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59화 (459/892)

459화. 섬을 옮기기로 한 선하도와 집으로 돌아간 계연

계연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본 뒤, 상역에게 말했다.

“상 선생님, 우리도 이만 갑시다.”

“예.”

두 사람은 토지신과 귀신들에게 가볍게 예를 취한 후,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구름을 밟고 떠나갔다.

계연 일행이 노을빛을 내뿜으며 멀리 날아가는 동시에, 한 줄기 미약한 빛이 의총을 향해 날아왔다. 그것은 곧 법전(法錢) 두 개로 변해 병사의 손안에 나타났다.

달빛을 받으며 별이 뜬 상공을 비행하던 두 사람은 자연스레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계연은 마침내 자신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선하도의 서북쪽 분파가 요마(妖魔)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제 다시 다른 이들을 보내 산문(山門)을 재건할 생각인가요?”

이곳에 선하도의 분파가 존재했기에, 요마나 삿된 존재들이 어느 정도 진압되고 있었다. 설령 속세에 큰 혼란이 일어나 온갖 요괴가 세상을 어지럽히더라도, 선하도의 분파가 요마들의 존재로 인해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사라졌으니, 이곳 요마들이 더욱 날뛰지 않을까?’

하지만 이어지는 상역의 대답에 계연이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았다.

“만약 선하도에서 이곳을 포기한다면, 우리가 요마를 두려워한다는 뜻이 되는 게 아닙니까? 체면 때문에라도 장교(掌敎) 사숙께서는 절대 이곳을 포기하지 않으실 겁니다. 게다가 요행으로 살아남은 분파의 수사들도 이번 일을 결코 그냥 넘기지 않을 겁니다. 비록 범인(凡人)들이 우리를 선인(仙人)이라 부른다지만, 우리라고 해서 성질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선인들은 화를 낼 줄 모른다고 누가 말한 것도 아니잖아요.”

“옳은 말씀입니다!”

* * *

올 때는 진법의 힘을 빌려 최대한 빨리 날아왔지만, 돌아갈 때는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었으므로 올 때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다. 계연과 상역이 2주 정도를 날아왔지만, 아직도 대정국의 국토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다 상역은 선하도에서 날아온 소식을 받게 되었다.

이날, 구름을 타고 날던 상역과 계연은 하늘 저편에서 노을빛 한 줄기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계연은 그 빛무리에서 무언가가 살아있는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계 선생님, 저것은 선하도의 비검전서(飛劍傳書)입니다.”

선하도의 제자들은 모두 산문이 자리한 곳에 자신의 혼이나 기운을 남긴다. 그러다 문중에 급한 일이 생기면, 이를 이용해 바깥에 있는 제자의 대략적인 위치를 점친다. 그 후에 제자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검이나 다른 법기(法器)에 소식을 담아 날려 보낸다.

상역이 이렇게 설명하는 동안 노을빛이 이미 가까이 날아왔다. 상역이 손을 뻗어 손짓하자 그것이 즉시 그의 손안으로 날아들었다. 계연이 자세히 관찰해보니, 날아온 것은 손바닥 정도 크기의 작은 칼이었다. 비수(*匕首: 날이 날카로운 단도)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테지만, 자루의 길이가 무척 짧았다.

상역은 검지로 칼날을 훑으며 정신을 집중해 무언가를 경청했다. 얼마 후, 그는 고개를 돌려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계 선생님, 문중에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역은 그간 계연과 함께 지내면서 그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전처럼 계연을 그리 조심스러워하지 않고, 좀 더 편안하게 대하고 있었다.

“섬에서는 지맥에서 폭발한 살기(煞氣)와 요마에 관한 일을 한창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곧 섬을 옮길 계획이라, 지금은 손님을 접대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제가 직접 영안현에 찾아가 선생님을 선하도에 모시고 가겠습니다.”

‘섬을 옮긴다고?’

