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화. 의총의 귀신들
계연의 눈에 띈 마지막 지역은 바로 모탄촌 방향이었다. 마을이 있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계연은 누군가 고함을 지르며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 저승의 귀신들이 역귀들을 상대할 때는 이렇게까지 큰 소란이 일지 않았고, 비명을 지르는 것은 전부 역귀들이었다.
‘군사들의 혼백인가? 아니, 전부 다는 아니야!’
모탄촌에 도착해보니 이 작은 마을에는 뜻밖에도 역귀들이 횡행하지 않았다. 역귀들은 전부 마을 바깥에 발이 묶여 있었는데, 수십 명 정도의 귀신들이 무기를 들고서 역귀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비록 이곳의 역귀는 다른 곳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이 광경은 계연에게 여러 의문이 들게 했다. 특히 저 귀신들은 전장에서나 사용되는 진법을 이용하고 있었다.
“죽여라! 형제자매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두려울 게 어디 있겠습니까?”
“죽여라!”
“뒤쪽 진(陣)의 궁수들은 화살을 다 쐈으면 활을 버리고, 칼을 드십시오!”
뒤쪽에 있던 남녀 귀신들은 원래라면 귀기(鬼氣)가 음산했어야 하지만, 군령이 내려오자마자 용맹하기 그지없는 기백을 내뿜었다.
“저놈들을 죽이자!”
궁수들은 손에 든 활을 버리고 칼을 뽑아 들었고, 어떤 이들은 땅에 떨어진 장창을 주워 들고서 진 앞쪽으로 뛰어나갔다.
한쪽에서 술법을 부리며 그들을 돕던 토지신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처음처럼 역귀들이 쉬지 않고 몰려오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을 밖에는 수백이 넘는 역귀가 모여든 상태였다.
역귀들이 더 몰려오지 않는다고 해도, 의총의 귀신들은 아마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토지신 자신의 법력도 이미 거의 다 소모한 상태였다.
챙-!
그 순간, 맑은 검명이 사방으로 울리며 검광(劍光)이 모습을 드러냈다. 밝은 빛에 귀신들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니, 역귀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몇 가닥 초록빛만이 남아 흩어지고 있었다.
토지신은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멍하니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느끼고는 휙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상공에 떠 있는 흰 구름 위에 흰옷을 입은 선인이 검을 쥐고 서 있었다.
계연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깃발과 병기를 든 귀신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남녀가 섞여 있었고, 청장년은 물론이고 노인의 모습을 한 귀신도 있었다. 어떻게 봐도 군사들의 혼백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조금 전의 활약은 무척 인상 깊을 정도였다.
아래쪽에 있던 토지신은 이때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깊이 허리를 숙였다.
“도움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장(仙長)께서 나서주지 않았다면 저희 모탄촌은 역귀들에 의해 큰 화를 입었을 겁니다. 이곳 말고 현성 쪽에도 역귀가 횡행한다고 들었는데, 혹 선장께서 시간이 되신다면 그곳에도 도움을 좀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자 계연이 자신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본 뒤 다시 토지신에게 말했다.
“이곳 주변의 다른 현성에는 이제 역귀가 없습니다. 저희가 나서서 처리하고 있었거든요. 해가 뜨기 전에는 전부 없어질 거예요.”
이 말을 남긴 계연은 법광(法光)을 반짝이며 멀리 날아갔다. 아직은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역귀를 전부 소탕한 뒤에 다시 이 마을로 돌아와도 늦지 않을 것이다.
계연이 떠나자 토지신이 무척 안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토지신이 몸을 돌려 싸움이 벌어지던 곳을 바라보니, 의총의 귀신들이 입은 손해가 막심했다. 처음에는 백 명하고도 수십이 넘는 귀신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의 반조차 남지 않은 상태였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전장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다른 귀신들은 천천히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이는 방향을 바라보니, 이미 십여 명의 귀신들이 그곳에 서 있는 상태였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토지신이 다급히 다가가 보니, 안쪽에 귀신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던 병사가 누워있었다.
이때 그의 혼백은 무척 쇠약해져서 반투명해진 상태였고, 다른 병사가 그의 상체를 받치고 있었다.
“토지신께서 오셨어, 토지신께서!”
한쪽에 서 있던 귀신이 이렇게 말하며 토지신이 더 가까이 올 수 있도록 자리에서 물러났다.
“토지신이시여, 부디 저분을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예, 제발 장군을 살려 주십시오!”
“맞습니다, 토지신, 제발 장군을 살려주세요!”
이 귀신들은 병사가 생전에 높은 관직의 무관이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모두 그를 장군이라 부르며 토지신에게 그를 구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모두 이쪽으로 모이게. 귀신의 몸은 음(陰)에 속해, 모두 여기로 모이면 저자에게도 도움이 될 걸세.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한번 보겠네.”
토지신이 이렇게 말하자 모든 귀신이 몰려와 병사를 에워쌌다.
안쪽에서는 자그마한 토지신이 지팡이를 휘둘러 법력을 이용해 영기를 모으고 있었다. 충분히 모은 토지신은 병사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영기가 조금씩 그의 몸으로 스며들자, 병사의 형체가 좀 더 뚜렷해졌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언제든 날아가 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안 되겠군. 상처도 중한 데다, 귀신의 몸은 원래 근본이 불안정하다네. 지금은 태양의 힘이 그리 세지 않아 괜찮지만, 해가 완전히 뜬 후에는 무덤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네. 하루는 어떻게 버텨낸다 해도, 그 후에는 장담할 수 없겠어, 휴…….”
토지신의 말에 귀신들이 모두 침묵에 휩싸였다.
“아까 그 선장이라면 이자를 도와줄 수 있을 텐데. 이미 떠나버렸으니!”
