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51화 (451/892)

451화. 오밤중의 전투 소리

간만에 현성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요대구 일행은 돈을 모아 약방에서 약재를 좀 사가기로 결심했다. 만약 정말로 역병이 퍼지기 시작하면 그때는 돈이 있어도 약을 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에 이들은 자신들이 자주 가는 약방으로 향했다. 마을에서 누군가 약이 필요하면 이들은 주로 이 제명당(濟命堂)을 이용하곤 했는데, 이곳의 주인이 바로 의원이었다. 의원은 마침 제자와 함께 약재를 분류하고 약을 포장하고 있었다.

마침 손님도 많지 않은 것을 보고 요대구와 장 씨 등의 사람들은 얼른 눈빛을 교환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조(趙) 의원님, 약을 좀 사러 왔습니다.”

그 목소리에 제명당의 주인이 뒤를 돌아보자, 그의 시야에 약방 안으로 들어오는 요대구 일행이 보였다.

요대구가 모탄촌 사람들과 함께 의총을 만든 일은 사실 꽤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다. 당연히 제명당의 주인도 그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비록 많은 이들이 요 씨를 비롯한 모탄촌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말했지만, 사람으로서 그리고 의원으로서 그는 모탄촌 사람들이 무척 도덕적인 일을 했다고 여겼다. 그래서 모탄촌 마을 사람들이 오면 좀 더 신경 써서 돌봐주고는 했다.

“아, 요 씨랑 장 씨가 왔군. 언제 성에 들어왔는가? 한동안은 마을에 머무르는 게 좋을 텐데. 바깥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으니,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좋소.”

의원의 말에 요대구가 얼른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그래서 약을 미리 좀 사 가려고요. 역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으면 좀 주십시오.”

그러자 조 의원이 약궤(*藥櫃: 약재를 넣어두는 서랍장)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침 나도 준비하는 중이었지! 그래, 얼마나 필요하시오? 음, 20명이 3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면 어떤가? 그래도 정말 역병에 걸리면 약으로는 부족하고, 꼭 나를 찾아와야 하오.”

“예, 예, 당연히 의원님 말을 들어야지요!”

요대구와 마을 사람들이 그의 말에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약을 받아든 마을 사람들은 약방을 떠나 곧바로 성 밖으로 향했다.

요대구와 장 씨 등의 일행이 마을 근처에서 모탄촌을 바라보자, 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솟는 것이 보였다.

* * *

반나절 동안 바쁘게 움직인 마을 사람들은 의총에 묻힌 혼백들에게 올릴 식사를 거의 다 마련한 뒤였다.

요대구 일행이 돌아왔을 때는 마침 해도 지지 않아 딱 좋은 시각이었다. 이에 모탄촌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제사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바구니를 들거나 수레를 이용해 준비한 음식을 의총으로 날랐다. 물론 커다란 식탁과 제사용품도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은 전부 커다란 그릇에 담겨 있었는데, 어떤 것은 탕 접시이기도 했고 어떤 것은 아예 세면용 대야이기도 했다. 음식이 너무 많아 일반 접시에 담으려면 엄청난 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야를 쓰면 간편하기도 하고 흘릴 염려도 없었다.

사십여 명의 사람들이 의총으로 모여들었고, 촌장과 요대구는 특별히 준비한 요리 몇 가지를 골라 토지신당 앞에 놓았다. 그러고는 젓가락을 놓고 술 두 잔을 따랐다.

그들은 촛대와 향로에 꽂힌 향에 모두 불을 붙인 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지신을 향해 예를 올렸다.

“토지신께 비나이다, 우리 마을을 보우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한 촌장은 다시 몸을 일으킨 뒤 입을 열었다.

“자, 가져온 식탁을 전부 저쪽으로 옮깁시다. 음식은 그 위에 올리고.”

“그래, 어서 시작합시다! 곧 있으면 해가 질 테니.”

의총에 자주 와보지 않은 마을 사람들은 무덤이 생각보다 많은 걸 보고 약간 두려워했다. 사람들은 곧 해가 진다는 말에 제사 준비를 서둘렀다.

여덟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식탁 십여 개가 놓이고, 그 위에 여전히 열기를 간직한 요리들이 올라왔다. 어떤 음식들은 자리가 없어 비교적 깨끗한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뒤이어 술과 술잔이 올라왔고, 향로와 양초에 불을 붙였다.

촌장을 뒤따라 사십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풍성한 제사상을 앞에 두고 쉼 없이 예를 올렸다. 요대구는 의총에 묻힌 혼백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용사분들, 깃발과 병기는 아직 준비하는 중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제삿밥을 올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탄촌이 그리 부유한 마을이 아니라 준비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요리들은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이니, 부디 맛있게 드십시오!”

의총의 온도는 다른 곳보다 약간 낮았다. 그 와중에 찬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은 추위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은 의총에서 조금 떨어진 토지신당 바깥 구역으로 나가 귀신들이 제사음식을 충분히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일반적으로는 제사음식을 차린 다음, 촛불에 불을 붙인 뒤 절까지 하고 나면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그들은 특별히 이각(*二刻: 30분) 정도 기다리기로 했다.

그날 밤, 모탄촌에서는 집마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처럼 풍성한 만찬을 즐겼다. 그렇게나 많은 음식을 준비했으니 당연히 남은 것을 나눠 가져간 것이다.

다만 마을 사람들은 어쩐지 음식들이 전부 싱겁다고 느꼈다. 보통 집에서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내고 남은 밥을 먹는 것보다도 훨씬 싱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마을 사람들이 이번 일을 더욱 진지하게 믿게 되는 데에 일조했다.