그 말에 계연이 속으로 깜짝 놀랐다. 작은 면적에 많은 수선자들이 북적이며 살지는 않을 테니, 선하도는 그리 작다고 할 수 없는 크기일 것이다. 게다가 선하도 같은 수준의 선문(仙門)이라면, 십중팔구는 복지(*福地: 신선이 사는 곳을 일컬음)나 세외동천(*世外洞天: 도교에서 성스럽게 여기는 장소의 유형 가운데 하나. 대개 동굴이나 석동, 계곡 등 지하 또는 반지하 공간)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섬을 옮기는 게 말처럼 그리쉽지는 않을 것이다.

‘선하도는 정말로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울 정도의 능력을 지닌 건가?’

계연은 놀란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은 채로 상역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그럼 어서 가보세요. 선유대회에서 다시 만나도 되니까요. 참, 상 선생님도 가시죠?”

“갑니다! 당연히 가야지요! 계 선생님, 그럼 후에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네, 그때 또 봬요!”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상역은 노을빛으로 화해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동남쪽을 향해 사라졌다.

계연은 공중에 서서 구름 아래쪽을 잠시 내려다보고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아래로 내려가 속세를 돌아볼 생각이 없었으므로, 그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 * *

계연이 영안현에 도착했을 때는 그로부터 10일이 지났을 때였다. 도행이 이 정도의 수준에 이른 계연조차 이제는 나는 게 피곤해질 정도였다. 수행자 중 비거술을 할 줄 아는 이들도 먼 길을 갈 때는 비행선을 이용하는 이유가 있었다. 긴 여행에는 몸이 편안한 게 최고였고, 특히 함께할 일행이 없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물론 계연이 정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글자들을 불러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도떼기시장보다 더욱 시끄러워질 것이 자명했다. 아무래도 공중에서 속도를 내는 중에 글자들을 풀어놓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듯했다.

때는 이미 3월 중순이 되어,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었다. 계연이 점차 고도를 낮추자 아래쪽이 온통 불긋불긋하고 푸르른 것이 눈에 띄었다. 땅에서는 싹이 돋아나고 있었고, 진달래와 복숭아꽃 등이 한창 절정이었다.

영안현 바깥에 내려선 계연이 냄새를 맡자, 특별한 꽃향기가 전해져 왔다. 바로 거안소각 뜰에 핀 대추꽃이었다.

‘올해는 꽃이 일찍 피었네.’

하지만 이 대추나무는 진작에 보통 나무가 아니게 된 지 오래였으므로, 꽃을 피우는 시기는 계절 상관없이 대추나무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현성에 들어선 후에도 여전히 계연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으므로, 계연도 따로 사람들에게 인사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계연이 천우방 근처 골목을 돌자, 계연의 귓가에 여자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선생님께서 돌아오셨어요!”

이렇게 소리친 여자아이는 바로 손아아였다. 아이의 말을 듣고 손복이 아아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니, 흰 장삼을 입은 계연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계 선생님, 돌아오셨군요!”

“네, 이제 막 왔어요.”

계연은 노점으로 걸으며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아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아아도 피하거나 숨지 않았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손기 노점에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잘 되었습니다. 국수하고 내장 좀 드시겠습니까?”

계연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드려요.”

그 말에 손복이 들뜬 얼굴로 바삐 손을 놀렸다.

계연은 식사를 마친 후 천우방에 들러 자신을 아는 이웃 두 명과 마주쳤다. 계연은 그들과도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거안소각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계연은 커다란 대추나무에 꽃이 잔뜩 핀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꿀벌들이 가지 사이사이에서 날아다니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잘됐군, 곧 꿀을 얻을 수 있겠어. 어쩌면 꿀 결정을 다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

꿀벌의 수명은 무척 짧아, 고작해야 한 달 정도였다. 하지만 저 꿀벌들은 어쩌면 예전에 계연이 꿀을 얻었던 꿀벌들과 같은 무리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벌집의 위치도 그대로일 테니, 후에 꿀을 좀 가져오면 되는 일이었다.

