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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463화 (463/892)

463화. 윤청의 희소식

계연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호운은 당연히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한동안은 깨어나지 않을 거라고 여긴 계연은 돌 탁자의 남는 공간에 종이를 펴고서 묘법(妙法) 연구를 계속했다.

수행에 있어 필요할 때가 아니면, 계연은 규칙적인 생활 방식을 따르는 것을 좋아했다. 해가 지면 방으로 들어가고 해가 뜨면 밖으로 나오는 생활 말이다.

다음 날, 계연이 보통 일어나는 시각인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에 계연은 바깥에서 호운이 깨어난 듯한 기척을 느꼈다. 이는 계연의 예상보다 좀 더 빨랐는데, 보아하니 호운은 자면서도 내내 부적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계연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호운이 뜰을 청소하는 것이 보였다. 호운은 심신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흥분 때문에 정신이 또렷한 상태였다.

호운은 자기 능력으로는 부적의 숫자를 더 늘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는 종이를 오리지 않았고, 오려낸 종이를 합치는 걸 서두르지도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혼자 종이 인형을 합쳤다가는 그간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호운은 빗자루를 쓰지 않고 앞발과 꼬리로 뜰을 정리하고 있었다. 호운은 청소하는 와중에도 가끔가다 허리를 세우고 소쿠리 안의 종이 인형을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호운은 즉시 계연을 향해 통통 뛰어갔다.

“계 선생님, 오늘 부적을 합칠 수 있을까요?”

계연은 한껏 기대에 찬 여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일단 종이 인형을 두 장 정도 더 만들어 보렴. 두 장을 합쳐봤자 아무런 쓸모는 없겠지만, 그래도 종이 인형을 만들어내는 감각에 익숙해질 수 있으니 말이야. 부적을 합치는 것은 부적을 자르는 것보다 더 간단하단다. 하지만 자면서 그 감각을 잊었을 수도 있으니까.”

“네네,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

호운은 헤헤 웃으며 대답한 뒤, 계연의 말대로 따랐다.

오후가 되자 호운은 마침내 더는 연습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비록 아직도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좀 더 연습한다고 해서 없는 실력이 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계연이 지켜보는 아래 부적을 합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호운의 상상보다 훨씬 순조로워서, 아무런 문제 없이 부적을 합칠 수 있었다. 마침내 호운의 손에는 얇은 종이 인형 하나가 놓였는데, 겉으로만 보면 계연이 가진 역사 부적과 그리 차이 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가 어떨지는 거안소각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호운은 점차 끓어오르는 흥분을 자제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부적이 완성된 후 필요한 피를 떨어뜨린 후에는 어서 부적을 사용해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였다. 호운은 마침내 돌 탁자 위에 일어서서 부적을 앞으로 던지며 그럴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역사(力士)는 모습을 드러내라!”

호운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종이 인형이 미약한 붉은빛을 내뿜더니, 마침내 검은색의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세히 보면 그 형체를 통과해 반대편의 풍경이 들여다보였다. 또한 다른 부위와 달리 얼굴 쪽은 은은한 붉은빛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금갑(*金甲: 금속으로 만든 갑옷) 같은 옷차림은 하고 있지 않았다. 호운에게는 그런 옷차림을 관상(*觀想: 우주 만물과 소통하고 하늘과 합일(合一)하기 위해 사물을 마음속으로 형상화하는 도교의 명상법)해 낼 만한 능력이 없었고, 그만큼의 법력을 모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역사는 마치 검고 두꺼운 무명옷을 입은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역사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양손을 모아 호운에게 예를 취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오장육부 같은 것을 만드는 것에 호운은 많은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말을 하는 등 다른 구체적인 부분을 만들어낼 정도의 정신력이나 법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 호운이 할딱이며 외쳤다.

“하하하하……. 됐다, 됐어! 계 선생님, 제 역사 부적이 완성됐어요!”

계연은 웃으며 앞에 서 있는 검은 인영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옅은 붉은빛이 돌았지만, 오관(五官)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역사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정괴(精怪) 같아 보였다.

하지만 위에 비하면 모자라고, 아래에 비하면 남는 이 역사 부적은 예전에 두 천사가 만들어낸 것보다는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최소한 계연은 눈앞에 있는 이 역사는 실제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호운이 가진 특수한 능력을 이 안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이건 역사라고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겠구나.”

호운도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네요, 금갑 역사 같은 위엄도 없고요. 그래도 제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니까 마음에 들어요. 참, 계 선생님.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렇게 말한 호운이 앞발을 뻗어 가리키자, 눈앞의 인영이 한 줄기 검은빛으로 화하더니 귀신처럼 뜰을 돌아다녔다. 그는 대추나무를 몇 바퀴 돌다가 주방을 기웃대더니 다시 탁자 앞으로 돌아왔다.

총 36개의 동작만으로 이루어진 부적이었기 때문에, 이 부적은 자연스럽게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신 호운이 귀매(鬼魅)의 술법을 안에 녹여냈기 때문에, 행동은 꽤 민첩한 편이었다.

“하하, 네가 만든 것이니 이름도 네가 붙여야지.”

* * *

계연이 거안소각에 머물자 호운도 자연히 때때로 이곳을 찾아왔다. 호운은 얼마간 간격을 두고 한 번씩 거안소각에 찾아왔고, 보통은 산속에서 수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편 계연은 거안소각의 생활이 결코 적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는 항상 주위를 맴도는 글자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최근 이곳을 찾아오게 된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바로 손복의 금지옥엽 손녀딸인 손아아였다.

아아는 스스로 필묵과 벼루, 종이를 들고서 잔뜩 흥이 오른 얼굴로 거안소각을 찾아왔다. 직접 본 계연의 글씨가 정말로 빼어났기 때문에, 손아아도 무척이나 계연의 필체를 따라 하고 싶어 하며 열심히 배웠다.

