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화. 배움을 얻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혹시 집어 삼켜질 것 같은 느낌이었니?”
계연이 이렇게 묻자, 호운은 잠시 망설인 후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저었다. 아무래도 정확히 묘사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알겠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이에 관해 묻지 않았다. 수리건곤의 술법은 아직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기세를 운용하는 법은 천경검세와 같았으므로 계연은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상태였다. 기세만 잘 끌어낼 수 있다면 상대방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었다. 수행이 얕은 호운은 그것만으로도 쉽게 영향을 받았잖은가.
“선생님, 아직 제게 그게 무슨 술법이었는지 대답해주지 않으셨어요!”
호운은 이것이 상대를 빨아들이는 재미있는 술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토록 두려움을 느낀 걸 보니 분명 심오한 것이리라고 여겼다.
계연이 잠시 무어라 대답할지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건 수리건곤이라는 심오한 술법을 무척 간단한 방식으로 사용한 거야.”
“아……. 상대를 소매 안으로 빨아들이는 술법인가요?”
“하하, 그렇게 말해도 틀렸다고 할 순 없지. 하지만 수리건곤은 사람을 담을 수도, 물건을 담을 수도 있는 신묘한 술법이야. 물론 물건을 보관할 수도 있지만, 이것으로 적을 상대할 수도 있단다.”
그러자 호운이 제 꼬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그와 비슷한 능력이 있어요. 제 꼬리는 물건을 보관할 수도 있고, 적을 상대할 수도 있거든요! 헤헤헤…….”
호운의 농담에 계연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를 들은 작은 글자들은 뒤로 넘어갈 듯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하하하, 호운 때문에 웃겨 죽겠네!”
“아하하하! 쟤 정말 웃기다니까!”
“그러니까! 하하하, 감히 어르신의 수리건곤과 비교하다니, 하하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건방진 여우네, 하하하…….”
“그러게나 말이야, 너 ‘소매 안의 우주는 크고, 술 단지 안의 세월은 길다(袖里乾坤大, 壺中日月長: 신선들의 술법이 탁월하고 변화무쌍하여, 기존의 사고 이외의 또 다른 시공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함)’라는 말은 알아?”
“한 뼘 크기의 작은 공간에 천하 만물을 담는 것이 수리건곤의 술법이야. 고작 네 꼬리로 어르신의 신통력에 비할 수나 있겠어?”
“하하하하!”
작은 글자들의 조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자 호운은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이렇게까지 놀리는 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계연도 그들의 말을 듣다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저 웃기는 놈들이 대체 언제 봤는지, 자신이 글을 쓰며 추론했던 내용으로 호운을 놀리고 있었다.
“조용히들 하렴.”
계연이 이렇게 내뱉자 거안소각 전체가 삽시간에 낙엽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수리건곤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야. 추론대로 성공한 다음에야 ‘소매 안의 우주는 크고, 술 단지 안의 세월은 길다’라는 말에 어울리게 되겠지.”
계연이 이렇게 말했음에도, 작은 글자들은 자기 집 어르신에 대해 이상스러울 정도로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어쨌단 말인가? 언젠가는 반드시 완성될 텐데. 어르신이 가진 신통한 능력은 모두 스스로 추론하여 만들어낸 것이었고, 모든 술법이 전부 대단했다. 그러니 늦든 빠르든 시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계연은 대추나무 가지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어느샌가 다시 꿀벌들이 모여들어 대추꽃 사이사이를 날아다니며 꿀을 채집하고 있었다.
계연은 호운을 의자 위로 내려놓고 필묵과 벼루, 종이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는 천천히 먹을 갈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먹물이 만들어지자, 계연은 늑대 털로 된 붓에 먹물을 묻히고 바로 종이 위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호운은 한동안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몇 번 입을 떼려 했지만, 계 선생께 방해가 될까 봐 결국 입을 다물었다. 작은 글자들조차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글자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서로 진법을 형성하며 싸움을 이어갔다.
그렇게 오전부터 오후가 될 때까지 거안소각 전체는 고요했다. 계연이 글자를 쓰는 속도는 절대로 느리지 않았지만, 계연의 추론은 겨우 종이 한 장을 채우고 끝났다.
그새 무료했던 호운은 주방에서 아궁이에 불씨를 붙여 물을 끓인 다음 차를 우리고 있었다.
다행히 계연도 마침 붓을 붓걸이에 걸고는 자리에 앉은 상태였다.
그러자 호운이 머리 위로 나무 쟁반을 받쳐 든 다음, 앞발로는 쟁반 양쪽을 꼭 잡고서 사람처럼 걸어 나왔다. 비록 호운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웃겼으나, 머리 위의 쟁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쟁반 위에는 우려낸 찻물과 찻잔 네 개가 있었다.
“계 선생님, 계 선생님! 차 드세요! 차 드시고 하세요!”
이렇게 말한 호운은 가볍게 돌의자 위로 뛰어올라 조심스럽게 쟁반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를 지켜보던 계연은 호운이 꽤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며, 즐겁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기분을 느꼈다.
“말해 보렴, 바라는 게 있구나?”
계연은 호운에게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흡족한 얼굴로 호운이 가져온 차를 마셨다.
계연이 주방을 향해 손짓하자 숟가락 하나가 날아왔다. 그러고는 숟가락 손잡이 부분을 한번 손가락으로 짚은 후, 막 어깨에 내려앉은 종이학에게 숟가락을 건네며 말했다.
“신선한 대추꿀 좀 담아오렴.”
