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50화 (450/892)

450화. 온 마을이 동원되다

안채의 방 안에서 요대구는 두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고서 쉴새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반드시 마련하겠습니다. 반드시 마련하겠습니다…….”

옆에 누워있던 요대구의 부인은 남편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나무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보며 해가 뜨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부인은 몸을 돌려 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계속 “반드시 마련하겠다”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깨우기 위해 두어 번 남편의 몸을 흔들다가, 남편의 온몸이 뻣뻣하게 긴장한 채 땀에 흠뻑 젖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 아버지! 아이 아버지!”

부인은 침상에서 일어나 앉아 요대구를 세게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요대구는 ‘어이쿠’하며 잠에서 퍼뜩 깨어났다.

“헉……. 허억…….”

요대구는 숨을 몰아쉬며 멍한 눈으로 방 안을 살피다가 부인을 보았다.

“아이 아버지, 당신 악몽이라도 꿨어요? 계속 반드시 마련하겠다느니 어쩐다느니 소리만 치고……. 깜짝 놀랐잖아요!”

부인이 머리맡에 있던 손수건으로 요대구의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요대구는 아내의 손에서 손수건을 넘겨받아 얼굴을 닦았다. 그는 그제야 자기 얼굴과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흘린 땀 때문에 요도 축축했다.

“악몽?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요대구는 꿈의 내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귀신을 만났지만, 모두 좋은 이들이었다. 그러니 악몽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꿈에서 들은 내용은 악몽보다 더 두려웠다.

요대구는 퍼뜩 무언가 떠오른 듯이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이 엄마, 혹시 실력 좋은 지장(*紙匠: 제사나 장례 풍속 행사에서 태우기 위해 종이 인형·종이 말·저택 등의 지물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이 어디 있는지 아오?”

요대구의 물음을 듣고 요대구의 아내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마을에는 대장장이, 목수, 미장이도 있었지만 죽은 사람을 위한 물건을 만드는 지장만은 없었다.

“설마 우리 친척 중에 누가 초상이라도 났어요?”

부인이 약간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요대구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오. 내가 방금 꿈을 꿔서 그래, 꿈에서…….”

요대구는 말을 멈추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일단 가서 물 주전자 좀 가져다주시오, 내가 목이 말라서 일단 물부터 마셔야겠군.”

“그래, 물부터 마시고 말해요!”

부인은 얼른 침상에서 내려가 바깥에서 물 주전자와 잔을 들고 왔다. 하지만 그녀도 요대구처럼 지나던 길에 아들이 잘 자는지 먼저 살펴본 후, 방 안으로 돌아왔다.

“여기, 물이요.”

요대구는 아내에게 주전자와 찻잔을 받아든 후 꿀꺽꿀꺽 연이어 물을 석 잔이나 마셨다. 꿈에서와 달리 곧이어 갈증이 풀렸다.

“정신이 좀 돌아왔어요?”

“음, 이제 괜찮소!”

이때 태양이 지평선에서 완전히 떠올라 바깥이 환해졌다. 이에 요대구도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에 내가 꿈을 꿨는데…….”

그가 꿈의 내용을 아내에게 말해주자 그녀도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아무 뜻 없는 꿈일 수도 있다고 그를 위로했다.

하지만 이토록 생생한 꿈을 요대구는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죽 한 그릇에 절인 채소를 곁들여 먹고는 얼른 집을 나섰다.

그가 막 집 대문을 나서자 이웃의 장 씨가 보였다. 장 씨는 문가에 앉아 후룩후룩 죽을 떠먹고 있었다.

“어이, 장 씨. 내가 어젯밤에 꿈을 하나 꿨는데…….”

요대구는 곧바로 촌장댁으로 가려다가 입이 근질근질해서 평소 무슨 말이든 터놓고 하는 막역한 사이인 장 씨에게 꿈 내용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장 씨가 눈썹을 찌푸리며 요대구를 바라보았다.

“대구, 자네도 참. 그건 그냥 악몽일세. 그간 길에서 발견한 시신들을 묻어준 것만도 충분히 피곤한 일이었는데, 그 꿈에 따르면 제사용품을 마련해 불태워주고 제사까지 지내줘야 한다고? 우리 마을 사정도 풍족하지 않고, 사람들도 일 년 내내 밥 한 끼 배불리 못 먹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나?”

장 씨가 노파심에 요대구를 설득하려 했다. 덕을 쌓고 선행을 베푸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것도 일단 본인의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법이다.

