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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460화 (460/892)

460화. 건곤(乾坤)의 힘에 대한 의문

그렇게 계연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열흘 내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계연에게는 무척 드물게도, 열흘째 되던 날 그리 길지 않은 꿈을 꾸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 꾸는 것과 같은 진정한 꿈이었다.

낮에 생각한 것이 꿈에 나타난다는 말처럼, 꿈속에서 계연은 자신이 지난 생에 살던 세계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로 돌아가, 그 당시 살았던 집에서 할아버지 곁에 앉아 크고 오래된 흑백 텔레비전을 보았다.

이 흑백 텔레비전에는 채널이 열두 개밖에 없었고, 채널을 바꾸려면 텔레비전에 있는 버튼을 직접 손으로 돌려야 했다. 그래도 그 텔레비전은 어렸을 때 계연이 가장 좋아하던 물건이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볼 수도 있었고, 닌텐도 게임기를 연결하여 사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텔레비전에서는 서유기를 방영해주고 있었는데, 계연이 생각하던 것이 꿈으로 나타난 게 원인인지 다른 채널들도 서유기를 방영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회차였으므로 계연은 채널 두 개를 바꿔가며 두 편을 감상했다.

하나는 손오공이 근두운(筋斗雲)을 타고 석가여래(*釋迦如來: 부처)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났다고 여기고는, 여래의 손가락에 오줌을 쌌던 이야기였다.

다른 하나는 손오공이 성질을 부리며 오장관(五庄觀)에서만 자라는 귀한 인삼과(人蔘果) 나무를 잘라버린 이야기였다. 손오공은 자신이 큰 사고를 쳤음을 깨닫고 삼장법사와 사제들을 데리고 함께 도망쳐버린다. 하지만 결국 오장관의 주인인 진원자(鎭元子)의 수리건곤술에 당해 그의 손에 붙잡히게 된다.

계연은 온 정신을 집중해 서유기를 감상했다. 그리고는 손오공이 두 번 다 비슷한 방법으로 사로잡혔음을 깨달았다.

꿈은 아주 짧아서, 서유기가 끝나자 계연도 눈썹을 찡그리며 마침내 꿈속의 상황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꿈속 광경에 변화가 생기며, 광활한 하늘과 땅이 펼쳐지고 그 위로 산과 물길이 드러났다. 그렇게 풍경은 점차 계연이 얼마 전 머물렀던 지맥에 균열이 생기기 전의 산맥이 되었다.

계연은 그때와 똑같은 산봉우리 위에 서서 주위의 요마(妖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선하도 수사들이 없었고, 멋대로 날뛰는 요마들뿐이었다.

“천경검세.”

계연은 이렇게 읊조리며 검지로 넝쿨검을 쓸었다.

챙-!

선검은 순식간에 빛으로 변하여 상공으로 솟았고, 뒤이어 검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하늘과 땅의 기세와 합쳐지며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렇게 선검이 떨어져 내리는 동시에 하늘이 함께 무너져 내리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천경검세의 위력은 실제보다 훨씬 대단했다. 꿈속의 천지는 계연이 만들어낸 의식 안의 세계라서 그런지 더욱 다루기 쉬웠다. 천경검세가 위세를 드러내자, 하늘이 흔들리고 산과 하천이 요동치며 마치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주위의 요마가 곳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아예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그들은 머리를 짓누르는 엄청난 공포에 거의 정신이 나가기 직전이었다. 검이 아직 채 떨어지기도 전에 어떤 요물들은 핏빛 연기로 변해 사라지기까지 했다. 이는 요기(妖氣)와 마기(魔氣)가 스스로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계연은 검지를 계속해서 아래로 내렸고, 요마들이 다시 한번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다만 이번에는 적지 않은 요마가 공중에서 핏빛 연기로 변하거나 스스로 불타올랐다. 땅에 떨어진 요마 중에는 제대로 형체를 갖춘 이들이 하나도 없었고, 전부 다 영육이 완전히 소멸해버린 상태였다.