* * *
그 시각.
계연은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고공에서 법안을 열어 아래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삿된 존재들을 판별하는 데에 무척 뛰어났다.
다시 약 한 시진(2시간) 정도가 흐른 뒤, 계연은 마침내 더는 역귀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상역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 둘은 대하현 어느 곳의 높은 하늘에서 다시 만났다.
“계 선생님, 지면에서 새어 나온 살기에서 생겨난 저것들은 귀물(鬼物)이라기보다는 사악한 존재(邪物)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역귀는 처리했다지만 역병이 퍼진 지 오래라, 백성들에게는 이미 재난이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역병은 역귀의 활발한 움직임 아래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고, 역병이 퍼진 면적은 계주 전체보다 넓었다. 면적에 비해 계주보다는 인구가 적다지만, 그래도 역병에 걸린 이가 적지 않았다.
“이미 병에 걸린 사람들이 무척 많네요.”
수선자들은 범인(凡人), 귀신, 심지어는 요마 사이에서도 선인(仙人)이라 불린다지만, 아무리 대단한 수선자라도 그 능력에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죽음에 가까워지거나 이미 죽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진 못했고,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무언가 특수한 원인이 존재하는 경우였다.
오늘 밤 파악한 상황으로 보건대, 이번 역병은 시작된 지 이미 2주는 넘은 듯했다. 게다가 역귀의 존재로 인해, 역병의 위력이 더욱 커지기까지 했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지만, 밤에는 역귀들이 돌아다니며 양기를 빨아들이는 통에 역병에 걸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계연과 상역은 역귀를 소멸시키고, 바람에 영기를 섞어 역귀가 남긴 살기(煞氣)를 흩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을 곧바로 병에서 낫게 만들 수는 없었고, 죽은 이를 살리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고작해야 영기 섞인 바람을 병에 걸린 이들에게 닿게 해, 그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완쾌할 확률을 높여주는 것 정도였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체질을 가진 데다, 범위가 너무 넓고 사람 수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계연과 상역이 아무리 많은 법력을 소모해도 모든 이들이 역병에서 낫도록 해줄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역병으로 목숨을 잃을 것이고, 병에 걸린 이들이 돌아다니며 다른 곳으로 역병을 옮길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 일은 계연과 상역의 손을 떠난 일이었다.
상역은 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털어놓았다.
“이 원조국은 내정이 혼란스러워 백성들이 곤궁하고, 곳곳에 재난이 일어나 도처에 시신이 널린 상태입니다. 그러니 이번 역병도 실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역병이 이미 퍼질 대로 퍼졌는데도 혼란은 수습될 기미가 없으니, 이 나라의 기운은 이미 쇠한 것입니다.”
“이 나라의 형세는 이미 무너진 집과 같아요. 도적 떼가 횡행하고 온갖 재난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예요. 게다가 역귀가 일으킨 이번 재난으로 백성들은 물론 저승마저 큰 손해를 입었죠. 이 집도 얼마 못 가 완전히 무너질 것 같네요…….”
상역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지맥의 살기가 어디로 퍼져나갔는지는 이미 확인했으니, 이제 도망친 요마들을 찾으러 갈까요?”
그의 물음에 계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 요마들은 이미 저 멀리 도망갔을 것이 분명했다. 입장을 바꿔 계연 자신이 요마라고 해도, 선검의 위력을 목도한 후에는 분명 최대한 멀리 도망쳤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당장은 그럴 필요 없어요. 일단은 제가 갈 곳이 있으니 거기부터 같이 가시지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구름을 밟고 모탄촌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번 일로 많은 저승의 귀신들이 계연 혹은 상역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계연은 오히려 그다지 귀신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작은 마을 밖에서 역귀와 싸우던 귀신들 쪽이 더 궁금했다.
* * *
모탄촌 바깥에서는 의총에 묻힌 귀신들이 아직 무덤으로 돌아가지 않은 상태였다. 역귀가 다시 올 수도 있으니 최소한 해가 뜰 때까지는 지키고 서 있으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역귀는 오지 않고, 흰 구름이 표표히 날아왔다.
토지신과 귀신들은 구름 위에 서 있는 두 선인을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아까 자신들을 도와 검을 휘둘러 역귀를 소멸한 선장이었다.
“모탄촌 토지신이 의총의 귀신들과 함께 두 분 선장을 뵙습니다!”
아까는 마땅한 예의를 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 토지신은 구름이 완전히 땅에 내려오기도 전에 귀신들을 이끌고 냉큼 예를 올렸다. 그들이 고개를 들자 계연과 상역이 땅에 내려섰다.
토지신의 말에 계연이 의아해하며 이렇게 되물었다.
“의총이요?”
원래 계연은 이 귀신들이 생전에 군사들이었거나, 혹은 마을 사람들의 조상들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토지신에게서 의총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제야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토지신이 계연의 물음에 얼른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간밤에 싸운 귀신들은 모탄촌 마을 사람들이 길에서 발견한 시신들을 묻어준 의총의 귀신들입니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은혜를 갚기 위해, 대신 역귀와 싸우고 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한 토지신은 약간의 사심을 담아 약간 떨어진 곳에 귀신들이 모인 방향을 가리켰다.
“그런데 저들을 이끌던 병사 귀신이 중상을 입어 아마도 곧 혼백이 사라질 듯합니다!”
“제가 한번 볼게요.”
눈썹을 찌푸린 계연이 귀신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가자, 몰려있던 귀신들이 계연에게 길을 터주었다.
안쪽에는 갑주를 갖춰 입은 귀신이 누워있었는데, 몸에서는 음기가 끊임없이 새어나가고 있었고 형체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반투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