시신을 묻어주고 나무패를 세워주는 것은 힘만 조금 들이면 할 수 있었다. 농사짓는 사내들에게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것이 힘이었다. 거기에다 기껏해야 다 떨어진 거적때기 하나 정도 드는 게 다였다.

하지만 의총에 묻힌 이들에게 제사용품을 태워주고 밥을 지어준다니? 우리도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닌가? 의총에 묻힌 시신의 수는 절대로 적지 않았다.

“아이고, 내 그런 뜻이 아닐세! 이건 모두 의총에 묻힌 귀신이 알려준 거라니까. 바깥에서는 이미 역병이 돌고 있다고 했어.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주는 건 우리 스스로를 돕는 일이기도 하네!”

그러자 장 씨가 약간 노한 기색으로 말했다.

“자네가 꿨다는 꿈 하나로 내가 자네와 함께 돈을 내서 제사상을 차려야 한단 말인가? 지장을 구하는 돈도 꽤 될 텐데!”

사람의 일생에서 혼사와 장례가 가장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드는 일이었다. 지장이 만드는 정교한 종이 공예품은 대부분 돈 좀 있는 이들이 사 가는 편이었다.

“내 말은…… 장 씨, 그 돈은 당연히 마을 전부가 내야지, 어찌 우리 두 집안으로 되겠나…….”

그 말에 장 씨의 노기가 한 번에 터져 나왔다.

“자네랑 우리 두 집안이라니? 나는 동의한 적 없네!”

장 씨는 이렇게 소리친 후 요대구를 외면하고서 죽을 퍼먹었다. 이에 요대구는 어찌할 바 모르는 얼굴로 발을 동동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휴, 촌장님을 찾아가 봐야겠어!”

그러자 요대구의 뒤통수에 대고 장 씨가 이렇게 소리쳤다.

“가게나, 촌장님은 절대 자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테니!”

자신과 사이가 좋았던 친우마저 이런 태도를 보이자, 요대구도 당연히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길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어제 꾼 꿈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요씨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래!”

얼마 전에 함께 시신을 묻어주었던 젊은이가 다급히 지나가던 요대구를 향해 인사했다. 하지만 전에는 항상 수다스러웠던 요씨 아저씨가 오늘은 간단히 대꾸만 하고는 걸음도 멈추지 않고 떠나가는 걸 보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오늘 아저씨가 왜 저러시지?”

요대구는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촌장댁으로 향했다. 촌장이 사는 곳은 토지 신당과 그리 멀지 않았다. 그는 촌장댁이 보이자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

‘비록 마을의 촌장은 사리에 밝고 경험도 풍부한데다 견식도 넓지만, 만약 촌장도 장 씨 같은 태도로 나오면 어쩌지?’

요대구가 채 좋은 방법을 떠올리기도 전에, 그를 먼저 발견한 촌장이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고 울타리를 뛰쳐나왔다. 그는 요 씨를 향해 뛰어오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요 씨! 어젯밤에 토지신께서 내 꿈에 나타나셨네! 정말일세!”

촌장은 요대구보다 더욱 흥분한 얼굴이었기 때문에, 한창 고민에 빠져있던 요대구가 깜짝 놀라 물었다.

“예?”

요대구가 멍하니 되묻자 촌장이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아이고, 그러니까 어젯밤에 말일세, 내가 아주 생생한 꿈을 꿨거든. 꿈에서 갑자기 배가 아파서 깨서는 옷을 걸치고 변소로 향하는데, 토지신께서 신당 바깥에 앉아 계시는 게 보이는 거야. 그러다 그분께서 나를 ‘방울이’라고 불렀다네! 아, 그건 내 어릴 적 이름일세. 지금은 이 마을에 내 이름을 부르기는커녕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몇 없는데…….”

촌장이 마을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자네에게만 말하는데, 토지신께서는 정말 듣던 그대로였어. 키가 무척 작았지……. 아, 참! 그분께서 얼마 후에 여기로 역귀가 올 거라고 하셨다네. 의총의 귀신들과 함께 온 힘을 다해 우리 마을을 지킬 테지만, 정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하셨지…….”

그러자 멍하니 듣고 있던 요대구가 허벅다리를 때리며 이렇게 소리쳤다.

“아이고, 촌장님! 저도 마침 그 얘기를 하려던 참입니다! 저도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의총에 묻은 혼백들이 모두 나와 우리 집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들 말로는 역귀가 곧 마을로 올 텐데, 마을 사람들을 위해 자기들이 나서 역귀와 결사 일전을 치르겠다더군요.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한데…….”

