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68화 (468/892)

468화. 월록산(月鹿山)의 정봉 나루터(頂峰渡)

계연은 이 시각 거원자와 함께 영안현 바깥의 관도(官道)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는 집 안팎을 모두 잠근 뒤 천우방 이웃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보따리를 매고서 길을 나섰는데, 다만 천우방 입구를 통해 나오지는 않았다.

그때 계연이 돌연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영안현 천우방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계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계연은 눈빛이 반짝이더니 재빨리 자신의 소맷자락 근처를 살펴보았다. 조금 전 손안에 실체가 없는 바둑돌이 하나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손아아의 것이었다.

“별일 아니에요, 어서 가죠. 구 선생과 다른 분들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까요.”

이렇게 말한 계연의 발아래에는 이미 구름이 모여들어 있었고, 거원자도 소매를 펄럭이며 가볍게 몸을 솟구쳤다. 두 사람은 석양 아래에서 구름을 타고 영안현을 떠나 멀리 날아갔다.

거원자는 원래 며칠 정도 계 선생님이 필요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함께 기다릴 생각이었다. 자신이 거안소각에 이틀 정도 머무른다 해도 계 선생은 전혀 개의치 않을 터였다. 하지만 계 선생님은 일찍이 자신의 방문을 예상했던 것인지, 자신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길을 떠났다.

“계 선생님, 옥회산의 다른 도우(道友)들은 한발 먼저 월록산(月鹿山)으로 출발한 상태입니다. 그 산에는 계역(界域)을 오가는 비행선 등이 정박하는 나루터가 있는데, 이름은 정봉도(頂峰渡)라고 합니다. 구 도우를 비롯한 이들이 먼저 가서 무엇을 타고 갈지 미리 봐놓기로 했거든요. 그러니 저희가 도착하면 그들과 합류하여 함께 이동하시면 됩니다.”

길을 떠나기 전 거원자는 이미 옥회산의 계획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해주었고, 계연에게 혹시 무슨 다른 의견이 있는지 물었다. 계연은 그저 그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으므로 따로 무슨 계획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다가 거원자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자 계연이 흥미를 느꼈는지 이렇게 질문했다.

“월록산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정봉 나루터는 어느 선문(仙門)의 소유인가요? 계역을 오가는 것에는 비행선 말고 또 뭐가 있나요?”

거원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찬찬히 대답했다.

“월록산은 운주 택남국(澤南國)에 자리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커다란 산입니다. 그 산에는 선도(仙道)를 닦는 선문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월록종(月鹿宗)이라고 하며 그들이 정봉 나루터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록종에는 그들이 소유한 계역을 오가는 수단은 없고, 월록종은 다른 선문의 나룻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나루터만 소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도 저희가 어느 선문의 것을 타고 가게 될지, 그게 비행선일지 현도(*懸島: 공중에 떠 있는 섬)일지, 혹은 무슨 진기한 동물일지는 모릅니다.”

“아…… 월록종은 계역을 오가는 용도의 비행 수단이 없군요?”

계연의 물음에 거원자는 조금도 그가 견문이 좁다고 여기지 않고 자세히 대답해주었다.

“계역 나룻배 같은 수단을 만드는 건 엄청난 도력과 품이 드는 일입니다. 게다가 안팎으로 긴밀히 연결된 각종 진법과 기물도 필요하고요. 그 거대한 면적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법보(法寶)입니다. 선문을 위해 영물(靈物)을 수색할 수도 있고, 좋은 인연을 많이 맺어두는 데에 도움도 되고, 위급한 시기에는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월록종은 그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나루터를 관할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복입니다. 계역의 나룻배 같은 걸 만들 실력은 아직 안 되죠.”

거원자가 씁쓸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는데, 그는 속으로는 월록종뿐만 아니라 옥회산조차 그런 법보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옥회산은 금전적인 부분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으나, 종파 형식의 선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옥회산 수선자들은 서로 간에 한 성지(聖地)에서 함께 수행하는 수선자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소수의 이들을 제외하면 보통 서로 관여하지 않고 자유롭게 수행하는 이들이었으므로 결집력이 약했다. 그래서 어떤 큰일을 도모할 때 힘을 모을 수가 없었고, 당연히 엄청난 정신력과 법력, 재화를 소모해야 하는 계역 나룻배 같은 것은 먼 이야기였다.

“그렇군요.”

계연은 그 후로 더는 질문하지 않았고 거원자가 조종하는 구름을 타고 함께 서북쪽으로 날아갔다.

* * *

운주의 중부에는 커다란 못이 있었는데, 실은 크고 작은 호수며 강줄기가 모여 만들어진 지형이었다. 그곳에는 영성(靈性)을 가진 동물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부락(部落)처럼 따로 모여 사는 부족들도 있었다. 그리고 택남국(澤南國)은 바로 이 지역의 남쪽에 자리해 있었다. 누가 봐도 지리적 위치만을 고려해 지은, 성의 없는 이름이었다.

영안현에서부터 쭉 비거술을 이용해 날아온 계연과 거원자는 그다지 서두르지 않았으므로, 며칠 뒤에야 월록산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택남국은 물론 운주 중부의 거대한 수원(水源)지역의 남부에 자리해 있었지만, 어쨌든 도시가 아닌 국가였으므로 월록산 근처에서는 호수나 강물을 볼 수는 없었다.

