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64화 (464/892)

464화. 부부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다

“이 녀석, 행동이 빠르기도 하지!”

“선생님, 선생님! 뭐라고 쓰여 있어요? 아아한테도 알려주세요!”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숙여 손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별일 아니야, 윤청이 혼인을 한다는구나.”

“예? 윤청이 혼인한다고요? 이렇게 빨리요?”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뜰 안에서 누군가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손아아가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대체 누가 말을 한 건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아이는 계연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방금 누가 말을 했어요!”

손아아는 이렇게 말하며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별안간 돌 탁자 옆에 불그스름한 허상이 보였다. 손아아가 그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형상이 점차 또렷해지더니 마침내 그곳에 얌전히 앉은 여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아아는 눈을 문지르며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여우라는 동물 자체를 알지 못했다. 여우에 관련된 거라고 해봤자 시장에서 파는 여우 털가죽뿐이었고, 그것조차 호운의 털 색깔처럼 선명하지는 않았다.

“선생님, 저쪽에 붉은색…… 개인가?”

손아아가 계연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돌 탁자 곁에 있던 호운을 가리켰다. 그 말에 계연이 호운을 슬쩍 곁눈질하니, 과연 호운의 털이 뻣뻣이 곤두서있었다.

“나는 개가 아니야! 이렇게 예쁜 개 본 적 있어? 나는 여우야! 붉은 여우!”

호운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자리에서 휙 일어섰다. 그리고는 손아아 앞으로 뛰어가 앞발을 공격적으로 휘두르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가 평생에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바로 개였고, 그다음이 건달을 비롯한 불량배들이었다.

아아는 겁에 질려 계연의 뒤로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계연을 꼭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선생님, 선생님! 저게 말을 해요! 저한테 말을 해요!”

그러자 호운이 단번에 제 입을 가로막더니 조심스럽게 계연의 눈치를 보았다. 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뜰 안쪽으로 향했다.

손아아는 긴장한 기색으로 그의 뒤를 따르며 호운에게서 내내 눈을 떼지 않았다.

“선생님, 저…… 저 여우가 말을 했어요. 요괴가 아닐까요? 사람을 잡아먹으면 어쩌죠……?”

계연은 곧바로 돌 탁자 앞에 앉아 윤청의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놓인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야, 글씨 연습이나 마저 하렴.”

“하, 하지만…….”

이렇게 더듬거리는 손아아의 눈길은 시종일관 호운을 향해 있었다. 그러다 다시 겨우 시선을 떼고 계 선생님을 바라보았지만, 선생님은 어떤 특이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호운이 손아아를 향해 걸어간 뒤, 앞발 두 개를 허리에 턱 얹고서 손아아를 가리켰다가 다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 내가 보여?”

손아아가 다시 계연을 바라보자, 계연은 마침 서신 뒤편의 내용을 읽고 있었다. 그는 이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에 더해 여우가 방금 한 말을 다시 생각하던 손아아는 돌연 무언가 깨달았다.

‘설마 계 선생님은 이 여우가 보이지 않나? 그래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으신 건가?’

비록 손아아는 호운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호운이 생각하기로는 눈의 초점이 정확하게 자신을 향해 있는 걸 보니 자신이 쓸데없는 걸 물은 것 같았다.

호운은 요력(妖力)을 모아 자신의 요법(妖法)을 펼쳤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계 선생님이 언젠가 말했듯이 주의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호운은 석판으로 덮인 우물 뒤편으로 뛰어가 자기 모습을 손아아의 시선에서 사라지도록 했다. 그런 뒤에 다시 살금살금 뒤편에서 걸어 나왔다.

과연 호운이 나온 후에도 손아아는 여전히 우물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이쪽을 향하지 않은 걸 보니,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계연은 이때 호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손아아의 반응을 떠올려 보니, 아아의 영혼이 이미 예민해지기 시작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손아아는 한참이 지나도 여우가 우물 뒤편에서 나오지 않자, 계연을 슬쩍 살펴보고는 대추나무를 돌아 우물가로 향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여우는 그곳에 없었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더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아야, 글씨 연습해야지.”

계연이 다시 아이를 향해 말했다.

“네에…….”

