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67화 (467/892)

467화. 돌아올 날도 알려주지 않고 떠나다

그로부터 1년은 금방 흘러, 곧이어 도성 전체가 윤청과 양평의 혼사를 알게 되었다. 혼례가 거행되던 날에는 윤재성의 저택은 물론이고 황궁까지 떠들썩할 정도였다.

이런 경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계연도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해 호운을 데리고 함께 윤재성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처럼 오래 머무르지 않고, 딱 3일만 머무른 뒤 다시 영안현으로 돌아왔다.

* * *

옛말에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간다지만, 계연은 이 말을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특히나 이번에는 오래 잠이 들었던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계연은 어느새 영안현에서 거의 3년째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는 이 세계로 넘어온 뒤 계연이 한곳에 가장 오래 머무른 것이었다.

그동안 별다른 큰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계연을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위씨 집안에서는 다시 계연에게 찻잎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매년 새로 나온 찻잎 중 가장 좋은 품질의 차가 거안소각으로 보내졌다.

그렇게 어느새 무술년(戊戌年) 2월 초가 되었다. 이날은 키가 훌쩍 자란 손아아가 여느 때처럼 뜰 안에서 글씨를 연습하고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뜰 안에 서 있는 소녀의 손발은 따뜻했다. 손아아는 글 연습을 할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계연은 방 안에서 법전(法錢) 몇 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건 그가 여러 번의 시도를 거쳐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전과 비교했을 때, 법전 위에 흐르던 광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되었고, 그 안에 품은 도력은 더욱 심오해졌다. 법전은 동전보다 약간 컸고 무게는 훨씬 더 무거웠다.

똑똑똑-!

누군가 밖에서 대문을 두드리자, 손아아가 붓을 붓걸이에 재빨리 대문으로 향했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아아가 대문을 열자, 바깥에는 흰 수염에 자상한 눈매를 가진 노인이 서 있었다.

“네가 손아아구나?”

그러자 손아아가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어르신은 누구세요?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절 알지요?”

“하하하, 만나보지 않았어도 알 수는 있지…….”

거원자가 마침 방에서 나오는 계연을 향해 멀리서부터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말했다.

“계 선생님, 이제 길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계연은 거원자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손을 뻗어 그를 대문 안으로 청했다.

“거원자 도우(道友), 어서 들어오세요.”

“예,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거원자는 공손히 대답한 뒤 손아아가 비켜서자마자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 손아아는 다시 대문을 잘 닫아걸었다.

거원자가 돌 탁자 앞에 가보니 그 위에는 문방사우와 손아아가 쓰던 글씨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본 거원자의 눈이 돌연 반짝 빛났다.

“이 아이의 필체가 무척 뛰어나군요!”

그는 문을 닫는 손아아를 지켜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계연에게 물었다.

“혹시 저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십니까?”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저 글씨를 가르치는 것뿐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선도(仙道)를 걷는 게 좋다고만 생각하지만, 실은 그 길도 완벽하다고 할 순 없잖아요.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야말로 저 아이의 가족들이 가장 바라는 거예요.”

그 말에 거원자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께서 만약 제자를 받기 어려우시다면, 저 아이는 저희 옥회산에 들어오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특별히 제자를 하나 더 삼지요!”

그러자 한 쌍의 회백색 눈이 거원자에게로 향했다. 계연은 이렇게 내뱉었다.

“꿈도 크시네요!”

“하하하하!”

거원자가 크게 웃어젖히자 다시 뜰 안으로 돌아온 손아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계연을 향해 물었다.

“선생님, 저 할아버지께서 왜 웃으시는 거예요? 선생님의 웃어른이신가요?”

“어이쿠……. 어찌 감히!”

거원자가 즉시 웃음을 거둬들이며 펄쩍 뛰었다. 자신이 비록 계연과 농담을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위아래는 엄격히 따져야 했다.