종이학은 고개를 갸우뚱한 채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종이학은 부리가 있었지만 열리지는 않았다. 종이 한 장 정도를 끼워 넣는 건 괜찮았지만, 숟가락은 어떻게 해도 집을 수가 없었다. 이를 알면서도 종이학은 숟가락을 물어보려고 시도해보았는데, 어쩐 일인지 부리에 닿자마자 숟가락이 착 달라붙은 것처럼 변했다. 그러자 종이학은 숟가락을 들고 즉시 날아올랐다.
호운은 종이학이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계연이 다시 자기를 바라보자 용기를 끌어모아 이렇게 말했다.
“계 선생님, 예전에 종이 인형을 오릴 때 썼던 가위하고 종이 좀 갖고 놀게 빌려주세요…….”
“하하, 언제 적 일인데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니?”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별 대단치 않은 요구였기 때문에, 계연은 방으로 돌아가 노란 종이와 가위가 담긴 대나무 소쿠리를 들고 나와 호운 앞에 놓아주었다.
“빌려줄 순 있지만, 네 앞발로 가위를 사용할 수 있을까?”
“괜찮아요, 쓸 수 있어요!”
호운은 이래 보여도 요괴였기 때문에, 오른쪽 앞발을 가위에 갖다 대자 요력(妖力)을 이용해 가위 양쪽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호운이 앞발을 활짝 펴고 닫을 때마다 가위가 함께 움직여, 호운은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다.
“계 선생님, 작은 인형을 여러 개 오린 다음 나중에 합치기만 하면 되나요?”
계연은 찻물을 식히려고 입김을 불다가 호운을 바라보며 웃었다.
“당연히 그렇게 간단하진 않지. 오늘 내가 어떻게 부적을 오려야 하는지 가르쳐 주마. 하지만 너는 금갑역사와 같은 수준의 신장(神將)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거야. 꿩 대신 닭 정도로만 만족하렴.”
“사람 모습만 낼 수 있으면 돼요!”
호운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활짝 웃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기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계연의 말이 자기에게 술법을 가르쳐주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운은 겉으로는 너무 흥분하지 않으려 애쓰는 듯 보였지만, 꼬리가 움직이는 속도가 전보다 몇 배나 빨라져 속마음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신이 난 강아지 같았다.
호운의 품성은 마치 어린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는 것과 비슷했고, 지금은 전보다 많이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호운은 나름대로 출중한 장점을 갖춘 요괴였으나, 아직은 너무나 작고 연약했다.
보통 사람을 속이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세상은 자기가 속한 계층에 따라 겪어야 하는 상황이 다른 법이었다. 호운이 요괴로 태어난 이상 분명 온갖 괴이한 존재와 사건을 맞닥뜨릴 테니, 그에 대비해 몇 가지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게 좋을 터였다.
잠시 후, 달콤한 향기와 함께 종이학이 돌아왔다. 숟가락 위에는 신선한 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거안소각의 대추꽃에서 따온 꽃가루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 * *
호운은 옛날에 비하면 많이 철이 든 상태였다. 예전에 글을 배울 때는 윤청에 의해 억지로 배웠지만, 지금은 술법 하나를 배우고자 굳건한 의지로 돌의자 위에 쭈그리고 앉아 삼 일 밤낮을 매달렸다.
계연은 이 여우가 언제 힘들다고 투덜댈지, 또 언제 쉬고 싶다고 말할지 궁금했기 때문에 일부러 호운을 말리지 않았다. 계연은 여우가 계속 종이를 오리도록 돕고, 곁에서 끊임없이 가르침을 주었다. 소쿠리 안의 종이를 다 쓰면 소매 안에서 좀 더 꺼내주기까지 했다.
마당에는 잘라낸 종잇조각이 가득했지만, 호운은 고작 서른 장의 완전한 종이 인형을 오려냈을 뿐이었다. 총명하게 빛났던 호운의 눈은 심신을 과도하게 소모한 탓에 잔뜩 충혈되어 있었고, 앞발 두 개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조금 쉬렴.”
계연이 마침내 입을 열어 호운에게 쉬라고 말했지만, 여우는 가위를 내려놓지 않았다.
“하, 하지만 선생님께서 36장의 완벽한 종이 인형이 모여야 천강(*天罡: 도교에서 천강(天罡)은 북두성(北斗星)에 포함된 36위(位)의 별 또는 신장(神將)을 일컬음)의 수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전부 헛수고라고 하셨잖아요. 저, 저는 이제 겨우 서른 장을 오렸는데…….”
“하하, 알겠다. 그럼 36장을 다 만들면 그때 쉬렴.”
계연은 속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아니면 또 한 번 전부 버려야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계연의 예상과 달리, 호운은 이를 꽉 물고 주변의 영기를 흡수하며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호운은 마침내 36장의 완벽한 종이 인형을 완성해냈다.
호운이 완성한 것은 보기에만 그럴듯해 보이는 게 아니어서, 계연은 36장이 완성되던 찰나 그 위로 빛이 연결되어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서 만약 다시 종이를 오리기 시작하면, 한 장을 실패하는 순간 그간 만든 것을 전부 폐기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손을 놓는다면 천강의 수에 도달했기 때문에 부적을 만들 수 있었다.
“잘했구나, 정말 잘했어. 고작 3일 만에 36장을 만들어내다니 말이야.”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칭찬한 후 호운을 바라보자, 여우는 이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여우가 막 고꾸라지려던 순간, 계연은 재빨리 손을 뻗어 여우를 받친 다음, 깊이 잠든 여우를 탁자 위에 올려주었다.
돌 탁자 위의 가위와 종잇조각은 전부 땅바닥으로 떨어진 후였다. 계연은 탁자 위에 엎드려 깊이 잠든 호운을 바라보며, 오래전 상처 입었던 작은 여우를 떠올렸다.
마치 그때처럼 지금의 호운도 모든 경계를 내려놓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왜냐하면 거안소각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곤히도 자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