두 사람은 어젯밤 꾼 꿈 때문에 여태껏 마음이 뒤숭숭하던 차였다. 그러다 서로 만나 꿈의 내용을 확인한 뒤에는 모두 이 일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러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두 사람은 당장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자고 결론 내렸다. 촌장은 그릇에 남은 죽을 두세 입 만에 다 먹은 뒤, 징을 들고 길가로 나왔다.

댕댕댕댕-!

조용한 아침에 별안간 징을 두드리자 그들은 쉽게 마을 사람들의 주의를 단번에 끌 수 있었다.

잠시 후, 마을 중앙에 있는 타작마당에 마을 사람 거의 전부가 모여들었다. 요대구는 탁자 하나를 빌려와 촌장이 그 위로 올라가 말할 수 있도록 했다. 촌장이 이야기를 마친 뒤에는 그가 탁자 위로 올라가 자신이 꾼 꿈을 들려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원래부터 비교적 미신을 믿는 편이었다. 요대구 혼자였다면 장 씨와 같은 반응을 보였겠지만, 촌장까지 나서 그런 말을 하자 모두 놀라며 이들의 말을 쉽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군중 심리로 인해 더욱 동요한 그들은 두 사람의 꿈 얘기를 완전히 믿고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을 사람들은 결국 토지신께 물어보러 가자고 결정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은 함께 토지신당으로 향했고, 막대를 던지는 방식으로 점을 쳤다. 아무리 여러 번 던져도 결과는 계속 성효(*聖爻: 죽간을 던졌을 때 각기 다른 면이 나온 상태. 길(吉)함을 뜻함)가 나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동요하기 시작했다. 촌장과 요대구가 이를 틈 타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자 적지 않은 이들의 그들이 말에 찬성했다.

요대구와 몇몇 농사꾼이 현성으로 가서 지장을 찾아가고, 촌장은 마을에 남아 제사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백 명이 넘는 혼백에게 제삿밥을 먹이려면 열에서 스무 가구 정도는 동원되어야 했다. 게다가 이번 일은 자신들의 목숨과 관련된 일이었다. 헛꿈이라면 다행이지만, 세상일에는 만일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무척 진지한 태도로 제사상을 마련했다. 닭과 오리만 해도 3, 40 마리는 넘게 죽였으니 이는 모탄촌에 있어서는 엄청난 지출을 감내한 것이었다.

* * *

현성과 모탄촌은 대략 반나절 정도 거리였다. 요대구와 장 씨 등은 현성에 도착하여 곧바로 장례용품을 만드는 곳으로 향했다. 보통 이런 가게는 가게 주인이 바로 지장(紙匠)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도 그러했다.

모탄촌 사람들이 종이로 된 깃발과 무기를 잔뜩 주문했기 때문에, 주인장은 기쁜 와중에도 호기심이 들었다. 죽은 이에게 이런 걸 왜 태워주나 싶었지만, 어쨌든 자신으로서는 좋은 일이었으므로 굳이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그가 정중한 태도로 모탄촌 사람들을 배웅한 후 입이 귀에 걸린 채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마침 자신의 부인이 서 있었다.

“당신, 그리 웃는 걸 보니 무슨 큰 장사가 생긴 모양이구려?”

방금 나간 손님들은 아무리 봐도 여유 있는 차림새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부인은 약간 수상쩍게 여기고 있었다.

“하하, 당연하지. 모탄촌에서 깃발이랑 병기들을 잔뜩 주문하고 갔다오. 예약금도 넉넉히 줬지 뭔가.”

주인장이 손안에 든 동전 꾸러미를 보여주었다.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그러게나 말일세.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좀 까다롭긴 한데, 그 정도는 집이나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지. 쉬는 시간을 조금 줄이면 금방 만들 수 있어! 하하하…….”

“그럼 얼른 가서 만들지 않고 뭐 하시오? 가게는 내가 보면 되지!”

여주인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서 남편을 재촉했고, 그는 얼른 점포 뒤편으로 이어진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주인장은 그 농사꾼이 남긴 역병이 돌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던 말을 떠올렸다.

그동안 관아에서는 백성들 사이에 도는 소문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농사꾼도 허언을 퍼뜨려 대중을 교란한다는 죄목으로 잡혀갈까 봐서 더 길게 말하지 않은 것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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