계 선생님이 두 번째로 재촉하자 아이는 고분고분 대답한 뒤 탁자로 돌아와 앉았다. 하지만 붓을 들어 글씨를 쓰면서도, 때때로 멍하니 뜰 곳곳을 바라보곤 했다.

유시(*酉時: 오후 5시부터 7시)가 되자, 손아아는 계연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떠나가자 호운이 즉시 뛰쳐나와 이렇게 말했다.

“계 선생님, 아아는 방금 정말로 저를 볼 수 있었어요. 비록 제가 먼저 입을 열어 주의를 끌었던 탓도 있지만, 아아는 특별한 눈을 가진 것 같아요.”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영성(靈性)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편이거든. 그래서 기이한 일을 목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아아의 영성은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발달한 편이니, 너를 볼 수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이렇게 말한 계연이 다시 덧붙였다.

“실은 많은 사람이 어렸을 때 기이한 일을 목격하고는 하지. 하지만 다 자란 후에는 자기 보호를 위해 그 기억을 잃게 된단다.”

호운은 계연의 말을 잘 기억해 둔 다음, 돌 탁자 위로 뛰어올라 그 위의 서신을 살폈다.

“선생님, 그래서 윤청이 정확히 언제 혼례를 올린대요? 만약 선생님께서도 가실 예정이라면, 저도 같이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조급해할 필요 없어, 혼례에 갈 필요도 없고. 곧 새신부를 데리고 함께 영안현에 온다고 했거든. 직접 친지들을 방문하여 혼례에 초대할 거라고 하니, 거안소각에도 올 테지.”

영안현의 풍속에 따르면 정혼 자체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구두 약속으로 정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혼례 날짜가 잡히면 직접 일가친척들을 방문하여 초대하는 게 관례였다.

윤재성과 윤청은 사실 그들의 신분이나 바쁜 공무 때문에라도 이런 사소한 관습은 건너뛰어도 되었다. 하지만 어떤 원인으로 인해, 윤청이 일부러 상평 공주를 데리고 함께 고향으로 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요? 언제 온다는데요?”

호운은 즉시 들뜬 기분이 되었다. 그에게 있어 도성처럼 번잡하고 잘 알지 못하는 곳보다는 자신의 고향인 영안현이 훨씬 편했다. 심지어 윤청을 데리고 우규산으로 놀러 갈 수도 있었다.

요즘 우규산에서는 정괴(精怪)들을 비롯해 호랑이, 늑대를 비롯한 맹수들조차 감히 호운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이는 호운을 무서워한다기보다는 육 산군의 존재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육 산군과 오래 지내 냄새까지 비슷한 호운을 꺼리게 되었다.

심지어 이 우규산에 오랫동안 산신이 없었던 것도 육 산군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육 산군이라는 이 이름 자체도 그가 거느린 창귀(倀鬼) 중에서 학식이 좀 있던 자에게 육 산군이 글을 배운 후, ‘산중의 왕’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지은 이름이었다. 게다가 어떤 책에서는 산속의 맹호를 산군이라 칭하지 않는가.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계연은 친밀한 벗의 근황에 관해 점을 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이야말로 꼭 필요한 때였으므로, 계연은 손가락을 접으며 점을 친 후 호운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미 누선(樓船)을 타고서 춘목강에 있구나. 아마 며칠 안 걸릴 거야. 너는 미리 가서 준비하고 있으렴. 혼롓날에는 가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으니까.”

“네, 그럼 저는 우규산으로 돌아가 볼게요!”

호운은 이렇게 말을 남긴 뒤 탁자에서 뛰어내려 단번에 담장을 넘었다.

호운이 떠난 후, 계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서신을 살폈다.

“보아하니 윤청이 아직 집 문턱도 넘지 않은 새신부를 꽤 믿고 있나 보구나!”

서신에 대놓고 상평 공주를 데리고 거안소각에 오겠다고 적은 걸 보니, 부부 사이에 아무런 비밀도 없게 하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마 이번 목적이 아니었다면 윤청은 영안현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계연의 자의식이 과대한 게 아니라 정말로 사실이었다. 비록 표면상으로는 고향의 풍습에 따라 일가친척을 초대하러 왔다지만, 실상은 계연을 초대하러 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 * *

춘혜부에서는 윤청이 상평 공주와 함께 자신이 공부했던 서원 근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은 마침내 강 쪽을 향해 낮게 휜 모양의 버드나무 근처에 도착했다. 시종과 호위들은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서방님, 여기가 예전에 서원에서 수학할 때 자주 와서 책을 읽었다던 곳인가요?”

