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하늘이 땅을 내리누르니 요괴가 비처럼 떨어져 내리다
우웅-!
가벼운 검명이 사방으로 퍼졌다. 선하도 수사들과 요마들은 선검이 내는 소리를 듣자마자 뼈를 에는 듯한 저릿함을 느꼈다.
깊고 무거운 검의(劍意)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선검 위에 투명한 빛이 반짝이다가 점차 스며들었다. 그렇게 의식 세계의 하늘과 구천(*九天: 가장 높은 하늘, 혹은 신소(神霄), 청소(靑霄), 벽소(碧霄), 단소(丹霄), 경소(景霄), 옥소(玉霄), 낭소(琅霄), 자소(紫霄), 태소(太霄)로 불리는 아홉 가지 하늘)이 서로 합쳐졌다.
선검에 담긴 뜻(意)과 기세(勢)가 허구와 실제 사이에서 합쳐지더니 점차 안정됐다. 선검은 하늘의 위세를 간직한 채 하늘 높이 걸려 있었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 선검을 보기만 해도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넝쿨검은 검기(劍氣)를 발산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무궁한 검의가 이미 ‘하늘’과 합쳐져 대적할 수 없는 위세를 내뿜었다. 선검은 그렇게 하늘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쿠구구궁……!
계연이 펼친 의식 세계 아래에서 온 세상이 요동치더니 땅에 금이 가고 하늘이 무너졌다. 이를 지켜보기만 해도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늘이, 무너진다……!’
수많은 요마는 두려움에 숨을 멈추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걸려 있던 선검이 먼저 떨어졌고, 그 위세를 뒤이어 하늘이 이어받았다.
머리 위를 짓누르는 듯한 강렬한 중압감이 매 순간 더욱 강렬해졌다.
요마들은 전율에 떨며 온몸의 법력과 마기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무거운 무언가에 눌린 것처럼 연이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다른 요마보다 좀 더 실력이 대단한 이들도 더는 하늘로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계속 아래로 고도를 낮췄다. 그들은 낙하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면서, 법력을 이용해 천지가 맞닿으려는 틈 사이에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하늘은 끝없이 넓고, 땅은 끝없이 넓으니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요마는 몇 리 정도 날다가 자신이 이미 충분히 멀리 날아왔다고 여기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무너져 내리는 하늘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낮게, 더 낮게 날던 이들은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부근에 있는 산등성이에 쾅 하고 부딪혔다.
힘이 약한 이들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두려움에 떨다 검의에 의해 숨이 끊어졌고, 그들은 땅에 닿기도 전에 이미 시체가 돼버렸다. 그런 이들은 혼백조차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진 상태였는데, 죽기 전에 자신들이 이미 선검에 의해 목이 떨어졌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선검이 모습을 드러내 하늘이 무너지자, 요괴가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구나. 》
이는 계연이 맨 처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天傾)’ 검세(劍勢)를 내보인 후로 두 번째로 펼친 것이었다. 검객의 검이 가장 위압적인 순간은 언제나 검이 아직 검집에서 뽑히기 직전이었다. 선검의 검세도 그 이치와 일맥상통했다. 선검은 이미 모든 이의 마음속에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계연의 의식 세계와 이어진 선검은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일검은 선하도 수사들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위세와 압박감에 수사들은 노을빛을 유지하지 못하고 산머리에 분분히 내려앉았다.
이에 다른 수사들을 구하기 위해 다급히 날아오던 선하도 장로들조차 어쩔 수 없이 부근의 산 정상에 내려선 채, 경악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바로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이로구나…….’
그 중심의 산봉우리 위에 서 있던 계연은 온몸의 법력이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현재 의식 세계 안의 단로에서는 삼매진화가 강렬하게 불타올랐는데, 그것은 미친 듯이 새로운 단기(丹氣)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기는 끊임없이 금교(金橋)를 통해 빠져나가 새로운 법력으로 바뀌었다.
계연의 의식 세계가 강한 만큼 선검의 검의도 그만큼 강력해졌다. 그렇기에 계연은 이번에 정말로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붓고 있었다. 게다가 계연은 천지묘법을 완성해낸 자신의 검이 이전과는 다르리라고 믿고 있었다.
이전에는 한 신령을 향해 선검을 휘둘렀고, 오늘은 수천수만의 요마를 검세로 내리눌렀다.
게다가 하늘에서 수없이 떨어져 내리는 요마를 바라보고 있으니, 계연의 마음에도 호방한 감정이 생겨났다. 수선자들은 전장의 기백과 강호의 호방함을 갖고 있다는 말처럼, 오래 표정 변화가 없던 계연의 얼굴에 오기와 차가운 웃음이 어렸다.
계연의 검지가 아래로 조금씩 내려올수록 검세를 대면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열 배로 늘어났다. 이들은 모두 파멸에 다다랐다는 절망에 휩싸였다. 하늘을 부숴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절대로 이 검세에 대적할 수 없었다.
상처를 입지도 않고 사지도 완전했지만, 요마들의 얼굴과 눈빛은 모두 까맣게 죽어 있었다. 이들의 마음은 이미 선검에 당한 것이다.
계연이 생각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의식 세계와 동화된 채 무궁한 하늘의 위세를 가지고 떨어져 내리는 저 검이 지맥의 살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늘을 향해 소용돌이치던 독을 품은 살기는 선검에게서 압박감을 느낀 것처럼 점차 기세를 줄이더니 심지어는 균열 안쪽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산맥 전체에 가득히 깔렸던 살기는 떨어져 내리는 요마와 마찬가지로 지면으로 사라졌고, 그로 인해 다시 사방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법력을 소진한 계연은 산봉우리 위 땅바닥에 천천히 앉았다. 선검은 하늘의 위세를 빌리면서 요마들의 마음만을 공격하고 있었다.