거원자는 소매를 휘둘러 주위의 안개층을 걷어낸 뒤 아래쪽의 큰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계 선생님, 저 산이 바로 월록산입니다. 정봉 나루터는 진법으로 보호되고 있어서 나루터에 출입할 수는 있지만, 이곳에서는 나루터를 볼 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 아래쪽을 내려다본 계연은 월록산이 그리 험준하지 않으며, 산 전체가 푸른 신록으로 뒤덮이고 군데군데 안개가 낀 수려한 풍광을 지녔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록 우규산에 비하면 약간 작았으나, 그래도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는 크기였다.

계연이 월록산을 관찰하던 동안, 거원자는 이미 아래쪽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각(*半刻: 7~8분) 정도가 지난 뒤, 두 사람은 월록산 기슭에 내려섰다.

“선생님, 선문이 있는 지역에서는 급한 일이 아니라면 걸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다른 선문에 대한 일종의 존중이기도 합니다.”

“하하, 당연한 말씀이에요. 게다가 저도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럼 오늘은 계 선생님과 함께 등산하는 셈 치면 되겠습니다, 가시지요!”

거원자 웃으며 정중하게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산을 올랐으나, 실제 속도는 절대 느리다고 할 수 없었다.

이미 해가 뜬 후라서 월록산의 안개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산 곳곳에는 초를 캐는 약초꾼과 나무꾼은 물론이고, 활을 짊어진 사냥꾼들이 동행과 함께 산을 타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모습이었으므로, 이 산에 선문이 자리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계연은 푸른 장삼에 옥 비녀를 꽂고 있었고, 거원자는 흰 도포에 긴 수염을 기른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동안, 주위의 산행객은 물론 산중에 사는 동물들조차 때때로 그들을 힐끔거렸다.

그때, 마침 나무꾼 두 명이 등에 장작용 나무토막을 잔뜩 지고서 좁은 산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계연과 거원자가 산 깊은 곳으로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저어, 두 분 선생님……! 이 위로는 산길이 험준한 편입니다. 등산하시는 거라면 저쪽으로 가시는 게 더 좋을 겁니다요.”

나무꾼이 땔나무용 칼로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딱 봐도 그쪽 길이 더 넓고 완만해 보였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금 험준해도 저희는 괜찮아요.”

계연이 웃으며 대답하자 나무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아직 젊은 편이니 괜찮겠지만, 곁에 계신 노선생께서는 연세가 꽤 되어보시는데요. 괜히 깊은 산골까지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쩝니까? 게다가 월록산이 대체로 평화롭긴 해도, 맹수가 없는 건 아닙니다요. 다른 건 몰라도, 늑대나 오소리 같은 건 확실히 있습니다. 그러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신선이라도 와서 도와준답니까?”

그러자 거원자가 하하 웃으며 나무꾼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예를 취하며 대답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 늙은이는 복이 많아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필시 전화위복이 될 겁니다. 그러니 어쩌면 진짜 신선이 와서 구해줄 수도 있겠지요.”

다른 나무꾼 하나가 거원자의 말에 동행과 함께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어르신……! 선생님께서는 좀 말리지 않으시고요?”

그들이 계연을 향해 이렇게 묻자, 계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말릴 수가 없어서요. 두 분은 걱정하지 마시고 내려가세요.”

두 나무꾼은 고개를 저으며 계연과 거원자가 올라온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어쨌든 다른 사람의 사정이었으므로 이렇게까지 말렸으면 그들도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산을 타고 내려가면서도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을 향해 때때로 고개를 돌리며 힐끔거렸다.

“어이, 진(陳) 씨 아저씨가 항상 여기 월록산에는 진짜 신선이 산다고 하지 않았어?”

한 나무꾼이 이렇게 묻자 다른 하나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게 왜? 자네는 저 두 사람이 신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물론 그건 아니겠지, 내 말은 저 두 사람이 혹시 신선이 되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닌가 해서 말이야. 어쨌든 가끔 있는 일이니까.”

“어쨌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두 사람은 땔감을 지고 산길을 내려가면서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이들이 다시 뒤를 돌아보니, 계연과 거원자의 모습이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 * *

한편, 계연과 거원자는 산속 깊이 들어갈수록 보통의 산행객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영성을 깨우친 동물들이 이쪽을 주시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반 시진이 지난 후, 계연과 거원자는 이미 보통 사람들이 하루는 꼬박 등산해야 오를 수 있는 곳까지 도착한 후였다.

근처에 설치된 진법과 영기(靈氣)가 슬슬 느껴지던 차에, 계연은 무언가 느낀 것처럼 오른쪽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모호한 시야에도 산봉우리의 윤곽이 얼핏 드러났다.

산봉우리 두 개가 서로 기대있어, 마치 거대한 입(入)자처럼 보였다. 아래쪽 산봉우리가 위쪽 산봉우리의 산허리 부근을 받치고 있었고, 위쪽 산봉우리의 정상 부근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정봉(*頂峰: 산꼭대기) 나루터라는 이름 그대로네요.”

거원자도 계연의 행동을 눈치챘으므로,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계연이 정봉 나루터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거원자는 진법과 영기로 인한 주변의 변화와 그것이 흐르는 방향은 알 수 있었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시각만으로 무언가를 보지는 못했다.

‘역시 계 선생님이군!’

거원자가 계연을 대하는 태도에는 언제나 믿음이 가득했고, 계연의 실력에 거원자는 진심으로 탄복하고 있었다. 거원자가 좀 더 걸음을 서두르자고 말하려던 순간, 멀리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두 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누군가 자신들을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약간의 메아리와 함께 들려오자, 계연과 거원자가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산 위쪽에서 몇 사람이 다급히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중 한 사람은 이쪽으로 내려오면서도 두 사람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는 마치 자기가 이렇게 때때로 소리치지 않으면 두 사람이 당장 가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초조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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