집이니만큼 더는 얽매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계연은 소매에서 바로 <검의첩>을 꺼내 작은 글자들이 곳곳에서 조잘조잘 떠들도록 풀어주었다. 그리고서 자신은 잠을 청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능력은 확실히 쓰면 쓸수록 능숙해지고 그 위력도 커지는 것이 확실했다. 얼마 전 하늘을 뒤집을 만한 검세를 펼치며 계연은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동시에 오래도록 정체되어 있던, 소매 안에 물건을 수납하는 술법인 수리건곤술을 발전시킬 좋은 방법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몸이 찌뿌둥해서 일단 잠을 좀 자다가, 꿈속에서 그 방법을 한번 적용해 보기로 했다.

계연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보통 꿈을 꾸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꿈을 꾼다 해도 자기가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입정(*入靜: 도가(道家)에서, 방에 가만히 있어 아무 생각도 근심도 없는 경지에 드는 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계연의 의식 세계 속에 있는 세상의 특수함 때문에, 자리에 누워 잠을 자는 것은 계연에게 있어 독특한 수행 방식에 가까웠다.

물론 계연도 다른 이들처럼 정상적으로 잠을 잘 수 있었다. 어쨌든 잠을 자는 것은 무척 편안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수선자들도 보통 사람들이나 다름없이 잠을 자야 했고, 심지어는 반년이나 몇 년 동안 깨어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계연은 원래 이번 천경검세(*天傾劍勢: 하늘을 뒤집을 정도의 검세)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좀 더 다듬으려고 했다. 또한 신통한 법력에 천지화생의 힘을 빌리고 천지(天地)의 기세를 함께 끌어와, 천경검세를 펼칠 당시의 현묘한 깨달음을 통해 수리건곤(*袖里乾坤: 소매 안의 우주라는 뜻으로, 건곤납물술을 발전시킨 것)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려 했다.

지난번 수리건곤술의 한계를 크게 돌파했을 때도 계연은 기세(勢)를 운용하는 법을 수리건곤술에 녹여내려고 했었다. 늙은 용이 혜동대사를 저승으로 잡아가던 때 썼던 술법의 영향을 받아, 실의에 잠긴 육승풍이 거안소각에 방문하기 직전에 큰 진전을 이뤘던 것이다.

그때의 깨달음으로 계연은 소매에 우주만큼이나 큰 공간을 만드는 것이 헛된 공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냈다. 수리건곤술은 이제 더 이상 물건을 보관하는 보통의 술법이 아니었다. 소매 속 공간이 많이 늘어나, 계연은 술법을 사용하면서도 보따리를 들어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특수한 방법으로 제련한 낚싯대는 여전히 돌돌 말아 보관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계연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계연의 법력이 더욱 깊고 심오해지고, 오행(五行)이 원만함을 이루면서 계연의 소매 속 공간은 더욱 커졌다. 심지어는 안쪽에 각기 구역을 나눌 수도 있었고, 몇 가지 신묘한 운용법을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계연이 상상하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계연의 수리건곤술은 수행계의 다른 술법과 비교해보자면 여전히 물건을 보관하는 데 있어 이보다 신통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편하고 빠르며, 저장 용량도 컸으며 무척 멋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계연이 수리건곤술에 원하는 것은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수면은 조금 특별해서, 계연은 수행 상태에 들기도 전에 피곤함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천경검세를 운용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데다, 그 후에는 역귀를 처리하느라 내내 정신을 곤두세우면서 계속 휴식을 취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 탓에 자리에 눕자마자 계연은 더는 졸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일단 자고 나서 생각하자…….’

입정하여 심신을 회복하는 것과 잠을 자면서 회복하는 것은 계연에게 있어 크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계연은 좀 더 편안한 방식인 수면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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