계연은 탁자 위에 놓인 글씨를 바라보았다. 거원자조차 놀랄 정도였으니, 보통 사람의 눈에 손아아의 글씨는 몇몇 명필(名筆)들과 비견될 정도였다. 하지만 사실은 계연이 보기에 작년부터 아아의 글씨는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 원인에는 천부적인 재능의 영향도 있었고, 손아아의 명성이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손아아가 약간의 우쭐함을 느끼고 마음이 붕 뜨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외 자잘한 이유에는 아아가 쓰는 문구(文具)에 한계가 있어서이기도 했다.

계연은 아아를 무척 아꼈지만, 아아의 글씨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자질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나 손씨 집안의 기대와도 상관없이, 그저 제자를 맞을 시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게다가 선도(仙道)에 드는 것이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신선이 좋다 말하지만, 계연이 보기에는 보통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평안한 끝을 맞이하는 것도 무척 좋은 삶이었다.

게다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제자를 맞아들이는 일에 있어 계연의 기준은 무척 높았다. 심지어 육 산군처럼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이조차 그저 사적인 관계로 인정했을 뿐이니 말이다. 물론 바둑돌을 미리 깔아두는 것과도 연관이 있었지만 말이다.

계 선생님이 자신의 글씨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손아아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손아아도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실력이 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계 선생님은 항상 자신을 격려하며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꾸준히 연습하라고 조언해주었다.

“선생님, 두 분끼리 중요한 말씀을 나눌 테니 저는 이만 돌아가는 게 낫겠죠?”

손아아가 눈치 빠르게 이렇게 물었다. 거안소각은 거의 항상 조용했지만, 가끔가다 특별한 손님들이 방문하곤 했다. 그럴 때면 계 선생님은 자신을 집으로 돌려보내곤 했으므로 오늘도 그럴 거라고 여긴 것이다.

과연 손아아가 이렇게 묻자 계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손아아는 능숙하게 탁자 위의 문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아아는 거안소각에 막 왔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글씨를 쓴 종이와 남은 먹물만 치운 뒤에 집이나 학당에서 필요할 것 같은 것만 가지고 돌아갔다. 벼루, 붓걸이, 문진 등은 몇 개나 있었으므로 굳이 갖고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손아아가 남은 먹물을 깨끗이 처리한 뒤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문구 몇 종류를 추려 방 안으로 가져다 놓으려던 순간, 계연이 이렇게 말했다.

“아아야, 이번엔 전부 다 상자에 넣고 집으로 가져가렴.”

“네?”

손아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계연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네’하고 대답하고는 탁자 아래에 놓인 작은 서책 상자에 물건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문진(文鎭)까지 안에 넣고 나서, 손아아는 입을 꾹 다물고 계연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저 내일도 와도 되죠?”

그러자 계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내일은 올 필요 없다. 선생님이 널 내쫓는 게 아니라, 멀리 갈 일이 있거든. 언제 돌아올지는 아직 모르겠구나.”

그 말에 약간 빨개졌던 눈가가 약간 누그러졌다.

“그럼 선생님이 돌아오시면 거안소각에 와서 계속 글씨 연습해도 되죠?”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계속하고 싶다면 당연히 와도 된다. 자, 어서 정리하고 집으로 가렴. 내일은 오지 말고. 나는 여기 없을 테니 말이야.”

손아아가 머리를 힘껏 끄덕이며 말했다.

“선생님이 돌아오시면 다시 글씨 연습하러 올게요!”

“하하, 기특하구나. 집까지 조심히 돌아가렴.”

그 말에 손아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 오늘은 천우방 입구까지만 가면 돼요. 할아버지가 장사 끝나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가야 하니까요.”

이렇게 말한 손아아는 서책 상자를 짊어지고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아는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고개를 돌려 거원자와 계연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저 가요?”

“그래, 잘 가렴!”

계연이 손짓하며 아아가 떠날 때까지 바라보았고, 아아는 바깥에서 문을 잘 닫고 떠나갔다.

거원자는 내내 말이 없다가 손아아가 떠나자 계연을 향해 물었다.

“계 선생님, 이대로도 괜찮겠습니까?”

계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은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좋을 거예요.”

