 수선자들도 이 근처에는 없어. 그러니 무슨 기회가 있다는 거야?”
준수한 외양을 한 남자의 두 눈에 음산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하하하, 못 믿겠으면 눈 씻고 기다려 봐. 난 무척 기대하는 중이니까.”
바로 그 순간.
솨앗-!
눈부신 검광이 먼 방향에서부터 빛을 내뿜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검기(劍氣)가 거침없이 내달렸다. 검기가 지나간 주변에서 암흑이 사라지는 모습이 마치 장막이 걷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펑……! 콰과광……!
쿠웅!
쿵!
검광이 지나간 자리마다 산봉우리가 부서지며 사방으로 돌가루가 날렸다.
“아악……!”
“저게 뭐…….”
“도망쳐!”
“서둘러!”
슈욱-!
검광은 비록 수직으로 스치고 지나갔지만, 검광이 스친 범위가 넓은 데다가 속도가 무척 빨랐기 때문에 몇몇 산봉우리 위에 서 있던 요마 중 도행이 얕아 재빨리 피하지 못한 이들은 목숨을 잃었다.
한 산봉우리 위의 요마들은 거의 정면으로 날아오는 검기를 마주 보게 되었는데, 보기만 해도 뼈를 에는 듯한 한기가 느껴져 몸이 빳빳이 굳은 그들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검광이 뾰족한 봉우리를 스치고 멀리 공중으로 날아가자, 요마들은 덜덜 떨며 무릎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들은 어두컴컴한 상공의 연기를 찢고 멀리 날아간 검광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눈부신 빛무리가 상공에서 펼쳐지더니 여러 갈래의 노을빛이 날아와 어두운 연기를 몰아냈다. 그렇게 근처 산봉우리와 대지 모두 화려하고 다채로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선하도 수사들은 들어라. 이곳의 요마들은 모두 혼백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상공에 여러 갈래의 노을빛이 퍼져나갔다. 한 갈래마다 하나에서 셋 정도의 선하도 수사들이 서 있었고, 그들은 각각 불진(佛塵)을 들고 휘두르거나 법기(法器)를 꺼내 들고 신통력을 운용했다. 그러자 한순간에 법광(法光)이 주위를 뒤덮으며 조금 전의 검기가 남긴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요마들을 공격했다.
쿠르릉……!
그때 하늘이 다시 한번 어두컴컴하게 변하더니 뇌운(雷雲)이 몰려들었다.
번쩍!
꽝……!
콰직- 콰지직-!
여러 갈래의 벼락이 내리쳐 각 산봉우리를 뒤덮었다.
이에 뒤늦게 반응한 요마들은 곧바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선하도 수사들과 부딪혀 싸우기도 했다.
한편 아래쪽 지맥의 균열이 생긴 곳을 억제하던 매화진 안에서는 수사들이 기쁘고 안심한 얼굴로 하늘을 뒤덮은 번개와 노을빛을 바라보았다.
“선하도에서 드디어 와주었군!”
어느 정도 견식이 있는 요물 중, 준수한 청년의 외모를 한 마두가 얼마간 경악하는 듯한 얼굴로 노을빛과 번개가 번쩍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동해의 선하도가 오다니?”
선하도의 명성은 꽤 널리 퍼졌기 때문에, 요마 중에서는 들어본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곧바로 도망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균열에서 나오는 독과 살기를 흡수하면 수행의 관문을 돌파할 수 있었던 이들은 미친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선하도면 뭐가 어떻다고! 이곳에는 여러 마두와 대단한 요마들이 적지 않게 몰려왔어. 선하도 수사들이라도 이곳에서 살아나가진 못할걸! 쿠호오……!”
광포하기 짝이 없는 포효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 소리를 내질렀던 요물의 형체가 끝도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요기(妖氣)가 퍼져나가며 작은 언덕만 한 크기의 곰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헝……!”
거무스름한 빛에 둘러싸인 거대한 앞발이 두 갈래의 노을빛에 명중했다.
퍽……! 쿠궁!
거의 같은 순간에 울려 퍼진 두 가지 소리는, 수사 두 명이 곰의 앞발에 맞은 뒤 산봉우리에 날아가 부딪히는 소리였다.
이에 다른 수사들의 주의가 모두 이곳으로 쏠렸고, 삽시간에 여러 줄기의 벼락이 거대한 곰에게 내리꽂혔다.
콰직, 콰지직-!
쿠르릉……!
곰이 서 있던 지면 양쪽에서 돌연 흙벽이 솟아나 곰을 중간에 가두었다. 그와 동시에 연이어 떨어지는 벼락이 곰 요괴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강풍을 몰고 온 노을빛 여러 갈래가 곰을 스쳐 지나가며 곰의 살갗을 베고 뼈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