“예, 강물에 대고 책을 낭송하던 곳이지요. 정서 함양에도 좋고, 강물 안에 사는 이들도 들을 수 있고요.”

그러자 상평 공주가 둥근 부채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서방님께서 제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지요. 여기서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커다란 물고기와 거북이 나타나 근처를 배회했다고요. 참, 서방님. 도대체 그 물고기와 거북이는 얼마나 컸나요?”

윤청은 상평 공주의 우스워하는 모습과는 달리 진지한 얼굴로 손을 이용해 크기를 가늠했다.

“사람보다 컸습니다. 어쨌든 공주마마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훨씬 컸어요.”

그때, 호위 두 명이 성이 있는 방향에서부터 이쪽으로 다급히 걸어왔다. 두 사람은 시위의 복식을 갖추지 않은 가벼운 차림새였고, 각기 술병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대인, 사 왔습니다.”

“이게 뭐죠? 술?”

상평 공주가 궁금해하자 윤청은 그중 하나를 들어 슬슬 흔들며 대답했다.

“이건 춘혜부에서 이름난 천일춘이라는 술입니다. 20년 묵은 천일춘이 맞나?”

“대인께 아룁니다. 두 병 다 20년 동안 묵힌 천일춘입니다. 원자포의 주인장이 직접 창고 흙 속에서 파내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자 윤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음, 은자는 제대로 치른 게 맞겠지?”

그의 물음에 시위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예, 당연하지요. 만약 그 주인장이 팔지 않겠다고 고집부린 것만 아니라면, 저희도 황궁에서 발급한 어령(御令)를 꺼내 들지 않았을 겁니다.”

“혹 다음번에 20년 묵은 걸 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굳이 어령을 꺼낼 필요는 없지.”

윤청이 담담하게 명을 내리자 시위들이 즉시 포권하며 ‘예’하고 대답했다. 그들의 호위 대상은 비록 상평 공주였지만, 윤 대인의 말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춘혜부에는 구경할 곳이 너무 많으니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오도록 하지요. 오늘은 일단 서원과 강신 사당을 보고, 강변도 조금 거닐었으니 다시 배에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서방님 말씀대로 하지요.”

그렇게 몇 사람은 몸을 돌려 나루터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촤아아……!

강물에 닿을 듯이 굽은 버드나무 아래쪽 수면에 돌연 파문이 일었다. 상평 공주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가,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파문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얼핏 볼 수 있었다.

* * *

춘목강 물길을 따르다가 소순하로 방향을 꺾은 이들의 누선은, 노화산 기슭의 나루터에 멈췄다. 윤청과 상평 공주는 배 위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아랫사람들이 준비한 마차에 올라 산길을 따라 노화산으로 향했다.

산길을 따라 달리며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던 상평 공주가 돌연 이렇게 물었다.

“서방님, 노화산 깊은 곳에 벽수담이라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 탕을 끓이면 뼈까지 전부 녹아 사라진다는 물고기가 산다던데요.”

“예, 그런 물고기가 있죠.”

이들은 공주와 예비 부마이니만큼 아무리 행렬을 소박하게 준비하려고 해도 꼭 필요한 이들의 수를 줄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총 세 대의 마차에 열 명이 넘는 기수(騎手)가 따르고 있었다. 춘혜부 같은 번화한 지방에서는 그런 행렬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영안현 같은 ‘시골’에 도착하자 이러한 행렬은 즉시 눈길을 끌었다.

마차와 마차를 따르는 무리가 함께 현성에 들어서자, 백성들이 대체 어떤 대단한 나리가 온 것인지 궁금해하며 수군댔다. 마차는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며 곧바로 천우방으로 향했다. 윤청과 상평 공주는 현성에 들어온 후에도 특별히 관아로 사람을 보내 자신들이 도착했음을 알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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