* * *

밤이 되자 의총이 있는 구역은 점차 도깨비불로 음기가 짙게 깔렸다. 토지신도 신당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 위에 앉아 의총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귀신은 사람과 달라 매일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오늘처럼 제사상을 받는 일은 많아 봐야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오늘 귀신들의 모습은 이전과 무척 다르게 느껴졌다.

“시간이 촉박하여 모든 이들을 전장에 나설 만한 병졸로 만들 수는 없소.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아닌 귀신의 몸이오. 그러니 민첩한 몸놀림과 보법에 좀 더 치중하도록 하겠소. 결론만 말하자면, ‘온(*穩: 안정되다, 확고하다)’이 가장 중점이오!”

“여러분! 우리는 이미 은공 앞에 맹세한 바 있소. 그러니 은공과 모탄촌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지 맙시다!”

병사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서서 힘을 겨루듯이 서로를 붙잡았다. 그들은 상대를 떨치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두 사람 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중 한 병사는 그 와중에도 쉴새 없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때든 결코 넘어지면 안 됩니다! 근처에는 항상 전우가 있습니다. 손에 있는 무기를 믿고, 주위의 전우를 믿으십시오! 어여차-!”

그 순간, 병사는 기합 소리와 함께 자신과 겨루던 혼백을 들어서 날려 버리려 했다. 하지만 상대도 그의 팔을 꽉 쥐고서 놓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은 함께 3장(약 9m)정도의 거리를 날아 한 무덤 위로 떨어졌다.

“자, 형제들! 우리는 모두 생전에 고된 삶을 살다 박명하였고, 죽은 후의 음수(陰壽)도 길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한 번 죽어보지 않았습니까? 비록 지난번에는 처량하고 쓸쓸하게 죽었지만, 이번에는 장렬하게 전사할 수 있습니다!”

토지신은 다리를 꼰 채로 앉아 의총이 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저 병사가 뛰어난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생전에도 뛰어난 자였을 터인데, 일찍 죽어 그 재능이 아깝게 되었구나.’

* * *

3일 뒤, 요대구와 몇몇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번 현성으로 향했다. 이들은 남은 값을 치르고 지장(紙匠)이 만든 깃발과 병기 등을 가져왔다.

이들은 돌아오자마자 그것을 가지고 바로 의총으로 향한 뒤, 묘지 구역 바깥에 쌓아놓고 태웠다. 비록 이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을 태우는 동안 토지신은 내내 옆에 서서 마을 사람들의 원력(愿力)에 자신의 법력을 함께 불어넣었다.

얼마 후, 역병에 관한 소식이 현성 안에 퍼지며 이 소식이 모탄촌 사람들의 귀에도 들어왔다. 하지만 모탄촌 사람들은 역병이 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구체적인 상황은 알지 못했다.

이날 요대구와 촌장은 함께 마을 끄트머리의 변소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화제는 당연히 역귀에 관한 것이었다.

“왜 아직도 안 오는 걸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 역귀가 오길 바라기라도 한단 말인가?”

“아뇨, 안 오는 게 제일 좋죠, 당연히…….”

요대구는 말하다가 돌연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느끼고는 무의식적으로 서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때 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서북쪽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

“저, 저도 그래요. 머리도 어지럽고…….”

요대구가 눈을 문지른 뒤 다시 보니 하늘은 다시 정상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한곳을 오래 바라보니 또다시 머리가 어지러워져, 얼른 용변을 보는 데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휘이잉- 휘이이-!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변소 근처의 나무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촌장과 요대구는 알지 못했지만, 이 순간 토지신도 깜짝 놀란 얼굴로 서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진 데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지만, 그가 느낀 현묘함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고인(高人)이 술법을 쓴 거야!’

그날은 유독 날이 빨리 어두워졌다. 모탄촌 사람들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창과 문을 닫아걸었다. 태양이 완전히 서산으로 떨어지자마자, 최근 며칠과 마찬가지로 손에 무기를 쥔 귀신들이 마을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이들은 모여 훈련을 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경계를 서고 있었다.

휘오오……! 위이잉-!

밤바람이 마치 누군가 우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토지신이 마을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의총의 귀신들이 모두 동작을 멈췄다.

“왔다!”

토지신이 엄숙한 얼굴로 이렇게 소리치자, 귀신들이 심기일전한 태도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형제와 자매들은 모두 무기를 드십시오. 우리는 생전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으나, 죽은 후에는 다시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깃발을 들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깃발을 쥔 귀신들은 생전에는 일반 백성이었지만, 지금은 병사처럼 큰 소리로 명을 받든 뒤 자신의 자리로 가서 섰다.

하늘 저편은 이미 초록빛이 퍼져나간 상태였다. 바람을 타고 고통에 찬 울음소리와 울분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그것은 명백하게 이곳, 모탄촌을 향해 오고 있었다.

“어흑…… 허억…….”

“아아악……!”

“흑흑…… 으으으…….”

모탄촌 바깥에서는 의총에서 나온 귀신들이 열을 맞춰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 우두머리인 병사 귀신이 크게 소리쳤다.

“화살!”

궁수가 된 귀졸(鬼卒)들이 쏜 화살이 희미한 빛을 뿜으며 활에서 튕겨 나갔다.

쉬이이익!

귀졸들이 일부러 타점을 조준할 필요도 없이, 수십 발의 화살이 일제히 역귀를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마을 밖에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죽여라!”

“죽여!”

“가자!”

한편, 모탄촌에서는 요대구와 촌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꿈속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귀신들이 역귀와 싸우는 소리는 마을 안팎으로 퍼져, 마을 사람들은 마치 전쟁터에서 잠이 든 수준의 기분을 느꼈다.

악몽에 놀라 깨어난 이들은, 비록 꿈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마을 밖에서 정말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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