위압감과 공포감을 유지하기 위해 계연은 선검이 실질적으로 공격에 나서도록 하지 않았다. 이 기세를 빌려 수많은 요마를 가볍게 처리할 수는 있겠지만, 그 후부터는 하락세에 접어들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저들을 공격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넝쿨검에게 공격을 명했다가는 천지화생의 술법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땅에 떨어진 요마 중 어느 정도 도행이 높은 이들은 다만 놀라 움직이지 못할 뿐 아직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계연은 법력 소모가 심해 주저앉으면서도, 절대 자리에 눕지 않고 왼쪽 다리는 편하게 뻗고 오른 다리를 구부린 채로 앉았다. 그러고는 무릎 위에 오른손을 올려놓고 머리를 받쳤다.
그는 남은 법력을 짜내 왼쪽 소매 안에서 비취색의 천두호(千斗壺)를 꺼냈다. 그러고는 마개를 열어 곧바로 입안으로 용연향을 쏟아부었다.
바로 그때, 넝쿨검이 날아와 ‘챙’하는 소리와 함께 검집으로 들어간 후,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계연의 앞쪽에 머물렀다.
검을 뽑으니 하늘이 무너지고, 산에 앉아 검을 거둬들이니 호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계연은 그렇게 소탈한 태도로 앉아 술을 마시면서 주위의 풍경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굽이진 산맥 너머 백 리(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일찍이 도망친 요마들이 있었다. 이들은 계연이 펼친 ‘하늘도 놀라게 할 정도의 검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바라보지 않더라도, 저토록 어마어마한 규모의 술법이 펼쳐지는데 이것이 눈에 띄지 않기도 어려웠다.
그중에는 북목(北木)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북마(北魔)라고도 불리는 마두(魔頭)도 있었다. 그는 가장 빨리 저곳에서 빠져나온 이들 중 하나였고, 그의 주위에는 적지 않은 수의 마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검망(劍鋩), 무궁무진한 검의(劍意)가 머리를 짓누르는 압박감과 찬란한 빛을 내뿜는 검광(劍光)까지.
이건 지켜보는 이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수준의 술법이었다.
저쪽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던 북마를 비롯한 마두들은 선검이 하늘과 함께 떨어져 내리자마자 빛으로 변해 재빨리 도망쳤다. 물론 지면에서부터 최대한 낮게 비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감각이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탓에, 그들은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하도의 진법에서 빠져나온 뒤 멀리 떨어진 곳에 피해 있었으므로 저 선검이 자신들을 노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공포를 느꼈다. 만약 자신들이 아직 저 산맥 안에 있었다면 도대체 어떤 감각이었을까?
“두목의 선견지명으로 미리 빠져나와 정말 다행입니다. 아니었으면 우리도 지금 저 선검에 당했을 겁니다…….”
북마는 그 말에 다시금 두려움이 밀려왔다. 비록 자신이 변화무쌍한 마두인데다 대단한 수행을 지녔다고 자부하지만, 누가 감히 저런 술법에 사지 멀쩡히 빠져나올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선검을 저 정도로 다루는 신통함을 지녔으니, 저자는 진선(眞仙)이 아닐까요?”
그러자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북마가 이렇게 대답했다.
“요마가 저리도 많고 그중 대단한 놈들도 부지기수인데, 저렇게 깔끔하게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니 아마 보통 진선이 아닐 거다!”
선검이 떨어지자 선하도의 수사들은 모두 산등성이에 내려앉았다. 뒤이어 눈부신 노을빛이 점차 가라앉자, 먼 곳에서도 수사들이 만들던 진법이 작동을 멈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저 선검은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진선에 다다른 고인은 분명 대단한 존재였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쉽게 요마를 무찌를 정도의 진선은 없었다. 게다가 수적으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번 선검의 공격은 오로지 검세(劍勢)에서만 비롯되었기 때문에, 요마들은 그에 맞설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저자는 진선 중에서도 대단한 실력을 지닌 것이 분명했고, 다른 진선들과 비교하면 그 수준 차이 또한 엄청날 것이다.
“두목, 저 검이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이곳에 있던 마두들은 어느 정도 식견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드는 와중에도 검의 위세만으로 하늘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자신의 본능과 감각이 하늘이 정말로 무너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성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검이 가진 위세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크고 무거운 탓이었다.
저런 기세의 검이 정말로 떨어져 내렸다면, 저 산맥 혹은 최소한 저 구역 전체는 그대로 사라졌어야 했다. 하지만 멀리서부터 지켜보니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곁에 있던 마두가 이렇게 묻자, 북마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떨어지지 않았다고? 아니, 저 일검(一劍)은 이미 떨어진 거다. 힘을 다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떨어졌지. 바로 여기에…….”
이렇게 말하는 동시에 그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의 말을 알아들은 마두들은 그제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북마는 다시 계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힘을 다 쓸 필요도 없지……. 하하! 저 기세만으로도 요마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으니…….”
그러자 곁에 있던 한 마두가 우려에 찬 얼굴로 말했다.
“두목, 균열이 벌어진 저쪽은 이제 상황이 일단락된 것 같은데요. 저리 대단한 선인(仙人)이 있으니, 여태 살아있는 놈들은 곧 목숨을 잃을 겁니다. 저희도 어서 달아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에 북마가 즉시 제정신을 차렸다.
“그래, 어서 가자! 저자가 우리를 추격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다음 순간, 그들은 기척을 숨긴 채 마광(魔光)으로 변해 한줄기씩 사라졌다. 요행히 도망쳐 나온 다른 요마들도 하늘도 놀라게 할 정도의 검세에 놀라 잠시 그쪽을 지켜보다가, 전보다 더욱 철저히 기척을 숨긴 뒤 재빨리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