꿈에서 계연은 전에 앉았던 곳과 같은 곳에 앉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피로해서가 아니라 편한 자세를 찾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본 계연은 미소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난 생의 표현을 빌리면…… 이런 것을 뭐라더라. 그렇지, 대박 멋있군! 하하!”

흡족해진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턴 다음 자신의 옷소매를 바라보았다.

“천경검세는 천지와 건곤(*乾坤: 우주)의 힘을 빌려 마음을 공격하고, 수리건곤은 천지와 건곤의 힘을 빌려 물체를 수납하는 것……. 이렇게 보면 서로 비슷한 원리란 말이지……. 건곤의 힘을 운용하려면, 건곤의 기세가 필요하고…….”

거기에서 더 생각이 발전하지 않자 침상에 누운 계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 * *

이 시각, 거안소각의 작은 뜰에서는 글자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서로 입씨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종이학은 마치 현장 감독처럼 꿀벌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바삐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타닥’하는 소리가 들리자 종이학과 작은 글자들이 전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붉은 털을 가진 여우가 몸을 탈탈 털고서 살짝 구부러진 뒷다리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것 봐, 멍청한 여우가 왔어!”

“그러네. 문도 두드리지 않고 들어오다니 정말 예의도 모르는군!”

“하지만 문을 두드렸다가 어르신이 잠에서 깨면 어떻게 해?”

“그러게, 그럴 바에는 두드리지 않는 게 낫지!”

“저 여우 가죽을 피혁상(*皮革商: 가죽 또는 가죽 제품을 파는 장수)에 갖다 팔면 돈이 꽤 되겠지?”

“당연하지, 저런 털이면…….”

작은 글자들이 이렇게 속닥이는 소리는 전부 호운의 귀에 들어갔다. 이에 호운은 돌 탁자 위로 펄쩍 뛰어 올라간 다음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와, 전부 나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너희가 여기 있다는 건 선생께서도 돌아오셨다는 뜻이겠지!”

호운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채로 이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글자들의 은폐 실력이 무척 뛰어났기 때문에, 호운은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 도저히 글자들을 찾아낼 수 없었다.

호운은 무의식적으로 계연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문은 닫혀 있었고, 안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계 선생님은 아마 저기서 주무시고 계실 터였다.

글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추나무 주위를 돌던 종이학만이 탁자 위로 내려앉았다. 그러자 호운이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종이학이 있는 것을 보니 계 선생님도 돌아온 것이 확실했다.

일전에는 계연이 다급히 떠나버려, 호운은 백제의 도움으로 우규산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우규산에서 한 달 넘게 지내면서, 호운은 슬슬 걱정하던 참이었다. 이번에 떠난 계연이 아주 오랫동안 거안소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호운은 그간 거안소각에 두 번 찾아왔었는데, 오늘 마침 때를 잘 맞춘 듯했다.

“언제 돌아온 거야? 참, 나 오늘은 계 선생님께 드릴 게 있어!”

호운은 종이학을 향해 의뭉스럽게 눈짓하며 털이 풍성한 꼬리를 아래위로 규칙적으로 흔들었다. 이에 종이학은 고개를 갸웃하며 호운의 꼬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 여우가 물건을 그 안에 숨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 무슨 좋은 물건이길래?”

온화한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오며 문이 끼익 열렸다. 뒤이어 나타난 계연은 푸른 장삼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였다.

“계 선생님! 돌아오셨군요!”

“하하, 여기 바로 서 있잖니. 왜, 백제가 널 괴롭히던?”

그러자 호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아니요! 백 강신께서는 무척 잘 대해주셨어요. 참, 제가 산에서 좋은 걸 찾아서 선생님께 가져다드리러 왔어요!”

“하하하……. 네가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게 뭐…….”

계연의 말이 중간에 뚝 끊겼다. 호운이 앞발로 풍성한 꼬리털 사이에서 금 두 덩이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크기가 손바닥 반만 한 것을 보니 무게도 꽤 나갈 듯했다.

“헤헤헤, 선생님, 평범한 인간들은 모두 황금을 좋아하잖아요. 육 산군도 떠나기 전에 적지 않게 가져가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한 번도 찾아낼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요. 토끼굴을 파다가 안에서 이 금덩이들을 발견해서 들고 온 거예요!”