처음 몇 번 거안소각에 올 때는 손씨 집안 사람들이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왔지만, 후에는 아이 스스로 집과 거안소각을 오갔다. 그런 후에도 시간이 늦으면 손씨 집안에서 아아를 종종 데리러 왔지만, 아아는 글자 연습을 다 해야만 나중에 스스로 돌아갔다.

손아아의 방문으로 거안소각에는 생기가 더해졌다. 그 생기발랄하고 밝은 분위기는 거안소각 바깥에도 퍼졌다. 아아는 몸에 꼭 맞는 하얀 장포를 입고서 서생과 같은 모습을 한 채 천우방 이웃들을 만날 때마다 환하게 인사했다.

그렇게 천우방의 주민들은 이 활발하고 귀여운 여자아이와 친해졌고, 동시에 아이가 계 선생에게서 글을 배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에 원래는 계연을 몰랐던 이들도 손아아를 통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호운과 종이학을 비롯한 작은 글자들도 모두 손아아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심지어 아주 좋아하기까지 했지만, 이들은 모두 숨어있거나 술법을 부려 모습을 숨겨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 어느새 반년이 지났다. 손아아가 계연에게 처음으로 학당에 관한 일을 이야기할 때만 해도 주로 불만을 토로하고는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학당 일을 얘기하면 손아아에게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잔뜩 흘러나왔다. 반년이 지난 요즘, 손아아는 학당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학당의 훈장은 손아아의 글씨에 대해 아직 미숙하지만 독특한 운치가 있어, 장래 크게 될 인재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날도 손아아는 거안소각에서 글씨를 연습하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글자를 써 보였다.

“선생님, 제가 쓴 ‘아(雅)’자 좀 보세요, 더 좋아졌죠?”

손아아는 붓을 쥔 채로 종이를 들고서 주방으로 달려간 뒤 채소를 썰고 있던 계연에게 자랑스레 내밀었다. 계연은 글자를 한번 쓱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해주었다.

“잘 썼구나, 확실히 전보다 생기가 느껴져.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글자는 뜻을 표현하는 용도이니, 글씨를 쓸 때마다 그 안에 담긴 독특한 운치를 떠올려 보도록 하렴.”

“알겠어요!”

손아아는 다시 부리나케 뜰 안으로 뛰어가 글씨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매번 계 선생님이 짤막하게나마 칭찬해주는 날이면, 다음 날 학당의 훈장님은 아아의 글씨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고 심지어는 크게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게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에, 손아아는 이미 내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똑똑똑-!

“계 선생님 계십니까?”

그러자 손아아가 붓을 내려놓고 주방 쪽을 향해 말했다.

“선생님, 제가 가서 문 열게요.”

“그래.”

그렇게 손아아가 짧은 다리로 대문을 향해 뛰어가 문을 열어보니, 바깥에 관차(*官差: 관아에서 파견하던 아전) 한 명이 서 있었다. 손아아가 그를 관찰하던 동안, 관차도 마찬가지로 아이를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계 선생님은 무슨 일로 찾으시나요?”

아이의 물음에 관차가 웃으며 조금 더 목청을 키워 대답했다.

“저는 관아의 심부름꾼으로, 천우방과 인근 두 곳의 우편 전달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오늘은 계 선생님 앞으로 온 봉랍(*封蠟: 수지질(樹脂質)의 혼합물로 편지 따위를 봉한 것) 서신을 받아 전달하러 왔습니다!”

봉랍한 서신은 조정의 고관(高官)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서신이 관아에 도착하면, 관차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서신을 전달했다.

이때 계연이 행주에 손을 문지르며 주방에서 걸어 나오더니, 관차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예를 취했다. 그리고는 직접 서신을 받아 그 위에 적힌 윤청의 이름을 보았다.

“감사합니다, 관차 나리.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계연이 들어오라는 듯이 살짝 몸을 비켜서자, 관차는 연신 사양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직 남은 공무가 있어 오늘은 선생께 폐를 끼칠 수 없겠습니다.”

“아, 그럼 이걸로 따로 차라도 한 잔 사 드세요!”

계연이 암묵적인 규칙대로 당오통보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관차는 두어 번 사양하다가 그것을 받고는 정중히 인사한 뒤 떠났다.

계연이 대문을 닫고 돌아오자, 손아아는 까치발을 들고서 서신이 누구에게서 온 건지 궁금해하며 힐끗댔다.

“선생님, 누가 보낸 서신이에요? 뭐라고 쓰여 있어요?”

“하하, 이 서신은 어느 대단한 분께서 보내신 거야. 예부시랑인 윤청이 보낸 거거든.”

그러자 손아아가 눈썹을 찡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윤청? 아! 윤 씨라면…… 설마 윤 문곡의 아드님이세요?”

“맞아.”

계연이 손아아의 코를 잡아당긴 뒤, 봉투를 열어 서신을 꺼내 몇 번 털었다. 손가락으로 종이를 훑어보니 대략 그 위에 적힌 글자의 내용이 느껴졌다.

서신에서 윤청은 자신이 이미 상평 공주와 정혼 했으며, 혼인을 올리는 시기는 일 년 뒤로 정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때 계연이 와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또한 곧 상평 공주와 함께 영안현을 방문할 예정이니, 거안소각에 방문해 계연을 정식으로 혼례에 초청하겠다고 말했다.

윤재성은 더 이상 완주의 지방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인 윤청의 혼례에는 황족이며 조정의 문무 관원이 모두 모일 것이다. 본래 계연은 그런 자리를 싫어했지만, 윤청의 혼례라면 반드시 참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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