그러자 거원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선자들은 제자를 받을 때 무척 신중했고, 도행이 높은 이들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제자를 받기 전에 각종 시험을 치른다고 말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첫 문턱도 넘지 못했다.

* * *

손아아가 작은 서책 상자를 등에 지고 천우방 골목을 따라 걷자, 그녀를 발견한 이웃들이 아이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평상시 이 귀여운 아이의 인사를 무척 반가워했다.

하지만 오늘 손아아는 어쩐 일인지 풀이 죽어 보였다. 쌍정포를 지날 때는 여느 때처럼 걸음을 멈추고 그곳의 언니며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지도 않고 근심 어린 얼굴로 곧바로 지나쳐갈 정도였다.

그렇게 손아아가 천우방에서 벗어나자, 멀리서부터 손녀딸을 발견한 손복이 그녀를 불렀다.

“아아야!”

손아아는 발걸음을 서둘러 할아버지의 노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서책 상자를 수레 뒤편에 내려놓고서, 작은 걸상 위에 앉아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손복은 바삐 일하다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아아야,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

평소 손아아가 거안소각에서 나오는 시각은 손복이 노점을 접는 시각과 딱 맞았다. 그런데 오늘은 반시진(*半時辰: 1시간)도 넘게 남았는데 벌써 온 것이니 이상하게 여길 만도 했다.

그의 물음에 손아아가 풀이 죽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거안소각에 오셨거든요. 그래서 계 선생님이 오늘은 일찍 가보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멀리 떠날 일이 있어 내일은 올 필요 없다고도 하셨어요.”

손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마지막 말에 깜짝 놀랐다. 이에 그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손아아 앞에 쭈그리고 앉아 물었다.

“계 선생님께서 멀리 나선다고 하셨다고? 얼마나 오래 떠나계신다더냐? 곧 돌아온다고 하셨니?”

그러자 손아아가 할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도 언제 돌아올지 모른대요. 그러면서 거안소각에 있던 문방사우도 전부 집으로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손복은 그제야 손녀가 낙담한 기색인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이렇게 물었다.

“아아야……. 계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몇 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떠나계실 수도 있다. 선생님께 작별 인사는 제대로 하고 온 것이냐?”

계 선생님이 아아에게 문방사우를 모두 가져가라고 하신 데다가, 내일은 올 필요 없다고 하셨다는 건 곧 떠난다는 소리였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몇, 몇 년이라고요……? 그럼 지금 당장 선생님을 뵈러 가야겠어요!”

손아아는 걸상에서 펄쩍 뛰어내려 이렇게 소리치며 천우방을 향해 달려갔다. 손아아는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들과 인사를 나눌 정신도 없었다.

“아니, 무슨 일로 돌아왔니?”

“아이고, 천천히 가거라! 넘어지겠다!”

“급해서 그래요!”

“대체 무슨 일이람…….”

손아아는 천우방 깊숙이 자리한 거안소각 앞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이렇게 오래 달린 후에도 손아아는 약간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대문 앞에는 어느새 낡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손아아가 몇 번이고 힘껏 소리쳤지만, 대문 안쪽은 고요하기만 했다.

그러자 손아아의 두 눈에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아이는 떨어지려는 눈물을 꾹 참고서 힘껏 거안소각의 대문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 선생님이 안 계셔도 저는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할 거예요! 선생님이 돌아오시면 실력이 늘었다고 칭찬하실 수 있게요! 반드시 열심히 할게요!”

휘이이- 휘이잉-!

거안소각 주위의 바람이 돌연 거세지더니, 대추나무 가지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동시에 붉은 빛 하나가 실의에 빠진 손아아를 향해 떨어졌다. 이에 손아아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보니, 손바닥 위로 나뭇잎 몇 개와 붉은 무언가가 잡혔다.

“어……?”

손아아는 손에 쥔 커다란 과일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이에 대추를 자세히 살펴보니, 표면에 붉은 구름 같은 것이 감돌고 그 위로 빛이 흐르다 사라졌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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