계연은 무의식적으로 우규산 방향을 흘끔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산에 금광이 있나?’

“계 선생님, 이 금덩이는 가치가 얼마나 되나요? 분명 엄청나겠죠?”

호운은 동전의 가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는데, 황금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런 호운의 물음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엄청나지. 내가 쓰던 대로 쓰면, 백 년이 걸려도 다 못 쓸걸.”

“아하, 그럼 이게 필요하시죠?”

호운은 값진 보물을 바치는 듯한 자세로 금덩이 두 개를 계연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가볍게 그것을 받아 갔다.

“그래, 필요하지. 나는 속세에 섞여 사는 만큼, 다른 건 몰라도 돈 만큼은 모자라서는 안 되거든.”

사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호운은 계연이 자신이 준 것을 받자 무척 기뻐했다.

계연은 손에 든 금 두 덩이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백은(白銀)으로 환산하면 수백 냥은 될 것 같았다. 은 수백 냥이면 계연에게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다.

금덩이를 소매 안으로 넣은 계연은 대추나무의 가지를 바라보다가 위쪽을 향해 소매를 휘둘렀다.

휘익-! 휘이잉-!

희미한 바람 소리가 계연의 소매 안에서 들리더니, 거안소각 안의 기류가 변하며 계연의 소매를 향해 몰아쳤다. 그러자 대추나무 주위에 있던 꿀벌들이 바람에 휩쓸려갔다.

꿀벌 떼가 가까워지기 직전, 계연은 법력을 흩어버렸다. 이에 놀라고 당황한 벌떼가 다급히 사방으로 도망쳤다.

“아냐, 아냐. 이게 아닌데…….”

조금 전에는 기세만 좋았지, 아무리 봐도 바람에 따라 빨려 들어온 것 같은 모양새였다. 반면 늙은 용이 사람을 발톱으로 잡아챌 때는 식은 죽 먹기처럼 보였다.

계연의 수리건곤(袖里乾坤)에 호운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록 그 술법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지만, 방금 계연이 소매를 휘두르던 순간 호운은 계 선생님이 이 거안소각 전체를 집어삼키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탁자 위에 있던 호운은 온몸에 힘이 들어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소매 안으로 함께 빨려 들어갈 것처럼 느껴졌다.

“계 선생님, 이건 또 무슨 술법인가요? 방금은 진짜 깜짝 놀랐어요! 선생님의 소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호운의 말에 호운과 숨바꼭질하던 글자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어르신의 소매 안에 무서울 게 뭐가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매일 저 안에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걸!”

“맞아, 맞아. 가끔은 어르신이 바깥을 보여주기도 하시고.”

“호운 너도 우리랑 같이 <검의첩>에 살자. 어르신 소매 안에 얼마간 있다 보면 너도 알게 될걸!”

호운의 말에 조금 전 자신의 수리건곤을 되돌아보던 계연은 돌연 멍해졌다. 계연은 글자들이 뭐라고 떠들던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려 호운을 바라보았다. 호운은 탁자 위에 잔뜩 쭈그리고 앉은 채, 풍성한 꼬리마저 몸에 딱 붙이고 있었다.

“무서워할 필요 없다, 그냥 시험해 본 거니까. 꿀벌 한 마리도 빨려 들어가지 않았잖니. 참, 방금 느낀 걸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렴.”

그러자 호운이 몸을 곧게 펴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게…… 저도 잘 표현을 못 하겠어요. 어쨌든 선생님이 소매를 휘두르자마자, 그게 저를 안으로 집어넣고 싶은 것처럼 엄청나게 커졌어요. 안쪽은 캄캄하지도 않고 하얗지도 않고, 아무튼 안이 잘 보이지는 않았는데 되게 무서웠어요. 맞아, 엄청 무서웠어요…….”

호운은 스스로도 자기가 왜 계연의 소매를 두려워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령 계 선생님이 정말로 자신을 소매 안으로 집어넣더라도 별로 두려울 건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왠지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져 온몸이 잔뜩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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